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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 세 번의 합의(2007.5.17, 2013.8.26, 2014.7.15)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재능교육 세 번의 합의(2007.5.17, 2013.8.26, 2014.7.15)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강종숙, 박경선, 유명자

 

들어가며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이 2,500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나긴 시간만큼이나 이 투쟁을 둘러싸고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리고 이른바 "노노갈등"에 의해 운동진영에서 논쟁과 대립이 이어져 오고 있다. 한편 그 와중에 두 차례의 단체협약 체결과 한 차례의 합의가 있었다. 어지간한 투쟁도 한 차례의 합의면 족한데 재능교육지부 투쟁은 이처럼 여러 번의 합의를 거치고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따라서 이 글은 재능교육지부 투쟁에 함께한 동지들과 이 투쟁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동지들에게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씌어졌다. ‘민주’노조 집행부가 두 차례의 단체협약 체결과 한 차례의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이 투쟁의 원인이 되거나 투쟁의 마무리가 전혀 아닌 지금, 우리는 지난 7년 동안 있었던 세 차례의 합의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그 교훈으로부터 어떤 선택과 실천을 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07년 단체협약 체결

2007년 5월 17일,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기나긴 재능교육지부 투쟁의 원인이 된 2007년 단체협약 체결이 있었다. 사측의 단체교섭 해태나 일방적인 단체협약 파기가 아니라 오히려 단체협약 체결이 투쟁의 원인인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것도 ‘민주’노조 집행부가 합의를 했는데 그러하다. 이유는 하나. 바로 노동조합이 조합원들과 현장 교사들의 이해에 반하는 내용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토록 자명한 사실을 민주노조라고 주장하는 당시 집행부와 서비스연맹, 노동운동 단체, 이른바 활동가들 중 일부가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데 있다. 이들은 이전에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민주노조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는 데에 있어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고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지난 세 차례 합의의 문제의 핵심이다.

그럼 이제 다시 2007년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학습지노조는 2006년 1월 학습지업계 1위 기업 (주)대교를 상대로 당시 부당하게 해고된 대교지부장의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본사 정문을 틀어막고 처음으로 천막농성을 전개했다. 301일의 농성투쟁으로 역시 처음으로 해고자를 원직복직시키는 승리를 쟁취했다. 여세를 몰아 부정영업 강요에 의한 스트레스로 돌연사한 교사와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몬학습을 상대로 투쟁을 전개했다. 2년 넘게 해결이 안 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두 문제가 대교지부 투쟁 승리의 영향으로 결국 한꺼번에 해결됐다.

한편 학습지노조와 통합을 하기 전이었던 재능교육교사 노동조합은 단체협약 갱신체결을 위해 재능교육 사측을 상대로 교섭을 진행하고 있었다. 2006년 9월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시한을 넘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6년 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과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은 통합을 했고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은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가 됐다. 그 즈음 학습지노조 선거가 있었고 당시 재능교육지부장이었던 이현숙이 학습지노조 위원장에 당선되어 겸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과 재능교육 사측과의 싸움이 당연히 학습지노조와 재능교육의 싸움으로 확대되어야 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단체협약 체결 투쟁은 여전히 재능교육지부와 재능교육 사측의 줄다리기 양상으로 진행이 됐고 학습지노조 산하 다른 지부는 중앙위원회에 보고되는 교섭상황을 접할 뿐이었다.

단체협약 체결 시한을 반 년 이상 넘긴 2007년 4월, 재능교육 전체 교사들의 임금이 삭감되는 제도가 포함된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이 도출됐다. 심각한 출산율 저하와 IMF사태 등으로 이윤에 타격을 받고 있던 학습지자본 모두가 2000년대 초반 이후 회비인상을 할 수 없게 되자 학습지교사들의 임금을 공격하기 위해 도입하려 시도했던 제도보다 훨씬 더 심각한 내용의 제도를 노동조합이 그것도 ‘민주’노조 집행부가 합의를 해준 것이었다.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중요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재능교육을 압박하는 총력투쟁이 논의되고 있던 때에 정말 급작스럽게, 그것도 ‘민주’노조 집행부가 "교사들에게 더 유리한 제도"라고 거짓 주장을 늘어놓던 회사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면서 학습지노조 중앙위에서 잠정합의안 승인을 밀어붙였다. 잠정합의안 승인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재능교육지부 조합원들에게 잠정합의한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기도 전에 찬반투표에 들어갔고, 투표과정에서 대리투표가 자행되고 노골적인 협박을 일삼으며 찬성을 강요하는 등 부정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억지 가결을 시켰다. 가결 후에도 내용이 너무 심각한 제도라 학습지노조 일부 간부들과 재능교육지부 조합원들이 필사적으로 반대했고 현장교사들 역시 재고를 읍소했지만 모두 무시한 채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렇듯 재능교육 교사 대부분의 임금이 삭감되는 임금제도가 포함된 단체협약을 체결한 당시 집행부의 행태에 대해 서비스연맹 등 이른바 “공조직“은 오히려 지지하거나 묵인하고 방조했다. 특히 단체협약 체결 한 달 후 첫 월급이 나오면서 현장 교사들 대부분이 심각할 정도의 대폭적인 임금삭감을 당한 것이 현실화 되었는데도 ”공조직“과 당시 학습지노조 집행부는 "제도를 한 달 시행해 보고 평가하는 것은 속단"이라고 주장하는 사측과 똑같은 태도를 취하면서 제대로 된 투쟁을 전혀 벌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2007년 12월 21일, “공조직”의 지원 없이 당시 학습지노조 간부 일부와 조합원들, 재능교육지부 신임 유명자 집행부와 조합원들, 연대 동지들을 주축으로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 거리농성에 돌입했다. 거리농성 돌입 8일 만에 당시 학습지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지역본부장, 지부장 등 중앙위원, 학습지노조 간부들 대부분이 사퇴하여 강종숙이 학습지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선출되었지만 학습지노조 강종숙 집행부와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집행부는 “공조직”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이렇듯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은 시작부터 “공조직”의 입장과 "조직질서"를 거스른 투쟁이었고, 투쟁기간에도 학습지노조의 투쟁요구와 충돌하는 “공조직”의 요구나 양보안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투쟁기간 내내 수많은 난관에 부딪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노동조합이 다른 학습지회사들조차 현장 교사들의 반발이 무서워서 감히 도입하지 못했던 제도보다 더 악랄한 제도에 합의를 해주고 이른바 “공조직”들은 이를 묵인, 방조, 지지하는 작태가 이미 2007년부터 벌어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정신과 정확하게 배치되는 이러한 작태는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 내내 안팎에서 되풀이되면서 투쟁동력을 갉아먹었고 결과적으로 재능교육 사측과 싸워야 할 역량을 소진시켰다.

2013년 ‘8.26합의’

다음으로 2013년 8월 26일, “202일간의 종탑농성”을 마무리하는 노사 합의가 있었다. 당시 합의를 한 세력들은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하고 해고자를 전원복직 시키는 승리를 쟁취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요구가 완전히 관철된 것이기에 당연히 투쟁이 마무리되어야 했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8.26합의’는 한 마디로 기만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어설픈 사기극이자 철저하게 배신적인 타협의 산물이었다.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의 투쟁요구인 ‘단체협약 원상회복’이 완전히 빠졌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단지 합의서에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한다”라는 한 줄이 채 안 되는 문구를 얻으려고 2,000일 넘게 싸운 것이 아니다. 현장에 복귀해 노동조합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라도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는 진짜 단체협약이 있어야 했기에 끔찍한 탄압을 무릅쓰고 싸웠다. 그런데 이러한 단체협약이 완전히 배제된 '8.26합의'는 지난 투쟁에 대한 철저한 배신에 다름 아니었다.

'원상회복'의 의미는 말 그대로 해석이나 별도 논의가 필요 없는 단체협약의 전면, 자동, 즉시 적용이다. 그런데 ‘8.26합의’에서의 “단체협약 원상회복”은 단 하나의 조항도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오히려 단체협약 내용 중에서도 노동조합의 핵심요구 사항인 월회비정산제도와 (-)월 순증수수료제도 즉각 폐지, 휴가비 즉각 지급은 단체협약 원상회복과 별도로 합의서 내용에 포함시켜 “3개월 이내에 개선”, “복귀 후 우선 논의”라고 명시함으로써 단체협약이 원상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줬다.

"현장을 재건하고 조직하는 투쟁"은 결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재능교육 교사들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해야 가능한 것이다. 노동조합으로 단결했을 때 나의 권익이 보장되고 일하는 조건이 나아진다는 믿음이 필수적이다. 특히 재능교육 교사들은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되고, 단체협약이 하루아침에 파기되고, 휴가비 지급여부와 수수료제도개악을 회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바로 2007년 단체협약 체결로 인해 임금삭감 폭탄을 맞았던 현장 교사들이 “단체협약 원상회복”의 실상을 가장 잘 알 수밖에 없기에 현장에 적용되는 단체협약 조항이 전혀 없고, 거기에 더해 핵심요구사항은 당장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별도로 명기해 주고도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을 원상회복 하였고 투쟁을 승리했다”라고 주장했을 때 그 기만적인 실상이 드러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사들에게 임금삭감 폭탄을 ‘선사’하는 노동조합, 전혀 적용도 되지 않는데 단체협약이 원상회복되었다고 강변하는 노동조합, 단체협약의 핵심내용을 다 내주는 노동조합의 실상을 모를 교사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2007년에 이어 또다시 현장 교사들의 바람을 외면한다면 노동조합은 더 이상 현장에 발을 붙일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합의 당사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결과 "현장을 재건하고 조직하는 투쟁"을 하겠다며 투쟁을 마무리한 자들의 주관적 의지와 달리 객관적 현실에서는 지금까지도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수의 증가는 물론 현장을 재건하고 조직하는데 있어 전혀 유의미한 변화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는 이미 2007년 당시 이현숙 집행부의 반노동자적 행태를 통해 이를 뼈저리게 체험한 바 있다. 노동조합이 결코 체결해서는 안 되는 내용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후 단체협약에 포함되어 있는 개악된 임금제도를 개정하기 위해 함께 싸우자고 현장 지국으로 교사들을 찾아갔을 때 "노동조합이 체결해 놓고 이제 와서 뭐 하는 짓이냐?"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 임금제도 도입으로 재능교육 교사의 25%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만 둔 교사 가운데 조합원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이처럼 현장에서 외면 받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한 합의를 두고 종탑세력들은 "현장에서 힘을 갖는 노동조합의 재건"을 통해 2013년 12월 31일까지 단체협약을 갱신체결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마저도 합의서에 "2013.12.31.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할 경우, 합의된 조항으로 단체협약을 우선 체결하고, 미합의 조항에 대해서는 이후 교섭을 통해 보충협약을 체결한다."라고 하는 최악의 합의를 했다. 모든 노사교섭은 언제, 어떠한 경우라도 핵심조항 때문에 최종타결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기에 단 석 달의 시한 내에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한다면 핵심조항들은 모조리 빠진 채 노사가 서로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기타 조항’들만 포함된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하게 된다는 것은 그 동안 단 한 차례도 2년의 시한 내에 단체협약을 갱신체결하지 않았던 재능교육의 행태로 보아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 상황이었다.

미합의 조항에 대해서 이후 교섭을 통해 보충협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더 말 할 나위도 없었다. 껍데기만 앙상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후 핵심조항들을 놓고 교섭만 진행하면 어쨌든 회사가 이번 합의를 지킨 것이라고 인정하여 준 꼴이기 때문에 회사는 시간만 질질 끌면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단체협약 제83조(보충협약)에 명시되어 있듯이 "보충협약의 유효기간은 이 협약이 실효될 때까지"이기 때문에 회사는 시간을 끌기 위해 사활을 걸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결국 ‘8.26’합의는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한다”라는 공문구 한 줄과 2억 2천만 원에 2,000여일의 투쟁을 팔아먹은 사기극이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투쟁사업장 노동조합이 양보안을 수용하지 않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면 전면적인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양보하면서 투쟁을 정리한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었다. 또한 절박한 상황에서 선택하는 고공농성까지 사측이 아니라 내부와 싸우기 위해 동원하면서 최악의 배신적인 타협을 했다는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조직”은 예전과 다름없이 ‘8.26’합의를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지지했다. 나아가 5년여의 투쟁기간 동안 직간접적으로 함께 투쟁했던 상당수의 투쟁사업장과 정치조직들마저 ‘8.26합의’를 지지하거나 묵인하고 방조했다.

2007년 단체협약 체결 당시에는 연대 단위는 고사하고 재능교육지부 외의 학습지노조 산하 타 지부조차 객체였던 상황이었지만, 2007년 12월 시작한 2,000여일의 농성투쟁은 사회적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이러한 입장과 태도는 민주노조 운동의 후퇴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비단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후퇴 안에 반대해서 계속 농성투쟁을 전개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거의 초유의 일이었다. 더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2014년 단체협약 체결

마지막으로 2014년 7월 15일, “단체협약 체결”이 있었다. 이를 두고 자칭 ‘민주노조 집행부’는 “특수고용노동자 유일의 단체협약을 갱신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번에도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2014년 재능교육지부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은 도대체 학습지노조 전체가 무엇 때문에 6년 넘게 재능교육을 상대로 투쟁을 전개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 일색이다. 실상이 이러한대도 종탑세력들은 “특수고용노동자 최초이며 유일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 ‘8.26합의’ 당시와 똑같다.

하지만 실상은 종탑세력들이 설명회에서 "사측이 요구한 내용에 대해 수용하지 않을 근거가 없었다.", "타 회사에 없는 제도라 기존 단체협약의 내용을 유지할 명분이 없었다."라고 하거나 재능교육 노무팀이 지껄이는 말과 동일한 주장을 하면서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처럼 2014년 단체협약은 무늬만 단체협약이고 핵심내용은 모조리 삭제되거나 후퇴했다.

심지어 원상회복되어 현재 시행되고 있다고 강변하던 2007년 단체협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회사와 체결한 실제 2007년 단체협약이 아닌 엉뚱한 자료를 바탕으로 교섭을 진행하기까지 했다. 실상이 이러하니 나아진 조항이 단 하나도 없다.

학습지노조 위원장의 체결권과 교섭위원 임면권을 아예 삭제하여 규약과 충돌하는 조항이 있는가 하면, 핵심요구사항 중 하나인 임금제도는 아예 통째로 사측에 위임하고 (-)월 순증수수료제도 즉각 폐지는 1년 후로 연기하는 데에 합의했다.

노동조합이 현장사무실 선전활동을 하려면 사측과 사전에 합의를 해야만 가능하고, 신입교사에 대한 노동조합 소개시간과 사무실 내에 노동조합 게시판을 설치할 수 있게 했던 조항은 삭제됐다. 노동조합 전임자가 줄었고 전임자 임금은 삭감됐다. 회사가 노동조합 사무실, 집기, 비품, 전화회선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도 사라졌다.

2008년 사측이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 시행해 오던 '사업관리규정'(일반적인 사업장의 취업규칙에 해당)은 그대로 수용하거나 오히려 그것보다 더 후퇴한 내용으로 합의했다. 이는 재능교육지부 단체협약 제3조(협약의 적용범위) "본 협약의 적용범위는 회사, 조합, 및 모든 조합원에게 적용된다. 단, 일하는 조건은 비조합원에게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을 무색하게 하는 것으로 2007년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현장 교사들의 임금과 일하는 조건을 후퇴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시행중이던 회사의 취업규칙보다 못한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막론하고 현장 교사들의 임금과 일하는 조건을 후퇴시키는 것을 노동조합이 합의해 준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기근속자에 대한 포상이 2007년 단체협약에는 6단계에 걸쳐 시행되었는데 이번에 7년, 12년, 15년 근무한 교사들에 대한 포상을 삭제하면서 절반인 3단계(3년, 5년, 9년)로 축소됐다. 2007년 단체협약과 사업관리규정에도 있었던 업무일시정지 사유 가운데 육아가 사라졌다. 회원 관리 중 부상으로 휴직 시 생계비를 보조 받던 조항과 교사 상해로 인해 그만둔 회원들에 대한 책임을 교사가 떠안지 않아도 되는 기준은 불리하게 바뀌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계약해지 사유는 더 많아졌다.

노동조합이 현장투쟁을 벌여나가는데 있어 핵심적인 요구 중 하나인 휴가비 지급은 ‘8.26합의서’에도 “복귀 후 우선 논의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는 단 2개의 조항 가운데 하나였고, 재능교육 대표이사가 전국을 돌며 현장교사들과의 면담을 진행했을 때 교사들의 최우선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하지만 6개월 이상 근무한 교사는 15만원, 6개월 미만 근무한 교사는 7만원의 현금이 지급되었던 휴가비가 5만원 상당의 상품권지급으로 대폭 삭감됐다.

학습지교사들에게는 근로계약서와 동일한 위탁계약서가 있다. 계약해지사유, 임금제도 등이 위탁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 재능교육 사측은 교섭 때마다 "위탁계약서는 조합과 합의하여 만든다."라는 조항 중 합의부분의 변경을 요구했다. 이 부분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은 참으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동료의 목숨까지 바쳐야 했다. 그런데 이 조항마저 "위탁사업계약서는 단체협약에 준하여 만든다."라고 개악됐다.

종탑세력은 핵심조항이 합의가 안 돼 작년 12월 31일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작년 12월 28일 교섭이 중단되었다가 올해 5월 23일 교섭이 재개된 이후 무언가에 쫓기듯이 채 한 달도 안 된 6월 20일 달랑 여섯 번의 교섭으로 핵심조항들에 합의했다. 2007년 단체협약 체결 당시 보았던 모습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또 종탑세력들은 "노동조합의 힘이 없어 양보가 불가피했다."라고 하지만 '8.26합의' 당시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했다고 주장할 때보다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수는 오히려 더 많았다. 종탑세력들은 포기했지만 여전히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하는 조합원들과 연대동지들이 있었다.

그러나 종탑세력들에게 투쟁하는 조합원과 연대 동지들은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었다. 종탑에 있을 때부터 강종숙, 박경선, 유명자와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승리를 위한 지원대책위’의 투쟁을 앞장서 막아 나서고 방해했던 것처럼 종탑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재능교육을 상대로 어떠한 투쟁도 전개하지 않았던 종탑세력들은 투쟁을 막아 나서고 방해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미 작년 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윤희찬을 사주하여 형사고발에 나서고, 민주노총 규율위원회와 서비스연맹에 제소하고, 강종숙, 박경선, 유명자를 제명했다.

이러한 짓을 자행하면서나 자행한 이후에도 종탑세력들은 ‘8.26합의’ 당시처럼 거짓말을 동원할 필요조차 없어졌다. 그들에겐 이미 이러한 상황마저 지지하거나 묵인하고 방조하는 “공조직”과 일부 투쟁사업장, 정치조직이라는 ‘든든한’ 아군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이제 단지 민주노조 운동의 후퇴를 넘어 정치조직들의 퇴행도 일반화되어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평소에는 한 다발의 원칙을 암송하며 투쟁을 외치다가도 결정적인 시기가 닥쳤을 때 노조관료들이 후퇴하면 애써 모른척하거나 아예 투쟁기간 내내 시류에 따라 무원칙한 갈 지(之)자 행보를 보이는 등 정치조직마저 이제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상황이 고착화된 것이다.

나가며

그렇다면 이대로 끝인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지난 시기 민주노조를 목숨 바쳐 지키며 걸어온 길이 바로 답이다. “공조직”의 일방적인 지시나 “조직질서”에 굴종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에 입각해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정신의 ‘새로운’ 싹은 이미 돋아났거나 이제 막 생겨나고 있다.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스타케미컬 해복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모두 “공조직”의 일방적인 지시나 “조직질서”에 굴종하지 않고 투쟁하고 있고 투쟁에 나서고 있다. “공조직”의 일방적인 지시나 “조직질서”는 민주노조운동 정신과 전혀 무관하다. 반대로 민주노조운동 정신을 해치는 독약이다.

‘민주'노조에 의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이른바 쪽수에 밀렸다는 이유로 왕따 당하고 있지만,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는 단 2명의 조합원으로 600일 넘게 꿋꿋하게 투쟁하고 있다. 8명의 조합원 가운데 6명이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회사로 복귀했는데 오히려 노동조합을 지키면서 투쟁하는 분회와 조합원들을 사측은 물론 민주노조와 “공조직”이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을 지지하는 연대단위가 함께 하고 있다.

스타케미컬 해복투 차광호 동지는 100여일이 훌쩍 넘어가버린 지금도 45미터 공장굴뚝에 올라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지만 “공조직”은 공장을 분할매각하기 위해 조합원들을 해고한 자본과 굳게 손잡고 있는 ‘지회’편이다. 하지만 지난 8월 23일 희망버스 투쟁에 함께했던 동지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던 목소리는 분명 정반대의 입장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0년 투쟁을 단 며칠 만에 말아먹은 현대자동차의 ‘민주'노조에 맞서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8/18 쓰레기합의에 대한 불복종 투쟁을 선언하고 힘차게 투쟁하고 있다. “공조직”의 일방적인 지시나 “조직질서”에 맞서 투쟁을 결의한 것이다.

그리고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과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스타케미컬 해복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는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으면서 반드시 승리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권의 극악한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의해 민주노조가 깨지고 조합원들이 공장 밖으로 밀려났던 유성기업지회와 KEC지회는 다시 현장을 되찾아오기 위한 투쟁을 쉼 없이 전개하는 와중에도 모범적인 연대투쟁을 전개하며 민주노조운동 정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이들 지회 역시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과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스타케미컬 해복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투쟁을 적극 지지하며 함께 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 이들 투쟁에 대해 상반된 입장과 태도를 견지하며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세력들이 있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모순이지만 결국 투쟁과정에서 그 본질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과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스타케미컬 해복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유성기업지회, KEC지회, 그리고 이들 투쟁에 “공조직”과 무관하게, 형식적인 ‘민주'노조에 현혹되지 않고 함께하는 동지들의 투쟁에 의해 그렇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민주노조운동정신의 ‘새로운’ 싹이 커다란 나무가 되고 결국 숲이 될 수 있도록 투쟁해 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민주노조운동을 해치는 독약이 되어버린 “공조직”과 “조직질서”를 외쳐대는 세력에 맞서 싸우는 것을 주저하거나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것이 2,500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2007년 단체협약 체결, 2013년 '8.26합의', 2014년 단체협약 체결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 일이 될 것이다.

아직 진행형이지만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투쟁으로부터 얻은 교훈이, 유성기업지회와 KEC지회 투쟁이 나아가고 있는 길이, 그리고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스타케미컬 해복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이 민주노조운동 정신을 복원하는 밑바탕이 되고 이로부터 새로운 싹들이 쑥쑥 커 나가는 그런 국면전환을 반드시 이루어내기 위해 분투하자! 민주노조운동의 복원을 통해 세상을 갈아엎는 투쟁으로 더욱 힘차게 나아가자! 투쟁!!

 

2014.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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