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쓰잘데기 없고 시시껄렁한 잡담을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진다. 마치 영혼 한 뭉텅이가 수많은 말과 함께 새어나와서 몸 안에 커다란 공 모양의 구멍이 생기고 구멍이 커지고 커지고 살갗을 뚫고 나오면 가슴부터 등짝까지 휑한 구멍이 보이는 거다. 구멍 사이로 바람이 새어들어가고, 구멍 사이로 남아있는 영혼이 자꾸 흘러나오고 구멍은 자꾸만 커져가는 상상을 해본다. '도쿄'였던가 미셸공드리가 찍은 편의 여자 주인공처럼 말이다.

 

이렇게 속이 텅 비어 갈 때는 무언가 속을 채울 게 필요하다. 처음에는 좋은 책을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하다못해 술을 마시면서도 채워졌던 속이 이제는 내성이 생겼는지 무얼해도 허전하다. 구멍이 점점 더 커져만 간다.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또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의 갯수가 정해져 있다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는 1000만 단어, 누구는 100만 문장 이런 식으로. 그래서 사람이 육체의 기능이 멈출때 죽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말을 다 해버렸을 때 죽는 걸지도 모른다.

근데 사람들은 자기에게 허용된 말의 갯수를 모르고 살아간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죽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허용된 말이 남들보다 적다는 것을 모르고 남들처럼 말하다 말을 다 소비해버린 결과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이가 아주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것도 같다. 그분들은 말을 많이 아끼신다. 그 말을 다 쏟아버리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그래서 한마디를 할 때도 조심스러워야한다. 내 생명을 깎아먹으면서까지 해야할 말들만 해야한다. 실없는 농담으로 소중한 인생을 단축시켜서는 안된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써버렸다. 많은 경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면서.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면서.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보다는 더 많은 말이 나에게 허용되었다고 믿고싶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나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조금일테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