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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걱정 - 기형도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간식을 준비해주시고

방금한 따뜻한 밥 먹이겠다고 날마다 밥을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하셨다.

집에 가면 항상 엄마가 있었기때문에 나는 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집 열쇠를 가지고 다녀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날. 집에 왔는데 현관문이 잠겨있고 집에 아무도 없었다.

왠지 모르게 엄마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엄마가 집 안에서 밖으로 나가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덜컥 겁이 났다.

창고쪽으로 돌아들어가는 좁다란 통로에서 안방 창문을 기웃거리면 많이 울었다.

 

기형도의 엄마 걱정을 볼 때면 그날 생각이 자꾸 난다.

 

오랫만에 부천집에 와서 엄마를 봤다. 봤다고 하기도 민망하다.

밤새 놀다가 이른 아침에 기어들어와서 바로 쓰러져 잤으니까.

술퍼마시고 아침에 기어들어온 아들래미를 그래도 오랫만에 왔다고 반가워하신다.

며칠전에 아빠한테 전화 한 통 했었는데, 아빠가 엄마에게 아들한테 전화왔다고 자랑하셨단다.

내가 전화하면 좋아하시니 전화 자주 드리란다.

 

아 이 양반들 어째야하나. 이렇게 쉽게 기뻐하는 양반들. 

이 쉬운 것도 제대로 못하는 이 놈의 불효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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