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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바람도 시원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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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형이형을 처음 봤을 때, 그냥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성공률이 낮은(?) 개그를 연신 던지는 노력이 가상했던지 신입생인 우리는 완형이형을 좋아했다. '나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과대 밴드를 한다고 했지만 노래를 아주 잘 부르진 않았다. 그냥 별 생각없이 사는 가벼운 딴따라구나, 집에 잘 안들어가고 동아리방에서 밤새 놀고 뭐 이런 인상이어서 그냥 재밌는 사람이구나 싶었지 완형이형과 깊은 대화를 한다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었다. 그 당시 느낌만 보자면 이 형이 음악을 계속 해 나갈거라는 생각도 솔직히 잘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가기 직전이라 그렇게 좀 막(?) 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완형이형이 다시 보게 된 건 형이 군대 다녀와서다. 갑자기 채식을 한다고 한다. 비슷하게 군대 다녀온 창언이와 우형이도 채식을 한다고 했다. 나이를 먹어서인가 형은 군대 다녀온 뒤 좀 달라져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장난과 개그는 여전했지만, 진지한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형을 알고 나서 가장 안쓰러웠던 기간은 형이 부모님께 효도한다고 노량진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에 다닐때다. 그건 누가보더라도 분명 형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맘 없는 공부가 될리가 있나. 암튼 부모님께 효도 하는 마음이라니, 내가 그동안 형을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싶었다. 형은 결코 아무 생각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한량이 아니었다.

 

결국 팔자에 없는 공무원시험을 때려치웠다.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브로콜리너마저 매니저를 하더니 갑자기 자기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조금 걱정됐다. 내가 아는 형은, 음악을 정말 좋아하지만, 솔직히 노래를 아주 잘 부르거나, 아주 잘 만들거나, 기타를 정말 예술로 친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노래를 잘부르려고 기타를 잘 치려고 피나게 노력하는 스타일이었다. 음악은 천재들이 해야한다는 편견이 있었는지 몰라도, 암튼 형이 홍대 앞에서 음악으로 이름 날리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참 행복해 보였다.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보다 500배는 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형은 기타학원에서 기타를 가르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내가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할 땐데, 가난한 단체 활동가와 가난한 뮤지션의 한달 수입은 거의 비슷했다. 그때 내가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한달에 10만원을 내라고 해서 당시 내 주머니 사정으론 감당 할 수 없어서 거절했었다.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좀 여유가 생기자 기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다시 생겼다. 형한테 연락을 했는데, 이번에는 형이 공짜로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형의 한달 수입을 대충 아는데 내가 지금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월급 받고 있는데 어떻게 공짜로 배우냐고 했더니, 형은 자기가 가진걸 나누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완형이 형이 이런 말도 하는 사람이구나, 살짝 감동했다.

하지만 역시 돈 내고 배워야했다. 형도 나도 결국 흐지부지 하고 말았다.

 

얼마 전에 지원이가 컴퓨터로 딴짓하고 있길래 "너 또 일안하고 딴짓하는구나"하면서 모니터를 봤다. 향뮤직 홈페이지에서 새로나온 음반을 둘러보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김완형. 에이 앨범 낸단 얘기 못들었는데, 동명이인이겠지 하며 앨범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아무리 봐도 완형이 형이 아니었다. 홍대 앞에서 가장 주목받고 어쩌고 저쩌고.... 목소리도 내가 아는 형 목소리와는 조금 달랐다. 그럼 그렇지, 아니야.

돌아서려는 순간 브로콜리너마저 매니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글귀가 보인다. 자세히 읽어보니 내가 아는 그 김완형이 맞다.

 

순간 가슴 한켠이 울컥했다. 아... 완형이 형 앨범이 나왔구나. 비록 김완형이 홍대앞 인디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주목받는 10센치가 프로듀스를 해줬다나 어쨌다나. 하지만 내겐 그 완형이 형이,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형이, 브로콜리너마저 매니저하다가 자기 음악하고 싶다고 뛰쳐나온 형이, 앨범을 냈다는 사실이 무척 감동스러웠다. 바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축하해주고 싶었다.

 

앨범을 들어보니 확실히 예전 완형 형 목소리가 아니다. 정말 노래 연습을 많이 했구나 싶었다. 노래도 예상보다(?) 괜찮았다. 형이 앨범 사라고 자기 음반이라서가 아니라 꽤 들을만 하다고 이야기했을 때도,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누구 선물 사주기에도 충분한 정도였다.

 

무엇보다 형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나가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무얼까... 나는 아직 모르겠는데, 형은 돈이 되든 안되든 사람들이 인정해주든 안해주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형이 했던 이야기가 가슴에서 다시 샘솟았다. 자기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 실컷 하다가 해볼만큼 하다가 나중에는 고향에 내려가 시골 아이들에게 기타 선생님 하면서 살고 싶다고.

 

참 예쁘고 멋진 꿈을 꾸고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하는 김완형EP "그곳의 바람도 시원한가요"

아래 동영상은 김완형과는 아무 연관이 없음. 노래 나오는 영상이 저거 밖에 없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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