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노조 지역본부에는 상근자가 한명이다.

본부마다 비상근 집행부를 두는 곳이 있거나, 임원이 상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곳이 더 많다. 그래서 지역본부

조직국장의 역할은 조직상담, 비정규투쟁, 연대투쟁, 정책생산,

조직관리, 임원비서역할(?) 등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충북본부에 그렇게 혼자 북치고 장구칠 사람이 병가 한달

들어갔으니, 본부 사업이 지장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파업에 들어가는 사업장이 있고, 자잘한 문제가 있는 사업장

들도 있어서 조직실에서 내가 한달간 지원을 가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3주간 거기서 내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거기서 회의하고, 그냥 이야기하고, 술먹고, 교섭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우진환경분회...

 

처음에 너무 웃겼던 건 사측의 태도나 경찰, 근로감독관의 말에 잔뜩 화가 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느리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증말 열받더구만유~"

라고 하는데 너무 웃긴거다.. 참 웃을 수도 없고..

 

그런데 이 동지들.. 말투만큼이나 심성은 더 순하디 순해서 교섭 후에 근로감독관

한테 전화가 와서 사측이 잘못하고 있네라는 뜻의 한마디 말만 해도 "어이구~ 그

사람은 우리 편인가벼~~"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그렇게 믿게 만드려고 근로감독관이

엉까는 건데도,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악하게 생각할 줄을 모르고, 심지어는 사측에

대해서도 "아이구~ 그 사람이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간디? 그 사람도 노력하고

있는겨~~"라고 하여 나의 복창을 터트린다...

 

어느 날 간부들과 모이기로 했다...청주시, 내수, 증평에 있는 간부들을 돌면서 차에

태워서 청주시에 있는 사무실에 모였다. 그 차에 타고 있다가 조직부장을 데리러

갔는데, 병원에 약을 타러갔었다고 이야기했다. 조직부장이 차에 타기 전 부분회장에게

물으니 '우울증'이 있다고 했다. 순간... 우진환경분회는 지난 10월 17일 공공노조에 가입한 후,

사측은 계속 교섭해태, 노조탈퇴공장, 용역깡패 동원한 분회장 폭행 등등을 일삼았고,

파업에 돌입한 후에도 사측은 이렇다할 진전된 사측안을 내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그에게

우울증을 가져온 게 아닌가 가슴이 덜컹 했다... 그런데 그런 우려로 조심스럽게

'노조하고 나서 그렇게 된 거에요?'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그들은 웃으며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이구.. 노조때문에 요즘 많이 나았어유~~ 그 양반 평생 소원이 노조있는

회사에서 일해보는 거였거든유~~ 요즘 날라다녀유~~~"

 

참.. 노조라는 게 뭐길래 평생 소원이 노조있는 회사에서 일해보는 것인가. 우리는 위기네

뭐네라고 하지만, 그래도 노조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소원이 될 수 있다는게

참 생경하면서도 가슴이 뭐랄까 먹먹해졌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허세욱 열사 유서를

들으면서였다. "저멀리 가서도 묵묵히 꾸준히 민주노총과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이라는

유서를 들었을 때,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 때가 공공노조 중앙에 올라간 직후였는데,

그 때 정말 잘 해야겠다, 그냥 예전처럼 민주노총이 그렇지 뭐 이렇게 냉소적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잘 해봐야겠다. 잘 하는게 뭔지 더 열심히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파업한지 4주되었는데, 이 곳은 막판으로 가고 있다.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 중 전국 5위인 이 회사는, 처음에 10억으로 시작하여 14년이

지난 지금 1000억이 넘는 자산규모가 되었다. 폐기물을 다루는 회사는 이윤을 남기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고속성장을 한 것은 불법으로 폐기물을 매립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그 폐기물을 실은 차를 운전하는 노동자였다. 그래서 그 폐기물이 매립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원래 계약했던 것보다 부풀리는지 아닌지를 알았다. 소각해야 하는 것도

마구 매립하였지만 잘못인 줄 알았지만 짤릴까봐 회사에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회사는 알고 있다. 민주노조 깃발을 세운 이들이 파업을 끝내고 회사로 들어왔을 때,

이전처럼 그렇게 불법적인 매립을 하기도 쉽지 않고, 자신이 싹싹 긁어가야 하는 돈들을

노동자의 댓가라며 내놓으라고 할 것을..(몇 년동안 이 사업장은 매년 임금이 하락해 왔다...) 

그래서 회사는 이들을 회사로 복귀하게 하고, 그 후에 노조를 말살하려고 한다.

길게는 10년 넘게, 짧게는 1년 넘게 이 곳에서 몸을 담았던 조합원들... 운전직이면서도

회사에 고용되어 정규직으로 일하는 곳이 거의 없는 현실을 생각했을 때, 이 회사에 미련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당당히 걸어서 회사를 들어갈 수 없다면, 회사를

날려버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잘못하여 조합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하는 것

같다며 괴로움에 야밤에 문자를 보내는 분회 간부들... 이들의 심정을 내가 모두 알 수 있을까...

그렇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오늘 밤 괜시리 그 문자에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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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7 22:51 2008/03/07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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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름달 2008/03/10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북에 가있었군요. 최근에 글이 없길래 궁금했는데....

  2. 까치 2008/03/11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름달? 내가 아는 문동지인가여? ㅎㅎ

  3. 찐빵 2008/03/23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주변에 널려있는 '장투사업장'을 보고도 무덤덤하게 그러려니 하는 스스로를 보며, 이래저래 심각한 징표라고 생각하던 참인데, '냉소'라는 토양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그리고 위의 '름달'씨는 아마 당신과 서울역에서 우연히 만나 술먹었다던 그 양반일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