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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정치와 진보정당 생존의 길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미디어충청, 2011.10.17

 

노동자정치와 진보정당 생존의 길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2주 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대전광역시당 위원장들을 대상으로 통합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주노동당에서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 무산되고, 진보신당에서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이 부결된 직후라 각 위원장들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통합 관련한 이들의 언급을 요약하면 이렇다. 김창근 민주노동당 대전광역시당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 무산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입장이었고 김윤기 진보신당 대전광역시당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의 양보정신은 인정하지만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추진했던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두 정당의 통합문제가 직면한 문제를 단순화시켜보면 국민참여당으로 모아지고, 이에 대한 두 정당의 서로 엇갈리는 입장이 정리되지 않는 한 통합논의는 이후에도 제자리를 맴돌 듯하다.

 

그런데, 이 두 정당의 통합논의와는 별개로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양대 선거를 앞두고 야당대통합이 한편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제 두 당의 통합보다 양대 선거를 앞두고 진행될 정당재편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로 관심이 전환될 듯하다. 주요 선거를 앞두고 한국의 정당들은 언제나 합종연횡을 벌여 왔지만 야합이라 평가받았던 1991년의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등이 주도한 3당 합당을 제외하고는 그 나물에 그 밥의 격으로 진행되어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그 첫 신호는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마가 될 듯하다. 박원순 변호사의 시장출마는 일회성 깜짝 이벤트가 아니라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둔 야당개편으로 향하는 출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 주체는 기존의 정당이 아닌 시민운동세력이 될 것이다. 만일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야권 개편은 시민운동세력이 강력한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고 당선되지 않더라도 “혁신과 통합” 등 민주당 주변 집단과 연합하여 야권 개편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혁신과 통합” 측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의석안배를 미끼로 통합제안을 던지기도 했다. 이러한 시민운동세력의 제도권 정치로의 진입시도는 2000년 낙천낙선운동을 이끌었던 총선시민연대 이후 최대의 정치실험이 될 것이고 그것이 성공하면 시민운동세력이 새로운 제도권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초대받지 못하는 손님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혁신과 통합”의 김기식 공동대표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두 정당의 가치가 사라져 가고 있고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조직된 노동자들의 정치력에 대한 의구심이 선거를 거듭할수록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표를 얻지 못해 선거에서 지는 사태는 울산을 비롯한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시민운동세력에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그리고 민주노총은 버리는 패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신호는 민주당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야권대통합을 주장하며 반한나라 구도를 만들고자 해 왔지만 최근 주요 통합대상으로 두었던 민주노동당에 내밀었던 손길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듯하다. 인제 군수선거 후보에 대해 양보하지 않으려는 태도나 서울 시의원선거에서 이미 야권 단일 후보로 추대된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한 중앙당의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박원순 후보 선대위를 민주당 중심으로 구성해 민주노동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비록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시민운동진영의 도전에도 직면해 있지만 수십 년간 다져온 조직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조직력은 이들에게 있어서 덤일 뿐이다.

 

세 번째 신호는 노동운동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국민참여당과의 통합문제를 두고 지도부 내에서도 이견이 엇갈리는 양상을 보이는가 하면 그 과정에서 통합에 찬성하는 일부 조합원들은 현장 조합원의 70% 가까이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해 찬성한다는 어느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국회의석 몇 개를 더 얻을 것인가 하는 편협한 ‘정치공학’에 빠져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이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면 현장에서의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이미 파탄이 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에서 비교적 급진적인 자유주의 세력이 친노동자성을 내세우며 제도정치의 주체로 등장할 경우 급격한 쏠림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96․97 노개투에서 분출되었던 현장의 열정이 대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신호들이 정리되는 시점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현상들 중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노동이 배제된 채 정치구도가 재편될 것이라는 지점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재편과정에서 존재감을 잃게 되면 길게는 1988년 백기완 선본에서부터 짧게는 1997년 국민승리21에서 이어져온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흐름이 단절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예견되는 이런 상황은 민주노동운동진영과 이를 기반으로 했던 진보정당 진영이 소수의 조직된 노동자와 몇 안 되는 국회의석의 달콤함에 빠져 미래를 대비하지 못했던 것에 기인하는,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 할 것이다. 분당 이후에도 그러했고, 통합을 논의하는 현재도 크게 바뀐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분당을 각오하고 혁신에 대한 요구를 외면했던 이들이나 밖에 나가 얼어 죽을 각오로 뛰쳐나갔던 이들이 이제 다시 합치자고 하니 황망할 뿐이다. 서로의 감정을 앞세워 등을 돌린 세력들이 다시 합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현재의 국면에서 서로의 감정을 누르고 주장을 조금씩 양보해서 다시 합친다고 하더라도 그 동거기간은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도무지 커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작은 파이를 놓고 누가 더 먹을 것인가 하는 투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면 합쳐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의 주장에 선 듯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렇다면 근원적 문제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언급한 바 있다. 다름 아닌 ‘대동단결’바로 이 묻지 마 식 통합주장은 분단이후 한국 사회를 둘로 나누고 있는 레드컴플렉스처럼 진보진영을 둘로 나누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된 국민참여당과 합당의 문제를 확장하면 이 문제로 귀결이 된다. 차가운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었던 96·97 노개투의 함성에도 불구하고 제도정치권의 협상놀음에 쓰라린 패배를 맞본 이후 결정된 민주노총의 노동자 독자정치세력화에 대한 결정으로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국연합 등 민중진영의 동참도 이루어냈다. 이로써 더 이상 비판적 지지의 주장이나 야권단일화론으로 진영 내 혼란이 없을 것 같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끊임없이 그 망령에 시달려야 했고 심지어 야당의 승리를 위해 정확하게는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는 사퇴해야 한다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받기도 했다.

 

이제 노동자 정치와 진보정당이 살아남을 길이 무엇인가라고 던진 이 글의 제목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급진적인 분리, 재편을 통한 각자의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고 더 간략히 하자면 통합이 아쉬운 사람들은 그 사람들끼리 ‘수(數)의 정치’를 쫓아 떠날 때라는 것이다. 오래전 이재오, 김문수가 그랬던 것처럼, 가장 최근에는 진보신당을 탈당한 이른바 노·심·조와 “혁신과 통합”으로 이적한 박용진처럼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며 떠나야 한다. 이는 ‘진보순혈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강력한 보수주의 세력에 맞서기 위해 뭉쳐야 했던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로 인해 정치적 다양성이 억눌려 왔고 그 속에서 패권이 자라났던 것 역시 사실이다. 민주노총도 진보정당이 흔들리면 노동 현장이 흔들린다는 협박으로 옭아매려 해서는 안 된다. 일부의 주장대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에 찬성하는 조합원 비율이 7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협박은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뒤집어 말하면 현장의 건강성이 무너진 결과가 진보정당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이제 그 오래된 속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할 때이다. 그 후에 현재의 구도를 모두 해체하고 새판을 짜야 한다. 선거가 코앞인데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고 하지 말자. 통합한다고 해서 현 체제로 치르는 선거와 달라질 것은 없다. 선거 후에 다 풀어놓고 새로운 판을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그때 새로운 판은 지금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그때는 ‘정치공학’이니 하는 말장난은 집어 치우고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판이 되어야 하며, 지금과 같이 통합이라는 미명하에 상대방을 억압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통해 배반하지 않는 정치의 기틀을 세우고 배반당하지 않는 민중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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