촛불들이 외친다. '조․중․동은 내려와! 내려와'. 잠시후 촛불과 대치하고 있는 세종로 사거리 전경버스위에서 기자로 보이는 두사람이 내려온다. 아마도 촛불들이 내려오라고 외쳤던 그 아날로그 언론사의 기자이겠지. 나는 이 장면을 공중파를 통해서 본 것이 아니다, 카메라 하나, 노트북 하나, 한명의 기자, 한명의 사주로 운영되는 ‘디지털 촛불 게릴라’의 방송을 통해서 나는 이장면을 생생하게 보았다.
이런 인터넷 방송만 수천개다. 6월 1일 ‘아프리카닷컴’에서만 2천5백개의 방송이 촛불들의 축제를 중계했고, 동시에 10만명, 하루에 1백2십만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낡은 아날로그 보수언론은 미쳐 몰랐다. 바로 얼마전 촛불들이 꽃을 피울 때 그들 아날로그들은 ‘배후세력’을 당당하게 선동했다. 아날로그 정부는 촛불의 외침을 ‘괴담’이란 입소문으로 당당하게 격하시켰고 ‘아날로그 보수언론’의 선동문에 ‘배후세력 색출엄단’ 방침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아날로그 보수언론의 육일승천하던 기세도 고작 10일을 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끌려나오고 말았다.
아날로그 보수언론은 진정으로 시대를 착각했다. 점유율 70%, 80%를 넘나드는 자신들이 여전히 밤의 황제라 착각했고, 자신들의 펜끝 방점하나로 세상분위기를 좌지우지 하리라 확신했다. 세상의 여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중간에서 꺽어버렸다. 그들 아날로그 보수언론이야말로 대중이 자신들의 선동질에 놀아난다고 보는 확신범이였다.
반면, 누리꾼들의 활동공간은 그물망이다. 광장(아고라)으로 집결했다가, 블로그로 산개하고, 엄지로 개별소통하는 철저한 그물망이다. 그 그물망 속에서, 누리꾼들은 이 확신범들의 선동질을 아주 통쾌하게, 그리고 즐겁고도 가벼운 놀이(엔터테인먼트)로 제압했다. 광우병이 위험하다고 선동질했던 1년전의 보수언론의 사설과 기사를 들춰내, ‘조중동 스럽다’고 가볍게 일축했다. 배후설을 제기한 심재철의원에게는 ‘18원 정치후원금보내기’ 놀이로, 배후색출에는 그물망으로 흩어져 ‘내가 배후다, 나를 잡아가라’는 ‘닭장투어’ 놀이로 화답했다.
이 디지털 촛불들은 아날로그 보수언론의 엄숙주의와 선동성을 가벼운 놀이로 맞대응하며 이제, 그들의 ‘쌩얼’을 낱낱이 발가벗겼다.
언론은 이제, 더 이상 아날로그만 고집하는 한 소통의 매개기능을 지속하지 못한다. 단선적이고, 수직적인 방식으로 여론을 지배한다고 착각하고, 그 길목을 지배하는 자신들이 대중을 선동한다고 하는 건 정말로 착각이다. 교육감의 홍보용 보도자료나 자치단체장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놓고서 여론이 만들어질거라고 보는 아날로그 방식은 이젠 ‘조롱놀이’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0’교시 수업현장을 바라보는 아이들과 교육관료, 민영화의 효율을 강조하는 정부관료와 그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국민들 사이에서 상호작용(피드백)하는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디지털 촛불은 언론이 특정 몇몇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디지털 촛불은 요구한다. 소통의 매개체로서 아날로그 언론의 귀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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