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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1/03
    힘센 봇짐장수 '그누텔라'
    두더지-1
  2. 2006/01/03
    새로운 미래라고 밝을 수만 있나
    두더지-1
  3. 2006/01/03
    무자비한 독점 노리는 '닷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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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1/03
    미래 사무환경 디자인쇼, 그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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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1/03
    거래되는 신체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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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1/03
    철없는 밤의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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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봇짐장수 '그누텔라'

힘센 봇짐장수 '그누텔라' [한겨레]2001-06-09 05판 12면 1289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서로 연결된 모든 컴퓨터는 동등해야 한다.'인터넷의 처음 마음은 이랬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등의 전자공간에 몰려들면서 사뭇 양상이 달라졌다. 정보를 요구하는 쪽과 제공하는 쪽이 클라이언트와 서버라는 이름으로 확연히 구분되고, 정보가 흐르는 범위도 온갖 성벽과 대문으로 출입이 봉쇄됐다. 성 안에는 각종 돈되는 정보를 가공하는 장사치들이 늘어나면서 '신경제'란 커다란 시장도 형성됐다. 일단 성을 벗어나 대량복제된 정보는 갖가지 저작권의 패찰을 달고 행세하기 시작했다. 위계.독점.집중의 시장윤리가 이곳에도 어김없이 들어섰다. 시장에 골칫덩이가 나타났다. 하릴없이 산천을 떠돌면서 정보를 사고파는 봇짐장수들이 여기저기서 출현했다. 지난해 등장한 '그누텔라'도 그중 하나다. 냅스터와 달리 그누텔라는 중앙의 서버를 거치지 않으면서 사람들 간의 평등한 네트워크를 구현한다. 서버가 클라이언트와 구분되면 서버는 돈벌이용 개찰구로 군림한다. 이에 반해 그누텔라란 봇짐장수가 나타나면서 서버와 클라이언트는 하나가 된다. 봇짐장수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넘나들면서 정보를 팔거나 전하면서 사람들 간의 직접적 네트워크를 짜도록 돕는다. 밥 한술 대접에 선뜻 정보를 거저 내주기도 하면서, 멀리 떨어진 이들끼리 서로 필요한 정보의 교환을 주선한다. 발로 품을 팔며 사람들을 묶어줬던 봇짐장수의 구실은 시장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일대일(P2P) 정보공유 체계인 그누텔라에 그대로 유지된다. 저스틴 프랭클과 톰 페퍼가 단 2주 만에 개발한 그누텔라가 이제는 정보공유의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수천명이던 사용 인구가 현재 4만명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이들 간에 200만개 정도의 음악.영화.문서 파일들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이 속도대로라면 '냅스터 열풍'은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비슷한 기능의 '프리넷'보다 훨씬 유연하고 조작이 쉽다. 봇짐장수는 거래 기록을 남기는 법이 없다. 그저 머리에 기억된 길과 이름들뿐이다. 그가 만드는 네트워크 또한 내닫는 발길에 의지한다. 그누텔라에서 교환되는 정보와 사람은 철저히 익명이다. 누군가 흐르는 정보를 강제로 감시하려 한다면 봇짐장수의 길을 꿰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인터넷 전체를 통째로 가로막을 때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저작권 위반 혐의로 옭아매기도 힘들게 됐다. 지난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누텔라가 새로운 웹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중요한 지적을 했다. 이 신문은 제2.제3의 그누텔라의 등장과 정보 검색기술의 진전이 닷컴 시장모델을 밑에서부터 무너뜨릴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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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라고 밝을 수만 있나

새로운 미래라고 밝을 수만 있나 [한겨레]2001-06-02 06판 12면 1319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과거를 되돌아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어제의 것을 가지고 오늘을 반추하기도 하면서 내일을 가늠하는 유용한 준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오늘을 합리화하고 내일을 채색하는 도구로 과거를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의 과거에는 불순한 현실의 개입이 이루어진다. 누군가 과거의 것들을 걸러내고 취합해 보여줄 때는 흔히 의도적이고 과장된 오늘의 정서가 짙게 깔리기 마련이다.미국 구경제와 신경제의 중심지인 뉴욕과 실리콘밸리의 두 전시회는 과거 유물들을 통해 오늘의 지배적 정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뉴욕역사회의 '20세기 미래설계: 시대를 넘어서'는 '어제의 미래'로 상상했던 일을 오늘의 시점에서 보는 자리다. 전시는 189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과학소설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모아 당시 사람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품었던 낙관적 열망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들은 미래도시.우주선.우주정거장.미래형자동차 등 오늘날에 기술적 영감을 줬던 소재를 다룬다. 하지만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에 압도돼 과학소설의 과장된 미래낙관론에 치우친 작가들의 그림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현실 속의 모순.폐해.마찰 조건들을 반영한 '어제의 미래'를 발견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소재는 다르지만 목적이 비슷한 전시가 하나 더 있다. 실리콘밸리의 명소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96년에 세워진 '컴퓨터역사박물관'은 20세기에 고안된 각종 컴퓨터 하드웨어들의 영구 진열장이다. 이제는 쉽게 찾을 수도 없고 대부분 너무 무거워 옮기기도 어려운 괴물과 같은 컴퓨터의 어제 모습을 한데 모았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이동 타자기였던 이니그마와 60년대 허니웰이 개발한 부엌용 컴퓨터 요리기계 등 초창기의 각종 컴퓨터 장치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전시는 여전히 지금도 컴퓨터 시대임에도 현재의 컴퓨터를 끊임없이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급변하는 오늘의 시대정서를 드러낸다. 휴대를 넘어서 '입고 차는 컴퓨터' 시대를 살아가는 관람객에게 얼마 안 된 어제의 것들은 벌써 낯설고 우스꽝스럽다. 디지털이 '새로움'이라는 포장과 함께 선사하는 미래 예언에 친숙해진 우리에게 어제의 기괴한 컴퓨터들은 빛나는 오늘과 다가오는 내일을 돋보이게 만드는 무대장치 구실을 한다. 두 전시 모두는 과학기술이 발전적이고 낙관적인 것이라는 환상을 전달하고 있다. 비록 주제가 과거로 향해 있지만 이런 목적을 위해서 과거를 미래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하나는 꿈으로 가득 찬 '어제의 내일'을 우리가 사는 '오늘의 내일'과 동일시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촌스런 어제를 배열해 과거의 흔적들을 약속된 미래를 위한 소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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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독점 노리는 '닷넷'

무자비한 독점 노리는 '닷넷' [한겨레]2001-05-26 05판 12면 1302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인터넷 역사의 1단계가 월드와이드웹의 발전이었고 2단계가 닷컴 사업모델의 등장과 형성이었다면, 3단계는 따로 존재했던 모든 디지털 장치들을 하나로 엮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닷넷(.NET) 시대로 요악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부회장 크레이그 먼디가 얼마 전 뉴욕 대학의 경영대학원에 연사로 초청돼 이른바 '닷넷' 구상으로 제시한 밑그림의 대강이다.닷컴 종사자들이라면 필독서로 읽었을 케빈 켈리의 (신경제의 신법칙) 10개항 중에는 '멍청한 것들을 서로 연결하라'는 내용이 있다. 보잘 것 없는 디지털 장치들도 서로 연결시키면 똑똑해지고 그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다는 신경제 특유의 네트워킹 효과다. 닷넷 구상은 바로 이 법칙에 충실하다. 컴퓨터에 휴대전화.개인정보단말기(PDA).가전제품 등이 유무선으로 상호 연결된다. 소비자는 어디서든 필요한 정보를 접속.관리하는 통합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기업도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여기까진 그럴 듯하다. 그러나 멍청한 기계들을 똑똑하게 묶으려면 표준의 통합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닷넷 구상은 그 중심 구실을 마이크로소프트가 맡겠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누릴 수 있는 독점적 이윤확보의 한계, 저작권 체계를 위협하는 국제적인 정보공유 모델의 흐름 등은 마이크로소프트쪽이 닷넷 구상에 더욱 집착하게 하는 요인이다.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이 정보자유의 정신에 입각해 만든 프로그램 저작권 '그누공공라이선스'를 먼디 부회장이 강연에서 표적삼아 공격한 것도 이런 위기감에서 나왔다. 닷넷이 완성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 이윤원은 프로그램 상품 생산에서 정보 서비스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인터넷을 자신의 운영체제들에 기반한 상업적 서비스의 거대 영역으로 통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영구적 시장 독점을 위한 완벽한 청사진이다. 누구나 마이크로소프트에 일상적으로 서비스 사용료를 세금처럼 물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란 예측은 그리 과장이 아니다. 희망은 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에 적대적인 다른 기업들은 좀더 현실적이고 경쟁적인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아이비엠의 기업간 전자상거래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도 닷넷 전략에 대응한 열린 기술의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반마이크로소프트 전선은 이 회사의 독점적 횡포에 시달리며 자연스레 형성된 면도 있지만, 정보의 나눔과 열림의 정서가 가장 큰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남다른 점은 네티즌의 이런 새로운 정서에 전혀 아랑곳없이 냉혈한 상업적 이윤모델을 목표를 향해 독불장군식으로 나아가는 '무대포 정신'에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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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무환경 디자인쇼, 그 환상

미래 사무환경 디자인쇼, 그 환상 [한겨레]2001-05-19 05판 12면 131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의 '노동환경전'이 얼마전 막을 내렸다. 4개국에서 구성된 디자인팀이 신경제시대의 사무환경을 주제로 삼아 200점 이상의 전시작을 선보였다. 전시회는 이미 시장에서 유통되는 작품까지 포함하고 있어 마치 상품 선전장 같았다. 디자인 전시의 대상은 신경제의 전문직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 환경에 한정됐다. 디자이너들에게 블루칼라의 작업장은 미래 노동환경을 채색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 모양이다.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신경제 노동의 유목화와 일상화다. 어떤 장소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기업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는 노동의 편재성과 노동.여가 시간의 경계를 흐리는 노동의 일상성을 첨단기술과 결합된 작품들로 표현하고 있다. 항공 화물 컨테이너의 외양을 빌린 유무선 첨단장치를 갖춘 날아다니는 사무실은 한 장소에 붙박힌 근무지에 대한 일반적 상식을 무너뜨린다. 위성통신과 컴퓨터 장비가 부착된 자동차는 사막을 횡단하건 절벽을 오르건 항시 대기 중인 또 다른 이동식 사무실이다. 입고 차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스피커가 달린 베개와 컴퓨터 화면이 달린 간이침대는 잠시 누워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일에 쫓기는 사람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첨단 디지털 식판의 화면을 통해 인터넷을 하면서 간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창문 하나 없는 사무실 천장에 계절.날씨에 따라 입맛에 맞게 각각 50개의 다른 하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디자인은 미래 근무환경의 새로운 운치로 선전된다. 그러나 이렇게 현란한 기술로 치장한 디자인의 매끄러움이 사물을 지배하면 그 내용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시공간 극복의 첨단 사무실이 강조되면 작업장내 노동통제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의문은 사라진다. 신경제의 노동관리 방식이 디자인을 통해 과장되어 투영됨으로써, 관객은 그저 우스꽝스런 첨단 장난감들에 호기심을 가질 뿐 노동의 질에 대한 고민은 불가능하다. 단지 전시회 이면에 제록스재단과 같이 통제중심의 사무환경 디자인 설계에 심혈을 쏟아왔던 후원업체들이 버티고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속내를 엿보게 해줄 뿐이다. 노동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기획 의도는 노동자의 현실적인 요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미래 사무실이 디자이너의 장밋빛 상상 안에서만 움치고 있다. 기획 자체도 사무직 노동자들의 일상적 통제를 위한 시험 무대이자 상품판촉의 시장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크다. 신경제 작업 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첨단 디자인을 구매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시종일관 전시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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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되는 신체정보

거래되는 신체정보 [한겨레]2001-05-12 05판 12면 1308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980389559|WatchTV|recorded|KDVR|3134603|980127000'긴 암호처럼 보이는 이 숫자.문자 조합은 한두 가지 의미만 알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내용이다. 980으로 시작하는 숫자는 1970년 1월1일부터 지난 시간을 초단위로 계산한 것이고, 3134603은 지정된 프로그램 이름이다. 즉 "한 시청자가 (KDVR방송)에서 2001년 1월21일 일요일 오후 6시30분에 송출한 '킹오브더힐'이란 프로그램을 녹화해 같은해 1월24일 수요일 7시26분에 보기 시작했다"란 뜻이 된다. 시청습관이 이런 식으로 하루에만 100장쯤 기록된다면 당사자의 기분이 섬뜩할 것이다. 먼 미래의 얘기쯤으로 봤다면 완전 오산이다.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기술의 현주소다. 디지털기술을 응용한 텔레비전 녹화장치인 티보(TiVo)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영상테이프 없이도 내장된 하드웨어에 녹화해 입맛대로 골라 시청할 수 있는 차세대 개인용 기술이다. 문제는 인터넷에 연결된 티보장치가 가입자의 시청습관을 기록한다는 사실에 있다. 언제 무슨 내용을 몇번이나 봤는지에 대한 가입자 정보를 차곡차곡 기록해 장치 제공업자에게 즉시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시청습관에 대한 티보의 파악능력이 직접적으로 사생활침해 문제와 맞닿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서 발견된다. '데일리미' '협송' '원클릭' 등의 기술처럼 티보는 소비자가 보길 원하는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디지털 기법이다. 취향과 기호에 부합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맞춤형 정보기술들로부터 얻는 혜택은 대개 소비자가 기업에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는 대가로 받은 것이다. 마치 자유계약의 미명 아래 '산노동'을 기업주에게 파는 노동자처럼, 소비자는 신체의 '산정보'를 닷컴기업과 거래한다. 얼마 전 (리퍼블릭닷컴)이란 책을 펴낸 미국 시카고대학 법학 교수 카스 선스타인은 닷컴기업의 맞춤기술에 지배될수록 민주주의의 다양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제공하는 파편화하고 개인화한 정보 서비스에 길들여진 소비자는 점점 현실의 다양성을 고려할 능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사고의 협소화가 사회적 관심사의 공유를 막는다는 논리다. 다소 비약된 감이 없지 않지만, 그의 주장 또한 기업에 관리되는 신체의 가능성을 겨냥하고 있다. 이.삼중으로 짜여진 상업적 그물코에 걸려들어 분류.관리되는 소비자 정보란 확실한 상품가치를 지녔다. 티보가 '텔레비전은 바보!'를 외치며 맞춤서비스의 장점들을 늘어놓을 때, 이에 넋나간 소비자들은 자신의 알몸정보가 슬그머니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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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밤의 닷컴

철없는 밤의 닷컴 [한겨레]2001-04-28 05판 12면 1304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토머스 하트 벤튼은 1930년대초 산업자본주의로 급속히 재편되는 미국의 모습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벽화에 담아냈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도시활동'은 거대 도시에 피어오르는 밤의 이미지들을 콜라주로 구성해 유명하다. 벤튼의 이 응축된 작품에서 하나의 이미지 파편을 떼어내어 영상으로 담는다면, 중국계 미국인 웨인 왕 감독의 (세상의 중심)이란 영화가 제격일 것이다.다음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칸영화제 본선 진출작인 이 영화는 벌써부터 내용의 선정성으로 말들이 많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같은 주요 일간지들은 개봉을 앞둔 이 영화 광고의 지나친 선정적 문구와 도안으로 배급사와 조율해 광고 내용을 제한하는 촌극까지 벌였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저예산 에로물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닷컴 세계의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밤의 문화가 놓여 있다. 웨인 왕의 제작 동기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밤이면 스트립쇼로 향하는 젊은 닷컴 재벌가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부터다. 마치 사탕가게에 들어온 코흘리개 아이들처럼, 매일 밤무대 아래에서 환각을 구매하는 닷커머들의 철없는 모습을 통해 감독은 닷컴 현실의 일그러진 단면을 발견한다. 영화는 닷컴 붐으로 재벌이 된 젊은 리처드가 스트립걸인 플로렌스에게 1만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로 3일 간의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리처드는 30살이 채 되기도 전에 닷컴계의 거부가 돼 스트립걸을 만나고 헤어졌던 한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삼았다. 두 주인공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살지만 꼭 닮았다. 뛰어난 경영능력 없이도 쉽게 일확천금을 거머쥔 닷커머에게 컴퓨터는 세상의 중심이다. 육체적 접촉 없이도 약간의 자극적 몸놀림으로 돈을 버는 스트립걸에게는 자신의 신체가 그 중심이다. 영화는 서로에게 세상의 중심으로 보이는 것들이 화폐에 중개될 때 한낱 허상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문화사가인 브라이언 팔머는 (어둠의 문화)라는 최근 책에서, 흔히 밤은 비록 모호하지만 권력과 힘의 파장이 수그러든 시간대라고 서술한다. 밤의 느슨한 문화를 통해서 낮의 지배 논리를 유추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된다. 팔머의 논의에 따르면 한 닷커머의 환각 여행은 왜곡된 어둠의 문화를 통해 본 낮의 지배적 닷컴 현실을 다루고 있다. 닷커머의 화폐로 매개된, 탐스럽지만 만질 수 없는 스트립걸의 육체에서 느끼는 허망함을 통해 관객은 현실 닷컴의 과장된 신기루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닷컴의 환상이란 마치 계속해서 꿈꾸길 바라는 몽정과 같은 것"이라는 감독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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