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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6 -- 빨치산 전적지 답사 (임방규선생님과)

빨치산(partisan)

 

'파르티잔(partisan)'은 프랑스어의 '파르티(parti)'에서 비롯된 말이며, 당원·동지·당파 등을 뜻하는 말이나,

현재는 유격대원·편의대원(便衣隊員)을 가리킨다.

따라서 에스파냐어에서 나온 게릴라와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발음이 어색한건 소련식 발음을 그대로 우리가 사용한 것이라 그렇고,

그리고 빨치산하면 뉴앙스가 가지는 한국인 특유의 거부감으로 감히 발음하기도 눈치를 보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과 이태원작의 영화 남부군에서 빨치산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빨치산은 그들이 가진 순수한 이상과 신념을 가지고 힘겹게 일본에 대항했고 민족통일에 이바지했습니다.

비참한 최후만큼이나 역사적 소외를 받아오며 정권의 비인간적인 온갖 회유공작을 받다 돌아가신 분도

있고 굳굳하게 이겨내어 북으로 송환되신분도 있습니다.

 

평균 30년의 감옥생활과 평균연령 70의 고령에도 빨치산 활동가들은 우리사회에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뛰어다니십니다.

바로 그이들에게 멍에를 가져다준 국보법폐지를 위해 서명운동도 하시고 더 이상의 오도된 역사를

물려줄 수 없기에 빨치산의 기록과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2004. 10. 16 - 10. 17 빨치산 전적지 답사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모두 32년 6개월을 복역한 비전향장기수출신 통일광장 대표

임방규선생님과 빨치산 전적지 답사여행을 갔다왔다.

전북 순창, 임실, 부안근처의 가막골과 쌍치를 주무대로 당시 활동하시던 기억을 되살리며

생생한 빨치산활동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선생님은 73살의 고령에도 장거리 여행과 산행을 버거워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후대에 연구할 수 있게 생존해 계실동안 자료를 수집하고자 했습니다.

기록자의 마음으로 차분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1 회문산 들머리에 자리잡은 당시 전북도당 사령부 벙커를 재현한 모습.

내부에는 군대내무반처럼 꾸며져있고 인형으로 당시를 묘사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흡족해 하지 않으셨다.

 

#2

 

#3

 

<치안을 어지럽히고 양민을 학살하는등 비인도적인 만행을 자행하였던바,...>

.....아직도 역사의 사관은 한쪽에 치우쳐있다.....

 

#4 가막산 구릉에서 옛날을 회상하며 설명해주신다. 한 때는 이곳이 선생님에게 텃마당과 같은 곳이였다.

 

#5

 

#6 멀리보이는 2개의 봉우리중 뒤의 더높은 봉우리에는 여성으로만 이뤄진 여성중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선생님나이 19세.

묘한 기분을 느껴본다.

 

#7 욕심이 나시는 모양이다.

차안에서도 그때상황에 대해 말씀을 하신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신거다.

 

#8 딱 53년전 오늘(1951.10.17) 뒤로보이는 공터에서 빨치산 투쟁역사에 길이 남을 군용기차탈취

성공 축하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인근의 빨치산들과 농민들이 모여 모처럼 소리치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때를 벅차오르는 기쁨을 기억하는건 선생님과 감나무일겁니다.

 

 

#9

 

 

#10

 

당시에 보초를 서던 곳이다.

비가 올때는 뒤에보이는 바위틈에서 보초를 섰다고 합니다.

그때는 2명의 어른이 충분히 들어갈 공간이였지만 50년의 세월이 이젠 더 들어오지 못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11

 

#12 비트..잠자리를 편평하게 만들었던 자리.

 

 #13 뭔가 싶었는데 굴뚝입니다. 근처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은듯한 숯이 널려있었다.

 

#14

 

임시로 나무지팡이를 사용하시지만 아직 한 5년은 알려주기위한 답사가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15 다큐멘터리 제작하시는 분도 같이 갔었습니다. 열심히 찍고 좋은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16 그곳에서 서럽게 숨져간 동지들을 위해 위령제를 올립니다.

 

#17

 

쌍치의 돌고개언덕을 오르는 선생님. 나무들이 죄다 20년도 안되었다.

그때는 나무를 다 태워 민둥산과 같았다고 하십니다.

 

#18 요즘 말로하면 적의 침입에 대비한 진지다.

이곳에서 3개월 정도 점령하셨다고 하시는데 그나마 가장 잘 보존된 곳이라 하신다.

 

#19

 

#20

 

임방규 선생님.

본적 : 전북 부안 동진면 당산리(당아리)

 

경력사항

1932. 6.16 출생.

1946. 부안군 부안소학교 졸

1946. 9. 고창중학교 입학

1947. 민주학생동맹 가입

1948. 전주 공업고등학교 전학

1950. 중퇴. 전쟁시 의용군 입대

1950.10. 후퇴시 임실 성수산으로 입산. 외팔이부대(전인원 약5백명) 정치부 중대장.

1952. 3. 민트에서 체포. 광주 포로수용소 수용.

1952. 9.14. 국방경비법 32조에 의해서 사형언도.

1954. 3.14. 군법에서 무기로 감형과 동시에 대전으로 이감

1960. 4.19. 20년감형

1968. 4.12. 전주로 이감

1972. 7.14. 전주에서 석방. 서울에서 페인트공으로 생활

*1975. 사회보안법 시행

1977. 4. 결혼.

1977.10. 1. 보안감호소 재수감

1989. 9. 7. 석방. 민중탕제원

2000. 통일광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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