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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10
    출판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 성격에 대한 생각(2)
    무화과

출판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 성격에 대한 생각

변정수 씨가 기획회의에 쓴 글 -'자해경쟁'은 정당한 노동권도 정당한 경영권도 아니다 (기획회의, 2013.6.)-을 보면서 출판노동에 대해 뭐라도 말을 하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그러다가 땡땡책협동조합 모임에서 출판노동에 대해 이야기가 짧게 나오면서, 한번은 내 생각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출판사에 노동조합이 많지 않은 까닭은 뭘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나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노동조합이 왜 없는지를 분석하는 자료는 고사하고, 출판업계에 대한 분석자료조차 우리나라는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서 출판사에 노동조합이 없는 까닭을 설명하고는 한다. 그 중에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의견들이 있다. 출판노동은, 혹은 출판은 특수한 영역이라는 의견이다. 출판노동은 책을 만드는 노동이라 다른 여타의 노동과는 다르다는 시각, 노동자가 아니라 문화창작자 혹은 지식인에 가깝다는 말들도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출판업계에 꽤 널리 퍼져있다.

 

출판은 특수한 산업이다?

과연 출판은 다른 산업과 다른 독특한 영역인가? 출판산업이 독특한 면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저마다 독특함이 없는 산업이 어디있단 말인가. 땡땡책 협동조합 모임에서도 이야기 나온 시간강사들, 혹은 영화업계는 독특하지 않나? 2000일 가깝게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말그대로 '특수고용노동자'인데 그렇담 학습지 업계가 오히려 출판업계보다 더 특수한 게 아닌가?

출판이 독특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출판업계가 가지는 많은 문제점들을 가려버린다고 생각한다. 문학동네와 창비와 교학사와 교육공동체 벗과 오월의봄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참고서를 내는 출판사와 인문서를 내는 출판사의 처지가 다르고, 100명이 넘게 근무하는 출판사와 한두 명이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처한 어려움은 크게 다르다. 교학사와 오월의봄의 차이가 오월의봄과 여느 자영업자들의 차이보다도 오히려 클 수 있다.

 

책은 특별한 것이다?

책을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앞서 예로 든 변정수 씨 글에서도 "'지성'을 매개로 하는 책이라는 물건을 만드는 공간"이라고 출판사를 이야기한다. 출판계 종사자들 가운데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거 같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부심이 너무 넘쳐서 자기가 하는 일과 자기가 만드는 것들이 다른 일이나 상품에 비해 상대적인 우위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책을 만드는 일은 분명 매력적이고, 책이 독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볼 때 뿌듯한 순간도 분명이 있다. 하지만 다른 것을 만드는 일, 예컨대 자전거를 만드는 일이나 호미나 괭이를 만드는 일이 책을 만드는 일보다 자부심을 덜 가질 일인가? 그리고 솔직히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모두 다 좋은 책은 아니다. 나오지 말아야 할 책, 나무에게 미안한 책도 엄청나게 많다. 좋은 책을 내는 출판사만 출판사가 아니라면, 책 자체가 칭송받아야 할 무언가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편집자는 특별한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변정수 씨가 기획회의에 쓴 글을 보면 변정수 씨는 출판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편집자의 노동만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출판 노동=편집 노동으로 생각하는 건지, 자기가 더 잘 알고 있는 영역만 이야기를 하려다 그리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변정수 씨 글을 본 그린비 출판사의 열혈조합원(디자이너)들은 기분이 어땠을까? 꼭 변정수 씨가 아니더라도 편집자의 노동이 다른 노동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 생각은 책이 특별하다는 생각에서 기인하는 거 같다. 편집자의 노동은 온전히 내면에서 나오는 노동이, 전인격적인 노동이라는 변정수 씨 의견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글쎄, 잘 모르겠다. 나는 보리출판사에서 3년을 다니는 동안 기획이라는 걸 해 본적이 없다. 문장을 다듬을 때는 내 판단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내가 보리에서 편집자로서 전인격적인 노동을 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다른 출판사에 다니는 편집자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 편집 노동이 뭐가 그리 고고하고 숭고한지는 모르겠지만, 혹 그렇더라도 우리 나라 편집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전인격적인 노동은커녕, 노동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리라도 지켜진다면 감지덕지할 판이다. 적어도 내가 직접 겪거나 전해 들은 회사들은 거의 그랬다. 만약 정말 좋은 회사가 있어서 내가 편집자로서 내 몸과 마음을 다해 좋은 책 만드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그렇더라도 나는 편집 노동이 다른 노동과는 홀로 다른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책 자체가 특별하다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고, 만약에 책이 정말 특별한 것이고 해도, 책 만드는 일 가운데 유독 편집만이 더욱 더 특별한 노동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편집자가 아무리 잘 만들어봤자, 영업자가 안 팔아주면, 인쇄 노동자가 안 찍어주면 그 책이라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특수하거나 말거나 보편적인 권리

출판 노동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출판사들에서 일어나는 노사 갈등을 겪으면서부터다. 보리출판사 윤구병 사장이나 그린비 출판사 유재건 사장이 하는 말은 정말이지 판에 박은 듯하게 똑같은 말이었다. 그 둘끼리만 똑같은 게 아니라, 업계를 초월해서 똑같은 말이었다. 보리 대신에 콜트콜텍을 넣어도, 유재건 대신에 조남호를 넣어도 그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문제제기 하는 방식도, 그에 대응하는 방식도 출판사라고 별 다르지 않았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별 다를 게 없었다. 경영진도 그렇고, 그에 대응하는 우리 노동자들도 그렇고.

길게 썼는데, 요는 내 생각엔 책이라는 상품이 그리 특별대우를 받을 것도 아니고, 책을 만드는 노동 또한 다른 노동에 비해 뭐 엄청 대단할 게 없으며, 출판 산업이 특수하다는 것도 그 정도씩은 다들 특수한 산업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별 볼 일 없다거나 혹은 냉소하자는 게 아니다.

특수성이 있냐 없냐 가지고 길게 썼지만, 그리고 특수성이 있는지 없는지 이야기 하는 게 많은 의미가 있지만, 그게 출판노동자들의 권리가 있고 없고를 뜻하는 건 아니다. 만약 출판 산업이 특수한 산업이고, 책은 남다른 무엇이 있으며, 편집 노동으로 대표되는 출판 노동이 엄청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좋다. 출판노동자들의 권리라는 건, 출판노동의 특수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고, 노동자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권리다. 세상의 별별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에 대해서 동일한 권리를 가지는 것처럼, 출판노동자들이 주장하는 권리도 노동자로서 아주 보편적인 권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출판 산업과 출판 노동의 성격에 대한 토론도 활발하게 되어야 한다. 특수하든 말든 권리는 우리의 것이긴 하지만, 그 권리가 거져오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싸워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텐데, 그 과정에서 책과 출판 노동에 대한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좀 더 이끌어가면 좋겠다. 내 능력으로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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