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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어리석고, 농사꾼은 현명하다.

"오명순씨, 본적이 어딥니까?"

"본적? 시앙골."

"정확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시앙꼬올. 울 아부지 울 어매가 나를 시앙골서 났당게. 시앙골서 났응게 거가 내 본적지제에."

형사는 얼굴이 벌게진다.

"주소는요?"

"내동 아까 영살리 김시택이 큰어매라고 해놓고는 그러요. 영살리제 어디여어?"

"영산리 몇번집닝까?"

"번지수는 내가 모르겄소."

"주민번호요."

"고무차대기라 암것도 몰러 나는."

"주민등록증 내놔보세요."

"안 갖고 왔는디."

"직업이 무엇입닝까?"

"직업이 뭣이여?"

"현재 오명순씨가 하시는 일 말입니다."

"땅 파묵고 살제에. 나 같은 고무차대기가 뭔 재주가 있겄소이? 이날 평상토록 땅 파서 씨뿌리고 거둬서 나도 묵고 새끼들 멩이고 입히고 갈쳐서 이우고, 그러고 살았제에.....(생략)"

 

-공선옥 <꽃같은 시절>에서

 

시골마을에 돌공장이 들어와서 반대시위하다 업무방해로 경찰조사 받으러 온 할머니와 형사의 대화를 보다가 속이 다 시원해졌다. 누가 이 할머니보고 무지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형사가 던지는 질문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는 치들이나 궁금해 하는 것들이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대답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근대국가의 관리시스템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들과 함께 목숨붙이할 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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