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상처

2007/03/27 08:22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 깨달음만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는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intensive learning)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권력 의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위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쿨 앤 드라이', 건조하고 차가운 장소에서는 유기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 조건이다.
상처가 클수록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난다.
돌에 부딪친 물이 크고 작은 포말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며,
눈을 감고 돌아다니가다 벽을 만나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알게 된다.
이처럼 앎은 경계와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혼란이 아니라 기존의 대립된 시각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상상력이며 가능성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e/motion)의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of oneself) 즉, 여행이다.
근대의 발명품 이성(理性)이 정적이고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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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든 삶의 영역에 있어서

많이 상처받는 사람이 되자.

누구에게든 말을 걸고, 대화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꿈꿀 수 있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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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폭력화되는 이유<박노자>

2007/03/23 08:39

폭력 관련 뉴스의 ‘선정성’ 때문인가? 최근에 하루가 멀다고 매체에서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의 잔혹한 친구 폭행 소식이 올라 세인들의 눈길을 끈다. 언론들은 뉴스의 충격성만을 부각시켜 폭력의 원인을 기껏해야 ‘폭력 만화의 영향’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고, 또 학교 폭력 관련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들을 보면 ‘가해자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만 높다. 아이들이 왜 ‘고문 기술자’들을 흉내 내게 되는지에는 관심이 거의 가지 않는 모양이다. 폭력을 인간의 내재적 본능으로 봐서 그런 것인가?

 

인간에게 폭력 능력이 부여돼 있지만 폭력성이란 인성 발달의 당연한 결과라고 보기가 어렵다. 물론 사춘기에 들어 자기 과시 욕구가 강해지지만, 이 욕구는 교육자들이 얼마든지 비폭력적으로 분출하게 할 수 있다. 1921년에 영국에서 세워진 서머힐과 같은 대안학교에서는, 학교의 모든 사항들에 대한 결정권과 이성 교제의 권리 등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폭력이 아닌 민주적 참여를 통해 인정 욕구를 분출해 왔다.

 

그런데 일반적 근대 교육, 특히 오늘날 한국의 교육은 과연 어떤가? 어른들을 흉내 내면서 자신들의 사회를 꾸미게 돼 있는 아이들에게는 학교는 ‘폭력 교사’ 노릇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 폭력이란 아직도 입시 위주 교육의 현장에서 ‘학급 통제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으로 인식돼 있는 체벌이나 폭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자기 차별화 욕구를 억눌러 결국 그 욕구가 폭력을 통해 분출되도록 유도하듯 하는 두발 규제나 교복 착용 등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훈육주의적 제도들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직접적인 폭력보다는, 학교생활의 중심을 이루는 간접적인 폭력들은 아이들의 폭력화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

 

학교에서의 전체적인 권위주의 질서와 출세주의, 철저한 위계 서열의 관계는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주먹의 서열에서 더 높은 위치를 점하려는 욕망을 갖도록 부추긴다. 예컨대 교장과 일선 교사 사이의 관계가 절대 평등하지 않다는 점, 일부의 평교사들이 교장에게 굴복함으로써 학교사회에의 ‘출세’를 꾀해야 한다는 점 등을 학생들이 과연 눈치채지 못할 것인가?

 

군림·굴복의 현실을 목격하는 그들에게는 ‘힘’을 매개체로 군림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이 생기게 돼 있다. 이미 중학교부터 학생들이 성적순으로 위계·서열화된다면 암기력과 인내력이 부족해서든 가정이 어려워 학습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아서든 어떤 불가피한 이유로 하위권이라는 이름의 ‘천민’이 된 학생은 과연 자신을 폭력적으로 하위에 배치시킨 체제를 두고 복수욕을 불태우지 않겠는가? 물론 친구들에게 주먹을 휘둘러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방법이지만, 낙오자·하위자의 복수욕을 키운 것도, 학교 현실 속의 체벌과 텔레비전의 온갖 폭력적 영상들을 통해 그 복수 방법을 가르쳐준 것도 바로 이 사회다. 생활과 무관한 지식들을 아무런 흥미 유발이나 개인적인 동기 부여 없이 주입시키고, 거기에다 주입 과정에서의 ‘약육강식’ 경쟁에서 하위로 밀려나는 이들을 가장 민감한 나이에 멸시의 대상물로 만든다면 이것은 폭력의 ‘부추김’ 그 자체다.

 

오늘날 우리 학교는 기회주의, 출세주의를 가르치는 동시에 수많은 아이들을 폭력자로 만든다.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망가진 인생들에 대한 책임은, 학교를 ‘우승열패’의 지옥으로 만든 학벌 카스트 제도와 이 제도의 폐단을 다 알면서도 혁파시키려 하지 않는 우리들 모두 같이 지게 돼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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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정, 학교에서 인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요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폭력적인 인간이 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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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안녕

2007/03/22 08:29

아버지가 길어야 한 두달밖에 못사신다는 통고를 오늘 아침에 들었다.

 

기적이란 것이 생길수도 있지만,  내 직감에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별로

 

그 기간이 크게 연장될 것 같지 않다.

 

그간 아버지와의 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반목과 대립 (물론 나만 그랬다고 생각하는 거겠지만)

 

아버지에게 못되게 군 것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를 기쁘게 한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고등학교 입학때 한번, 대학 합격때 한번, 그 이후로는 없는 것 같다.

 

정말로 크게 속썩인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기자기하게 사는 기쁨을 주는 자식은 전혀 아니었지.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내게 거부감을 많이 주는 대상이었고, 다가가려는 노력을

 

해도 소용없는 대상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겨우 한두달 전부터 사이가 좋아졌을뿐....

 

아버지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미련없이 담담하게 돌아볼 수 있을까?

 

이 정도면 잘 살았고, 행복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지 못하고 삶에 대한 미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발버둥치는 상태로 가게 된다면

 

그것을 지켜보는이들은 많이 슬프고 힘들것 같다.

 

 

아버지는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어떤 기억, 혹은 아픔으로 남게 될 것인지.

 

 

솔직히 지금은 곧 닥쳐오게 될 아버지와의 이별이 슬프다기보다는   비쩍 말라서 저물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병원에서 지켜보는 것, 그리고 미친듯이 슬퍼할 다른 가족들의 모습을

 

볼 것이 두렵다.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의미를 별로 두지 않는 나로서는 이제 영원히 한사람과,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맞닥뜨리게 될 일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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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

2007/03/19 08:43

 

 

(엘리엇 어윗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서 1965년에 찍은 사진.)

 

 

여기서 의지라는 말은 우리가 아는 두가지 의미로 다  해석가능.  依支 , 그리고  意志.

무한한 연습님의 블로그에서 퍼옴.

 

(실제 이 사진의 제목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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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2007/03/16 09:34

나는 원래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고, 또 클래식음악을 알아야 교양이 있고 음악을 듣는 수준이 있다는 통념에

 전혀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클래식을 듣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사가 있는 음악이 점점 뭐랄까.... 들을 수록 부담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이 있다.가사를 전달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희노애락을 너무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느낌 이라고

 해야할까.  마치  친구가 나를 위로해준답시고 열심히 얘기를 하는데 그 말이 내가 이미 아는 것을 자꾸

 일깨움으로써 괴로움을 가중시키는 식의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차라리 악기만으로 이루어진 연주곡은  음악으로서 존재하고 나는 나대로 느끼게 놔두는 것 같다는

 느낌에서 조금 클래식이 좋아졌다.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로 이루어진 섬세한 선율또한 마음의 어두운 정념들을 가라앉게 하는

 압도의 힘이 있었다.

 좋은 클래식음악, 웅장하면서도 강렬한 클래식들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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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2007/03/15 18:16

난 분명 너를 본 걸까
많은 사람들 흔들리듯 사라져가고
그 어디선가 낯익은 노래
어느샌가 그 시절 그곳으로
나 돌아가 널 기다리다가
문득 잠에서 깨면

우리 둘은 사랑했었고
오래 전에 헤어져
널 이미 다른 세상에 묻기로 했으니

그래 끝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쓸려
그저 뒤돌아 본 채로 떠밀려왔지만
나의 기쁨이라면 그래도 위안이라면
그 시절은 아름다운 채로 늘 그대로라는 것

얼마 만에 여기 온걸까
지난 세월이 영화처럼 흘러 지나고
그 어디선가 낯익은 향기
어느샌가 그 시절 그곳으로
날 데려가 널 음미하다가
문득 잠에서 깨면

우리 둘은 남이 되었고
그 흔적조차 잃은 채로
하루하루 더디게 때우고 있으니

그래 끝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쓸려
그저 뒤돌아 본 채로 떠밀려왔지만
나의 기쁨이라면 그래도 위안이라면
그 시절은 변함없다는 것
그 곳에서 늘 숨쉬고 있는 너

이렇게라도 나 살아있다는 게
너의 기쁨이라면 너의 바램이라면
기꺼이 나 웃을 수 있는 걸
아무렇지 않은 듯

이렇게라도
날 늘 곁에서 지켜주고 있는 기억이라도
내게 남겨줬으니

 

-김동률,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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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좋아하던.....

 

모두 어디로 가버린것인가.

 

아직도  텅빈 공터에 낙엽이 구르는 것처럼 가슴이 서늘하게 시려올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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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라고 추천받은 것들.

2007/03/14 22:25

* (단, 이 책들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빼놓은 소설들만 주로 놓은 것이다. )

 

 소곤소곤다락방에 올려진 것들이다.

 

 말랑말랑한 책들, 많이 읽어본적이 없는데

 

물론 소곤소곤 다락방에 모인이들의 성격상 다소 치우친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나중에 셤 끝나면 읽어봐야지.

 

또 누군가에게 선물할때 참고하기에 좋을 듯 하다.  (상대가 여성일 경우 더욱 적합할듯)

 

 

1.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  (음.... 다시 찾아보니 이 책은 좀 별론듯;;)

2. 달콤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 에스키벨/민음사)

3.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이 책도.... 내 취향아닌것 같아;;)

4.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5.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6. "개의 날",

,7.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8. 섬

9. 수 몽 키드 <벌들의 비밀생활>

10.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참고로 나는 요즘 거의 책이란 접한적이 없지만, 몇달전에 읽은것으로 '프라하의 소녀시대' 라는 책이

 

좋았다.

 

체코에서 1960-70년대경에 학창시절을 보낸 일본여학생이 본 동구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이 그녀와

 

피부색이다른 친구들과의 우정을 통하여 드러나는 상큼하면서도 진지한데가 있는 소설이다.

 

이걸보면 진 효율과 경쟁중심인 다양성을 억압하는 대한민국사회에서

 

길들여진, 일상적으로 매우 폭력적인 우리의 모습들이 결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체제에 의하여

 

길러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 다른체제' 는 '다른 사람' 을  키워낸다.

 

나는 내가 지극히 평범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내가 가진 생각들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  평범한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많음을 요즈음

 

더욱더 발견하게 되면서 경각심을 키우게 된다.

 

글쎄.... 일종의 요령이나 여유도 생겼다고 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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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중의 눈물.

2007/03/12 09:41

나는 오늘 아침

 

나도 모르는 새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내가 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감정의 반응이 이성의 자각보다 빨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눈물을 흘린후에 그 슬픈 감정에 도취되지 않고

 

다시 현실로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가서 살아가는 것을  내가 할 수 있

 

게 되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게 어른이 되어 삼라만상을 다 경험해 본다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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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낭만주의자

2007/03/06 17:32

   
 
 

기본성향

평범함을 꺼리고 독특한 자기를 추구한다
이들은 고상한 취미와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이들중 많은 사람들이 신비로운 면을 갖고 있는 매력적인 성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들이 갖고 있는 미의식이나 고상한 취미,우아함은 타인으로부터 동경의 대상이 되고 주위의 분위기를 기품있게 만든다. 이들은 평범한 것을 꺼린다. 자신을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할때도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를 드러내려 한다. 이들의 우월 의식이나 특이성에 대한 집착은 자기 콤플렉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미미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고상한 취미,드라마틱한 이미지의 연출,예술적 표현 등은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절박한 노력이다. 이들은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사람을 의식 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린다.

감동을 갈망하고 스스로 우울 상태에 빠진다
항상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온 이들은 고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며 동정심이 많고 다른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을 적절하고 정확하게 파악해낸다. 이들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좋아하며 힘을 얻을 때까지 인내심 있게 뒷받침해 준다. 이들은 항상 감동을 갈망하고 있으며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강렬하게 의식할때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또한 삶이나 죽음,인간심리의 어두운 부분 등에 깊은 흥미를 갖고 있고 이러한 격렬한 테마에 직면하는 인간에게 매력을 느낀다. 반면 인간적이고 끈끈한 연대감을 얻을 수 없는 가볍고 사교적인 교제는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들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진정한 인생이 새롭게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설사 큰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도 이들의 의식은 삶의 결여된 부분, 부족한 부분에 집중되어 현실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 따라서 따분하고 가치 없는 현실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기복이라는 변화가 필요하다. 좋든 싫든 간에 감정의 기복을 느끼면 단지 쾌적하고 행복하다는 느낌보다 훨씬 더 생생한 삶을 실감할 수 있고 자신의 독특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연 그대로 느끼고,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을 동경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이들은 자신이 연기자인 것도 자각하고 있다. 이 타입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행동하기 전에 미리 연습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하면 감동을 연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모습이며,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한 사람인가를 과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다 갈등을 겪는다
이들은 그 상태에 따라 다시 세가지 타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침울한 상태에 빠져있는 타입과 평상시 활동을 과도하게 하는 타입, 그리고 향상 양극단을 왔다 갔다 하는 타입이 그것이다. 이 세 타입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고뇌에 빠져 있다. 그리고 항상 완전한 만족감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양극단적인 감정이고 어중간한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는 적다. 직관이 강한 이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들은 생활을 위한 일과 낭만을 즐기기 위한 일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물질적인 생활만으로는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낭만적인 것이나 불가사의한 것에 이끌린다.

균형을 잃기 쉬운 포인트(함정) :독특한 자기

이들은 자신의 깊은 생각을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만 습득하면 독특한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평범함을 싫어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몰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강해지면 주위로부터 고립되고 생활에 만족할 수 없게 된다. 끈끈한 인간관계나 강한 정신적 유대를 추구하는 것은 인생에 깊은맛을 더해주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은 반드시 감동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감동만을 추구하고 평범한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면 주이로부터 고립되어 외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다.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독특한 것을 추구하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면서 동시에 평범한 것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적극적 자기혁신 포인트

현재 각조 있는 것에 만족하자
이들은 평범함을 피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집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을 뒤덮고 있는 것은 상실감이다. 자신의 인생에는 많은 것이 결핍되어 있고 그러한 부족한 부분을 채웠을 때 진정한 인생이 열린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끌리지만 일단 그것을 획득하게 되면 흥미를 잃는다.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을 얻자마자 결점이 눈에 띄는 것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단조로움을 싫어하기 때문에 감정의 기복이 있는 것을 좋아하고 이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게 표현하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습관이 감정의 기복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면서 극단적으로 기분이 변하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도취된다. 마치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한 이런 행동은 주이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어 주위 분위기를 깨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이런 과장된 표현으로 자신의 진짜 감정을 감춘다

침울한 기분은 누구나 느끼는 일상적인 것이다
이들은 우선 자신의 이러한 나쁜 경향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히지 말고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도 흥미를 갖도록 노력함으로써 자아도취 상태에서 탈출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의기소침해진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면 서서히 고통이 완화되고 원래의 생활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들은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일인데도 그대로 방치해 두는 나쁜 습관이 있다. 어떤 일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 흥미를 잃게 되고 결국 그 일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일단 착수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파괴하거나 방치해 버리는 자학적이고 피해망상적인 자신의 성향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갖자
이러한 나쁜 경향의 바탕에는 강하지 못한 자존심이 있다. 외부세계에 비하면 자신은 미미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퇴보적인 행동을 하고 막연한 열등감에 시달린다. 그들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내세우려는 것은 부족한 자존심을 메우기 위한 다급한 행위이다. 따라서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질투를 느낄 만한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자신감을 갖게 되면 거만해지는 타입도 많지만 이들은 자신감을 갖더라도 결코 거만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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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어그램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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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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