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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10차 세미나 (전쟁과 여성 1차)
11월 4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전쟁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 전쟁의 성격을 발본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전쟁과 여성’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그 첫 번째 주제는 폭력으로 에티엔 발리바르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와 ‘잔혹성의 지형학에 관한 개요: 세계적 폭력시대의 시민성과 씨빌리티’를 텍스트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우선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다양한 매개들 중 특히 인종주의에 대해 분석하는 이유 또는 인종주의에서 분석을 출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시기 전쟁의 폭력에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의 위치를 짚어보아야 한다. 동일성의 정치, 폭력이 성차별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추측하나 구체적인 논증을 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는 정세적 맥락: 사회주의권 붕괴 후 유럽에 네오파시즘 등 다양한 인종주의가 강하게 나타나게 되며 여전히 현존하고 있다. 나치 이후 인종주의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고 사고해왔으나 인종주의 운동과 이를 등에 업은 정당들까지 부상하고 있다.
페미니즘의 문제에 대해 발리바르는 텍스트에서 지나가는 언급 정도를 하고 있다. 1> 성차별주의적 도식들(우월한 것-남성과 저열한 것-여성)은 인종주의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는 항상적으로 평행적이고 동시대적으로 등장하며 서로를 강화한다. 교환적이지만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2> 가족 즉, 민족과 인종의 재생산 문제. 민족성 전화와 가족의 전화에 깊은 연관이 있지 않은가란 예측이 가능하다. 인종에 대한 분류와 위계에서 성적도식을 사용하는 것; 우생학, 강제 피임 등과 관련한 문제들은 단순히 가족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종 민족의 재생산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80년대 이후 인종주의가 공식적 담론으로 등장한 것은 우발적이거나 이질적인 것이 재도래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민족국가 내부에서 공존했고 내재했던 요소로 보아야한다. 민족의 요소는 혈통과 언어. 인종주의는 민족주의의 (핵심적) 보충물이다. 인종주의가 민족주의의 내부적 요소가 되면 상보적이면서도 뒤틀림 효과를 양상하게 된다. 민족국가는 민족적 동일성을 제1의 구성요소로 가진다. 그리고 민족공동체 내에서 구성원들은 최소한의 평등과 재생산 보증 받게 된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 인종주의에 의한 위계가 모순적으로 공존하게 되고 그 부정적 효과들로 민족국가는 위기가 발생한다. 민족국가의 동일성이 해체되고 초극단적 폭력을 동반하는 민족주의와 성차별주의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시민권과 시민성; 권리들을 가질 권리 - 법률적 보장과 정치적 권리의 문제가 된다. 시민권의 제약을 받는 대표적 부류가 여성과 이주민(노동자)이다. 그러나 법적 차원의 정치적 권리를 부여받게 되는 과정이 넓은 의미에서 권리를 가질 권리로 가기는 힘든 것 같다. 차후에 기회가 된다면 민족주의와 성차별주의 - 민족국가와 재생산, 여성에 대해 문제를 다룬 글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11차 세미나 (전쟁과 여성 2차)
11월 25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전쟁과 여성”을 주제로 열리는 2차 세미나에서는 발리바르의 “폭력, 이상성, 잔혹성”이라는 글을 갖고 세 범주의 연관성을 알아보았다.
우선 세미나 교재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폭력과 이상성의 연관은, 지식인들이 폭력을 연구대상에서 제거하려는 지배세력들에 대항하려는 측면에서 폭력을 이상화하지 않았나 하는 점과 폭력 반대를 이상화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관계가 있었다는 점. 하지만 폭력을 반대한다는 것이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 자체를 제거하는 것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정의나 사랑과 같은 이념이 폭력 반대의 수단으로 이상화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오히려 비폭력이 더욱 큰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폭력과 잔혹성의 연관은, ‘게발트(Gewalt)’라는 말을 통해서 국가 형성 과정이 폭력 행사를 수반했다는 점, ‘권력=폭력’이라는 것은 국가장치 형성의 과정이 폭력적이라는 점을 인식케 했다는 것이 유의미한 점이다. 특히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서 학교에서 행해지는 교육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교육은 ‘개종’이며, 재소속화의 과정으로서 고통을 가한다. 그러나 ‘법은 법이니까’ 라는 식으로 동어 반복적으로 민족이나 국가, 법 등을 신성화함으로써만 이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과정은 한계를 지닌다. 잔혹한 폭력은 게발트로 흡수되지 않는 잔혹성을 지닌다. 과잉인구, 인종청소 등은 항상적으로 게발트 과정에서 존재했던 부분이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잔혹성이 더해졌다. 폭력의 잔여물에 잔혹한 폭력이 존재하고, 국가지배, 남성지배, 식민지배 등 게발트에는 과잉이 존재했다. 극단적 폭력은 특히 아주 강력하게 성별화된다. 성별화된 사회적 실천, ‘정상성’의 사회적 규범이 깨질 때 폭력은 발생한다.
이상성과 잔혹성의 연관은, 게발트는 (근대적) 이상성을 보충물로 하는 반면, 잔혹성은 이상성은 보충물로 하지 않고 물신이나 휘장 따위를 필요로 한다.
반폭력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사회 자체에서 권력에 의해 행해지는 엄청난 폭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폭력을 더욱 심화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현재 상태를 비폭력적 상황이라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관건은 폭력을 이상화하거나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 것, 즉 대항 운동 자체도 운동 과정에서 폭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고, 대항폭력은 항상적으로 잔여물인 잔혹을 동반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반폭력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을 어떻게 감축할 것인가. 인간관계나 남녀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라는 점을 논의하였다. 중심 국가에 의해 조장되거나 예비되는 폭력은 누적효과가 있기에 사회에 외상을 남겨서 쉽게 잊혀지는 문제가 아니기에 장기적인 치유의 과정은 사회적 관계들을 변혁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전쟁을 앞선 세 범주와 연관시켜 본다면.
20세 후반부의 ‘새로운 전쟁’에서는 보편주의가 아닌 인종, 종교 등의 특수주의를 이념으로 내세워 전쟁에 국민을 동원했던 점을 짚어볼 수 있다. 결과 다른 인종을 집단 살해하는 잔혹한 폭력이 행해졌는데, 그 잔혹함이 과거 ‘해방전쟁’ 등에서의 그것과 성격이 다른 것은 이유는 폭력이 이상화되고, 전쟁 행위 자체가 이상화되었다는 점을 짚을 수 있다.
여성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새로운 전쟁에서 ‘적의 여성화’가 극단적으로 드러나 집단강간이나 살해 등이 드러난다 할 때, 실상 모든 전쟁에서 그러한 것이 공통적으로 반복적으로 드러났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폭력이 전쟁 시기에 극단화되는데 이것이 사회적 문제나 폭력으로 발언되지 못했기에 피해가 크지 않았나. 전후에 또는 재건 과정에서 여성의 피해나 폭력들이 발언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미나 교재가 어려웠기에 올바른 이해를 도모한 자리였다. 폭력이라는 범주 외에도 전쟁을 사고하는 데 있어 필요한 가부장제나 민족주의 등을 살펴보자는 제안으로 세미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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