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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몇 편

혁명                               

 

하느님 몸 속에서

피를 자꾸 뽑아낸다

 

석유 가고 이어

 

자동차 서고

비행기 앉고

공장굴뚝 연기 멎고

높은 집들 텅 빌 때쯤

 

혁명이 온다

 

사람들 다시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오순도순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는

 

 

 

 

하느님처럼 저절로 있는 나는

낮은 곳으로 흐르다 바다에 이르면

한마리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곤 한다

 

내가 아래로 내려가면 물고기들이

개구쟁이처럼 속살을 간질이며 올라오는데

이것이 오래된 우리의 인사법이다

 

누가 우리의 만남을 시샘하는가

온갖 오물로 괴롭히더니 마침내

등을 삽으로 내리찍고 살을 토막내려 한다

 

 

 

용산참사역

 

대한민국 서울시 인권 일번지

불에 탄 주검 위에 새로 생긴 역

 

다섯구의 시신은 냉동고에서

봄 여름 가을 없이 갇혀 지내다

일년이 되어갈 때 풀려나왔네

 

늙으신 하느님이 비틀거리며

날마다 찾아와서 울고 가던 곳

 

 

 

녹색평론 이번 호에 실린 최종진 시인의 시 몇 편 '용산참사역' 마지막 두 행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늙으신 하느님이 날마다 남일당 앞 인도에서, 레아호프에서 펑펑울고 꺼이꺼이 울고 통을 하고 곡을 하는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때로는 비장한 철거민의 모습을 하고서, 때로는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시인의 모습을 하고, 백발 성성한 노신부의 모습을 하고, 카메라를 들고, 연필을 들고, 꽃을 들고, 촛불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 행색을 하고

날마다 찾아와서 자기가 지켜주지 못했던, 지켜줄 수 없었던 이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것을 하느님 믿지 않고 천국과 지옥 믿지 않는 내 눈에도 보이는데소망교회 장로님 눈에는 왜 안보일까? 아. 한 번도 안와봤으니, 몸도 마음도 한 번도 안와봤으니 그러겠구나.

 

그나저나 그 하느님은 얼마나 원통하고 비참했을까. 예전엔 전지전능 했는데 이제는 이건희에 밀리고 건설자본에 밀리고 경찰특공대에게 밀리고 용역들에게까지 밀려 자신의 어린이이 무참히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무력감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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