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090614 -- 지리산에 갔다와서...





‘지리산’하면 밀려오는 강한 압박감을 가지고 새벽부터 산에 올랐다. 처음
부터 쉽게 보고 오른 산은 아니지만 역시나 장난이 아니다. 백무동에서
시작하는 산행 길은 가파른 경사에 이어지는 돌계단 때문에 오르기가
만만찮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30여명의 일행은 걷다가 쉬었다가 반복
하면서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아이들도 네댓 명 있었지만 오히려 어른들이
산에 오르기를 힘겨워한다.

새벽부터 오른 산은 이내 체력을 떨어뜨려 여기저기서 밥 먹고 가자고
한다.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산을 오른 다음에 샘이 있는 곳에서 이른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배낭을 풀어 싸온 음식을 펼치고 푸짐한 밥상을 차렸다. 아무리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산에서 먹는 밥은 뭐든지 입맛을 살려준다. 흰
쌀밥에서부터 김밥, 영양밥, 떡, 빵까지 다양한 밥상을 차렸다. 여럿이
산행하면 이 맛에 산행의 묘미를 느낀다. 그리고 빠져서는 안 될 술!
Pet병 맥주를 꽁꽁 얼려서 살얼음 맥주를 가져온 사람도 있고 막걸리,
소주, 과실주까지. 한두 잔씩만 얻어먹어도 취한다.

그 중에 일품은 역시 과실주, 진한 과일 향을 가진 알코올이 목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맛은 잊혀지지 않는다. 자주 산에 오는 사람들은 과실주를
가져오는데 그 맛에 따라 등산 경력을 가늠해 보는 것이 어느덧 내 못된
습관이 되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로 다시 산에 오른다. 6월이지만 아침나절 지리산
자락은 제법 쌀쌀하다. 이런 날씨에 가만히 있으면 감기 걸리기 딱 좋다.
부지런히 산을 오르니 어느 덧 장터목산장이다. 뒤쳐지는 사람들과
무전기로 천왕봉을 먼저 간다고 말하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장터목산장에서 천왕봉까지 1.5㎞, 한 시간거리이지만 이 산길은 지리산의
비경이 숨어있다. 능선의 한 쪽 산자락에는 햇살이 있지만 반대 쪽
산자락에는 능선을 넘지 못하는 운무가 사람들을 홀리고 있고 산길
양쪽으로 듬성듬성 자리를 잡은 고목들은 깊은 사연을 간직한 듯, 보는
이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멀리 펼쳐진 경치를 구경하고 흔히 하듯이 사진을
찍고 다시 부지런히 하산 길에 접어든다. 서울에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으려면 길을 재촉해야 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돌길은 계속해서 무릎에 압박을 주고 있다. 딱딱한 돌길은
흙길에 비해 몸무게의 충격을 고스란히 무릎이나 발목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부담을 준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무릎에 통증이 온다.
참을 정도는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걱정이다. 산에 몇 년씩 다닌 나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많이 안 다닌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하염없이 이어지던 하산 길도 어느덧 산 아래 마을에 다다랐다. 일단
담배부터 한 대 태우면서 뒷사람들에게 무전을 날려본다. 무전내용을
들어보니 대충 한 시간정도 터울이 있다. 하지만 잠시 후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내용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한 사람이 탈진하여 낙오되었다는
무전이다. 심장이 덜컹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손전화로 통화가 안 되는
곳이라 아직 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연락할 방법도 없다. 힘들게 무전기로
통화해 보니 일단 자체 구조대를 만들어서 다시 산으로 올려 보내야 할
것 같다. 아직 여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산으로 올려 보냈다. 사실
내가 올라가야 하지만 나도 무릎에 통증이 있다.

올라 간지 얼마 되지 않아 다행스럽게도 탈진한 사람과 일행들이 모두
내려왔다. 탈진한 사람은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았지만 많이 지쳐보였다.
일단 상태를 지켜보고자 했지만 환자는 기력이 없고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하고 있다.

하는 수없이 119 구급대를 불렀다. 구급차는 금세 왔다. 내가 구조하러
산에 올라가지 못한 것도 미안하고 해서 환자의 보호자로 같이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환자는 구급차안에서 편안하게 잠들고 병원에 도착해서는 포도당 링켈을
맞고 나니까 어느 정도 기운도 차리고 몸 상태도 좋다고 한다. 천만 다행
이다.

구급차안에서 구급대원이 하는 말이 백무동코스는 구급대원들이 보기에도
최악의 코스라고 한다. 왜냐고 물어보니 돌길이 많기 때문에 늘 부상환자와
탈진환자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산에서 부상환자가 있다는 것은 구급
대원입장에서는 구조하기가 두 배, 세 배 힘들다고 말한다. 헬기를 부를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고, 또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들것으로
이송하거나 업고 내려온다고 한다. 그럴 때 가장 힘든 하산길이 바로
돌길이라고 한다. 구급대원 자신의 몸무게와 환자의 몸무게의 압박을
고스란히 자신의 무릎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국립공원 측에 나무계단 혹은 흙길로 만들어 달라고
수차례 건의하였지만 예산과 지형변화를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립공원 측 행태가 안타까움을 넘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흙길이였을 곳을 비용이 적게 들고 오래 간다는
이유로 돌길로 포장을 하면서도,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의 위험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 아닌 물질중심의 사고방식을 보는 듯해
씁쓸한 하루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