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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가치를 가진다.

birdizzy님의 [바라건대 저희를 버리지 마소서.] 에 관련된 글.

난 왠일인지 지율스님이 죽을것같다.

사실 난 지난번 100일단식때도 죽을거라고 생각했다.

지율스님이 살아계시기를 바라는 내마음과는 달리

이상하게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느낌이 더 많이 든다.

 

그런데 지율스님의 생각을 내가 알 수 없지만,

왠지 스님은 죽는다는 생각을 안하시는것 같다.

어쩌면 스님의 생각이 옳은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이 괴상망측한 세상에서

생명의 법칙을 따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갯벌이 살 수 없고 천성산이 살 수 없고 도롱뇽이 살 수 없는 세상에

인간또한 살 수 없을 것이니...

 

지율스님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원래 죽음은 슬픈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은 아픈 일이지만,

죽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죽음은 어쩌면 삶의 일부일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얼룩말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것도 삶의 일부이고

사자가 햇볕에 목말라 죽어 얼룩말이 먹는 풀의 거름이 되는것도

사자의 삶의 일부일 것이다.

 

사람들의 삶과 죽음도 그러하지 싶다.

죽음이 삶의 일부가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사는 것이며,

또한 죽음과 더불어 삶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인간답게 사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인간답게 죽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그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써 삶의 일부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슬프게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땅바닥에 떨어진 요새

삶이 아닌 죽임이 횡행하고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조차도 상품으로 만들어버린 자본주의와

죽음을 부르는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사하는 국가폭력에 의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살지 못하고 인간으로 죽지 못한다.

 

아... 김남주의 시가 생각난다. 김남주는 이 예의없는 죽임에 대해서

분노하였고, 나는 인간으로써의 삶의 일부인 죽음을 지키고자한 분들앞에 숙연해진다.

 

 

  날마다 날마다                                                                -김남주 

 

  차에 깔려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흉기에 찔려 죽고
  총기에 맞아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임이다
  공부 못해 죽고 대학 못가 죽고
  취직 못해 죽고 장가 못가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아이는 단칸 셋방에 갇혀 죽고
  에미는 하늘까지 치솟는 전세값에 떨어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농부는 농가부채에 눌려 죽고
  노동자는 가스에 납에 중독되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여름이면 흙사태에 묻혀 죽고
  겨울이면 눈사태에 얼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낮에 죽고 밤에 죽고
  아침에 죽고 저녁에 죽고
  시도때도 없이 세상을 온통 죽음의 공동묘지
  이 묘지에서 고개 들고 죽음이 세계에 항거한 자는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져 죽고
  최루탄에 가슴이 터져 죽는다

 

 

더 이상 농민들이 아스팔트에서 죽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율스님이 천성산과 더불어 새만금과 더불어 우리와 이웃과 더불어

살았으면 한다. 참된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가치를 가진다.

우리에게서 죽음을 빼았지마라. 노동자에게서 농민에게서 우리에게서...

 

죽이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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