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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 학교로 돌아와 늦은 세미나를 끝내고 나니, 뼛속부터 몸이 시려왔다. 총여학생회실을 뒤져, 집에 입고 갈 수 있을 만한 옷을 찾아내어 지친 몸을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지하철 안. 써야할 에세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읽다만 벨 훅스의 ‘사랑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꺼내든다. 나에게는 잘 와 닿지 않는 문장들을 지나쳐 쓱쓱 읽어나가다가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한다”는 문장에 꽂힌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 힘든 난, 역시 그래서 사랑이 힘든 것일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에 있던 엄마가 인기척에 돌아섰고, 그리고 꽥 소리를 질렀다.
"야! 너 그거 남자 옷이지!"
나는 엄마의 그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는 멍했었다. 대체 왜 저러나. 추워서 친구꺼 입고 온 건데, 남자꺼든 여자꺼든 뭔 상관이람. 평소에도 내가 이런 스타일 자켓 안 입는 것도 아니고..
뒤따라 휘청이며 따라온 엄마는 확증을 잡았다는 듯이 나를 붙잡고 울 듯한 목소리로 "너 요즘 생리 안하지 그렇지? 너 왜 아직까지 생리를 안 해? 너 나쁜 짓 하고 다니는 거지"라며 숨도 쉬지 않고 쏟아냈다.
아,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생리를 하는 기척이 없는 다 큰 딸을 보며 온갖 상상의 시나리오를 펼치며 불안해했을 그녀는 내가 어떤 남성의 옷을 입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엄청난 분노로 몸을 떨었겠지. ‘저년이 어디서 뭘 하다가 들어온 건지‘ 1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엄마는 이미 영화 한편을 찍어버린 것이리라.
순간 엄청난 절망감이 밀려와서 "내가 생리를 하든 말든 뭔 상관이야!"라고 소리를 지르고 욕조로 도망쳐버렸는데, 뒤에서 엄마의 절망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뭔 상관이야’라는 말이 엄마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다 큰 딸이 생리를 하는지 안하는지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구나... 그동안 내가 생리를 할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참 못할 짓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엄마에 대한 측은함과 미안함이 들고,
동시에 내 몸의 생리현상이 누군가에게 단속되고 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분노와 절망감이 밀려온다.
자아분열이 일어난다.
내가 한 달에 한 번 피를 흘리는 이 현상이, 누군가가 나의 행위를 단속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왜 이렇게 나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지.. 내 몸의 자궁이랑 등등을 들어내고 싶은 기분이다.
왜 하필 여자로 태어나서 이런 몸을 가지고 있는 건지, 저러한 시선의 대상이 되는 건지...
내가 여자임을 드러내는 모든 것들을 다 도려내 버리고 싶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떨림이 좀 잦아들까 싶어서 몸을 담그는 순간, 내 젖가슴 두 개가 보이고 순간 역겨워진다. 저것도 다 도려내 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원치않는 적나라한 시선들에 노출될 때에나, 혼자 있는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온 몸을 긴장시키며 후다닥 젖은 몸에 옷을 억지스레 끼워넣고 싸울 태세를 갖추다가 침입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 허탈감과 절망감에 빠져 주저앉을 때에도 늘 내 몸의 많은 것들을 도려내버리고 싶은 충동에 빠져든다.
페미니즘 서적에서 뻔질나게 볼 수 있는 ‘너 자신을 긍정해’라는 말은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
이렇게 일상적으로 내 자신이 싫어지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하며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나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더더욱 어렵다.
점들이 모여서 선이 된다.
이렇게 일상적인 가슴 서늘해짐이 모여서, 나를 관통하는 서늘함이 되어버린다.
마음이 이렇게나 계속 차가워서 참 큰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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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여자임을 드러내는 모든 것을 도려낼 바에야그네들이 남성임을 과시하는 모든 것을 도려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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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긍정하기 어렵더라도,체념과 지침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 때문에
차라리 나를 허무는 것으로 대응하고픈 충동만큼은 극복하고 살아보세.
요즘 고래랑 많이 이야기해, 과연 과거에 우리가 가졌던 폭력에 대한, 몸의 시선에 대한 극도의 분노 혹은 체념이 우리에게 남긴 힘이란 건 없노라고.
솔직히, 우리 몸이 예쁘잖아. 난 암만봐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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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렴. 너 요즘 많이 지쳐보인다. 마음의 차가움은 자고로 자신의 열을 식히는데 쓰이는 것이 제일 쓸모있는 것 같아. 분출해야할 분노는 아직도 많이 많이 남았어,길게 가자, 길어야 굵더라^^부가 정보
망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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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반"클럽에, 새터에갈때 생리해서 민폐끼칠 것 같다며 '여자임이 저주스러워요'라는 익명의 글이 올라왔을때,
내가 주절주절 달았던 긴 댓글이 떠오른다.
아주 훈늉한 여성주의 입문서 스러운 ...
킥_ 내가 이런 찌질한 사람이란 거 그 여학우도 알아야할텐데-
너도 나처럼 이런 감정 많이 겪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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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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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 너의 첫 댓글.이것이 급진적인(ㅋㅋㅋㅋ)너와, 찌질한(-_-)나의 '차이'일까/(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파괴하는 나의 찌질이 근성어쩔꺼냐정말)
아님 글쓴이와 댓글러의 위치때문에 가능했던 말일까/
음 아니면, 너도 나와 같은 왈랑절랑한 시기를 겪고 났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 걸까(한마디로 너 늙은이란 얘기)
두번째세번째 댓글이 왠지 답을 주는 것 같기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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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애가 지나쳐서(아니, 그거말곤 살 방법이 없을만큼 혼자 절박한척은 다했기 때문에.ㅎㅎㅎ) 너만큼 아프진 않았던 것 같지만누가 쫓아오면 놀라서 체하고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되고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대리인이 되어서(것도 동시에)온갖 찌질한 짓 다하면서 나는 도대체 무엇하는 '여자'인지 너무 괴로워하면서 활동 다 때려치우기도 했고
남성활동가들이 위협적으로 싸움을 걸어오거나, 여성이기 때문에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분했고
내 욕망이 이성애중심주의/여성에 대한 고정된 시선에 얼마만큼 포획되어있는지를 감시하느라 처음에는 신났고 나중에는 지쳤고 지금은...뭐라 말해야될까...
나 역시 이 사회의 영향을 받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면 나의 부족함에 스트레스 받지도 않고, 비겁하게 대충 묻어가지도 않고 그렇게 살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한 폭력들은 언어를 바로 잡고 시선을 제거하자는 우리의 캠페인으로만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처해있는 경제적/정치적 조건 자체에 총체적인 변혁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억압적인 언어나 시선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늘 문제를 제기하긴 하되, 그것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도 말고 그것에 너무 올인하지도 말아야지..싶어. 그래서 내용을 훼손하지 않되 더 상황에 적합하고 실용적인 대응 방법들을 많이 모으는게 좋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언제 고래랑 셋이 한번 만나보자. 고래한테 네 이야기 자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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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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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절절이 와닿는 것도 있지만.
나의 요약결론은 이거다. 아놔 이런 빨ㄱ이 -_-*ㅋㅋㅋㅋㅋㅋ
and 내일 0학점짜리 신성한 주님의 수업 꼭 들어가.
나는 ㄱㅇ가 "한 학기에 네번 빠져도 되니깐 ㅈㅎ가자"고 꼬셔서 고민중.
내 주위에 언제부터 이런 ㅃ갱ㅇ들이 득실거리게 된건지.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방관한 내 잘못. (풉,내가 써놓고도 미친것같다 킥킥)
그러니 혹시 나의 보온병/밥통을돌려주려했다면, 다음기회에-
푸실한 한라봉과 함께.(킥 잊지않고 있다!)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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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봉 비타민 급 섭취로 입에서 식초나게 해줄게!부가 정보
망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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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랑자/ㅎㅎ부가 정보
당신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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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당신은 왜 글 안 써? ㅋㅋㅋ 캬오- 오늘은 비 안 온다, 좋은 하루 보내-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