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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 쓴 글 옮겨 놓기)
나는 10년 전쯤 국회 국방위원장실에 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고, 내가 속한 그룹은 병역거부운동을 열심히 할 때였다. 함께 학생운동을 하는 몇몇과 국방위원장실을 점거(라고 하기엔 너무 짧지만)하고 유인물을 뿌리고 플랭카드를 걸다가 잡혀나왔다.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끌려나가는데, 당시 국방위원장인 장영달의원이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대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다 나왔다. 나는 창피하게도 장영달이 국방위원장인지도 몰랐고, 사실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그냥 민주당 의원인 것만 알았다. 그 장영달이 대체복무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라는 것도 몰랐다. 장영달 의원이 하는 모든 말에 대해 '정치인들은 늘 그렇게 말하고 지키지 않는다'며 적대만 드러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창피하고 쪽팔리다. 장영달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국방위원장실까지 처들어 와서 병역거부권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구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가까운 영등포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우리는 입을 맞춰놨었다. 어떤 모르는 사람이 와서 이런 걸 해 보자고 해서 온 거라고. 우리는 사회 운동에 관심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라고 진술했다. 그냥 병역거부자들이 감옥 가는 게 안돼 보여서 측은한 마음에 한 행동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앞뒤도 안 맞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경찰들은 뻔히 보이는 우리의 거짓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비웃었을까. 당시 나는 단과대 학생회장이었는데, 조사받는 중 경찰이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그냥 학교에서 체육대회하고 교수님과 식사하고 그런 일을 주로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이 기억이 아직까지도 부끄럽다. 내가 내 생각을 가지고, 신념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한 행동을 부정하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 스스로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 짧은 영상기록을 한 편 봤다. 어느 혁명가와 그 동료들이 벌인 직접행동에 대한 영상이었다. 그 혁명가는 우리도 알고 있는, 강정마을에서 연행되어 경찰 조사를 받으며 "내 이름은 구럼비. 나는 세계시민"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던 그 앤지 젤터다. 앤지 젤터가 동료들과 함께 인도네시아로 수출할 계획이던 호크기를 망치로 때려 부순다. 영상은 그 과정을 기록하고 있었다. 엔지와 동료들이 직접행동을 성공시키기 위해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호크기를 부수고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있었다는 것이다. 연행되어서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자기들이 무슨 행동을 왜, 어떻게 했는지를 떳떳하게 밝혔다. 결국 앤지와 동료들은 무죄선고를 받았다. 더 큰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다. 물론 재판부가 대한민국 재판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행동 과정이 철저하게 비폭력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방식의 운동은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거나, 내가 한 행동을 부인해야 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다. 이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행동을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내 행동은 때로는 합법일 수 있고 때로는 불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행동은 늘 스스로에게 떳떳해야 하며,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직접행동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건 지배세력들로부터 국가권력을 빼앗아 오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석기 의원을 보면서 앤지 젤터 생각을 했다. 국정원이 공개한 녹취록에 대한 이석기 의원의 기자회견에 대해서 크게 실망했다. 만약 국정원이 공개한 녹취록이 왜곡이 심하다면 이석기 의원은 조목조목 반박해주면 좋겠다. 만약 녹취록 내용이 사실에 가깝다면 떳떳해지면 좋겠다. 확신이 있는 행동이라면 떳떳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망치로 전투기를 때려 부수도고 떳떳했던 앤지 젤터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은 거 같은데,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거 같고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혁명가라면, 사회운동가라면 말이다. 떳떳하게 사람들을 설득하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방식도 아니라면 그런 방식으로는 정권이 바뀌고 국가가 바뀔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어쩌면 이석기 의원 개인이나 그가 속한 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니라 한국 진보 운동이 고민해야할 문제다. 물론 진보 운동 안에서 이석기처럼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방식으로 운동을 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있는 게 아닐까? 당장 집회 때 연행 되어서도 자기가 왜 이 집회에 나왔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떳떳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벌금을 덜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벌금을 덜 받는 거는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지만 그건 법정투쟁을 통해서 떳떳하고 당당한 과정으로 해야 할 일이지 거짓말을 해서 피해갈 일이 아니다. 국가 권력이 너무 비정상적이어서 활동가들을 보호해야 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의견은 우리가 사회 운동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헷갈리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그저 권력자의 교체라면 지금 권력자에게 타격을 주는 방식들 모두가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게 민주주의 그 자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하로 숨고 정체를 가리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과 내 생각을 적극 드러내고 행동하면서 내 생각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스스로 나를 지켜주도록 하는 방식 가운데 어느 것이 사회 전체 민주주의의 성장에 도움이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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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앤지 젤터씨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와중에 그런 실천을 했다면, 영국 사회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 분의 태도는 당당하기만 할 수 있었을까요. 그 분의 실천을 평가 절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비추어 평가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실천을 그 뿌리에서 떼어내 그 자체로 절대화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더구나 이석기라는 한 개인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저는 무화과님께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저 사람에 대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우리들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사실 우리는 저 회합에 대한 정확한 정보조차 갖고 있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실천이어야 할까.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지만, 역사와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사상을 형성하고 그에 따라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다른 이들의 사상과 실천, 그 결과를 관찰하여 평가,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사람의 삶과 사상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거 같고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런 말을 쉽게 할 수는 없다 생각해요. 전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꽃다운 청춘을 고스란히 바치며 40년을 살았던 '간첩' 노인네들은,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을까요.
글 하나 링크합니다. 부디 읽어봐 주시길.
다시 욱신거리는 10년 전 가을의 상처 - 영화 ‘경계도시2’를 보다
http://www.vop.co.kr/A000006747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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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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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도시2'는 정말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더불어 송두율 교수가 쓴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는 읽는 내내 내 안의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뼈저리게 반성하며 읽었던 책이구요.제가 이석기 씨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맞습니다. 저는 이석기라는 사람이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그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게으른 탓인지는 몰라도 이석기 씨가 자신이 주목받는 시점에서 자기의 의견을 명확하게 이야기 한 것들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느끼는 문제의식은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회 운동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 몇 명을 바꾸는 게 목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혁명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당장 저와 제 병역거부자 친구들도 10년 동안 50명이 감옥에 다녀오면서 줄기차게 병역거부권 인정을 외쳤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저는 이석기 씨한테 안타까운 게,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꼭꼭 숨기기 보다는 더 적극적인 시민불복종으로 국가보안법의 야만성을 폭로하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동감하는 시민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으로 활동가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운동으로선 더 좋지 않은가 하는 거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와중에 여러 명이 감옥에 가게될 것입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운동을 위해 감옥에 가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석시 씨 정도라면, 제가 이석기 씨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자기가 활동하는 그룹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고 대표적인 활동가일텐데(그러니 국회의원까지 되었겠지요) 그런 사람이 좀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거죠.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 말씀을 하셨는데, 그분들처럼 자신의 양심에 떳떳하게 행동한 분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 허영철 선생님의 삶을 다룬 만화책을 편집한 적이 있었는데, 진심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저와 생각이 아주 많이 다르고 정치적인 견해도 많이 달랐지만, 인간의 양심을 지켜가는 그 모습에 감동 받았던 거죠. 간첩이 아니라 공작원이라고, 통일 사업하러 남에 내려왔다고, 당신의 행동에 확신을 갖고 거침없이 이야기 하시더군요.
제가 이석기 씨한테 바라는 모습도 그런 모습입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게 이석기 개인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 진보 운동 전반이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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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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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접행동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건 지배세력들로부터 국가권력을 빼앗아 오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요즘 제가 고민하는 부분인데 아주 잘 정리하셨네요. 이번 사태와 맞물려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네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