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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내가 쓰지 아니한 글

경찰은 어리석고, 농사꾼은 현명하다.

"오명순씨, 본적이 어딥니까?"

"본적? 시앙골."

"정확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시앙꼬올. 울 아부지 울 어매가 나를 시앙골서 났당게. 시앙골서 났응게 거가 내 본적지제에."

형사는 얼굴이 벌게진다.

"주소는요?"

"내동 아까 영살리 김시택이 큰어매라고 해놓고는 그러요. 영살리제 어디여어?"

"영산리 몇번집닝까?"

"번지수는 내가 모르겄소."

"주민번호요."

"고무차대기라 암것도 몰러 나는."

"주민등록증 내놔보세요."

"안 갖고 왔는디."

"직업이 무엇입닝까?"

"직업이 뭣이여?"

"현재 오명순씨가 하시는 일 말입니다."

"땅 파묵고 살제에. 나 같은 고무차대기가 뭔 재주가 있겄소이? 이날 평상토록 땅 파서 씨뿌리고 거둬서 나도 묵고 새끼들 멩이고 입히고 갈쳐서 이우고, 그러고 살았제에.....(생략)"

 

-공선옥 <꽃같은 시절>에서

 

시골마을에 돌공장이 들어와서 반대시위하다 업무방해로 경찰조사 받으러 온 할머니와 형사의 대화를 보다가 속이 다 시원해졌다. 누가 이 할머니보고 무지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형사가 던지는 질문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는 치들이나 궁금해 하는 것들이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대답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근대국가의 관리시스템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들과 함께 목숨붙이할 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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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박람회 동영상

평화군축박람회-한반도 평화와 군축을 위한 시민제언|

 

 

 

 

 

평화군축박람회 - 몹쓸무기, 나쁜무기, 비싼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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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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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후원의 밤.

여름 다 지나고 공포 분위기.

오리는 영국갔고, 조은은 담주 목요일에 구속(법정구속 안되는 거 아냐?)되고

마음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근데 이 웹자보는 누가 만든거지? 길준이가 만든 거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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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 신청 하실 분~!

 

제가 일하는 보리출판사에서 나오는 어린이 월간지 <개똥이네 놀이터> 입니다.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뛰어노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잡지이기 때문에 공부시키려면 별로 도움은 안됩니다.

참고로 개똥이네 연재되었다가 단행본으로 나온 책들은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 <랑랑별 때때롱>

이희재 선생님의 만화 <아이코 악동이> 김홍모 선생님의 만화<두근두근 탐험대>

하민석 선생님의 만화<도깨비가 훔쳐간 옛 이야기><안녕 전우치(곧 출간 예정)> 등이 있습니다.

 

지금 4주년 행사 기간이라서 정기구독 신청하면 사은품(6만원 상당의 보리책)이 나갑니다.

보리국어사전이나 보리에서 나온 도감을 탐내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절호의 기회죠.

<개똥이네 놀이터>와 더불어 부모잡지인 <개똥이네 집>도 매달 나오니까 일석이조기도 하구요.

 

혹시나 그래도 부담이 되신다면 저한테 살짝 이야기해주면 제가 직원가로 저렴하게 신청할 수도 있어요.

근데 이 경우에는 사은품은 안나간대요. 신청하실 때 추천인을 저(이용석)로 해주시면 제가 생색낼 수 있어서 좋겠지요ㅋㅋ(실은 12월 한 달 동안 가장 신청 많이 받아오는 직원에게 상품이 있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아이들에게 참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부담없이 추천합니다. 댓글달거나 저에게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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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것은 사람의 말

다시, 이것은 사람의 말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망루를 불태운 것은 우리다. 정의롭고 아름다운 가치들을 내던지고 '뉴타운'과 '특목고'를 삶의 이유로 박아들인 우리 모두가 한 일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따우가 무슨 소용인가. 그것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괴물이었으므로 괴물같은 정부가 탄생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자융와 민주의 공화국이 낳은 기형아가 아니라 자본과 속물의 제국이 낳은 우량아다. 그들은 무자비한 재개발 사업을 밀어 붙였고 무고한 사람 6명을 죽였으며 그 후로도 당당했다. 우리는 원고인인 동시에 피고인으로서 말한다. 이명박 정권은 살인 정권이다.

 

그 죽음은, 우리 모두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무치는 경고였다. 그분들을 잊는 일은 우리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는 일이었다.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2009년 여름부터 용산으로 갔다. 유족들의 슬픔과 신부님들의 헌신 앞에서 문학은 한없이 무력했지만, 그 뼈아픈 자각 속에서 1인 시위를 했고 글을 썼다. 정의를 믿었고 희망을 품었다. 그러던 중 지난 10월 28일 용산참사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희생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해 고인들을 두 번 죽였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의는 승리할 것이고 희망은 배반되지 않을 것이다 .

 

'6.9 작가선언-이것은 사람의 말'에 이어 이 책을 낸다. 다급하고 절박한 현실이 이 글들을 쓰게 했고 우리는 무능력과 죄책감의 힘으로 겨우 썼다. 추천사를 써주신 문정현님, 조세희님, 한명숙님, 홍세화님, 표지를 만드신 정은경님, 그리고 실천문학사 여러분들의 힘이 이 책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름들 이전에, 분노와 슬픔을 담아 거명해야할 이름들은 따로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위정자들과 치안관계자들에게 이 책의 가장 차가운 부분을, 망루에서 돌아가신 분들과 유족들과 지금도 용산을 지키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바친다.

 

비정한 나라에 무정한 세월이 흐른다.

이 세월을 끝내야 한다.

사람의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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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서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헌정식이 있어서 다녀왔다. 작가선언 6.9에서 준비한 행사인가보다. 우리도 1월에 책이 나오면 행사를 해야할텐데, 어떻게 하는지 한 번 보려고 했다.

 

날은 몹씨 추웠고, 뒤에 행사들이 많았던지 재빠르게 진행했다. 마지막 순서로 선언문을 낭독했다. '다시, 이것은 사람의 말' 작가들이라서 그런지 선언문이 굉장히 문학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겉 멋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글들과 진심이 담긴 글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선언문이 감동을 준 것은 진심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한 껏 멋을 부린 글이기도 하다. 뭐 글 쓰는 작가니까 당연한 일이다. 진심이 담기지 않고 멋만 부린 글이 문제일뿐이다. 작가라면 응당 읽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글을 써야한다. 그 즐거움은 단순한  흥미와 재미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시 예전의 꿈을 다시 꿔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저렇게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글을 쓰고 싶다. 아직은 아니다. 좋은 글을 쓰기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하는데, 혹은 부족해도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바라봐야 하는데 나는 아직 아니다. 문학이 한없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1인 시위를 나섰고, 힘겹게 글을 써내려갔기 때문에 이 작가들은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아직 좋은 삶을 살지도, 혹은 내 삶이 비겁한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나도 사람의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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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일본의 군대는 왜 '정신주의'를 강조했는가?

일본의 군대는 왜 '정신주의'를 강조했는가? [권혁태의 '일본읽기']<26> 군대는 천황제 국가의 교육기관 한 사회를 '군사주의'라는 개념으로 묶어 해석한다면, '군사주의'라는 말 속에는 군대라는 조직이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자리 잡을 때 발생되는 '경직성'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군대 내에 존재하는 엄격한 군기와 규율은 군대 내부에서는 '폭력'의 형태로, '용감무쌍함'은 외부의 적에 대해 '잔인함'이라는 형태로 각각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는 군대 내부뿐만 아니라 군대를 둘러싸고 있는 군대 외부에 광범위하게 그리고 뿌리 깊게 존재하는 위계질서, 조직의 비민주성 등의 현상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군사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한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군사주의적 경향은 정치적 개념 이상의 보다 폭 넓은 규정성, 예를 들면 역사적 문화적 기반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사주의를 폭력성, 봉건성, 정치지향성(과잉 이데올르기)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바라 볼 경우에(세 가지 요소는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증폭상승의 과정을 반복하지만), 특히 우리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봉건성'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군대적 위계질서가 군대 내부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기초원리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이와 같은 '봉건성'이 폭력성과 정치지향성의 기초를 이룬다는 점이다. 폭력성과 정치지향성은 군사조직이 갖는 일반적 성격이지만, '봉건성'은 폭력성과 정치지향성을 한층 더 노골화시키며, 일반적으로 '불완전한 근대' 속에 있는 사회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 일본 해상자위대 ⓒ연합뉴스 그렇다면 군대의 봉건성은 어디에서 유래되는 것일까? 하나는 저비용 다병주의이다. 물론 고비용 정예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말이다. 이는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작은 비용으로 많은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대와 사회 간의 생활수준의 격차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사회보다 열악한 군대 내의 생활수준에 사회에서 갓 입대한 청년들을 적응시키고 그 적응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은폐/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애국', '충성', '단결' 등의 이데올로기적 장치와 함께, 폭력 장치가 다수 동원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서 문화의 '전통'이 다수 동원된다. 한국 군대에서 쉽게 동원, 소비되는 유교적 언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유교 등의 문화적 전통과 군대의 엄격한 위계질서, 혹은 봉건성과의 인과관계가 반드시 명확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유교적 전통 문화와 군대내의 엄격한 위계질서 간에 현상적인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해도, 공통점만을 근거로 양자의 인과 관계를 주장할 수는 없다. 해방 후 한국의 군대 조직이 그 내부 규율이나 조직 시스템에서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향은 대개의 경우 인적 계승의 문제로만 해석되어 왔다. 따라서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 청산되지 못했다는 일종의 역사적 '순결성'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구 일본 제국주의와의 연속성이 갖는 파행성이 강조되어 왔다. 해방 한국의 군대 조직의 중심세력이 과거의 친일파나 혹은 일본 육사나 군대를 경험한 세대들에 의해 주도된 나머지, 해방 정국 이후의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에 따라 군대를 비롯한 사회조직에도 광범위하게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이 강고하게 남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물론 제국군대와 한국군대를 군대 규율의 연속이라는 차원에서 '인적 계승'을 통해 밝혀내는 작업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지나치게 군대 규율을 기능의 차원에만 가두어서 해석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군대의 가장 큰 특징인 정신주의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가와노 히도시(河野仁)는 2차 세계대전 시의 미군과 일본군의 행동패턴을 비교분석해 미군을 '생환의 군대'로 일본군을 '옥쇄의 군대'로 묘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일본 연구자 존 다워(Jonh W. Dower)는 2차 세계대전 중의 미국인에게 일본군은 '이상한 규율과 전투 기술을 가진 일본인 초인(슈퍼맨)'으로 각인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초인적인 정신주의적 경향이 군대내의 엄격한 규율과 폭력에 의해 지탱되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정신주의적 경향이 어떤 이유로 형성되었는가이다. 첫째는 문화주의적 접근방식이다. 미국의 일본 연구의 효시라 볼 수 있는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은 전쟁 중에 나타나는 일본 군인의 과도한 정신주의적 헌신성, '무항복주의'를 일본 사회 고유의 '치욕'(하지, 恥)의 문화에서 찾고 있다. 이 '치욕'의 문화가 잔인함, 맹목성, 충성심으로 연결되었고 '옥쇄', '산화', '가미가제', '집단자결', '할복'과 같은 극단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 혹은 에도시대의 무사도와 같은 정신주의적 토양의 전통이 전전의 일본 군대의 정신적 원류를 형성했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에도 시대 인구의 약 7% 정도를 차지했던 사무라이 계급의 도덕률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무라이 계급과 일본군과의 정신세계상의 현상적인 공통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두 번째 접근 방식은 '위로부터의 강제', 특히 군대 내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이른바 '정신교육'의 철저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정신교육을 통해 개인을 가족, 고향 공동체, 천황에 끊임없이 매몰시켜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군인칙유'(軍人勅諭, 1882년 천황이 군인에게 '하사')에서는 군인의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천황에 대한 '충성'에 두고, '천황 통수권' 하에서 일본군을 '국민의 군대'가 아닌 '천황의 군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관의 명령은 곧 천황의 명령이니, 이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군인의 죽음은 곧 천황에 대한 충절의 가치이며, 충의는 산(山)보다 무겁고 사는 홍모(鴻毛)보다 가볍다" 등등. 또한 군인들의 내무생활 지침을 담은 '군대내무서'(軍隊內務書, 1908년 제정, 1943년 대폭 개정하여 군대내무령으로)에서는 군대를 '一大家族'으로 간주하고 가족의 공간으로 내무반을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증언은 군대 내무반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저녁 점호를 끝내고 내무반에 돌아간다. (중략) 초년병은 정열하고, 우선 군인칙유의 암기복창이 시작된다. 순번이 돌아온다. 누군가 우물쭈물하면 '안경을 벗어! 이를 악물어!'라는 말과 함께 전원에게 핀타(뺨때리기)가 날라온다. 칙유암기복창이 끝나면 다음은 총을 비롯해 총검, 군화 등의 수입, 검사가 시작된다. 연대해서 기합을 받는 경우가 많다. (중략) 내가 때리는 것이 아니다. 대원수(천황)가 때리는 것이다. 잘 알아두라고." 또 전장에서 군인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담은 전진훈(戰陣訓, 1941년)에서는 "항상 향당가문(鄕黨家門)의 체면을 생각하라"라는 내용을 담아 향토부대주의 채용의 기반으로 삼았으며, "살아서 포로의 굴욕을 받지 말아야 하며 죽음으로 오명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구절을 통해 '옥쇄(玉碎)'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위로부터의 강제'를 강조한다고 해도, 일본 제국주의가 왜 이런 정신주의적 규율을 강조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신주의적 규율은 결국 저비용주의라는 요인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일본 육군의 전략 전술의 기본원칙을 담은 『통수강령(統帥綱領)』(1928)에서는 "물질적 진보는 심대하지만, 승패의 주된 원인은 여전히 정신적 요소에 있으며", 이 정신적 요소로 "부족한 군대와 자재"를 넘어설 것을 담고 있다. 또 『작전요무령(作戰要務令)』(1938)에서도 "훈련이 주도면밀하고 필승 신념이 확고하며 군기가 엄정하고 공격정신이 충만한 군대는 물질적 위력을 능가"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군이 독일식 화력주의를 버리고 이 같은 정신주의적 규율에 입각한 '백병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 무렵이다. 낮은 수준의 공업 수준과 한정된 경제력으로 인해 군사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 군대는 선택의 여지없이 정신주의에 입각한 백병주의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정신주의에 입각한 백병주의가 일본 육군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낮은 수준의 경제력 때문에 포병주의에 입각한 물량 화력주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대량의 인원동원에 입각한 육군 중심의 정신주의를 초래했으며, 그 결과 징병제도를 강화해 인적 자원의 대량 동원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량으로 동원된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위한 시설로서 '집단 거주형 내무반'이 고안된다. 그리고 집단 거주형 내무반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정신주의적 규율과 폭력장치가 동원된다. 지금 한국 군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내무반 구조가 구 일본 육군의 그것과 거의 흡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와는 달리 보다 본질적인 문제인 '불완전한 근대'와의 관련 속에서 일본 군대의 특징을 설명하는 견해도 있다. 선교사의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난, 캐나다의 역사가이면서 외교관이었던 허버트 노만(E.H. Norman)은 일본 군국주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노예의 신분에 있는 자는 타인에게 자신의 족쇄를 채우는 가장 잔인한 대리인이 될 수 있다. 징병제 설정의 동기가 농민반란 진압의 수단이었고 반혁명을 위한 군대창설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군대는 본질적으로 대외침략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일본 군인의 잔인한 대외침략의 원인이 일본 군대가 '해방되지 않은 농민'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서양의 징병제가 근대 시민 혁명에 의해 탄생한 '시민'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근대적 시민 혁명이 아니며, 따라서 일본의 군대는 '시민'이 아니라 '해방되지 않은 농민'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감시', '강제', '비자발성', '신분제에 가까운 위계질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생적으로 시민사회를 형성하지 못하고 위로부터의 '근대화'가 강하고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근대적 사회조직에 적합한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또한 매우 폭력적이고 급진적이다. 예를 들면, 근대적 인간형은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까지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것이 신체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시간규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육은 농업노동이 아니라 분업화된 공정 속에서 한 가지 일을 반복하는 공장노동에 적합하여야 한다. 일단은 중세적 신분질서는 무시되어야 한다. 일본의 예를 들으면, 사무라이 계급이 구 백정 계급인 에타/히닌과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족이나 신분이 아닌 새로운 사회집단(회사 등) 속에서 자신을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그리고 가족이나 지역, 신분에 따라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국가라는 틀 속에 '국민'으로 통합하여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근대적 노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매우 더디고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개별자본의 수준에서는 높은 비용과 시간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국가가 교육기구(내용, 기관 등)의 기반 확충 등을 통해 이를 달성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이 또한 많은 비용이 소요될 뿐 아니라, 추진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과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이에 소요되는 조정비용 또한 적지 않다. 이 역할을 대행한 것이 일본의 군대였다. 일본 등의 후발산업국의 근대화 초기과정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단순히 치안 유지와 내란 방지라는 군사적 성격 이상의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천황을 중심으로 근대적 '국민' 만들기 과정에서 단일의 교육기관으로서 군대가 다수 동원되었다. 군대는 천황제 국가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군대가 사회를 천황 중심으로 통합하는 역할을 대행한 것이다. 또한 근대적 노동 규율을 단기간에 매우 효율적으로 그리고 강제로 신체화시키는 역할을 일본의 군대가 대행했다. 그리고 천황 중심의 사회동원 시스템의 연결고리로 군대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군대는 해체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군대가 지녔던 정신주의적 전통은 자위대에 그리고 일본의 기업 사회에 아주 강하게 계승되었다. '군대 아닌 군대'인 자위대에서 최근 연간 100명의 자살자가 발생하는 것 또한 이런 정신주의적 토양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권혁태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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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sport2.0 불량한 야구개그 '장원삼'

장원삼 삼성은 11월 14일 히어로즈 왼손 투수 장원삼을 받고 왼손 투수 박성훈과 현금 30억 원을 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사실상의 현금 트레이드 성격인 이러한 두 팀의 트레이드 합의에 대해 나머지 6개 구단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한국야구위원회가 트레이드 승인을 거부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 각계의 반응 감독 선동열 "내 임기 동안 FA영입 없다는 약속을 지켰다. 사내답게 약속은 지킬 것." 보수 논객 지모 씨 "기부를 이렇게 많이 하다니. 삼성 구단은 좌익 빨갱이가 분명해." 기획재정부 "고용 안정에 앞장선 모범적인 대기업의 표본으로 타 구단이 본받아야." 청와대 "산에 불이 났는데 싸움 멈추는 게 도리. 메이저발 글로벌 야구계 위기, 다같이 헤쳐나가야." 기획재정부 장관 강모 씨 "헌대와 접촉했는데 승인에는 문제없다고 하더라." 국회의원 나모 씨 "1등 영입감은 잘 던지는 히어로즈 왼손투수, 2등 영입감은 잘 치는 히어로즈 타자, 3영입감은 그냥 히어로즈 선수." 뉴라이트 역사 모임 "반대하는 6개 구단의 트레이드 역사 인식은 좌편향적. 바로잡아야." 정보당국 "쌍방울 사태 재현설 유포한 '미네랄'은 50대 야구팬. 신원확인 완료했다." 김구라 "뭐야 이건." 변호사 김용철 "그럴 줄 알았다." 야구선수 출신 방송인 강모 씨 "아, 그냥 좀 더 모아서 장원삼 살 걸." 대한빙상경기연맹 "우리가 가장 '막장'인 줄 알았는데, KBO에 동지 의식 느껴." 도움상회 "요즘 말도 안되는 트레이드 때문에 힘드시죠. 전국 250개 지점망을 가지 ㄴ저희 도움상회사 1급 계약파토사들을 동원해서." 맨체스터시티 구단주 "장원삼이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겠다. 얼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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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씨의 신간 [꽃섬고개친구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천덕꾸러기들의 삶

그 속에서 조심스럽게 피어난 평화를 향한 선택!    

        

제  목 : 꽃섬고개 친구들

지은이 : 김중미

체  제 : 145*210 | 359쪽 | 10,000원

분  류 : 문학 > 주제가 있는 문학 >

         성장소설

        청소년 > 청소년을 위한 소설

        문학 > 한국 문학 > 한국 소설

독  자 : 청소년 및 일반

발행일 : 2008년 8월 25일

ISBN : 978-89-8040-332-5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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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거대한 뿌리》등 출간하는 작품마다 항상 낮은 곳에서 씩씩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 낸 작가 김중미의 장편 성장소설이다. 《꽃섬고개 친구들》은 꽃섬고개라는 조그마한 산동네에 살고 있는 한길이와 선경이, 이들 두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들의 친구 태욱이와 영미, 보라를 둘러싼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기에 열악한 산동네에 공부방 선생님으로 있으면서 이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이재성 선생님과 각각의 사연 속에서도 삶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부모님들과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이들은 팍팍한 삶 속에서 불평도 생기고 이기적인 마음도 싹트지만 서로 기대면서 점점 성장해 나간다. 평화를 위한 선택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 책 소개 -


억압과 불평등, 착취,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 대한 폭력을 거부하는 작은 목소리!


《꽃섬고개 친구들》은 초등학교 시절에서 이십대 청년이 될 때까지 꽃섬고개라는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 겪는 현실 속 폭력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면서, 이런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평화를 위한 자유로운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각각의 주인공들이 가진 사연들은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런 환경에서 각자가 선택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삶도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음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주인공 한길이와 선경이를 통해서 그들의 삶과 주변인의 삶을 통해 십대에서 이십대로 성장해 가는 과정의 생채기와 아픔을 그려낸다. 동시에 각각의 사연 속에서 어떻게 평화의 길을 찾아 가는지 보여 준다.


선경이 이야기

선경이는 집을 나가 택시 기사로 어렵게 살고 있는 아버지와 어린 시절 헤어진 어머니 대신에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와 힘들게 살고 있다. 선경이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른스럽게 살아가려 한다.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지지 않고 힘으로 맞서서라도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열악한 청소년 노동을 하며 팍팍한 삶을 산다. 아르바이트비를 벌기 위해 부조리한 모습을 보면서도 살아가기 위해 침묵하기도 하고, 주위의 친구들에게 냉소적이고 차가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한길이와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변화해 가게 된다. 선경이는 한길이와는 어려서부터 보디가드처럼 친한 친구이다. 소심하고 여성스러운 한길이와는 달리 선경이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선경이는 항상 혼자 힘든 삶을 헤쳐 나갈 생각만 하다가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보라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주게 되고, 선경이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보라에게 위화감을 느끼지만, 나중에 친해져서는 보라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경이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동성애 문제로 따돌림을 당하는 보라를 받아들이고 보라에게 기대게 된다. 하지만 보라의 제멋대로인 듯한 태도에 화가 나기도 하고, 이기적인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지만 선경이는 결국 보라를 이해하게 되고 다시 친구로 지내게 된다. 또 친구 영미의 답답한 모습에 많이 짜증도 내지만 영미가 혼자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로 결심하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잘못된 만남으로 태어난 자신의 과거를 생각해서 함께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한길이가 병역을 거부하고 평화주의자로서 자신의 길을 가려고 선택할 때 납득하지는 못하지만 결국 한길이의 선택을 존중한다.  


한길이 이야기

한길이는 산동네인 꽃섬고개에서 주정뱅이 아버지와 도배 일하는 어머니와 동생 한나와 함께 살고 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폭력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아버지의 폭력이 사실 베트남전 참전으로 인한 후유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점점 전쟁과 같은 폭력이 사람을 파괴하고 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재성 선생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커서는 그와 같은 훌륭한 선생님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공부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사이의 차별, 폭력적인 선생님들의 부당한 체벌과 사람들 사이의 폭력을 보고 폭력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한다. 주위 친구들은 집안 형편과 성향의 영향으로 대한 진학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대에 들어가 이재성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공부방에서 선생님을 한다. 자신이 선생님을 하면서도 예전 자신의 어린 시절과 변한 것이 없는 꽃섬고개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되고 좀 더 평화롭게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아이들을 가르친다. 친구 태욱이 삼촌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병역거부를 한 것과 폭력적인 문화에 저항하는 불복종으로 불교신자인 오태양 씨가 병역거부를 하자 자신 역시 폭력에 반대하는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병역거부를 결심한다. 공부방 선생님을 그만두고 다시 자신의 고향인 탄광촌 마을로 돌아간 이재성 선생님을 만나고 병역거부에 이어질 고난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태욱이, 영미

태욱이는 한길이와 선경이의 친구이다. 섬세하고 생각이 많은 한길이와 달리 단순하고 터프한 전형적인 남자 아이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가지만 마음은 착하다. 삼촌의 병역거부와 아버지의 정리 해고와 같은 일련의 사고를 겪으면서 집에 책임감을 느끼고 고등학교 취업반을 졸업하고 미용 기술을 배우다 군에 입대한다.

영미도 한길이와 선경이의 친구이다. 어려서부터 약하고 순진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부모님은 장애를 가지고 있어 집안일을 능숙하게 하지만 친구 사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항상 어리숙하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휴대전화 영업 일을 하지만 임신을 경험하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상처도 많이 받는다. 한 번의 낙태를 경험하고, 배 속에서 울리던 아이의 발소리를 잊지 못해서 결국 미혼모로 선경이와 함께 당당하게 다시 살아가게 된다.


평화를 위한 선택

《꽃섬고개 친구들》의 주인공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폭력적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지 모른다. 이렇게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어른이 되는 우리는 모두 평화로운 감수성을 잃고 다시 반복되는 폭력 속에서 둔감하게 살아간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숱한 상처를 겪어 몸과 마음은 늘 흉터투성이인 데다가,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지만 삶 한가운데에서 조용하고 작지만 모이면 큰 촛불처럼 자신의 소신을 따라 평화로운 선택을 한다. 영웅이나 투사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런 선택 하나하나가 모이면 큰 힘이 되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큰 밑바탕이 될 것이라 작가는 말하고 있다. 항상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작은 선택의 이야기는 많은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쉽게 상처받고 힘들어도 조용하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테마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이다. 그동안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도 등 흔히 이단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해서 감옥 생활을 했다. 2001년 불교 신자인 오태양 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면서 사회에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한길이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하는 과정과 주변 환경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그 길을 선택하면서 겪게 되는 마음 속 갈등, 주변인들과의 문제를 보여 준다.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양심의 목소리를 거역할 수 없어 감옥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병역거부를 하는 평화주의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를 통해 독자들도 평화의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에 대해서 좀 더 나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겪게 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좀 더 나은, 평화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꽃섬고개 친구들》을 통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우리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함께 평화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차례 -


1부

선경이 - 7

한길이 - 18

결석 - 25

동병상련 - 31

친구 - 41

피티에스디 - 51

난 강한 아이야 - 62

누가 더 힘이 센 걸까 - 73

여자가 되다 - 80

면회 - 89

변화 - 94

월남에서 돌아온 용감한 김상사 - 105

동물원에서 - 118

2부

학교 - 129

여고가 아닌 여상 학생으로 살기 - 140

태욱이 삼촌 - 150

할머니와 이별하기 - 157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 167

독립 - 180

용기 - 189

보라 - 203

용만이의 선택 - 213

사랑에 빠지다 - 223

영미 - 234

아웃팅 - 243

이재성 선생님의 선택 - 260

3부

가슴에 푸른 멍이 든 소혹성 사람들 - 267

김한길 선생님 - 285

괜찮아, 그까짓 생채기 하나쯤은 - 294

폭력의 고리 - 300

재회 - 308

만남 - 317

인드라망 - 326

선택 - 338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 344

평화로 가는 길 - 354


작가의 말 - 357


- 작가의 말 중에서 -


《꽃섬고개 친구들》의 주인공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그 자체로 폭력적이다. 가난과 편견, 억압과 불평등, 착취. 가난하고 힘없는 그들은 그 폭력을 막아 줄 어떤 방패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늘 맨몸으로 사회의 폭력과 맞서야 했다. 숱한 상처를 겪어 몸과 마음은 흉터투성이지만 그들은 어떤 무기도 지니지 않은 채 세상에 당당하게 살아남았고, 서로 그 흉터를 쓰다듬으면서 자매애와 형제애를 깨닫는다.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폭력에 멋지게 맞서 나가는 영웅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평화는 거창하고 대단한 사람의 능력이 아닌 힘없는 개인들의 작은 선택이 모여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검둥소 편집자로부터 작가의 말을 쓰라는 연락을 받을 무렵, 나는 촛불을 들고 청계광장에 있었다. 처음 우리의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그 광장에 섰을 때, 사람들은 그 어린 학생들이 켠 촛불이 수천, 수만 개로 번져 나갈 거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촛불은 점점 사람들의 마음을 밝혔다. 나는 거리로 나온 촛불 하나하나의 힘을 믿는다. 우뚝 솟은 큰 촛불로 모여드는 작은 촛불들의 힘보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 이룬 커다란 촛불의 힘에서 더 큰 희망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평화를 위한 촛불을 다시 켠다.


- 추천사 -


이 책의 주제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지만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 바로 “폭력”이다. 폭력의 얼굴들은 너무나 다양하다. 빈민촌 아이들이 자기 동네에 나타나는 것이 싫어 방음벽을 쌓아 가난한 아이들의 등굣길을 막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냉정한 이기주의부터 같은 반 가난뱅이 아이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있는 집안” 아이들의 태도까지, 폭력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계급 사회의 총체적 현실의 다른 이름이라 봐도 좋을 만큼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다. 폭력은 악보(惡報)를 낳는다. 베트남 전장에서 소녀를 쏘아 죽인 “파월 용사”가 그 악몽을 벗어나지 못해 행려병자가 되고, 가족들까지도 쉴 사이 없이 불안에 시달리게 만든다. 그를 폐인으로 만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물론 모르쇠로 일관한다. 폭력의 사슬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결국 주인공 김한길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입각하여 병역을 거부하고, 이를 통해 거대한 폭력 기구인 국가에 대한 맹종이라는 악의 뿌리를 자르려고 한다. 주인공의 이름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한길”이란 결국 우리 모두를 폭력의 공포에서 해방할 자기 양심에 대한 복종, 그리고 체제에 대한 불복종의 큰길이란 의미일 것이다.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교수) -


김중미 선생님의 작품들이 언제나 깊은 감동을 주어 온 것은 단지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현실의 문제를 담고 있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삶으로 겪은 것이 아니어서는 작고 가난한 삶들의 줄기를 그토록 저미도록 알기 어려울 것이고, 사랑이 아니어서는 그 모진 삶들의 눈물이 또 다른 눈물과 서로 어떻게 기대어 흐르는지를 이처럼 한 가슴에 담아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삶과 사랑은 그동안 써 온 작품들에서 그래 온 것처럼 이 작품에서 역시 가난한 이들의 삶 속에서, 그이들이 흘려온 눈물의 기원과 넘어섬을, 누구보다 약한 이들의 착한 떨림으로 밝혀 주고 있습니다. 마침내 저는 평화를 보았습니다. - 박기범 (동화작가) -




- 지은이 -


지은이 : 김중미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나 방송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부터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말에서 공부방 활동을 했다. 지금은 강화에서 농사를 지으며 공부방을 꾸려가고 있다. 1999년 창비의 제4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다.《괭이부리말 아이들》,《종이밥》,《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내 동생 아영이》,《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공저),《거대한 뿌리》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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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정리하며

한동안 오예스를 계속 먹겠구나

그래도 우리는 짐 손이 부족해 조금 챙겨왔는데...

오예스 먹으면서 편지들을 정리하고 있다.

내가 떠나보낸 마음들을 내가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미련없이 여러 마음들-서운함과 그리움과 지루함과 불안함과 기대감 들을

가감없이 내 보냈었던 건데...

 

편지들 정리하면서보니 정말 난 글씨를 너무 못쓴다ㅠㅠ

아무리 감동적인 내용이라도 이런 글씨라면 하나도 감동적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나라면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을것같다. 타이핑 치는데 못알아 볼 정도는 아니지만

신나기 보다는 짜증이 쌓여가는 글씨체라고나 할까.

 

그리고 또 새삼스럽게 알게되는 것 들.

그 안에 있을 때, 출소해서의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았다.

이것 저것 세워봤자 안지킬게 뻔해서. 그래서 안세우고 안세우고 해서

최소한으로 세운 계획들. 깜빡 잊고 지냈더랬다.

편지들을 보니까 내가 어떤 계획들을 세웠는지 적혀있다.

민망하다. 단 하나의 계획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몇가지 맛보기. 징역에서 읽었던 책들 중 인상깊었던거 다시 읽기.

도스도예프스키, 톨스토이, 보르헤스, 마르케스 읽기.

영어공부 꾸준히 하기. ㅠㅠ

 

그래도 편지 정리하면서

기억에 가물거리며 남았있던, 찾고 싶었던 시도 찾아냈다.

친구에게 써 보냈던 시.

 

 

 

옥창에 기대어                          김광섭

 

 

하늘로 하늘로

가는 마음

맑은 바람

타고 가면

흰 구름

눈물 씻는다

 

 

이 시를 보면서, 시인의 마음에 너무 너무 공감이 되었다.

좁다란 창살 사이로 내다보이는 하늘, 하늘위 구름과 바람과 내 마음

 

편지 타이핑하기 지겨워서 잠깐의 포스팅.

다시 일해야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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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모르고 지나쳐버렸다. 13일이 시인 김남주의 14주기였단다.

 

김남주... 그와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과 시원함과 슬픔을 기억한다.

IMF 때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여름방학때인가 집앞 독서실을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 안어려운 집이 없었듯이 우리집도 울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망하면서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었다. 그 빠듯한 살림에 없는 돈으로 독서실을 등록해줬건만, 솔직히 앉아서 공부하는데 취미가 없었던 나는 다니는 시늉만 했다.

아침밥먹고 독서실 가서 한 30분 공부하다가 만화책 빌려서 1시간쯤 보고

계속 책봤으니 산책 한 30분하고 다시 책상에 앉아서 소설책보다가

지루하면 노래듣고 그러다가 점심밥 먹으로 집에가고...

그러던 어느날 라디오에서 우연히 안치환이 부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들었다.

가사가 너무 좋아서 덜컥 안치환의 테이프를 샀다.

그 앨범에는 생각지도 못한 낯선 노래들이 있었다.

그 노래들 중 몇 곡에 김남주의 이름이 있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야' '한다' '희망이 있다(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아이고! I Go!(날마다 날마다)'... 그 노래 가사들을 보고나서 서점으로가서 창비에서 나온

김남주의 2권짜리 옥중시선집 저 창살에 햇살이 를 샀다.

 

김남주의 시는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환희였다.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시를 썼다는 그의 말에 녹아들었고

나도 그처럼 시를 무기삼아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여러번, 사는게 버겁고 힘들때면 더더욱 김남주의 시를 읽게 되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김남주의 '전사'에 가슴이 뛰었었고, '돌멩이 하나'를 읽으며

꿎꿎하게 걸어가자 친구와 다짐을 했었다. 해마다 518이 되면 '학살'을 떠올렸었다.

농활갔던 마을 개울가에 발을 담그며 '물따라 나도 가면서'를 노래했다. 정주영이 즉었을 때, 그를 기리는 일군의 학생운동세력을 보면서 마음에 안들어서 '겨레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백두산이여(시 제목이 기억이 안난다ㅠㅠ)'를 읊조렸다.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경찰에게 맞아 죽었을 때는 '날마다 날마다'를 생각하며

속으로 울었고, 대추리에 쳐진 철조망에서는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야'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조용한 가을 한적한 시골마을을 지날 때는 '옛마을을 지나며'를 떠올리며  홍시가 먹고 싶어졌었다. 재작년 친구들과 해남 땅끝마을을 가다가

우연히 김남주 생각를 발견하고 들렸던 일이 있었다. 붉은 남도의 흙. 흙보다 더 검붉게 그을렸을 농민들. 농민들의 마음들. 김남주의 시가 왜 그렇게 붉은지, 붉으면서도 생기있꼬 아름답고 슬픈지, 붉은 흙을 보니 알 것만도 같았다. 징역사는 동안에는 '저 창살에 햇살이' '이 가을에 나는' 과 같은 시들에 몸과 마음이 온통 몰입해있었다.

김남주가 시에서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내 마음은 크게 요동치고 너무나 슬퍼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시를 던져버리기도 했었다.

 

이제 나는 시가 무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시를 무기로 삼을 생각이 없다. 그래도 가끔씩 김남주가 보고 싶다. 그의 시를 읽을때면 언제나 사뭇치는 감정들이 나에게 소중하다. 내 보물과도 같은 김남주의 시집, 이제 완전히 누리끼리해져만 가는 내가 처음으로 샀던 시집을 다시 한 번 꺼내본다.

 

 


 



나와 함께 모든 모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

아무리 아쉬워도 
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 
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 
제각기 모두 제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 
혹 그 언제인가 
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 
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 
서로 속삭일 것이다. 

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

어느 한 가슴에도 
메아리의 먼 여운조차 
남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노래가 
왜 멎어야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 
영원도 있어 
희망이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찌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가.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전옥일까 아니면 대구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아이들의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그들과 함게 나도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오라 풀고 사슬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 한번 나도 걷고 싶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논둑길 밭둑길을 내달리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고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차는 멈춰주지를 않는다

내를 끼고 강을 건너 땅거미가 내리는 산기슭을 돈다

저 건너 마을에서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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