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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20
    징계, 노동자에 복종을 요구하다(11)
    무화과

징계, 노동자에 복종을 요구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백수로 지내며 시간이 많다보니 이런 생각을 한다. 이번 글은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행동에 대한 글이다.

 

원래는 노조 만든 뒤 단협을 맺은 과정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그린비 회사가 편집 상의 실수와 직장 질서 문란을 이유로 조합원을 징계한 것이 자꾸 떠올라 글 순서를 바꿨다. 표적 징계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편집 상의 실수는 사실 노동자의 잘못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그린비 노동조합에서도 그 부분은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문제는 직장 질서 문란이다. 나는 회사가 요구하는 것이 실수에 대한 책임 추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가 무릎 꿇고 잘못했습니다, 이런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0년 7월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대표이사가 전 직원에게 보리 책 리스트를 나눠주며 읽은 책에 표시를 해서 제출하라는 업무지시를 내렸다. 이 조사를 왜 하는지, 이 자료가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반발이 일어났다. 직원들이 반발한 까닭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책을 읽었다는 것을 기계적으로 조사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었다. 싸구려 프로그램에서 독서왕 가리듯 하는 조사에 책 만드는 사람의 자부심으로 반발심이 생긴 거다. 두 번째는 이 자료가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보리에 들어가기 직전, 윤구병 대표이사가 취임하고 나서 납득할 수 없는 인사발령을 내리고 그로 인해 보리를 오랫동안 다닌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나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교정교열 숙제 비슷한 것을 해 오라고 하면서 갈등이 심해졌다고 들었는데, 그런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에서 이런 위기의식을 공유했지만, 당시 단협이 끝난 바로 뒤라, 공식 대응은 하지 않고 개개인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인트라넷에 이 조사를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물었다. 윤구병 대표이사는 보리 직원 모두가 보리 책을 홍보해야 하는데, 누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알아야 홍보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결국 각자 알아서 대응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최대한 성의껏 작성해서 내고, 어떤 사람은 대충 작성하거나 거짓으로 작성해서 내기도 했다. 이런 조사의 문제와 대표이사의 업무지시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편지를 써서 같이 낸 사람도 있다. 그 가운데 백지로 낸 사람이 있었다.

 

대표이사는 백지로 낸 직원에게, 정말로 한 권도 안 읽었다는 건지, 아니면 업무지시를 거부한 것인지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그 직원은 자기가 왜 백지를 써서 냈는지 편지를 써서 내고 경위서도 냈다. 회사의 대응은 징계위원회 출석 요구서였다. 단협 28조(징계) 4,5,6,항을 어긴 것이 징계사유라고 했다. 참고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4. 타인에게 성희롱 또는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행사했을 때.
  • 5. 근무에 관한 신고, 제출을 허위로 하거나 직무를 현저하게 태만히 했을 때.
  • 6. 고의나 과실로 회사에 막대한 재산 손실을 끼쳤을 때.

 

하지만 출석요구서 어디를 봐도 그 직원의 어떤 행동이 위의 조항을 위반했는지 적혀있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조병범 상무이사에게 찾아가, 어떤 행동이 징계 대상인지 밝히라고 했다. 조병범 상무는 그건 징계위원회에 들어오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해당 직원한테 소명서를 제출하라고 하면서, 대체 무슨 행동이 잘못인지 이야기 하지 않으면 어떻게 소명을 하느냐고 따졌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징계위원회 구성상 노동조합이 반대하면 중징계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징계위원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징계위원회에는 윤구병 대표이사와 사외 이사 둘, 그리고 사내 이사 한 명이 사측으로 참석했다. 그 직원의 무슨 행동이 문제냐고 물으니 대표이사에게 언어폭력을 행했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이 언어폭력이냐고 물었더니, ‘기계적 충성도 조사’ ‘쌩뚱 맞은 업무지시’ ‘강압적이다’ 이런 표현에 윤구병 대표이사가 심한 모욕을 느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다소 감정이 섞인 표현에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그게 언어폭력이라니. 평소에 입바른 소리 잘 하고, 노측 교섭위원으로 맹활약 한 그 직원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 생각에 힘을 실어준 건 사측 징계위원들의 입장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해당 직원을 정직 또는 해고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단협 위반이 아니라 ‘대표이사가 그 직원과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윤구병 대표이사가 그 직원이 싫으니 쫓아내려는 것이었다. 애시 당초 노조에서 반대하면 중징계는 불가능하다. 회사도 그것을 알고 있다. 아마 징계위원회에 회부 하는 거 자체를 징계로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중징계는 노동조합의 반대로 부결 되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정말 폭력적인 일들은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징계위원회가 끝난 다음 날, 회사는 해당 직원을 갑자기 대기발령을 내려 일을 빼앗아 갔다. 징계성 대기발령이라고 항의했지만 회사는 9월에 개편이 예정되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그 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9월에 인사 개편을 단행했다.) 그러더니 조병범 상무이사가 그 직원의 컴퓨터를 빼앗아갔다. 나는 그것을 글쓰기교육연구회 여름 연수를 가는 차 안에서 전해 들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때 그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노트북을 가져와서 쓰니 왜 회사에서 개인물품을 쓰냐고 노트북도 쓰지 못하게 했다.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일단 참자고 했다. 해고는 막았으니까. 컴퓨터를 쓰지 못하니 책을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회사에서 왜 다른 회사 책을 읽느냐고 책을 못 읽게 했다. 그러면서 보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노조의 동의 없이도 가능한 징계,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컴퓨터가 없으니 손으로 써서 냈다. 그런데 조병범 상무이사가 다시 쓰라고 했다.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들이 바라는 건 경위서가 아니라 반성문이었다. 이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일단 표현을 바꾸어서 다시 냈다. 그랬더니 또 다시 쓰란다. 이런 상황이 된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더니, 유감은 경위서에 쓰일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며 다시 쓰라 했다. 그래서 그 표현을 바꾸어서 다시 냈더니 또 다시 쓰라고 했다.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첨삭을 했다. “이러이러 해서 잘못했습니다.”라는 표현을 적으라는 것이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바라는 것은 경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반성을 바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복종을 바라고 있었다. 우리가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에게 진심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음으로는 반성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양심의 문제였다.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을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개인의 양심을 회사가 폭력으로 짓밟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득 병역거부가 떠올랐다. 병역거부를 하면서는 내 양심에 어긋나는 대답을 강요받은 적이 없었는데, 회사 다니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되다니. 쓴 웃음이 났다. 나는 절대로 회사에 복종의 뜻을 밝힐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해당 직원도 회사에 복종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결국 경위서를 다시 쓰기는 했지만 회사가 원하는 내용을 넣어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노조는 언론노조의 도움을 받아서 반성을 강요하는 경위서는 양심의 자유 침해라는 대법원 판례를 모아서 회사에 전달했다. 회사는 노조가 잘못된 예를 든다고 하며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더 이상 경위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보리에서 노사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어쨌든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화는 결국 동등한 대상끼리 하는 게 아닌가. 윤구병 대표이사가 노동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복종이라면 그는 우리를 동등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도 어쨌든 노동조합은 사측과 결국에는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조직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윤구병이 대화 자리에 나오도록 힘으로 강제해야한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꼭 윤구병 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종은, 경영진들이 가장 바라는 게 아닐까? 출판계 노사갈등을 보면, 노동조합이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회사는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정싸움으로 번지다가, 결국에는 회사가 노동조합을 길들이려고 하거나 복종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교육, 나라말이 그랬고, 보리가 그러고 있고, 그린비도 그런 쪽으로 가고 있는 거 같다. 회사가 노동자를 징계하는 까닭은 노동자가 잘못을 해서 그럴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노동자가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윤구병 대표이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진심이 담긴 충성도 아니고, 이윤을 창출하는 근면하고 성실한 노동도 아니고, 그저 복종이었다. 사실 복종만 하면 회사는 평화로워질 게 분명했다. 우리가 복종만 하면 적당한 떡고물이 주워질 거고, 복지나 임금도 오히려 더 좋아질 수도 있었다. 분회장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분회장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내 양심을 거스르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복종을 한다. 강한 권력이 두려워서 그러기도 하고, 맞서 싸우는 것이 귀찮아서기도 하고, 그냥 지금 누리는 것들이라도 지키고자 그러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복종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납득시키려면, 다른 거는 다 양보해도, 임금이니, 복지니 이런 건 다 회사에 양보해도, 복종만은 할 수 없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그것은 복종을 거부하는 것, 다시 말해 불복종이 아닐까? 기회가 되면 이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

 

* 예전에 이 일과 관련해서 인권오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에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실명을 쓰지 않았다.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id=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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