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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8 -- 고구려 유적 답사.

2004. 11. 28. 고구려 유적 답사.

 

동북공정(東北工程)...

동북변강역사~~연구공정의 줄임말로 중국 동북 변경지방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일련의 연구 작업으로

2002년 시작하여 2006년까지 계획되어 있다.

중국인구에는 90%의 한족이 있고 나머지 인구중에 55개의 소수민족이 주변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리고 그 56개의 민족가운데 5개의 민족이 주변에 모국(母國) 또는 망명정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몽고족(몽고), 조선족(남한과 북한), 하사크족(카자흐스탄), 티벳족 (달라이라마의 망명정부)

그리고 대만.

 

현재 대만은 독립한다고 하고 티벳 문제도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그렇게 독립을 원하는데 그냥 독립을 허용하면 안될까? 하지만 그건 도미노처럼 다른 소수민족의

연쇄독립을 불러올 것이고 그러다간 그곳의 지하자원은 둘째치고 국토또한 지금의 반도 안남게 될꺼다.

 

만약 이들 소수민족이 동시다발로 독립을 요구한다면? 그건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조막조막한 무리들이 개길때는 그럭저럭 어르고 달랬지만 같은 목적으로 지들끼리 뭉친다면...?

고구려때문에 수나라가 패망한 걸 은근히 부끄러워하며 불안해하는 그들이 남북이 통일되어

간도에 대해 주권을 주장하거나 남북한과 조선족과 동북3성 지역의 민족이 우리민족의 기치아래

민족주의로 뭉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중국이 택한건 역사를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의 이 계획은 집요하고 장기간 준비해오고 있었다.

중국은 고구려의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편입하려하고 있다.

나아가 고조선, 발해의 역사까지 왜곡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역사는 시간적으로는 2000년,

공간적으로는 한강 이남에 국한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중국은 동북지역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고 사전에 이 지역의

역사를 중국사로 공언해 둠으로서 통일 한국에 대한 향후 상황변화에 대비하고자 하며 또한 과도기

한반도에 대해 개입의 여지를 확보해 두려고 한다.

 

최근 동북공정이 문제가 되자 외교부에서 경제력으로 중국정부와 외교를 벌인다고 했다.

후후후 우리나라 인구만큼의 중국인구가 최상류층으로 한끼에 우리돈으로 수백만원어치의

식사를 한다든지...

우리는 기껏 고구려 역사연구를 위해 수억원 쓰면서 중국은 수십억원을 쓰는걸 아는지...

2002년에 동북공정을 시작했다고 정말 그때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지...

지피지기(知彼知己)해야한다...

 

#1 오두산성.

답사자료에는 테뫼식으로 축성된 석성(石城)이라지만 안개가 껴서 이게 산인지 섬인지 구분도 힘들었다.

그저 안개의 분위기에 빠져 묘한 느낌을 즐기기 바빴다.

오두산성에 대한 설명을 듣기위해 가는 일행

 

#2 어느덧 오두산성은 머리속에서 지워지고 통일전망대를 오른다.

근데 이건 뭐야? 여기에 이게 왜 있지?

통일전망대와 2002월드컵... 아무리 생각해도 연결이 안되네...

 

#3 폭3.2Km의 임진강 건너 북한이 보인다.

미니어쳐이지만 지금 밟고 있는 땅이 새롭게 느껴진다.

맑은 날에는 북한 주민도 보인다고 한다.

 

#4 남과 북의 말이 다르다.

북의 말이 주체성을 살린 말이라고는 하지만 이러다가 나중에 서로 말이 안통하면 어쩌나 싶다.

 

축구용어의 차이

헤딩슛-머리받기, 골든골-금골, 프리킥-벌차기, 골키퍼-문지기, 조별리그-조연맹전, 토너먼트-승자전,

터치라인아웃-직선바깥, 공점유-공관할, 홈그라운드-자기마당, 페널티킥-11m벌차기,

시뮬레이션-엄살동작, 미드필드-중간지대, 핸들링-손다치기.....시뮬레이션은 정말 웃긴다.

 

#5 호로고루성.

성이라 하면 수원성 정도는 해야 볼만하겠는데 이건 작은 언덕만한 성이다.

근데 가만...수원성은 조선후기 정조때 지은 성이구 이 성은 5세기때 지은 성이다.

한 1000년넘게 차이가 나니 어찌보면 이 정도 보존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하네.

 

늘 크고 웅장하고 용맹하다는 고구려의 선입견때문에 나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려하네.

자료를 뒤져보니 이일대에서는 4~7세기까지 고구려-신라는 16차례,

고구려-백제는 31 차례(혹은 33차례), 백제-신라는 29차례에 걸쳐 피말리는 전투를 벌였다고한다.

피말리는......

 

#6 나무와 풀과 같은 건 시간이 지나면 모양이 변하지만 돌은 그대로이다.

그래서 오래 남는 것들만 역사의 유물이 되나 보다..

사용 도구로 나누면 돌-청동-철이 되는데 맨앞에 원래는 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7 호로고루성에서 바라본 임진강.

물이 깊지 않아 적들이 강을 건너가기 쉬워 이성에서 적들의 도하를 감시했다고 한다.

삼국의 국경하천이었으며, 훗날에는 신라와 당나라가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왜 하필 호로고루냐?

무릎 정도밖에 차지 않은 이곳은 임진강 하류에서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이기 때문이다.

6·25전쟁 발발 당시 북한군 전차부대도 개성에서 문산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20㎞나 우회,

호로고루 여울목을 도하했다고 한다.

 

#8 이것이 치인지 보루인지 잘 모르겠다.

설명은 들었는데 잊어 버렸다. 성벽과 같은 높이로 성벽위에서 감시할때 사각이 생기는 부분을 이

시설물이 보완한다고 한다.

승용차로 치자면 사각잡는 보조거울이라고나 할까..

 

 

#9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능에서 자원활동으로 관광객에게 설명해주시는 분이다.

상당한 역사지식의 소유자라는 생각은 들지만 어째..우리일행과의 의사소통에는 원활하지 못했다.

직접 절을하며 왕능에대한 예절을 일러주셨지만 내게는 그리 와닿지 않았다.

 

#10

 

#11

 

조선 영조시기에 보완된 왕릉의 묘비다. 6.25 전쟁의 흔적으로 묘비에 탄흔이 선명히 있다.

얼마나 아팠을까...

 

 #12 당포성

 

#13 임시보호용으로 시커먼 보호비닐을 덮어두었다.

 

#14 당포성에서 바라본 임진강

 

#15 당포성위에서 임진강을 바라보는 우리 일행.

 

 #16

 

아무리 군사시설을 보고다니지만 저런 참호는 보기싫다.

깔끔하게 마루리된 참호는 군인들이 흘린 땀방울이 흐르는 자국같다.

 

#17 열심히 인터뷰를 따는 일행들. 좋은 인터뷰화면이 나올 듯 합니다.

 

#18 은대리성으로 이동중에 어느 민가 담벼락을 치장한 모습에 걸음이 멈춘다.

후후후 특이하네.. 근데 이 돌들은 바닷가 돌인데...돈 좀 쓰셨군요...

 

#19 어른 허리정도 높이의 은대리성은 보기에 안타까웠다.

성 높이가 허리높이라...

성위를 걸어가다 그 때 쓰였을 법한 돌이 눈에 든다. 이돌은 잘 알겠지..

은대리성이 그 당시 어떠했을지....

 

#20 은대리성에서 바라본 임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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