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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5 -- 우리 집 똥개

우리 집에는 똥개(수캐)가 한 녀석 있다.
이 녀석이 우리 가족과 같이 지낸 건 한 1년 정도 지만 우리 집에서 개를 키운 건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녀석들이 집에 있다가 가출한 녀석도 있고 행불된 녀석도 있고 영면한 녀석도 있었다.

대부분 암캐다 보니 가끔 임신도 했었다. 근데 사실 이거 엄청나게 신경 쓰인다. 사람도 그렇겠지만 개들도 임신하면 예민해진다. 음식도 가리고 작은 발소리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짖어대는 바람에 곤란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혹시나 지나가는 사람들 물까봐 걱정도 많이 했었다. (출산 하고 나서 아버지 손가락을 문 녀석도 있었다.)

그래도 임신은 경사는 경사다. 나야 출퇴근하기 바쁘지만 촌에서 자라신 아버지는 산고를 겪는 엄마 개를 끔찍이도 챙기시더니 출산을 하고나니 미역국도 끓여 주셨다. (개에게 미역국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정성은 대단하지만 일단 주택가에 있는 집이다 보니 짖어대는 엄마 개와 옹알거리는 새끼 개들 때문에 이웃 주민들에게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귀여운 것도 잠시, 새끼 개들이 젖 뗄 무렵부터는 분양할 곳을 찾는 게고민 이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파트나 주택가에 살다보니 개를 키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고 분양도 어려웠다.
몇 번의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우리 집에서 생각한 건 남자 개를 키우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집에 있는 점박이 녀석이다. 이 녀석의 형제들이 넷인가 다섯인가였는데 그 중에 제일 팔팔한 남자 녀석이다. 짖는 소리도 우렁차고 펄쩍 펄쩍 뛰는 게 제법 뛰어 오른다. 퇴근길이야 반갑다고 달려들어도 상관없지만 깔끔하게 차려입은 출근길에는 조심조심 뒷모습은 안보이면서 대문을 나선다.

힘도 세다. 그래도 개집도 집인데 집에다 묶어두었더니 개집을 끌고 다닌다. 하는 수없이 개집을 대문에 고정시켜두고 가끔 마당에서나 풀어 주면서 놀게 한다.

그럭저럭 잘 지내는 점박이 녀석에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몇 달 전부터 지나가는 암캐를 보면 대문 밑 좁은틈으로 코를 박고 킁킁거리며 짖는다.
“그래, 그 마음은 알겠다만 그렇다고 방생하듯 풀어 줄 수도 없고 이 험한 세상에 니가 나가면 영영 못 돌아 올 수도 있단다. 그리고 저쪽 여자 측 주인이 널 싫어 할 수도 있단다. 그러니 니가 참아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사랑하고픈 감정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겠지. 사람이야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을 하지만 짐승은 일정기간 사랑하고 싶어 하는 발정기라는 것이 있다. 무한보다 더 무서운 게 유한 아닐까? 기간이 정해지지 않으면 감정 조절도 가능하고 충전의 시간도 가질 수 있지만 기간이 정해져 있는 건 그 기간 동안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더 조절이 어려운거 아닐까?

어릴 적 시골에서 본 개들은 묶여 있지 않고 맘대로 뛰어 놀며 사랑도 하고 돌아다녔다. 똥을 싸도 알아서 밭이나 숲속에서 해 치웠고 집 근처를 돌아다니면서도 낯선 이가 들면 짖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늘 묶여있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좁은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정도로 자유를 구속당한다. 물론 사랑도 맘대로 못한다.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종자니 뭐니 따지며 자기들 좋을 대로 짝을 지워주고 사랑하라 한다. 심지어 짖지 못하게 성대 수술도 한다고 한다. 차라리 애완견 로봇을 키우는 게 목숨붙이에 덜 고통을 가하는 게 아닐까 싶다.

도시 안에서 짐승을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니 뭐니 하며 사람에 대한 권리는 찾으려하면서 살아있는 짐승에 대한 배려는 없다. 그렇다고 풀어둘 수도 없다. 해코지 하지 않으면 물지 않는 개들이 위험하다면서 난리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점박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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