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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26
    노조 창립과 단협2-임금협상
    무화과

노조 창립과 단협2-임금협상

우리는 임금협상이 이렇게 파탄날 줄 몰랐다. 인사권이나 경영권 관련된 논의는 첨예하게 대립하더라도 임금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합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전 해 임금이 한 푼도 오르지 않았고, 노조를 만든 뒤 처음하는 임금 협상이니 만큼 회사가 조금은 부드럽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예측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금교섭은 결렬되어 지방노동위원회 중재 과정까지 거쳤다. 액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노사간의 신뢰가 깨졌고 감정 싸움이 심각해졌다. 보리 분회에서는 감정 싸움을 피해보려고 언론노조에 교섭권을 반납했고, 언론노조에서 와서 교섭을 진행했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

 

임금 협상의 과정은 우리로서는 사측의 불성실과 무지,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질려가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처음 제시안 임금안은 굴직한 것만 이야기 하자면 기본급 20만원 인상이었다. 협상을 하면서 낮아질 것을 고려해 원래 목표치보다 세게 불렀다. 사측은 첫 임금 협상 자리에 빈손으로 들어왔다. 임금에 대해 어떤 의견도 없이, 하다못해 그 해 임금 총액이 얼마인지 조사도 안 해보고 그냥 들어왔다. 사측의 성의 없는 모습에 화가 났지만, 우리가 준비를 많이 했으니 대화의 주도권을 우리가 잡을 수 있겠다 생각하고 교섭을 진행했다. 헌데 윤구병 대표가 우리의 요구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우리도 놀랐지만, 사측 교섭위원들이 깜짝 놀라며, 다음 교섭 때 사측의 임금 요구안을 준비해오겠다고 했다.

 

다음 교섭 때 사측이 들고 온 안은 놀랍게도 기본급 3만원(총액 48만원 인상) 인상이었다. (조병범 상무이사는 사측 임금안이 기본급 4만원 인상이라고 계속 우겼는데, 이는 상여급까지 포함시킨 거라서 그렇게 되면 총액 64만원 인상으로 사측 안 보다 높아진다고 알려줘도 계속 우겼다.) 노조는 어이가 없어서 "물론 노조 안대로 될 거라 생각은 안했지만, 20만원 인상을 받아들이겠다고 하고선, 어떻게 일 주일 만에 3만원 인상을 주장하냐"고 물었다. 윤구병 대표이사의 대답은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지난 교섭 때는 회사가 흑자가 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적자라는 것이다. 기본급과 상여금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무이사, 회사가 흑자인지 적자인지도 모르는 대표이사가 우리 회사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라니. 정말로 실망을 넘어서 절망을 했다. 

 

절망은 계속 되었다. 다음 교섭은 아예 열리지 못했다. 사측이 회사 안을 받지 않으면 교섭이 의미가 없다며 교섭 불참을 통보했다, 의견이 다르니 교섭을 하는 거고, 교섭 자리에 들어와서 조율해야 한다고, 교섭 불참은 부당노동행위라고 이야기 했지만 사측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 다음 교섭이 시작되기 전에 분회장과 대표이사가 독대를 했다. 교섭 자리에서는 서로 체면 차리느라 양보하지 않을 거 같아서였다. 그 자리에선 이야기가 잘 풀렸다. 물론 대표이사가 굶어 죽는 북한 동포와 홍익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을 들먹이며, 보리 노조가 이기적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통에 짜증이 살짝 났지만 말이다. 대표이사는 회사가 전년도 인건비보다 6% 인상된 액수로 인건비를 책정하겠다고 했고, 자기는 산수를 못한다며 조병범 상무이사와 이야기하라고 했다. 임금 인상 총액이 노조에서 목표했던 것과 비슷해서 우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임금교섭은 제대로 파탄나기 시작했다.

 

조병범 상무이사가 회사의 안을 정리해 왔다. 그런데, 윤구병 대표이사가 우리에게 말한 것과 다른 게 아닌가. 윤 대표는 우리에게 회사의 인건비를 6% 늘리겠다고 했는데, 조병범 상무이사가 가져온 안은 우리의 임금이 6% 올라간 거였다. 액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우리는 회사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고 분노했다. 왜 대표이사와 상무이사의 의견이 다르냐고 따졌다. 헌데 윤구병 대표이사는 오히려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대표이사와 분회장의 독대에서 서로 합의한 것대로 해 갔는데 노조가 이걸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윤대표는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노조가 서로 합의한 것을 깨고 다른 소리를 한다고 말이다. 문제는 조병범 상무이사였다. 조 상무가 악의적으로 윤대표가 제안한 것을 살짝 바꾼 뒤 노조가 말을 바꾼 것처럼 몰아갔는지, 아님 윤 대표와 분회장이 합의한 사안에 대해 이해를 잘 못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조병범 상무이사가 회사 임금안을 정리하면서 윤구병 대표와 분회장이 합의한 것과는 다르게 정리를 했고, 그 틈에서 노사 양쪽 모두 오해가 쌓이며 감정싸움이 격하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당시로 시계를 돌이킬 수 있다면, 윤구병 대표가 조병범 상무와 이야기 하라고 했을 때, 그걸 거절하고 계속 분회장과 대표이사가 이야기를 하자고 할 것이다. 꼭 임금 협상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노사 관계에서 조병범 상무이사가 중간에 끼면 말이 이상하게 왜곡되고 바뀌어서 일을 그르치는 경험을 그 뒤로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교섭은 고성이 오가는 살벌한 분위기였다. 윤구병 대표는 이 교섭 때 노조에게 질문한다며 A4 두 장에 질문을 7개를 뽑아왔다. 질문이라기 보다는 공격이었다. 노동조합에서 낸(그리고 그 시점에선 사측도 합의한) 단체협약에 월 근로시간이 209시간으로 되어있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5일 사업장의 소정 근로시간을 적은 것이다. 헌데 윤 대표는 자기가 세어봤는데 한 달에 근로시간이 209시간이 안 된다며, 노조가 계산을 잘못했다고 했다. 법에 그리 정해진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법이 잘못되었다며 우겼다. 나중에 따져보니, 주 5일 만근하면 하루의 유급휴가가 주어지는데, 윤구병 대표는 그걸 모르고 모두 무급인 날로 계산한 것이었다. 암튼 이 교섭의 대부분은 이런 식의 대화였다. 우리는 더이상 교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교섭권 반납을 통보하고 그 자리에서 나왔다. 

 

교섭 자리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배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장이 꼬인 것이다. 낙천적이고 스트레스 안 받기로 유명한 나였는데, 단체 행사에 사람이 안 와도 허허 웃고, 기자회견에 기자들이 한 명도 안 와도 실실 웃던 내가 스트레스로 장이 꼬이는 경험을 하게 되다니. 나도 놀랐지만, 주변 사람들도 놀랐다. 

 

언론노조가 와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는 갑자기 지금까지 정액 인상안을 뒤바꿔서 정률 인상안을 가지고 왔다. 보리는 단 한번도 임금을 정률 인상 한 적이 없어서 우리는 의아했다. 회사는, 지금까지 정액 인상으로 상박하후가 너무 심해져 오래 다닌 나이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인 차별을 받는다며 정율인상을 주장했다. 덧붙여 노조의 인상요구안이 정당한 절차를 거쳤느냐며, 노조 안에  반대하는 조합원이 있으니 노조의 요구안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률제 주장이야 뭐 그렇다쳐도 노조 총회를 거쳐 확정한 안을 인정할 수 없다니. 그냥 노조 안을 받을 수 없다고 했으면 열 받지 않았을텐데, 노조의 안이 정당성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바로 반박했다.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 되었고, 혹 반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정리한 안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지만, 회사는 앵무새처럼 반대하는 조합원이 있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조합원 가운데 부장 한 명이 자기는 정액 인상을 반대하고 정률로 올라가는 게 좋다고 사석에서 대표이사한테 말했는데 그걸 가지고 윤구병 대표가 트집을 잡은 거였다.

 

회사가 정률제를 그 시점에서 들고 나온 것은 정말로 정률제를 관철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노조의 정당성을 흠짓내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하고 서로 양보하고 합의를 하기 위한 게 아니었으니 교섭이 잘 될리가 없었다. 언론노조에서는 싸우기보다는 정률제를 받고 정률제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걸 제안하자고 했다. 회사가 제안한 것은 직급에 따른 차등 정률제였다. 회사의 제안대로 계산을 해보니 전 직원이 평균 8만원이 인상되는 안이어서 일단 기본급 8만원 인상을 요구해보고 안 되면 정률제를 받을 생각으로 교섭에 들어갔다. 언론노조에서 온 분이 노조의 안을 설명했다. "노동조합에서 정액 12만원 인상에서 8만원 인상으로 양보안을 내왔습니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바로 대답했다. "양보안이 아닙니다." 언론노조 분은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노동조합의 안을 안 받아도 된다. 그건 차차 논의해보자. 그렇지만 12만원에서 8만원으로 내린 건 양보 아니냐?"고 물었다. 윤구병 대표는 "이미 회사가 더 많은 것을 양보했다. 노동조합의 안은 양보안이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언론노조에서 먼저 보리 분회에 교섭 결렬 선언하고 지방노동위원회 가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임금 교섭은 지방노동위원회 중재를 거쳐 차등 정률 인상으로 결정이 됐다. 

 

이제 끝인 줄말 알았다. 반 년에 걸친 단협이 이제 마지막 남았던 임금 협상 까지 합의안이 나왔으니 말이다. 교섭을 할 때마다 각 조항들에 합의하고 싸인을 했던 걸을 갈무리해서 보리출판사 첫 단체협약에 최종사인만 남은 시점이었다. 나는 조병범 상무이사에게 쓸데없는 호의를 베풀었다. 노무사한테 한 번 검토라도 받아보시라고. 노무사에게 검토를 받은 뒤 갑자기 조병범 상무이사는 우리가 맺은 단협에서 많은 부분이 후퇴안 안을 가지고 왔다. 보리 단협이 근로기준법보다 좋게 맺은 게 많았는데 그걸 다 근로기준법에 맞춰 돌리자는 안이었다. 우리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이미 합의 한 것을 돌리자는 거냐고 따져 물으니 조병범 상무는 노무사의 의견이 이렇다는 거라고 대답했다. 그럼 회사의 의견은 노무사의 의견과 다르냐고 했더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반 년 넘게 어렵게 맺은 단협을 처음부터 해야하나 열불이 났다. 결국 경영지원실장과 회계담당 직원을 조합원에서 제외하는 것만 합의를 해 주고 원래대로 단협을 맺게 되었다. 이 부분은 회사가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고, 실제로 인사 노무 회계를 총괄하는 부서장이 노조 조합원인 경우는 다른 회사에 없기도 했기때문이었다. 

 

단협은 맺었지만, 우리 마음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임금 협상에 아무 준비도 안 해오고, 임금표가 없다며 노조에게 임금 표를 달라고 하고, 회사가 적자인지 흑자인지도 모르고, 노동법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우기기만 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회사 경영진들의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봤다. 

 

우리가 승리한 단협이었을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노동조합이 목표로 했던 것을 거의 다 단협에 넣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다. 회복되지 않을. 그리고 그렇게 자랑스럽던 단협은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았다. 회사는 때로는 단협 내용을 몰라서(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떨 때는 대놓고 무시했다. '이사회가 열리면 그 결과를 공지한다' 같은 조항은 심지어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승리한 단협은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구절을 많이 넣은 단협이 아니다. 단협을 맺은 뒤에도 회사가 그걸 잘 지키게 하는 게 승리한 단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니다. 단협을 맺은 뒤 한 달이 지나서 징계위원회(이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했습니다. http://blog.jinbo.net/stego/600)가 열렸다. 회사는 그 직원을 해고 하고 싶었지만 단협을 잘 맺은 덕에 우리는 그 직원을 지킬 수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 당시로 돌아가면 어디서부터 되돌릴 수 있을지. 노무사 검토를 말하지 말걸 그랬나? 마지막에 정액제와 정률제를 가지고 싸우지 말 걸 그랬나? 조병범 상무가 들어올 틈을 주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면 우리 태도가 문제였을까? 우리가 너무 회사와 윤구병 대표를 몰아부쳤나? 하지만 아무리 여러 번 생각해도, 단협이 파탄 난 근본 원인은 윤구병 대표가 사실은 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태도, 요구안, 조병범 이사의 무지와 왜곡, 노동조합의 판단 미스와 전략 미스. 이런 것들은 노사 관계를 파탄으로 좀 더 빨리 데려갔을 뿐이다. 이 모든 게 없었다고 해도, 결국 노사관계는 파탄이 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파탄이 나지 않으려면 노조에서 윤구병 대표에게 납짝 업드리는 방법 밖에 없다. 우리는 당신과 동등하지 않다고, 동등한 대화 대신 선처와 시혜를 요청했다면 관계가 아주 평화롭게 유지 되었겠지. 

 

첫 단협에서 배운 것은 많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쓴 깨달음이었다. 단협 준비하면서 만난 오마이뉴스 지부장의 말이 단협 내내 계속 생각났다.  "회사의 바닥을 볼 것이다" 이 말은 절반은 맞았지만 절반은 틀렸다. 온전히 다 맞기 위해서는 이렇게 바꿔야 한다. "회사의 바닥을 볼 것이다. 하지만 바닥의 끝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바닥이라고 생각한 바로 다음에 더 깊이 파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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