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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이를 부안21에서 보았어요~

부안핵폐기장투쟁 때 하루종일 붙어서 같이 노느라 정신없었던

구자헌, 구자운 형제. 일명 꼬맹이 미소년들!!

동생 자운이가 허철희 선생님이 계시는 부안21 에 출연했어요.

맛있는 '직접 만든 자운이표 과자'를 들고!!

흐흐... 자운이도 이제 3학년이구나, 자헌이는 6학년? 크헉~ 청소년이다!!

옛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흑... 엄청나게 바쁜데... 어믄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요~



진서 서당골 구자운 어린이의 과자만들기

진서면 서당골에 귀농해 유기농 농사짓는 구장회, 이정선 부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 자헌이는 곰소초 6학년, 작은 아들 자운이는 3학년이다.

오늘 얘기의 주인공은 작은 아들 자운이다. 자운이는 요리를 잘 한다. 장래 희망이 특급 요리사라고 한다. 자운이가 고사리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빵, 과자, 아이스크림, 팥빙수 등 참 많다. 언젠가는 수박껍데기 무침을 만들어 가족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자운이는 요리 재료에도 관심이 많다. 밀가루도 찍어 맛보고, 콩, 쌀, 보리 등도 날로 먹어보고, 채소도 뜯어서 씹어보고, 양념류, 장류도 직접 맛을 본다. 특급 요리사로 가는 길, 그 첫번째 덕목을 갖춘 셈이다.

자운이 어머니는 자운이가 부엌을 차지하고 주방기구, 재료 등을 다 어지럽혀도 야단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아들을 격려해준다.

자운이는 웬만한 간식은 스스로 만들어 먹는다. 그런 자운이는 학교에서 아이들 말로 ‘인기 짱’이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직접 과자를 만들어 대접하니 인기가 좋을 수밖에..., 지난 ‘스승의 날’에는 빵을 만들어 선생님께 선물했다니 이런 선물을 받는 선생님은 얼마나 기쁠까.

달포 쯤 전에 자운이네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도 자운이가 구운 빵이 식탁에 올랐는데 그때만 해도 자운이에 대해서 잘 몰랐던 이 사람은 그런 좋은 ‘꺼리’를 놓치고는 ‘아차차!’ 후회해야만 했다.


반죽을 비닐봉지에 넣어 35분동안 숙성시킨다.ⓒ부안21


반죽을 방망이를 이용해 0.5mm 두께로 넓히고 있다.ⓒ부안21






별모양, 자동차모양, 나무모양의 틀을 이용해 과자의 모양을 뜬다.ⓒ부안21



그런데 기회가 왔다. 25일 저녁나절 우연히 자운이네를 방문했는데 마침 자운이가 과자를 만들고 있었다. 취재를 요청했더니 선뜻 허락해 주었다.

자운이는 반죽을 비닐봉지에 넣어 숙성시키는 중이었다. 우리밀가루에 설탕, 버터, 달걀, 이스트를 넣어 반죽한 후 35분을 숙성시켜야 한다고 했다.

자운이와의 인터뷰는 이 35분 동안에 이루어졌다. ‘왜 35분인가‘라고 물었더니 그 이전에 구울 수도 있지만 35분 정도 숙성시켜야 맛도 좋고, 잘 부풀기 때문에 양도 많아진다고 했다.

옳거니... 모든 음식의 맛은 이 숙성과정에서 나지 않던가. 고추장, 된장은 말할 것 없고, 돼지갈비, 생선 등도 숙성시켜 구워야 감칠맛이 더하고, 생선회도 경직 후 어느 정도 숙성을 시킨 후 먹어야 제 맛이 난다지 않던가.

자운이는 철저하게 숙성시간을 지켰다. 장인정신이 엿보인다. ’대충 숙성시키면 안되나?‘라는 나의 우문에 자운이는 고개를 저었다. 인터뷰 도중 자운이는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며 ’5분‘ ’2분‘ ’1분‘ 카운트에 들어갔다.

이렇게 숙성시킨 반죽을 판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를 이용해 0.5mm 두께로 넓혀 나갔다. 너무 두꺼우면 과자가 겉은 타고 속은 잘 익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모양, 자동차모양, 나무모양의 틀을 이용해 과자의 모양을 뜨는 발상이 아이다웠다.




과자를 굽기 위해 식용 기름을 그릇 바닥에 바른다.ⓒ부안21


오븐에 넣고 150도에서 20분을 굽는다.ⓒ부안21


완성된 과자. 달지도 않으면서 금방 구워서 뜨끈한데다 버터향과 함께 우리밀의 구수한 맛이 느껴지는 게 아주 일품이었다.ⓒ부안21



완성도도 높지만 무엇보다 달지 않고 금방 구워서 뜨끈한데다 버터향과 함께 우리밀의 구수한 맛이 느껴지는 ‘자운이표 과자’는  평소 너무 달아 빵이나 과자를 입에도 대지 않는 나와 일행들, 자운이가족의 저녁나절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글 사진 허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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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참여정부, '재벌-국가 동맹'으로 전락"

최장집 교수의 글을 발췌 정리한 기사다.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다.

 

얼마만큼 깊이있는 글인지는 잘모르겠다.

이제 읽어봐야지...



"참여정부, '재벌-국가 동맹'으로 전락"
  최장집 교수, "재벌이 중심되고 정책이 봉사. 권위정권보다 더 친재벌"

 

 

참여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는 '원로'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교수 겸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이 최근 참여정부의 변신을 '재벌-국가동맹'으로 규정한 뒤 "이제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파트너로서 국가의 정책이 그에 봉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질타했다.
  
  "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 계속 퇴보하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오는 25일 오후 3시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창립 10주년 및 월간 <노동사회> 1백호를 기념해 개최되는 '한국의 노동, 과거 현재 미래'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민주주의와 한국의 노동'이라는 글에서 최근의 '노동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를 둘러싼 자신의 견해를 가감 없이 밝혔다.
  
  24일 <프레시안>이 미리 입수한 이 글에서 최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적어도 제도적 절차적 수준에서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크게 발전했지만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무엇을 이루어냈느냐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볼 때는 그 발전이 매우 초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저히 퇴보했고 현재 계속 퇴보하고 있다"며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서로 반비례하여 발전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두 개의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우리 현실을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최 교수는 "중산층의 해체, 전체 경제 활동 인구의 16%에 이르는 3백60만의 신용불량자의 양산, 빈곤층의 증가, 고용 불안, 빈부 격차의 증가, 저상장 지속과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의 문제는 불평등의 심화라는 현상을 창출하고 이것은 또 범죄, 살인, 가정해체, 자살률 등의 증가와 같은 사회 해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서 최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민주정부들은 권위주의 정부보다도 더 성장 중심적, 재벌 중심-노동 배제적인 경제, 사회 정책을 추진해왔다"며 "특히 이것은 민주정부 스스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선택한 결과였다는 데 큰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정부의 이런 선택은 최근의 성장주의, 시장효율성, 시장합리성, 시장 주권이 큰 힘을 획득하는 데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고, 그 결과 민주주의 기반 자체를 스스로 허무는 위험 지역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의 잠재적 지지자들은 시장경쟁에서의 취약계층과 실업과 고용 불안정으로 위협받는 그룹-계층들, 시장경쟁이 가져오는 불평등화의 효과를 정치적 방법으로 완화해주기를 바라는 집단-계층들, 민주정치를 통하여 대표되고 보호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민주정부들이 스스로 시장원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탈정치화와 정치의 다운사이징에 앞장섬으로써 스스로의 권력과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킨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커다란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민주정부의 세 단계 '변신' : '재벌-국가 동맹'의 탄생
  
  최장집 교수는 민주정부의 '변신' 과정을 세 단계로 요약하며 참여 정부의 '변신'을 꼬집었다.
  
  "첫번째 변신: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세력들의 다수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것으로 믿는 정당의 후보를 지지해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정부가 성립하지만, 이들 정치적 집권 세력은 정부가 된 이후 어떤 경제적, 사회적 정책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 대안적 정책, 실천 프로그램, 이를 추진할 인적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
  
  두번째 변신: 정부가 된 이들은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막강한 헤게모니를 대면하게 되면서 국가관리와 정부정책의 수립-업적평가라는 압력에 놓이게 되는데, 그 압력은 주로 대중매체와 여론에 의해 두 방향에서 작용한다. 한 방향은 정부의 업적이 언론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평가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정부의 핵심이라고 할 리더십과 집권세력 자체에 대한 능력이 모든 계기마다 평가되고 추궁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두 외부세력에 대한 의존을 키워왔는데 하나는 권력집단인 재벌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내의 전문가 집단인 행정관료들이다. 이 과정에 대북문제와 한미관계에 있어서는 일정한 개혁성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견지하지만 아무런 경제-사회정책을 갖지 못한다.
  
  세번째 변신: 이런 기득권과의 타협에 의한 문제 해결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증폭시켜 민주정부는 빈부격차, 고용불안정, 노동자소외, 사회해체라는 결과와, 정체성의 위기가 수반하는 리더십의 약화와 정부수행-업적의 하락이라는 두 가지 부정적 효과의 증폭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에 대한 잠재적, 현재적 지지 세력의 이탈이 증대하고, 정부의 기반은 더욱 취약해진다."
  
  최 교수는 특히 "민주정부의 집권 세력들은 그들 스스로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을 가졌다고 자임하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의 민중적 지지기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취약하다고 믿는 보수 세력과 좋은 관계 설정 또는 지지의 확대가 중요하다고 믿고 그렇게 노력한다"며 "그 결과 민주정부와 재벌기업간의 동맹이 이루어지게 되고, 정서적 급진주의와 실제 제도적, 정책적 실천의 극도의 보수적 내용이 기묘하게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 결과 성장주의와 시장지상주의는 동전의 양면의 짝을 이루며 그 중심에 재벌-국가 동맹이 위치한다"며 "이 동맹에서 재벌기업은 국가의 역할과 그 행위의 범위가 무엇인가를 정의해 주고, 국가가 해야 할 정책을 제공해 주며, 관료 행정의 규칙과 규범의 모델을 제공한다"고 지적해다. 그는 "이제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파트너로서 국가의 정책이 그에 봉사하는 내용이 마련된다"며 "이 속에서 대학, 언론, 교회 등도 기업 조직과 연계가 강화되면서 그 반대편의 민중적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정부의 무능과 정책실패가 '노동 위기'의 근원"
  
  최 교수는 이같은 '재벌-국가동맹' 하에서 "노동 특히 노동운동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세계적 브랜드의 자랑스런 이미지 반대편 어두운 그늘에서 이들의 발목을 잡는 하찮은 무리처럼 인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기업이 노동에 대해 부정적,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문제가 되는 것은 개혁적인 것으로 상정되었던 민주정부의 태도이며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민주정부의 지도자들이나 노동행정 및 정책 결정자들이 기업계의 완강한 보수적 견해와 다를 바 없는 태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민주정부-재벌기업 동맹의 환경 하에서 노동운동이 자리잡을 여지는 매우 좁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최근 '비정규직법안'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 문제보다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의 방향을 완결짓고자 하는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이렇게 정부의 정책의도가 사전에 결정된 속에서 노조는 참여해 작은 것이라도 얻으며 그 과정에서 폭력적, 급진적, 파괴적 집단이 아닌 이성적 협상의 파트너라는 이미지 개선의 효과를 얻느냐, 아니면 더 중요한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현재의 얻을 것을 포기하고 판을 깨느냐 하는 선택의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드러난 전체 노동운동의 도덕적 위기를 증폭시킨 노조의 폭력사태가 과연 노조의 문제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는 바로 민주정부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한다"며 "이 문제의 근원은 정부의 노동정책, 사회정책, 경제정책에 있으며 민주정부가 민주주의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무능과 잘못된 정책의 산물"이라고 정부의 책임을 질타했다. 그는 "IMF 사태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화는 미국보다 더 높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수준으로 과격하게 진행됐다"며 "과연 한국의 노동시장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유연화해야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중소기업의 해외직접투자를 국내로 돌려 고용을 촉진하고, 투자를 유인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중산층으로 상승 이동 안 되나?"
  
  최 교수는 "한국 사회는 노동 관련 의식에 관한 한 철저하게 계급적"이라며 "한국사회의 상류층과 중산층, 나아가 한국인 일반이 노동에 대해 갖는 인식은 분명 계급적으로 차별적이고 민주정부의 지도자들과 노동정책 결정자들의 노동과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인식 역시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노동귀족이나 노-노대결이니 하는 담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1970년대 시카고의 US철강회사의 철강노조원들의 월평균 임금은 시카고에 소재하는 대학 교수들의 평균임금보다 높았고, 일본 IMF-JC 소속 기카큐슈의 신일본제철 철강 노조원들의 임금도, 또 독일 IN Metall 노조원들도 웬만한 대기업 사원은 물론 임원 봉급에 비해서도 큰 차이가 없다"며 "한국의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조원들의 임금은 왜 높으면 안 되고, 이들의 자녀들에 대해 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하고 가족이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때 그것을 왜 특혜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최 교수는 "이들 정규직의 임금 수준과 회사 복지가 중산층의 범주에 들어갈 대졸사원이나 임원진 또는 대학교수들의 그것에 비교되지 않고 왜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기업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그것과 비교되어야 하는지, 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산층으로 상승 이동을 하면 잘못된 것인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왜 국가와 기업이 아닌 정규직 노동자들이 책임져야 하는지, 기업의 오너, CEO, 경영진, 정부의 공직자, 중산층, 대학교수 등 다른 집단이나 계층에 비해 왜 노동운동은 특별히 도덕적이어야 하는지, 그들이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것만 왜 특별히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는지, 이들이 선진국 노조원들이 향유하는 경제적 시민권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 과격한 기준인지 한번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덕적인 접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 노동문제 풀 수 없어"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간곡한 당부로 글을 끝냈다.
  
  최 교수는 "노동의 위기로 나타나는 현상이 먼저 민주정부에 있다고 해서 노조, 노동운동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도덕적인 접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서는 오늘의 노동문제를 이해하고 풀어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지금 노동운동은 ①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중소기업의 여성ㆍ이주 노동자 등의 이익을 하나의 조직 내에서 어떻게 대표할 수 있을지, ②현재의 재벌기업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의 기업별 노조와 다르게 비정규직 중소기업 여성 노동자의 조직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과 영세자영업의 규모가 큰 산업구조를 어떻게 전환할지, ③노사관계에 있어서 법, 제도의 형태로 국가/정부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방향을 어떻게 모색할지, ④보수양당이 팽팽한 표의 균형을 만들 것이 예상되는 현실 정치의 전망 속에서 노동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의 표를 어떻게 조직할지, ⑤고전적인 생산직 노동자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노동이 생계의 중심적 수단이 되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온건현실주의적 노선을 어떻게 견지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 교수는 결론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과제는 선출된 민주정부가 어떻게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민주정부의 노동정책이 시장과 사회공동체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 정부 정책이 총량적 경제 성장만을 지향하기보다 평균적 공동체 성원의 경제적 조건이 개선되는 것을 동반하는 성장을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민주정부의 중요한 역할과 이를 견인할 시민사회에서의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5일 심포지엄에서는 최 교수의 기조 강연에 이어 그간 한국 노동의 현재 상황을 엄밀한 실증적 분석을 토대로 밝혀온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장이 '한국의 노동-진단과 과제'라는 글을 발표하고,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 정광호 한국노총 사무총장 직무대행, 주대환 민주노동당 정책의원회 의장, 황기돈 한국노동교육원 사무총장 등이 지정 토론을 할 예정이다.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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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환경귀족'이 환경운동을 망치고 있다&quot;

최근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쓴 글...

강양구 기자는 부안투쟁 당시 한두차례 전화, 메일 연락을 했던 정도로

알고 있는데, 사안을 명료하게 잘 정리하는 능력이 참 마음에 든다.

 

읽어봐야지...

 



 
  "때깔나는 자리만 찾아다녀" "권력인줄 착각해 폼 잡고 겉멋 부려"
 
 
  최근 '환경운동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환경운동 안팎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들은 공통적으로 시민과 유리된 환경운동이 급속히 제도화되고 있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어 주목된다.
 
  "'환경 귀족'이 환경운동의 위기 부추겨"
 
  최근에 나온 <환경과생명> 2005년 봄호(통권43호)는 이례적으로 편집자의 글과 외부 필자의 기고글을 통해 현재 환경운동의 모습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장성익 <환경과생명> 주간은 '풀뿌리와 함께, 현장으로'라는 글에서 "전국의 수많은 환경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비장하게 '환경비상시국'을 선언했지만 시민 여론의 반향은 냉랭했고, 천성산 싸움도 지율스님 개인의 고독한 정진이 두드러졌을 뿐 환경단체들이 실질적으로 수행한 역할은 미미했다"며 "그 와중에 우리 국토를 치명적으로 망가뜨릴 각종 법제와 정책들이 쉼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대응은 무기력해 보였다"며 환경운동의 현실을 진단하며 글을 시작했다.
 
  장 주간은 "다양한 진단과 분석이 있겠지만, '환경 귀족'의 문제를 우선 짚어보아야 한다"며 "노동운동 본연의 순수한 운동성, 진정성, 계급성을 잃어버리고 자본과 타협함으로써 변질과 오염의 길을 걸은 '노동 귀족'에 빗댄 '환경 귀족' 문제를 우리 환경운동에서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환경운동은 눈부신 초고속 압축성장을 거듭해왔지만 이러한 양적 성장에 걸맞은 질적 성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이 성장 과정에서 언론의 각광과 대중적 명성을 독과점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 환경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개화시키는 소중한 공적을 일궈냈음에도 오늘날에 와서는 환경운동의 진정성, 치열성, 순수성을 훼손함으로써 환경운동에 대한 대중의 신뢰와 사회적 지지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환경운동의 힘이 갈수록 커지면서 운동 단체를 마치 기업체처럼 운영한다든가, 대중의 추앙과 사회적 존경을 받으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때깔 나는' 자리만 찾아다닌다든가, 현장의 풀뿌리 대중들과 호흡을 같이 하기보다는 고위 관료ㆍ정치인ㆍ기업체 간부ㆍ기자 등과 같이 '힘깨나 쓰고 권력깨나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든가, 여기저기 행사장마다 얼굴 내밀고 사진 찍고 악수 나누는 일에 몰두한다든가, 언론에 입맛에 맞는 운동 주제와 방식을 선호함으로써 언론에 보도된 양으로 해당 운동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든가 따위의 건강하지 못한 관행들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마치 무슨 큰 권력이라도 쥔 것 같고 대단한 자리라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폼 잡고 겉멋 부리는' 운동을 펼쳐 오지는 않았느냐"며 '환경 귀족'의 행태를 꼬집었다.
 
  그는 "많은 시민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환경운동에 대해 지지와 성원을 철회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들러리만 서는 환경운동, 아직 제도화할 단계 아니다"
 
  <환경과생명>에 '환경의 위기인가, 환경운동의 위기인가'를 기고한 한겨레신문사의 조홍섭 환경전문기자는 '환경운동의 제도화'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조 기자는 "정부가 겉으로는 경제 성장과 환경 보전의 양립을 추구하는 듯이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권위주의적 국가는 여전히 개발 이데올로기의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꽃피어 환경과 경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서유럽의 어느 나라처럼 한국의 환경운동이 체제 안의 파트너십에 안주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어색하다"고 꼬집었다.
 
  조 기자는 "아직 한국에서 환경운동은 제도화할 단계가 아니며 뒤집어 얘기하면 체제 속에 안주하는 환경운동은 대중의 불신 속에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김대중ㆍ노무현 두 정부 들어 정책 참여가 활성화되면서 환경운동은 눈에 띄게 활력을 잃었다"며 "환경운동이 체제 안에 자리를 잡을수록 활동가들은 하는 일은 많아지면서도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활력을 잃지 않은 반핵 운동과 자연 생태 분야에는 현장과 지역 주민이 있다는 특징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성익 주간도 동감을 표시했다.
 
  장 주간 역시 "환경운동이 정부와 파트너십을 유지하거나 정책 과정에 참여하면서 운동의 원칙과 기준이 훼손되는 것이 문제"라며 "특히 환경운동이 정부와 같은 일을 하는 데는 '힘의 균형'이 중요한데 여러 가지 층위에서 국가와 자본의 힘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환경운동은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에 들러리를 서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장 주간은 또 "환경운동이 정부와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이 대개 격렬한 갈등이 불거진 다음 사후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문제"라며 "이 경우 심하게 말하면 정부가 골치 아픈 일의 '설거지'를 환경단체에게 떠넘기는 격이라고 할 수 있고, 정부가 저지른 일의 사후적ㆍ결과적 합리화를 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은 에너지대안센터 이필렬 대표도 이미 <창작과비평> 2005년 봄호(통권127호)에 기고한 '위기의 환경운동, 이제 변해야 한다'에서 제기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이 글에서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의 정책수립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시민들을 좋게만 보지 않는다"며 "어떤 때는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극단적인 반대 운동을 벌이면 시민들은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이 좀더 원칙에 입각해 한계를 분명히 정한 상태에서 정부와 관계를 맺어나갈 것을 주문한 것이다.
 
  "입맛 따라 골라먹는 언론 의존도 피해야"
 
  한편 10여년 이상 환경운동의 목소리를 정확히 보도해온 조홍섭 기자가 환경단체의 지나친 언론 의존을 꼬집은 것도 눈길을 끈다.
 
  조 기자는 "언론 기관은 아무리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운동 단체가 아니며, 대중 매체가 생산하는 담론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소비자이지 세상을 바꾸려는 시민들이 아니라"며 "환경단체로서는 언론을 상대로 한 활동이 효과적으로 보이겠지만 언론은 그들이 원하는 것만 골라 먹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을 활용하는 기술이 특출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린피스조차도 언론을 경계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며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은 필연적으로 대중과의 직접 소통을 소홀하게 만들고 대중이나 현장과 직접 맞부닥치는 것을 꺼리는 운동가는 이미 활동가보다는 기업체 홍보 담당자에 가깝다"고 일침을 놓았다.
 
  장성익 주간은 "환경운동의 위기는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환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그리고 제대로 이겨내야 한다"며 글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환경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풀뿌리 대(민)중 속으로, 현장 속으로, 지역과 생활 속으로 환경 운동의 뿌리와 더듬이가 뻗어 나가는 것이다. 환경운동이 끝내 지켜야 할 자리는 현장이며, 온 정성을 다해 만나야 할 사람은 풀뿌리들이다. '높은 곳'에 서기보다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자. '높은 자'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낮은 자'들과 어깨동무하자. '부안'의 경험에서 여실히 보았듯이, 국가와 자본에 가장 강력하고도 끈질기게 맞설 수 있는 참된 저항의 동력은 바로 현장의 풀뿌리들에서 나오는 법이다." 
   
  
  강양구 기자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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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땅없는 노동자 운동 활동가 인터뷰

신마리님 블로그에서 발견한 글... '땅없는 노동자' 라고 하는 구나~

진즉에 찾아서 읽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_ㅠ

 

피터 허디스, 루 터너(Peter Hudis. Lou Turner) <뉴스와 편지> 1998년 11월
원 제목 = 브라질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몸부림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이 단체의 사람들이 땅 소유 문제에 대해, 생산 과정의 문제에 대해, 남녀 평등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뭘 고민하는지 보여줍니다. 너무나 근본적이고 철저한 고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룰라가 대통령이 될 정도로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룰라 뒤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브라질 진보 세력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글입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브라질 `땅없는 노동자 운동'(Movimento dos Trabalhadores Rurais sem Terra, or MST)의 활동가 모니카 디아스 마르틴스 (Monica Dias Martins) 인터뷰다. 1979년에 세워진 이 단체는 회원이 50만명이며 수많은 땅 점거와 항의에 참여했다. 이 인터뷰는 1998년 11월2일 피터 허디스 루 터너(Peter Hudis. Lou Turner)가 진행했다.



- `땅없는 노동자 운동'이 요즘 전반적으로 강조하는 것에 대해 말해주시죠?

-- 우리의 쟁점은 토지 개혁 그 자체가 아닙니다. 땅 문제에서 시작했지만, 다른 많은 문제들도 제기합니다. 생산, 교육, 사회주의, 급진적인 사고 같은 거죠. 우리는 우리가 단순히 땅만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생산 관계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기계, 트럭같은 물건은 나눌 수가 없어요; 모든 가족이 참여하는 재산의 사회적 소유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점유한 땅은 우리 단체의 소유도, 그렇다고 정부의 소유도 아닙니다. 직접 생산하는 가족이나 모임의 것이죠.

모든 것이 집단적으로 결정됩니다. 먼저, 사람들은 땅을 어떻게 쓸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두번째로, 많은 개선작업에 필요한 기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토론하면서, 우리는 이익이 사회 과정 측면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이익을 나눌 것인가 같은 많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학교에는 얼마를 배정할 것인가? 건강 관리와 어린이 양육을 위해서는 얼마를 쓸까? 땅을 점유하면서 협동노동 과정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이 것은 싸움속에서 떠올랐습니다. 이 문제는 소규모 집단에서만 생긴 것이 아니에요. 어떤 정착지는 800가구 이상이나 됩니다.

생산물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다른 문제가 생기더군요. 우리는 우리의 협동노동 체계가 자본주의 체계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도시의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때는 생산자들이 직접 손으로 종이에 글을 써 옥수수나 콩 자루 안에 넣었어요. 자신들이 다른 방식으로 생산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구요.

우리는 새로운 사회의 생산 과정을 창조하려면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부도 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하고 오후에는 공부를 하죠.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과 관련된 것입니다. 정착지에 학교가 있습니다. 선생님도 아침에는 육체노동을 해야합니다. 자신의 생계수단은 자기 스스로 마련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누군가는 경험을 체계화해야하고,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경험을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할 수 있으니까요.

정착지 내부에서 토론하는 것외에도 우리는 지역별, 주별, 전국 단위 세미나를 매년 엽니다. 여기서 우리가 각각 활동한 서로 다른 것에 대한 지식을 교환합니다. 이런 모임에서 정치 변화, 정부 변화, 자본주의 변화에 관한 전략이 나옵니다. 여기의 논의 결과를 정착지로 되가져가서 새롭게 생각을 주고 받습니다.

- `땅없는 노동자 운동'이 20세기에 이미 실패한 혁명의 조명 아래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의 구별을 의식적으로 허물려고 한다고 말하시겠습니까?

-- 처음부터 그렇게 분명했는지는 잘모르겠는데요, 지금은 분명합니다. 땅없는 이들만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도 정착지에 와서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봄으로써 공부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시작된 민초운동(민중운동)은 사람들에게 가난해지고 모든 것을 잃고, 지식인의 모든 것을 버리고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땅없는 노동자 운동'은 이런 편견을 고집하지 않아요. 지식인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시하지 않아요.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지시합니다.

나는 한 때 혁명당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땅없는 노동자들과 함께 있으니 그들을 지시할 수 있을 거라고 좋아했어요. 그러나 나는 대중운동과 당 사이에서 변속장치 벨트 구실을 하려고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정착지의 교육과정, 그러니까 급진적인 행동을 하고 급진적인 사고에 참여하는 모든 것들이 사회를 바꾸는 문제와 관련해 제 흥미를 끄는 것들입니다. 정치 정당 대부분은 이런 문제를 토론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선거니까요. 그들은 먼저 선거에서 이기고 나중에 여성 문제나 땅없는 이들 문제를 논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 말을 안믿어요. 선거는 크게 바꾸지 못해요. 우리는 기다릴 수 없어요. 스페인 내전 때와 꼭같은 거죠. 대중은 생산관계를 당장 바꾸고 싶어했지만 정당들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 혁명적으로 권력을 쥔 뒤에 생길 새로운 관료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피할까 하는 문제에 대한 토론도 하십니까?

-- 혁명적이 되도록 남들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사회주의적 생각을 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과정을 바꿀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권위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육과정 중에 우리는 마르크스, 레닌, 그람시, 체(게바라) 등등을 공부합니다. 땅없는 사람들은 이들을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사회 변화에 대한 중요한 생각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어떻게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것인가를 익히는 과정의 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아주 놀랍고 도전적인 운동입니다. 우리가 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꼭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결코 그치는 일이 없어요. 내가 사회주의 지식을 갖췄으니 이제 이것이 전형이라고 퍼뜨릴 수 있게 해달라,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못해요.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문제, 구체적인 사회 문제를 파악하느라고 바쁩니다. 우리가 사회 변화를 만들고 있으며 이것은 브라질을 사회주의로 이끌 수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 협동 과정에서 남녀 차별주의와 노동의 남녀 구별을 허무는 것과 관련해 문제에 직면한 것이 있습니까?

--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밖에서는 혁명을 할거야, 하지만 집 안에서는 매우 전통적이 돼야지. 우리는 함께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려고 하고 어떻게 달라질지 토론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내부에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의 하나입니다.

땅 점유 과정에서 처음 행동한 이들이 여성입니다. 협동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남성과 똑같은 댓가를 받습니다. 여성이 언제나 음식을 만든다거나 남성이 언제나 한다거나 하지 않고 교대로 합니다. 저는 큰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상호관계 측면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큰 변화를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 브라질의 여성운동가들이나 흑인운동과 관계를 형성하셨습니까?

-- 네, 아주 흥미있는 방식으로요. 저는 북동 브라질에서 일하는데, 그곳은 아주 보수적이에요. 우리는 남쪽의 여성 모임에 초청받아 갔습니다. 거기 사람들은 여성 문제에 훨씬 진보적입니다. 400명의 여성과 모임을 준비했어요. 아주 컸지요: 우리 단체가 한 것은 모두 큰 것같아요. 1997년 8월에 나흘동안 만났습니다. 여성의 구실, 살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부억에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침실에서는 어떤 관계가 형성되나 등등의 주제를 토론했습니다. 사회 조직 문제, 남성과 여성의 공적, 사적 관계 문제도 토론했습니다.

흑인운동은 브라질에서 강력합니다. 그 뿌리는 퀼롬보(Quilombo) [탈출한 노예들이 세운 독립 공화국]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들 또한 협동 생산 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 단체는 몇몇 흑인 조직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성운동에 관해서는 특정한 단체와 함께 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우리 단체 활동가들이 도시에서 흑인 조직이 주도하는 대중동원에 참여합니다.

- 현재 당신 단체에서 토론하고 있는 이론적 문제 몇가지를 언급해주시죠?

-- 우리는 좀 더 이론적인 잡지뿐 아니라 신문도 발행합니다. 활동가들을 위한 내부 저널도 있습니다. 신문에서 신자유주의 문제가 제기됐고 토론됐습니다. 우리는 세계화 과정이 정말 새로운 건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로 발전한 제국주의인지 토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혀 새롭고 다른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이들을 연구해서 그들이 제국주의같은 주제에 대해 어떤 말을 했는지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조직의 어떤 이들은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견해를 비판했습니다. 생각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원문: www.newsandletters.org/12-98brazil.htm
번역: 신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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