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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색의 마음-

*피자를 시키는 오빠가 습관적으로 콜라도 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을 급히 달려가 저지시키고 대체 왜그러냐는 오빠의 짜증에,

사이다 먹어 사이다 사다줄게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나.

 

 

코카콜라가 왜 문제인지,

그들이 인도땅에서 행하고 있는 행태에 대해서 조목조목 설명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은 내가 있었다.

1리터의 코카콜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3리터의 물이 필요하고,

그 물은 인도에 세워진 대형 공장 주위의 반경 몇십키로미터의 인도농민들의 생존과 맞바꿔진 것이라고.

더이상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와, 메말라버린 우물에 대해 코카콜라는 침묵한 채 콜라소비를 할 수 있는 재력의 나라들을 위해 오늘도 기계를 돌린다고.

농사를 지을 수도, 마실 물을 구할 수도 없는 인도 빈민들의 삶은 묻혀진 채 월드컵과 각종 스포츠경기를 후원하는 '언제나 코카콜라'뿐이 우리에게 다가올 뿐이라고.

 

 

 

이 모든 말을 뱉어내는 대신에,

마트에 가서 칠성사이다를 사오는데 헛웃음이 난다.

 

 

칠성사이다는 코카콜라와 비교했을 때 차악의 선택인 것인가.

내가 10층에서 1층, 1층에서 10층을 왔다갔다하며 사용한 엘리베이터의 에너지소비량은 어쩔것인지.

게다가 세미나에 늦을까봐 엘리베이터의 '닫힘'버튼까지 누르면서 다녀온 것까지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일상에서 한번의 콜라-사이다 대체를 실천한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를.

너무나 거대한 자본의 논리와 기업의 횡포가 국가적인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현실에서,

 나는 왜 이렇게 작은 것인지. 너무나 작아서 숨쉴수조차없는걸.

 

 

피자는 콜라랑 먹어야 맛있는데- 라며 투덜대는 오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세미나에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해야했다.

 

너무도 작은 이 세상의 나는 이렇게나 미안할 것이 많은 것인지.

 

 

 

 

* 그저께 새터로 향하는 차 안에서.

진즉에 그만 둔 풍물패와 연락이 닿아, 한 명의 차를 타고 가는 새터장소로 가는 길에 장을 봐야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학교앞에서 상암쪽으로 이미 차를 돌리며 '홈에버 가자'라고 말하는 운전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그랜드마트가면 안돼?' 뿐이었다.

차를 돌리기가 힘들다는 말에,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얻어타는 주제에...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누구에게든 부담스러운 것이리라.

나는 그 무거운 짐을 더이상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마음이 황폐해져있었다.

 

즐거운 강화도행 차 안에서, 잠이 오지 않는 나 자신을 원망하며 눈을 감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산 트렁크에 가득찬 과자와 술은 너무도 선명한 홈에버마크가 찍힌 봉다리에 그득하게 넣어져있었다.

 

왜, 이랜드 불매운동을 해야만 하는지.

그분들의 투쟁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이랜드의 김성수회장의 행태가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이, 그들의 투쟁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말하고 싶은 나와,

그저 즐겁게 차를 타고 가고 싶은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모두를 위해 그 이야기를 꺼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또 어려운 얘기를 꺼낸다고 심각하다고 싫어할까봐 , 그리고 즐거운 분위기를 망쳐야하는 그 엄청난 강도높은 감정노동을 외면하고 싶은 내가 거기에 있었다.

 

 

-

너무 많은 내가 교집합이 되어서 똥색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 미술시간에 물을 제때 갈아주지 않고, 너무 많은 색을 사용하면 물통속의 물이 똥색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빨간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예쁜 마알간 주황색이 되었었던가.

내 마음 속의 색이 그렇게 마알간 색이면 좋으련만.

 

멍청이같이

이도저도 아닌, 가운데에 껴서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여기에 있다. 똥색의 마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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