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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누드비치를 만든다는데....

어제 신문기사들 중 제주도에 누드비치를 만드는 계획에 관한 기사가 눈에 들어 왔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누드비치를 만든다는 상징성과 프랑스의 어느 누드비치에 버금가는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얘기였다.

누드비치를 만들자는 주장은 과거에도 강화도인가 어딘가에 만들겠다고 했던 때가 있었는데 국민 감정의 문제, 성상품화 우려 등등의 이유로 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이번에는 어떻게 진행될지 두고 볼 일이지만 잘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누드비치는 호주 시드니에도 꽤 유명한 곳이 있다.  나도 그곳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생각만큼 그리 대단한 곳은 아니었다.  그저 절벽 아래 있는 모래사장에서 훌러덩 벗고 누워 자거나 책을 읽거나 채스를 두거나 집에서 싸온 커피를 마시거나 뭐 그런 풍경이다.

사실, 누드라고 해야 손바닥보다 조금 큰 수영복을 입었느냐 입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또 다른 감상에 젖어 들 수는 있었다. 따듯한 바람이 살랑살랑 온몸을 간지럽히는 느낌을 받으며 하늘에 흰구름 몇 개 떠다니는 걸 바라보고,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바닷물에 풍덩하고 들어가 몸을 적시고 나면 그 보다 더 평화롭고 한가로운 여유를 찾기를 어렵다.

한데, 이런 누드비치가 형성된 특별한 사연이 있었으니 다소 의외의 상황이었다.

내가 그곳에 주로 찾던 때는 6월인가 7월인가 여하튼 그 때 쯤이었는데 호주는 그때가 한국의 늦가을정도된다. 하지만 기온은 좀 더 따듯하다. 그때는 젊은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는 찾아 볼 수 없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와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갖고 짧은 영어실력으로 왜 여기에서 옷을 벗고 있냐고 물어 보았다.  70대 중반의 피아노 수리공이라는 독일계 할아버지는 찬찬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곳에서 누드를 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68혁명 직후부터 자연주의 운동이 일어났고 기계화되고 산업화된 사회에서 좀 더 자연과 친하고 원시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에 마음을 함께한 몇몇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서 풍기문란 행위라는 이유로 잡아 가두었고 그런 상황이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그곳에서 누드를 하면서 정부에 저항하고 자연주의 운동을 진행해 온 결과가 오늘의 누드비치이고 그 때 처음 시작한 사람들 중 일부가 바로 여기 나와 있는 노인들이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난 후 나는 적잖이 감탄하였고 그 순간에도 누드비치를 둘러싸고 있는 절벽 위에서 신기한 듯 아래를 내려다보며 사진찍기에 열심인 관광객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우스워 보였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관광상품을 목적으로 누드비치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지는 그곳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그 보다 과거에 중단된 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런 특이한 곳이 등장한 배경도 없이 그저 돈을 벌어 보자는 심사로 접근하는 그들의 태도가  측은하게 느껴진다. 여름 해수욕장에서 topless만 봐도 난리나는 상황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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