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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노조 재능교육 투쟁 평가서(3)

학습지노조 재능 투쟁 평가서(3)

 

4. 종탑 이후 : 재능교육 자본과 이른바 종탑어용세력에 맞선 투쟁

 이제 판 갈이가 필요했다. ‘종탑파’ 해고자들도 간절히 원했지만, 서비스연맹과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 세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회주의 세력들은, 딴에는 ‘신의 한 수’로써 종탑‘농성’을 기획하고 이를 판 갈이의 시나리오로 삼아 실행하도록 적극적으로 종탑어용세력을 부추겼다.

 결국 비정규직 최장기투쟁을 코앞에 두고 있던 2013년 2월, 투쟁요구안을 양보하지 않는 조합원과 연대동지들에 맞서기 위해 고공‘농성’을 선택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종탑어용세력 시나리오의 핵심은 겉으로는 강경한 투쟁을 배치하고 속으로는 다시 2007년과 마찬가지로 그럴 듯해 보이는 “성과”와 “명분”을 만들어 투쟁을 서둘러 마무리하는 데 있었다.(각주7)

 

 하지만 환구단에 남아 투쟁하는 조합원들의 완강한 저항과 정치적 반격으로 종탑‘농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용세력들의 자충수가 되어버렸다. 이제 칼자루를 쥐게 된 재능교육 사측은 종탑어용세력에게 완전한 항복을 요구했다.

 수세에 몰린 종탑어용세력은 재능교육을 상대로 투쟁하는 대신 교묘하게 유언비어를 조작하여 ‘환구단파’를 고립시키는데 몰두했고, 동시에 서비스연맹 내의 어용관료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재능교육 자본으로부터 ‘정당한’ 합의주체임을 인정받으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자 종탑어용세력은 마침내 형사고발, 민사소송제기, 제명 등을 통해 투쟁을 압살하는 것과 동시에 재능교육 자본에게 명확한 신호를 보냈다.

 

 재능교육 투쟁이 이러한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정말 두드러진 것은 민주노조운동과 정치조직들의 실상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의 태동은 곧 기존 ‘질서’ 그리고 어용세력을 넘어서기 위한 싸움으로부터 비롯했다. 국가노조, 어용 집단인 대한노총, 한국노총을 넘어서지 않고는 ‘평범한’ 노동조합 결성조차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되게 등장한 것이 “자주성”, “노동조합 민주주의”였는데, 이는 단지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 혹은 다수결만을 의미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노동자계급의 경제・사회・정치적 요구를 대변하며 자본과 어용세력에 맞서 싸우는 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내용을 집약하여 표현한 것이었다. 권력과 자본, 어용세력으로부터의 자주성 쟁취, 노동자들의 권익을 거스르는 형식상의 의결 –그것이 설령 다수결일지라도-을 거부하고 실질적・내용적인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이를 억압하는 관련 법률과 규약・회의결정 따위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투쟁으로 돌파해냈다.(각주8)

 그런데 노동운동이 퇴조를 거듭하면서 어느새 본질적 내용은 저만치 밀려났다. 대신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를 오용하며 자신들의 권익을 우선하는 어용세력이 민주노조운동 진영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나갔고, 대한노총, 한국노총의 망령이 부활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의 기본과 원칙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온갖 양보와 타협, 후퇴가 물밀 듯이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용세력은 조직적・체계적으로 든든한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재능교육 투쟁의 또 한편에서는 정치조직들의 실상이 어떠한지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그리 많은 시간과 사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거나 노동조합에 작은 기반이라도 있는 정치조직들 역시 계급투쟁의 기본과 원칙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들 조직의 이해득실과 조직 성원들의 ‘여론’에 따라 움직이며 그 종파성을 가감 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입만 열면 혁명, 계급, 원칙을 들먹이던 조직들이 노골적으로 종탑어용세력 편에 서거나 암묵적으로 그들을 지지하거나 양비론을 펴거나 침묵하면서 결과적으로 종탑어용세력이 재능교육 투쟁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단지 재능교육 투쟁 같은 소규모・장기투쟁사업장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쌍용자동차지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 정치조직들이 개입한 굵직한 투쟁사업장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났다는 데 있다.

 

 재능교육 투쟁에서 또 하나 특기할만한 것은 노동자 투쟁의 주변부를 배회하며 술이나 얻어먹으며 분란을 일삼던 자들이 ‘세력화’해서 종탑어용세력을 앞장서서 비호하며 전면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쇠락한 노동운동의 현실 그리고 SNS를 포함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활동에 더해 정치조직들의 타락과 무능은 그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새롭게’ 전면에 등장한 이들은 처음부터 정확하게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며 용역깡패만큼이나 추악한 짓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질렀다. 종탑어용세력은 배후에서 저급한 거짓정보를 제공하며 이들을 사주한 것과 동시에 ‘아니면 말고’ 식의 참주선동을 일삼았다.

 정치조직이나 민주노조진영은 종탑어용세력의 이러한 반동적 행태를 제지하거나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이런 자들에게조차 모욕을 당할 정도로 무능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더욱 적극적・공세적으로 나아갔고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를 우롱하고 민주노총 회계감사직까지 악용하며 형사고발을 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이들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비스연맹은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제명”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하지만 종탑어용세력의 이러한 반동적 행태와 사상 초유의 상황전개에도 불구하고 이를 뛰어넘으며 끝까지 투쟁한 노동자들이 있었고,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본을 지키며 그들과 함께한 연대동지들의 힘으로 결국 작은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종탑어용세력이 학습지노조의 ‘적자’ 행세를 하며 ‘8.26합의’를 하고, “단체협약 체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종탑어용세력의 “제명” 조치와 서비스연맹을 필두로 한 어용 노조관료들의 온갖 방해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박경선, 유명자 동지의 원직복직과 단체협약 내용의 진전을 이루어내는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각주9)

 이 작은 승리를 통해 우리는 아직 민주노조운동이 완전하게 절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어용세력에 대한 반격을 조직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냈다. 또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아니 바로 그럴수록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본을 지킬 때만이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관료화된 노동조합 체계와 질서에 짓눌려 대다수가 침묵하거나 ‘중립’을 취하거나 어용 편에 설 때에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연대하려고 했던 동지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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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7) 그 결과는 익히 알고 있듯이 “단체협약 원상회복”이라는 “승리”의 팡파르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 최장기투쟁의 원인이었던 임금제도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단 하나의 단체협약 조항도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 합의서 문구에만 “원상회복” 된, 이름뿐인 “단체협약”이었다.

각주8) 재능교육 투쟁 역시 이와 같은 민주노조운동의 기본적인 원칙과 정신에 입각해, 2007년 단체협약 체결 당시 규약과 규정에 따라 모든 절차를 ‘정상적’으로 거친-당시 학습지노조 중앙위원회는 단체협약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과정에서 있었던 대리투표에 대해, “잠정합의안 투표과정에서 다소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인정되나 잠정합의안 결과까지 무효라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투표 결과를 거듭 인정했다.- 이현숙 집행부에 맞서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민주노조운동은 투쟁의 내용이 아니라 절차와 형식이 우위에 선 지 오래였던지라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재능교육 투쟁은 서비스연맹 등 어용관료집단의 노골적인 배제의 대상이었다.

각주9) 투쟁 자체가 사상 초유의 방식으로 전개되었던 만큼 그 결말 역시 사상초유의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었다. 즉 형식면에서는 재능교육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대교 소속의 강종숙이 합의 주체가 되었고, 내용면에서도 종탑어용세력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노동조합이 합의를 할 때에나 다루어지는 부분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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