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복과 보호, 그리고 권력의 서열화

2008/05/31 00:29

달군님의 [예비군에게 보호받고 싶지않다.] 에 관련된 글.

 

너무 기억해야 될 역사적인 글이라서 퍼왔다.

 

그러나 판례평석 숙제를 해야하기 때문에 시험후로 이 글에 대한 코멘트를 미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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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8

2008/05/28 01:16

 

 

 

 

 

1. 진보넷을 떠나려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기가 가장 살아있는, 내용에 치중한 글들을

 

   사람들이 올리는 공간인것 같아 떠나질 못하겠다. 

 

 

 

 

2.  졸업이나 성적에 대한 압박이 크게 여길것들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아니 그런것들을 크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지. 가볍게 넘겨야 한다.

 

      그러나 교수의 취향에 따라서 레폿이나  시험공부의 방향을 잡아가면서 주관도 없이

 

 흔들흔들 하고 있는 나를 보면 한심하다.  이놈의 학부 생활 이제는 청산하게되니 기쁘다.

 

     학부란 곳에서 더이상 내가 머물러서 시간 낭비할 곳은 아니다. 아무런 자극도 의욕도

 

     안되는 공간이다.  결과물도 없이 성과도 없이 수렴도 없이 발산만 한 시간들인것 같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 앎' 이라는 것에 대해서 꾸준하게 나아간

 

  다면.

 

     

 

 

 

3. 세상을 움직이는 로직이 빤히 보일때면 씁쓸하다.  결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수도

 

    추측할수도 없게 각자의 패러다임 자체는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저 사람이

 

     종국적으로 ' 어떤 상황' 에서   ' 어떤 결정' 을 할지는 대충 추측이 되는 것은 아마 나도

 

    이제 세상을 알기 시작하게 되어서 그런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나 자신의 능력과 통찰력

 

    에 큰 자신이 없는 사람조차,  저 사람은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떻게 나아갈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했던 예측이 귀신같이 들어맞을때마다,  이건 높은 확률의 문제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건지 싶어서 씁쓸하다.

 

  근데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건 씁쓸할것도 아니고, 그저 그 현상 그대로 분석하여 바라보면

 

  쓸모있는 세상사는 이치들을 많이 얻어낼 수 있는 재료가 될수도 있다.  또한  재밌게 생각

 

  할수도 있는 일이다.  너무 어둡게 생각하지 말자. 

 

 

   인간사는 어차피 먹고살고 피둥거리고

 

   싸우고 엎치락 뒤치락 진흙탕 위에서 뒹굴고 남의 얼굴에 손톱자국내다가 시간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곱게 양복을 차려입고 향수냄새 풍기면서 세미나 참석해서 갖가지 기만과

 

   술수의 언사를 늘어놓고 돌아오는 길에 술 퍼마시고 오바이트하고 헛소리하며 길거리에

 

   나뒹굴다가 발에 채인 꽃한송이에 눈물을 글썽이며  내일도 이 모순된 마음이 주는

 

 괴리를 떠안고 살아가야만 하나 하고 한숨쉬는 이들이 바글대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이불을 덮어주며

 

   네 자신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어떤 것이든 새롭게 계속 나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되기를 언제나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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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2008/04/28 18:49

 

 

 

 

   1. 인간에 관해서는 믿지 않지만,  운동으로 변화시키는 힘에 관해서는 믿는 다면 그건 모순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냥 때에 따라서 필요에 의해서 연대하고 결합한다고 생각하면 해결되는 건가?

 

    인간에 관한 불신이 짙은 지금,  이런 생각들을 한다.

 

    그러나 훗날에 또 이 문제가 의외로 쉽게 내적으로 해결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중에 가보면,  판단은 의외로 쉽게 이뤄질 수 있을테니까.

 

    별로,  지금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무슨 일을 하든, 맞닥뜨려야 할 문제로, 내가 지금 노새마냥 지고가야 할 짐은 아니다.

 

    지금은 나 자신만 믿을수 있으면 된다.

 

 

  2.  대학생활의 마지막 메이데이,

 

       이번년도에는 진짜로 갈 생각이다.

 

       우리학교 사람들하고는 안간다,  일단  가는 사람들 중에서 아는 사람이 없고,

 

        있어도 그 친구와 함께가서 별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것 같지 않다.

 

        예나지금이나 집회에 가서 한껏 밤새고 힘쓰면서,  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신나게

 

        주변사람들이랑 수다떨고 오는 분위기는 정말 질색이다.

 

        새내기들 동원하는 식으로 가는 집회,  나름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제발 집회가서 제대로 얘기좀 했으면 좋곘다.

 

        그 친구들도 그걸 원한다.   선배들하고 집회 몇번 왔다갔다 한 시간이 아깝고 허무하다는

 

        친구들,  고학번 가서는 뭘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친구들을 과연 그 친구들만 비난할

 

        수 있는가?

 

        집회에는 반드시 집회의 참여의의에 대한  사전 세미나와

 

         끝나고 나서 집회에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것 안하면서 놀고 오면 무엇이 남는다는 말인지!

 

         그래서 친구가 참여한 타학교 학회사람들에 낑겨서 가기로 했다.

 

       시간관계상 4.30만 잠깐 갈테지만.

 

       오늘 지하철에서 인터네셔널 가를 혼자서 박자 맞춰서 열심히 불러보았다.

 

       내가 무언가에 대항할만한 무기를 갖추기 전에, 함께할만한 조직에 속하기 전에 내가

 

       유지해야 할것은 이 불안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건 큰 다짐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숙련된 조용하고 꾸준한 움직임 같은거다.

 

       잠깐 무거운것을 천하장사마냥 들었다 놓는것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근육의 움직임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허망한 시니컬함과 밉살스런 나약함등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꾸준함이 우선되어 해결 될 수 있다는 걸

 

      내가 팍팍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들이 의외로 무척 작고 사소한 문제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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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화와 자유연애의 등장이라면

2008/04/24 14:13

 

 

 

.........무엇보다도  성별분업에 기반한 노동력의 관리와 가족임금 그리고 여성이 사적영역/ 남성 공적

 

 영역으로 갈려지며서 사랑의 여성화가 이루어지고 여성이 남성과의 사랑을 통해서만 경제적

 

사회적 자원의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것인데

 

 

완전 딴소리로 신여성의 등장배경을 쓰고 나왔다 쩝;  비슷하긴 하지만...중요한 위의 핵심이 빠졌다;

 

 

괜찮아! 시험은 치우면서 내용을 알아가는데 의미가 있는거지 정답은 중요치 않아!

 

흐훗 -.-

 

시험을 보되, 점수화 하지 않으면 난 진짜 재밌게 공부할텐데.

 

원래 채찍보다 당근이 더 동기부여의 효과가 큰거 아닌가?

 

나같으면 이렇게 하겠어.

 

답을 쓰고, 각자 나와서 얘기해보라고 하는거야.  구체적으로 자신의 언어로....

 

점수는 상관없음.  누가 얼마나 더 재밌고 알아듣기 쉽게 얘기하는 가에 서로서로 주목하면서

 

막 자극받는거야. 마치 세미나처럼.  그리고 막 열올리고 얘기하고 싸우기도 하고 다음에는

 

내가 못한 얘기 꼭 해야지 하면서 다음시간을 기다리며 와신상담.

 

토론에 끼지 못한 사람은 쪽팔리고 심심해서라도 책을 읽어온다.

 

그리고 기말에는 기나긴 레포트 제출.

 

그리고 그 논문가지고 막 토론하는거야 또 막 열올리면서.

 

누가 더 멋지게 레폿을 써가지고 오는가를 기대하며 기말때를 학생들 모두 기다린다;;

 

서로 얘기하면서 긴장과 대립관계도 생기고 서로의 지성; 에 매혹되기도 한다.

 

그리고 기말이 끝나고 술한잔하면서 서로 친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  '학파' 를 형성! 

 

' 주당'  파, ' 흑맥주' 파, ' 와인' 파,  ' 깡소주' 파 등등.....

 

.......훗날 ' 그들은 막걸리와 콜라를 섞은 우웩할것같은 맛의 음료를 마시며 밤새도록 토론하며

 

그들의 사상을 정립해 나갔다.'   라고 후세에 남겨지며....

 

 

 

.....이렇게 하면 나중에 더 잘 기억날텐데..

 

(이렇게 살았다며 내가 지금 이렇게 조악한 수준일리가 없지... 쩝... 난 근대적 교육제도의 희생

 

자이다...)

 

단 이건 열몇명 미만의 수업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교수들이 이렇게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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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2008/04/19 23:03

1.

 

  인식의 주체와 대상이 분리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어느것도 명료하게 ' 사실'  그 자체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너무나 ' 객관적'   ' 보편적'   ' 그냥 그런것'   '   원래 그런것'    ' 잘 모르는 것'

 

 이라는 명분으로 지워지고 삭제되는 감정들과 경험들.

 

 그러나 절대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 다양성' 을 들고나오지만

 

 사실상 그 상대주의가 가치들사이의 암묵적인 권력관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말 그대로 ' 좋은 게 좋은 식'  이라는 식으로 차별적인 서열을 그대로 받아안는 역할을

 

 그대로 답습하는 상대주의에

 

 나는 더 큰 어려움을 느낀다.

 

 요즘 애들 (다양한 의미에서 쓰이는 ' 요즘애들' 이라는 말이다 ㅎ) 은 주로 말만 다양성을 얘기하지 

 

어떤 주체가 다양성이라는 말을 들고나왔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니, 생각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 한다.  

 

 아이스크림은 무슨 맛이 좋고,  음악은 어떤게 좋고 라는 것에 대해서는 감동감동하며 애기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입에 자크를 채워 둔듯 얘기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 듯 하다.

 

 아니 사실은 할 얘기가 없는 것이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해서 생각이 없고,  관심사가 아닌것이다.

 

 

 

 

 2, 

 

   아이구   또 목감기에 걸려버렸다.

 

   오랜만에 누구한테 전화했더니,  ' 교회에서 전도하는 줄 알았다'   라고 한다 ㅠㅠ

 

   목소리가 탁해져버렸다.

 

   마지막 학기니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

 

   대학을 휴학기간 빼고 올해 9학기 째나 다니면서도, 머릿속에 남은 것은 단편적인

 

   지식들 뿐, 깊이가 없다 도대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이다.  그치만 그 기간에 다른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도

 

   비록..... 당장 내게 남는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지금의 나를 구성한 부분이라고 여기고 싶다.

 

   지금의 나를 오직 살려줄 수 있는 것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뿐인듯 하다.

 

   그 배움이 어떤 '자격'   ' 사회적 지지'   '  나를 둘러싼 처지의 나아짐'

 

   을 준다면 더욱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도 계속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나의 생각이 어떤 타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결코 그것이 공적으로 다수가 동의하거나   나에게 어떤 프리미엄을 주거나

 

    나를 ' 괜찮은 사람'  으로 포장시키는데 일조하거나

 

    ' 뭔가 하고 있는 사람'   처럼 보이게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되더라도

 

      계속 날카롭게 살고 싶다.

 

      근데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인것 같다.

 

      단순히 생계유지의 어려움 뿐만이 아니라.....

 

      사실 선구자가 많이 있는 영역들을 공부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그렇게 까지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 남들이 별로 터치하지 않은 영역들을,   현재 나의 전공과 관련한 영역이든

 

        아니든간에,   공부하고 개척한다는 건 정말 각고의 노력과 자신감이 필요할것 같다.

 

 

         전태일이 '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명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했다는 데

 

        뭐 그만큼 절박하지는 않을지라도

 

        나 역시 주변에  '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공부하는 사람'     이 있으면 좋겠다.

 

       

 

        절실한 느낌이 말로 잘 표현이 안되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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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2008/04/18 23:38

EM님의 [존재 & 의식] 에 관련된 글.

 

읽어보고나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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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한 굴복(?)

2008/04/18 14:47

 

 

 

내가 머릿속에서 조금이나마 '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시작한

 

중2-3 시절부터 내가 갈망한 것은 ' 자유' 였던 것 같다.  학교라는 억압적 굴레를 벗어나고

 

자 하는 자유,  가족의 속박과 정신적 폭력으로 부터 벗어날 자유,  원하는 것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자유.....

 

 

 

그래서 고등학교때에는 학교에 듬성듬성 빠져보는 것도 시도해보았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제도권에서 벗어나지도 저항하지도 못한고  불만만 쌓아

 

놓은 채 숯불처럼 자신을 달구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적어도 내가 '제도권의 개'  로서 살아가

 

는 답답함에 대한 해명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매우 가냘프고 초라하지만 솔직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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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화났냐고 묻는다면?

2008/04/14 13:18

 

 

 

 

 

 

 

내 친구가 나에게 언젠가 ' 화나고 세상을 항한 불만이 잔뜩한 것 같다.'

 

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그 친구에게 답해주고 싶다.

 

 

나는 화내고 있을때, 그리고 그 분노를 내가 조절할 수 있을때, 그 분노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상태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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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나쁠 자격

2008/04/14 13:11
 
성격이 나쁠 자격

▣ 권김현영 동덕여대 강사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반성을 많이 했다. 매사에 불만투성이의 영화평론가이자 대학 시간강사 호준(김재록)과 내가 지독하게 닮아 있어서였다. 나도 꼭 호준처럼 밤늦게 택시를 타고 갈 때, 왜 여자가 이렇게 늦게 다니냐는 훈계를 듣고 열받아서 택시기사와 싸운 적도 있고, 영화관에서 앞자리에 불쑥 올라온 머리를 피해 다른 자리에 앉았다가 제자리에 앉아달라는 지적에 불쾌해서 싫은 소리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사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으면 미소 지으면서 상황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식이 되지는 않을 거 같다. 나는 무엇을 반성한 것인가. 호준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여자를 사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경우 주먹다짐도 마다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호준보다 착해서가 아니라, 호준처럼 못하기 때문이다. 호준처럼 성질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호준처럼 보이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했던 반성은 사실 타인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계산하는 데 불과했다.

이 바른생활 미청년이 착해진 이유


△ (일러스트레이션 / 이강훈)

 

 

한편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계상(강지환)의 바른생활 미소년 몸짱 청년 이미지는 불편했다. 계상의 이해타산적이지 않은 헌신성을 보면서 그가 그렇게 착한 청년으로 나오는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불평쟁이 시간강사 이혼남 호준은 철저하게 권력도 매력도 없는 존재다. 그리고 바른생활 미소청년 몸짱 계상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것만 빼면 성격, 학벌(과외를 할 정도면 학벌도 된다는 소리), 몸, 젊음 등 자원들이 꽤나 많다. 품성 훌륭하고 매력 만점인 계상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면,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성격 나쁘고 매력 빵점인 호준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면, 편견의 골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외모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편견의 대상이 된 집단에 더욱 높은 도덕적 요구를 하는 것 말이다. 사실 편견의 대상이 된 집단일수록 성격이 나빠지거나 아니면 아주 비굴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나쁜 성격이 그 자체로 권력의 상징이 되고 권력의 효과로서 인정받으려면, <환상의 커플>의 안나 조처럼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거나, 혹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처럼 유능해서 보통 이상으로 성공해야 한다. 안나 조가 기억상실에 걸려서 돈을 모두 잃는 순간, 그의 괴팍한 성격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광자처럼 미쳤기 때문이라고 취급된다.

성격이 좋아지는 길은 관계가 열릴 때 가능하다. 편견에 찬 시선들 속에서 자신을 용기 있게 열어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모두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상대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다. 일방적으로 상대가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요구한다. 호준이 추했던 것은 그가 아무런 권력이 없는 주제에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계상의 선함은 자신에 대한 사회적 폭력에 생존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폭력에 그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흠을 제외하고는 흠잡을 데 없는 인간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차이를 불평으로 치환시켜버리는 폭력

 

그러나 사회적 약자가 자신에게 요구되는 더 높은 도덕적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편견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편견은 권력자가 사람들 간의 차이를 없애버리고 동질화된 집단으로 재현하는 습관이다. 도덕적인 희생이라는 방법을 통해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바로 그 시선을 받게 되는 타자성 안에 있는 차이들의 분출들을 모두 불평불만분자로 치환시켜버리는 폭력에 다름 아닌 것이다.

착함이 상대에 대한 배려나 친절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진짜 착한 마음은 상대를 타자로 만들지 않고, 자신도 상대의 타자로 비굴해지지 않는 데 있다. 사랑받으면서 착하게 살고 싶은 욕망과 사회 구성원의 한 명으로 동등해지고 싶은 욕망이 서로 대치된다면 운동도 저항도 희망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한겨레21_2006년12월07일

(권김현영님의 약간은 모호하고 유쾌하면서 줄기를 짚어준, 그러나 구체적인 대안은

내게 맡겨준 강연을 듣고 나서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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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이렇다.

2008/04/13 09:04

 

 

"분노는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외로움은 사람을 섬세하고 사려 깊게 만들고 사랑은 사람을 넓고 따뜻하게 만들어주지요. " 

 

 

 ............... ' 연부네 집'  이라는 진보넷 블로그에서 '잘난체'  라는 분이 남기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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