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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직업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만들고,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좀더 권위와 명예, 부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그/녀들의 삶들,
이러한 길들의 목적과 향방이 어디인지는 사고할 필요가 별로 없다.
목적에 대한 사고하고자 하는 경계지점에 그/녀가 도달하자마자 따스하고 안락함을 담지한 수많은 논리적 내용의 차단벽들이 그/녀를 향해 작동하기 시작하니 말이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들어 포근한 안식처를 마련하는 일, 그 안식처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일...그래서 풍요로운 휴가를 꿈꾸는 일.
아프간 피랍과 이랜드 투쟁의 의미가 그/녀들의 치열한 일상을 잠시나마 멈춰세울 수 있을까..



우리의 존재는 무엇일까
'직장'이라는 공간에서의 공적인 생활이라는 경계선이 그/녀의 노동을 좀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방책임을 비판하는 우리에게 일과 생활이란 무엇일까..그리고 휴가란 또 무엇일까..

학생회, 동아리적인 활동이라는 비난, '정상적인 어떤 궤도'에 도달하지 못하는 나약한 도피자들의 집단이라는 비웃음..
바로 당신들이 알지못하는 그 각자의 삶의 향방과 목적을 가늠하고, 그 길로 매진하는 당신의 목적과 향방을 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그렇게 우리의 존재감을  말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대답일까.


따라서 나와 우리의 '일과 노동'이란 어떤 특정한 경계선 안에 있는 영역을 넘어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의 구분을 통해 통제되고 관리되는 삶의 양식과 일상의 구성과는 전혀 다른 질과 구성요소로 채워지는 일상.

일은 곧 생활이라는 말로는 채워질 수 없는 어떤 난감한 영역을 발견한다.

잠시 쉬기위해 활동의 시공간을 떠났을때, 나의 존재의 이유와 삶의 방식은 현실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어 붕붕이 떠다니고 있는 한마디의 관념적 단어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다.



대중들의 삶의 조건의 문제를 인식하는 일과 또한 그것이 엄청난 힘과 내용적 근거의 풍부함을 담지하고 있는 그것(이데올로기라는 것)을 나와 우리의 존재의 객관적인 조건으로 사고한다면,

나는 다시 내일부터 분명하게 사무실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게 되겠지..

 

활동가로 살아가는 일상이란
그래서 대중들의 삶과 생활의 굴레를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나를 둘러싼 삶과 생활의 조건에 대해 명확하고 분명하게 정리해낼 수 있을 정도로.
사뿐하고 가뿐하게 그 경계의 영역들을 넘나들수 있을 정도로,
뜨겁고, 가벼우며, 드넓고, 또한 깊어져야 한다. 

 

경계선을 훌쩍 훌쩍 넘으면서 어떤 방향의 '지평'을 만드는 일에는

어쨌거나 훨씬 더 많은 열정어린 몸짓과 노래가 필요하다.

 

그리고 때로는 그 경계선의 첨예한 대립지점으로부터도 훌쩍 떠나 어떤 형상과 모습으로 내가 존재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잘 볼 수도 있어야 한다.

 

나의 여행은

그 곳을 비틀비틀 걷고 있는,

아니 너무 열중해서 걷고 있는,

아니 너무 욕심 많게 걷다가 지치고 있는,

아니 어딘가 비틀려 꼬여 괴로워하고 있는,

어쩌면 사랑하는 것에 대해 어쩔 줄 몰라 두리번 거리고 있는..

이 모든 내 모습과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진상과

맥락과

의미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일주일 동안의 숨죽인 휴가를 마치고..

다시 보송보송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훨씬 더 많이 건강하고, 강해져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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