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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14
    인권활동가대회 가는 길(2)
    무화과
  2. 2008/01/29
    거품처럼 사라지다
    무화과
  3. 2006/06/16
    다음번에 태어날 때는
    무화과
  4. 2006/04/23
    메이데이에 사용할 수 있는 구호와 글귀(1)
    무화과
  5. 2006/03/28
    ...없으면 살 수 있을까?
    무화과
  6. 2006/02/28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무화과
  7. 2006/02/27
    속도로부터 도망치기(4)
    무화과
  8. 2006/01/02
    참된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가치를 가진다.(4)
    무화과
  9. 2005/12/23
    내 마음을 울려요
    무화과
  10. 2005/12/04
    김남주에 대한 기억(2)
    무화과

인권활동가대회 가는 길

탄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용인 둥지골 수련원까지 대략 60km

 

주요 코스

탄천(끝까지 따라 내려간다. 아마도 거의 끝까지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 듯)

--> 42번국도 --> 용인시청 --> 용인고속버스 터미널

--> 경안천(여기는 자전거 도로가 있을까?) -->57번 지방도로(?)

--> 죽능리 --> 용인 둥지골 수련원

 

탄천 자전거도로가 40km정도

나머지 20km 중에 경안천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산하나를 넘어야한다.

어느정도 높이의 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등고선을 봤을때는

남산보다는 높은 산같다ㅠㅠ 이 산만 넘으면 거의 끝

 

예상소요시간

서대문-->종합운동장(18km) 1시간

종합운동장--> 탄천 끝(40km) 2시간

탄천 끝--> 둥지골수련원(20km 산 넘어야 함) 넉넉잡고 2시간

 

총 5시간이면 쉬다가다 쉬다가다 할 수 있겠구나.

 

오랫만에 자전거 장거리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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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처럼 사라지다

인어공주는 거품이 되어 사라졌던가

나도 인어공주처럼 때때로 목소리를 잃게 되는데

나도 인어공주처럼 거품으로 사라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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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에 태어날 때는

돕헤드님의 [광합성을 하고 싶다] 에 관련된 글.

난 다음번에는 구름이나 바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인간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태어나지 말고

저기 어디 인간들 손길발길 닿지 않는 높은 산 중턱쯤에서

약골호도나무와 보라돌이나무를 친구삼아 잠시쉬어가는

그런 바람이나 구름이면 좋겠다.

 

인간으로는 절대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지구와 다른생명에 미안한 일인

인간으로 태어나 또 다시 나의 삶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시킬수는 없다.

 

바람이 되어서 자유롭게 하늘을 여행하고

구름이 되어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유유자적 하고 싶다.

가끔씩은 같은 구름친구들과 만나서 빗방울 되어

잠시나마 인간세상 방문해도 좋겠다

내 친구들 중에 혹시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친구들의

더운 여름날 한줄기 땀방울을 살짝 식혀주고 다시 하늘로 올라오겠다.

 

혹시나 바람이나 구름같은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

혹시나 유한한 생명을 가진 생물로 태어나야 한다면

혹시나 땅에 몸 붙이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때는 내 친구들 옆에서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이 아닌 것, 다른 생명에 최대한 피해주지 않는 것, 그런 무언가.

 

바람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하고 구름은 날더라 바람이 되라한다.

난 다음생에는 구름이나 바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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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에 사용할 수 있는 구호와 글귀

지음님의 [현재까지 진행상황] 중 제안된 구호에 관련된 글.

 

왠지 이번 메이데이는 재밌을거 같은 기대가 마구마구 든다. 무언가 재미난 일들이 일어날 듯한 좋은 예감. 기대를 마구마구 가지게 만든 지음의 노고를 치하하며,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고 느끼고 있다. 더구나 지음이 내 글 하나를 덜컥 트랙백해가기도 했으니, 나도 이미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예전에 평화수감자의 날을 준비하면서 모아두었던 좋은 글귀와 구호들을 이곳에 올려놓겠다. 아마 지음이 알아서 트랙백을 해가든, 퍼가든 하겠지...ㅋㅋ

 

 

The pioneers of a warless world are the youth that refuse military service.
You cannot simultaneously prevent and prepare for war

군대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은 전쟁이 없는 세계를 개척하는 사람들이다.
전쟁을 준비하는 것과 막는 것은 동시에 할 수 없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When the power of love overcomes the love of power, the world will know peace

사랑의 힘이 무력에 대한 사랑을 극복할 때 세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


Nonviolence means avoiding not only external physical violence but also internal violence of spirit. You not only refuse to shoot a man, but you refuse to hate him

비폭력은 단지 외부의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영혼의 내면적 폭력까지도 피하는 것이다. 사람을 쏘는 것을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까지 거부해야 한다.

-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All we are saying is give peace a chance

우리가 말하려는 바는, 평화에 기회를 주자는 것입니다.

- 존 레논(John Lennon)


War is so unjust and ugly that all who wage it must try to stifle the voice of conscience within themselves

전쟁은 그것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이 그들 자신 내에서 양심의 소리를 질식시키려고 노력해야만 할 정도로 부정의하고 추하다

-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They wrote in the old days that it is sweet and fitting to die for one's country. But in modern war, there is nothing sweet nor fitting in your dying. You will die like a dog for no good reason.

옛날에는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은 당연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 전쟁에서 당신의 죽음이 당연하고 즐거울 이유는 없다. 당신은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개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mingway)

 

만약 파괴의 기술이 점점 더 발달을 해서
언젠가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없어진다면
이 인류 멸종의 이유가 인간의 잔인성이나,
그에 대한 보복에서 나온 행동 등이 아니라
그 실제 이유는
온순하고 책임감이 결여된 현대인들이
각종 야비한 계율을 비열하게
복종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고 본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끔찍한 역사적인 경험과
또 앞으로 그보다 더 전율할만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반항하고 길들이기 힘든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순종적이고 온순한 사람들의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데 있다.

- 프랑스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죠지 버나(George Bernanos)


우리는 이 낡아빠지고 야만스러운 관습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해방하기 위해, 그리고 노예의 족쇄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해방하기 위해 힘이 닿는 한 모든 것을 해야합니다. 이를 위해 두가지 제안을드리겠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미 시도된 바 있으며 실질적인 행동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 부딪치더라도, 전쟁과 관련한 어떠한 종류의 복무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커다란 개인적 희생과 고난이 따를 지라도 세계 평화를 위해서 무엇인가 구체적인 일을 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은 전쟁과 관련한 모든 복무를 거부해야만 합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

 

-소로우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소로우

 

 

 

 

그리고 이것들은 전용철씨 홍덕표씨를 떠나보낸 후에 촛불집회와 갖가지 관련 집회 기자회견들에서 경찰들의 뻔뻔한 태도에 열받아서 경찰들을 상대로 피켓을 만드려고 준비했던 구호들... 결국 만들지는 못했지만...ㅋㅋ 이 구호들은 경찰대응팀이나 이런곳에서 준비해놔두었다가 경찰들이 폭력을 행사할 분위기에서 사용하면 좋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군인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다.

 

부당한 군사 명령을 거부하라.

 

명령을 어기는 것이 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기는 것이 죄다.

 

생각하라. 그리고 옳은 것을 행동하라.

 

명령에 대한 복종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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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살 수 있을까?

보라돌이님의 [조잘조잘] 에 관련된 글. 이라기 보다는 밑의 덧글과 관련된 글^^

 

없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상관없는 것은 무엇일까?

반대로 그것이 없다면 도통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은 무엇일까?

 

평택미군기지반대하면서 미군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쌀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절대로 맞는 말이다.

근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쌀같이 절대로 맞는 말 말고,

나한테 없으면 내가 살아낼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보라돌이에게 써준 극장, 여행, 놀이터, 오락, 만화책, 노래 등

많은 나의 취미생활들은 물론 미군기지보다야 훨씬 가치있지만

그것을 못한다면 너무나 아쉽겠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갈 것이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도 결국은 살아갈 것이고,

고기만을 먹는다고 해도 건강하지는 못할지언정 살아갈것이다.

심지어 군대에 간다고 해도 난 어쨋든 어떻게든 살아가기는 할 것이다.

 

나에게서 모든 친구들과 말벗들과 수다를 빼앗아간다면...

이건 정말이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는 갈 것이다. 한 몇 일, 어쩌면 몇 년, 뒤척이다가

결국엔 새로운 친구를 만들거가며 살아갈 것이다.

 

없으면 못사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죽을만큼 간절한 것인가?

가슴아프도록 물어본적이 없는건가. 나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든 살아는 가겠지만,

난 더 재미있게 살고 싶기 때문에

자전거, 만화책, 노래, 영화, 오락, 여행 그리고 수다가

사라지면 안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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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보라돌이님의 [완전미치겠다] 에 관련된 글.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시대가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시대.

사실 젊디 젊은 나는 삶과 죽음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죽음, 그것은 나에게는 먼 미래의 일이었고

삶과 죽음을 연관시켜 생각하기엔 나의 깊이는 턱없이 모자랐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도 대학생 열사는 없었지만

여러 노동 열사가 있었다(심지어 나와 이름이 똑같은 열사도...)

그래도 난 그들의 투쟁에는 관심이 있었을지 몰라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때도 전쟁으로 죽어갈 생명들에

사실 그다지 큰 감흥은 일지 않았다.

 

작년 두 농민의 죽음과 함께

이전의 수많았던 죽음들이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지율스님과 전태일이 생각났으며,

살려달란 김선일의 절규가 생각났다.

힘이 없어 죽어간, 죽어서도 제대로 악 한 번 못 써본

여러 영혼들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죽음이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되었다.

인간답게 죽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런데 세상은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죽음을 선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또 알게 되었다.

2005년 11월 15일 농민집회에서 소설가 조세희씨의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말처럼

정말 운이 좋아 살아남아서 우리는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운이든 아니든

살아남은 나는 사회적으로 더 강한자임에 틀림없다.

세상은 힘없는 사람들의 목숨부터 쉽사리 앗아간다.

살아남는 것이 이렇게 슬픈일일 줄이야...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한다.

죽어간 모든 영혼을 애도하면서도

인간답게 살고 인간답게 죽을 수 있어야 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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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로부터 도망치기

지음님의 [자전거와 속도] 에 관련된 글.

토리님의 [걸어다니면...] 에 관련된 글.

내가 먼저 쓰려고 했는데 지음이 써버렸다.

 

자전거를 타고 좋았던 것은 속도로부터 해방이었다.

빠르게 달리는 것들은, 이를테면 자동차들은
다른 것들을 앞질러 가려한다.
공존의 질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도로의 약자들을 짖누르는 것이다.
그럴때 이동은 과정이 생략된다.
출발지와 도착지만 있을 뿐,
그 중간은 빠른속도와 남을 이기려는 마음만이 남게된다.

자전거를 타면 이동은 여행이 된다
단순히 집에서 사무실을 가는 것도
여행이 되고 만남이 된다.
안양천변의 풀내음과 만나고
우중충해서 불쌍한 서울하늘과 만나고
아직은 늦은 겨울과 이른봄의 사이에서

쭈볏쭈볏 고개를 내미는 새순들을 만난다.

사실 자전거를 여러 사람들에게 권하면서

도심에서는 자동차보다 오히려 빠르다는 것을 강조하곤 했지만

토리의 글을 보고나서 약간의 반성이 든다.

 

물론 자전거는 더 빠르게 가기 위한 경우

매우 훌륭하고 올바른 교통수단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자전거의 참 맛을 느끼려면

속도로부터의 유혹에서 도망쳐야 한다.

남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남들과 함께 도로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

 

속도는 삶을 지배한다.

자전거를 통해서 자동차의 속도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물리적인 시간과 속도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에서 둘러볼 수 있는 여백이 생기는 것이다.

자전거가 지구를 살리는 것은 단순히 석유를 잡아먹는 자동차를

거부하기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동차로 대표될 수 있는

생활습관으로 부터 탈출할 수 있는 시작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보다 빨리 달리기 위한 자전거는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이다.

보행자와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온갖 풀과 벌레들과 함께 달리고

함께 존재하기 위한 자전거가 평화의 도구인 것이다.

 

'느리게 걷는 동안 꽃은 얼마나 자라나~' 이상은의 노랫말이 귀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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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가치를 가진다.

birdizzy님의 [바라건대 저희를 버리지 마소서.] 에 관련된 글.

난 왠일인지 지율스님이 죽을것같다.

사실 난 지난번 100일단식때도 죽을거라고 생각했다.

지율스님이 살아계시기를 바라는 내마음과는 달리

이상하게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느낌이 더 많이 든다.

 

그런데 지율스님의 생각을 내가 알 수 없지만,

왠지 스님은 죽는다는 생각을 안하시는것 같다.

어쩌면 스님의 생각이 옳은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이 괴상망측한 세상에서

생명의 법칙을 따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갯벌이 살 수 없고 천성산이 살 수 없고 도롱뇽이 살 수 없는 세상에

인간또한 살 수 없을 것이니...

 

지율스님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원래 죽음은 슬픈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은 아픈 일이지만,

죽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죽음은 어쩌면 삶의 일부일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얼룩말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것도 삶의 일부이고

사자가 햇볕에 목말라 죽어 얼룩말이 먹는 풀의 거름이 되는것도

사자의 삶의 일부일 것이다.

 

사람들의 삶과 죽음도 그러하지 싶다.

죽음이 삶의 일부가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사는 것이며,

또한 죽음과 더불어 삶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인간답게 사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인간답게 죽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그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써 삶의 일부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슬프게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땅바닥에 떨어진 요새

삶이 아닌 죽임이 횡행하고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조차도 상품으로 만들어버린 자본주의와

죽음을 부르는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사하는 국가폭력에 의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살지 못하고 인간으로 죽지 못한다.

 

아... 김남주의 시가 생각난다. 김남주는 이 예의없는 죽임에 대해서

분노하였고, 나는 인간으로써의 삶의 일부인 죽음을 지키고자한 분들앞에 숙연해진다.

 

 

  날마다 날마다                                                                -김남주 

 

  차에 깔려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흉기에 찔려 죽고
  총기에 맞아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임이다
  공부 못해 죽고 대학 못가 죽고
  취직 못해 죽고 장가 못가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아이는 단칸 셋방에 갇혀 죽고
  에미는 하늘까지 치솟는 전세값에 떨어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농부는 농가부채에 눌려 죽고
  노동자는 가스에 납에 중독되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여름이면 흙사태에 묻혀 죽고
  겨울이면 눈사태에 얼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낮에 죽고 밤에 죽고
  아침에 죽고 저녁에 죽고
  시도때도 없이 세상을 온통 죽음의 공동묘지
  이 묘지에서 고개 들고 죽음이 세계에 항거한 자는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져 죽고
  최루탄에 가슴이 터져 죽는다

 

 

더 이상 농민들이 아스팔트에서 죽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율스님이 천성산과 더불어 새만금과 더불어 우리와 이웃과 더불어

살았으면 한다. 참된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가치를 가진다.

우리에게서 죽음을 빼았지마라. 노동자에게서 농민에게서 우리에게서...

 

죽이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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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울려요

'네멋대로해라'에서 전경은 고복수가 자신의 마음을 1분 1초도 쉬지 않고 울린다고 한다.

슬램덩크에서 파김치가 된 정대만은 '처얼썩' 림을 가르는 깨끗한 포물선의 소리에 몇번이라도 다시 살아난다.

 

요즘 무리한 일정들로 몸이 말이 아니다.

월수금을 하루종일 학원에서 부대끼고, 남은 날들은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또 계속되는 강추위지만 두 농민의 죽음이 우리를 거리에 서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연말과 병역거부선언이 겹치면서 왜이리도 만나서 놀아야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타고난 건강체질이던 내 몸도 힘들다며 나에게 호소한다.

 

몸이 고되면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모든일이 짜증이 나고 기분이 나빠진다.

한마디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목빼고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힘든 상황들 속에서도 나를 몇 번이고 살아나게 하는 것들이 있다.

내 마음을 울리는 사람들의 진실된 모습.

진실된 모습은 강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의 세상살이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자기반성,

그 진실됨은 내마음을 울리고 몇 번이라도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

오태양의 마음이 그러했고, 강철민의 마음이 그러했다.

지율스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전해졌던 것이다.

 

학원에서 남는 시간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글을 보았다.

나약한 인간의 진실된 자기 반성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며 세상을 바꾼다 .

 

'주교님들의 침묵과 발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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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에 대한 기억

돕헤드님의 [나는 나의 노래가] 에 관련된 글.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었다.

원래 집 좀 산다고 잘난 척 하는 아이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내가 더 잘났는데, 부모잘만나서(자기가 노력하지 않은)

내 위에 서려는 아이들이 싫었다.

다행히도 불만은 우리 부모님에게 향해지지 않았다.

부모님이 열심히 사신다는 것을, 나에게 충분히 좋은 부모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불만은 세상으로 향했다.

가난은 세상이 만들고 대를 물려가는 것을 알았기때문이다.

 

그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듣고 안치환의

앨범을 샀다. 그 앨범에는 김남주 시인의 시로 만든 노래가 여러곡 있었다.

희망이 있다(나와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아이고, I go(날마다 날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야...

그것이 김남주 시인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당장 옥중시전집을 샀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 가면 학생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꾸는 나의 무기로 시를 가지고 싶었다.

시의 기교를 배우기 보다는 시를 쓰는 세계관을 배우고 싶어서

사학과에 갔다(사학과에서도 안배우더라만)

 

김남주와의 만남은, 하이네를 알게했고, 네루다를 만나게 했으며

브레히트를 소개시켜주었다. 그래서 한 때  나는 세계의 혁명시인

들과 함께 혁명의 감성을 키워가곤 했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그 후 병역거부운동을 하면서

나의 생각은 계속해서 변해갔지만,

그 때마다 김남주의 시는 새로운 의미로 나에게 읽히며

항상 힘이 되곤 한다.

지금도 무언가 막막하고 답답할 때는

이미 누래진 김남주의 옥중시전집 두권을 꺼내 읽곤 한다.

 

돌멩이 하나, 나의 칼 나의 피, 옛 마을을 지나며, 자유 등등 좋아하는

김남주의 시를 헤아릴 수 없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이 시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창살에 햇살이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서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그녀와 주고 받고는 했던
옛 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별을 우러러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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