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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 평가서(2)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 평가서(2)

 

3. 종탑 이전 : 재능교육 자본과 이현숙 어용 집행부에 맞선 투쟁

 농성투쟁 초기에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는 재능교육 자본의 탄압, 잘못된 단체협약 체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할 때에는 악착같이 8개월을 버티더니(각주4) 농성투쟁에 돌입하자 1주일 만에 총사퇴하며 투쟁에 완전히 등을 돌린 이현숙 일파, 단체협약이 이미 체결된 상태에서 수세적으로 임금제도 개정에 관한 보충협약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객관적 조건 등 모든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투쟁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단체협약 체결 직후 현장의 반발을 ‘대변’하며 투쟁에 돌입했지만 현격한 힘의 열세로 현장교사들에게 임금제도 개선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하면서 투쟁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었다.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한 조합원조차 자신이 속한 지국에서마저 현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자본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투쟁을 벌여나갈 수 없었다. 조합원의 힘을 바탕으로 한 선제공격은커녕 방어에만 급급했다. 여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임금삭감에 내몰리게 된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이 불과 반 년 사이에 대거 재능교육을 그만둬버린 현장상황과 이현숙 집행부가 임금제도 개악에 합의를 해 준 것이 노동조합의 원죄로 작용하며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 사이에서 운신의 폭이 상당부분 제약된 것도 한몫했다.

 그 결과 농성투쟁에 돌입하고 바로 이른바 ‘장기투쟁사업장’의 양상이 나타났다. 즉 형식은 노동조합투쟁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조합원들의 능동적인 참여도 없고, 현장에서 분리된 소수의 간부와 해고자들만의 고립된 투쟁으로 전개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쟁이 점점 장기화되고 내부동력은 눈에 띄게 고갈되어가면서 분열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서비스연맹은 이러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현숙 집행부의 2007년 단체협약 체결을 지지한 서비스연맹은 이현숙 집행부를 끌어내리고 새롭게 선출된 학습지노조 지도부를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 했다. 재능교육 투쟁 ‘지원대책위’나 ‘공대위’를 “임의단체” 운운하며 재능교육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않았고, 학습지노조에 끊임없이 양보안을 강요하다 여의치 않으면 학습지노조 내부의 분열을 획책하며 투쟁의 발목을 잡았다.

 그 결과 재능교육 투쟁은 노동조합 체계 속에서 지원을 받으며 그 힘을 바탕으로 하는 투쟁이 아니라 민주노총 소속의 개별적인 조합원, 학생, 개인, 정치조직 성원 일부가 함께하는 형태로, 노동조합 조직질서와 ‘독자적’인 형태로 투쟁이 전개되었다.

 

 한편 재능교육 자본의 공격과 이현숙 일파의 反노동자적인 단체협약 체결에 맞서 투쟁에 나선 두 세력은 노동조합과 그 투쟁에 대한 정치적・조직적 견해가 상당히 달랐다. 거칠게 표현하면 서로 상대방에 대한 커다란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채 오로지 反이현숙 집행부라는 공통분모 아래, 한시적으로 함께 투쟁에 돌입한 형국이었다.

 그래서 투쟁 초기부터 투쟁전술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이견이 존재했다. 물론 이러한 논쟁은 투쟁이 전진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인 지점에서 도저히 합치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커다란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각주5)

 그나마 투쟁 초기에는 재능교육 사측이 이현숙 일파를 위시한 어용세력의 투쟁 사보타주와 개악된 단체협약이라는 ‘무기’를 십분 활용하며 어떠한 타협의 여지도 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밀어붙인 바람에 노동조합 내부에서 엇박자가 나올 여지가 별로 없었다.(각주6)

 그러나 언제까지 이와 같은 상황이 이어질 수는 없었다. 내부 분열이 수습 불가능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종탑‘농성’ 돌입 훨씬 이전인 2010년 말 이현숙 일파의 복귀와 때를 같이 했다. 이때부터 유득규, 오수영, 여민희, 황창훈 등은 이현숙 일파에 조금씩 동조하며 서비스연맹까지 끌어들여 이른바 ‘종탑파’ 결성의 단초를 차곡차곡 마련하고 있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요구안을 양보하지 않으면 절대 투쟁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의식, 투쟁요구안의 쟁취 여부와 무관하게 빨리 투쟁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구, 투쟁기간 내내 양보안을 강요하며 정권과 자본의 ‘중개인’ 노릇을 했던 서비스연맹 등 어용세력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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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4) 이현숙 집행부는 임금삭감제도에 합의한 잘못, 현장의 요구에 의해 시작된 임금제도 전면개정 투쟁 해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과정에서 있었던 대리투표 발각 등으로 이미 불신임당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회의를 거쳐 자진사퇴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며칠 만에 이를 번복하고 계속해서 투쟁의 발목을 잡았다. 이로 인해 재능교육을 상대로 임금제도 전면개정을 요구하며 투쟁동력을 집중하는 것과 동시에 시급하게 현장을 조직해야 할 투쟁초기의 결정적인 국면에서, 이현숙 일파를 상대로 한 싸움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투쟁동력은 분산됐고 금쪽같은 시간마저 허비해야 했다.

각주5) 일례로 기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에 중점을 두면서 '양보'를 상수로 두는 것과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비타협적인 투쟁'에 방점을 찍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각주6) 당시에 투쟁에 전면적으로 결합하지 않는 해고자가 다수였고, 투쟁에 결합하고 있어도 투쟁전술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실제 농성투쟁에도 아르바이트처럼 결합하는 해고자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까닭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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