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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6호] 평조합원운동과 혁명정당 건설 운동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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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조합원운동과

 

혁명정당 건설 운동으로 나아가자!
 

 

- 통진당 반대투쟁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향 -

 

 

고민택

 


  한국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운동과 역사는 2011년 1월 3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이하 대대)에서 최종적 파산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날 대대에서 2012년 선거방침과 함께 정치방침을 정하기 위한 안건을 다루도록 되어 있었지만 회의 도중에 참으로 어이없게도 ‘의결 정족수’ 미달 사태가 일어나 토론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무산되고 만 것이다. 물론 정족수 미달 자체는 파산의 원인이 아니라 최종 결과일 뿐이다. 아무리 늦춰 잡아도 민주노총을 통한 정치세력화, 그의 딴 이름이었던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는 지난 2007년 대선을 경유하면서, 나아가 2008년 분당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 때 이미 실패로 끝났다.

 

  그로부터 통진당이 등장하기까지 민주노총이 앞장서 추진한 이른바 ‘진보대통합(당)’ 시도는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연속적 과정에 불과했다.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꼴’이라는 말처럼이나마 ‘진보대통합’을 시도하려다 ‘민주대연합’만 키웠는가 하면 끝내는 자본가정당과의 통합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 날 대대의 모습은 민주노총에 의한 정치세력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것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이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새 국면이 열리게 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한 운동과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만 “자본가정당과 단절하라”

 

  안건 심의가 무산되고 난 후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선거방침은 중집에서 결정하는 것이 기존 관례”였다는 것과 나아가 “정치방침은 조합원 총투표를 묻는” 방식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는 사실상 통진당에 대한 배타적지지를 밀어붙이겠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영훈 위원장은 2월 5일 통진당 “2012 총선승리 전진대회”에 참여하여 “통합진보당이 진정한 진보가 무엇인지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발 빠르게 행동으로 옮겼다. 그 뒤 민주노총은 ‘중집회의’에서 ‘대대’에서 무산된 안건을, 중집위원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 통과시켰다. ‘대대’에 상정된 안건이 무산되었다면 다시 ‘대대’를 소집하여 거기에서 토론을 진행하고 찬반을 묻는 것이 당연한 절차임에도 ‘대대 안건’을 ‘중집’에서 일방적으로 결정지은 것이다. 동시에 민주노총 ‘상집’에서는 위원장이 대대’에서 언급한 ‘조합원 총투표’도 아닌 ARS 전화를 통해 정치방침에 대한 조합원 의사를 묻겠다는 결정까지 내렸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은 ‘선거방침’은 물론 ‘정치방침’까지도 사실상의 ‘통진당 배타적지지’로 최종 확정지었다.

 

  이로써 “자본가정당과 단절하라”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는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고 말았다. 사실 “자본가정당과 단절하라”는 요구는 통진당이 성립되기 이전, 이른바 ‘진보대통합(당)’ 논의가 무성할 때, 즉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기에, ‘진보대통합(당)’이 성사된다고 해도 그 ‘진보대통합(당)’이 당시 민주당(현재 민주통합당)과 민주대연합(야권연대/반MB선거연합 등)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겨냥한 요구였다. 그러나 현실은 민주대연합은 더욱 활개를 치게 되었으며, 마침내 통진당이 등장하는 사태로까지 진행되었고, 끝내는 그 통진당을 민주노총이 또 다시 사실상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데까지 나아가버리고 만 것이다.

 

  통진당 등장 이후 “자본가정당과 단절하라”는 요구는 민주노총을 향한 요구로 집중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통진당 자체가 이미 자본가정당인 국참당과 통합을 해버린 상태에서 이제 민주노총이 통진당에 대한 조직적 입장과 태도를 결정해야 하는, 즉 민주노총의 선거/정치방침을 정하는 문제가 마지막으로 남게 된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민주노총의 통진당에 대한 배타적지지 결정을 막기 위한 ‘선언운동본부’의 활동과 ‘10만조합원 서명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또 바로 이런 정황 때문에 민주노총 중집은 ‘통진당, 진보신당, 사회당’을 모두 ‘진보정당’이라고 하기에 이른 것이다. 통진당만 진보정당이라고 하고 싶었겠지만 그럴 경우 반발이 훨씬 강해질 것은 물론 잘못되면 통진당을 진보정당이라고 규정하는 데 제동이 걸릴 것을 우려해 진보신당과 사회당을 끼워 넣은 것이다. 즉 진보신당과 사회당을 진보정당으로 적극적으로 인정해서가 아니라 통진당을 진보정당으로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통진당/배타적지지 반대운동의 한계

 

  이제 현실은, 민주노총은 4. 11 총선에서 실질적으로 통진당에 대한 배타적지지를 결정한 상태다. 사실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 통진당을 진보정당에서 제외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통진당을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려면 그 동안 진행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의 역사를 전면 부정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존재하거나, 그게 아니면 통진당 자체를 자본가정당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만큼 통진당이 압도적으로 자본가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둘 모두 그러기에는 한계가 있거나 무리한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의 현실은 통진당을 진보정당에서 제외하더라도 그 대안이 곧 진보신당과 사회당(또는 이 둘의 통합당)에 대한 지지, 지원을 결정하는 것밖에 없는데, 민주노총에게 이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기에는 주객관적으로 어떤 설득력도 명분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바로 이 때문에 ‘선언운동본부’도 통진당이 진보정당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현실적 한계 때문에 즉각적 대안을 말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노동자 정치 세력화 평가’를 다시 하자는 주장을 되풀이 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이 현재와 같다고 해서 민주노총이 추진하고 있는 통진당에 대한 지지와 잘못된 정치세력화 방향을 그대로 가게 놔둬서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통진당이 진보정당이냐, 아니냐’라거나 또는 ‘어떤 당을 지지할 것이냐’를 따지는 수준의 논쟁 구도 자체를 먼저 전복시켜야 한다. 또한 지금 ‘선언운동본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대 소집’ 요구도 절차상으로는 그럴 수 있겠지만 사태를 실질적으로 바꾸어 낼 방안이 될 수는 없다. 설령 ‘대대’가 다시 열린다 해도 기존 프레임(틀)과 패러다임을 그대로 둔 채는 몸통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변죽만 올리다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전에 ‘선언운동본부’ 토론에서 대안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노동자계급정당’, ‘사회주의 정당’, ‘혁명정당’을 별다른 매개 없이 곧 바로 대입시키거나 잘못된 매개를 통해 주장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어떤 매개를 거쳐 그러한 주장을 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대중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계급의 기본적, 원칙적 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과 노동자계급의 일부로서의 정치조직, 또는 노동자계급 속에서 먼저 동의한 일부와 노동조합 바깥의 정치세력이 결합한 형태로서의 정치조직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지난 10여년의 과정을 거쳐 이를 근본적으로 논의해야하는 현실과 지금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는 사실 100년이 넘도록 아직도 논쟁 중인 쟁점이며 무엇이 정답인가를 여전히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만큼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고 이 논쟁을 피해갈 수는 없다. 무엇보다 현실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이 묻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역사와 논리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

 

  그동안 민주노총이 구 민주노동당과 일대일 대응, 직접적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구체적 역사적 현실이 그것을 가능할 수 있도록 한 때문이다. 알다시피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특정 정파의 노선이나 목표이기 전에 대중 자신의 요구이자 바람이었다. 또한 그를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서는 기존 부르주아 정당이 아닌 노동자가 다수로 참여하는 별도의 (제도권)정당을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그 별도의 정당이 어떤 (성격의)정당이냐의 문제는 거의 중요치 않게 다뤄졌다는 데 있었다. 어쨌든 민주노동당도 출범 초기에는 대중들에게 있어서는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라기보다는 87년 이후 성장한 대중적 노동운동의 한 역사적 산물이라는 측면이 보다 더 강하게 다가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지지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립될 수 있었다. 혁명 세력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다만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즉 형식적으로는 혁명 세력이 처음부터 타의나 강제에 의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배제당한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도 민주노동당이 정식 출범하기 전인 1999년 8월 23일 열린 제15차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정당 창당에 따른 민주노총의 방침’ 중 “1. 일반원칙 1)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정치의식을 고양하고 대중조직으로서의 자체 정치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2) 민주노총은 기존 부르주아와 보수정당이 아닌,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대의에 입각하여 활동하는 제 정치조직에 민주노총 조직원(조합원 및 각급 상급단체 임명직 간부)이 참여하여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3) 민주노총은 제 정치조직과의 관계에서 대중조직 고유의 상대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제 정치조직과의 연대, 지지, 지원을 강화하되 그 구체적 내용은 조직의 결정에 의한다.”를 채택함으로써 위의 사실을 뒷받침했다.

 

  이와 같은 한국의 지난 역사에서, 그리고 오늘의 현실에서 노동조합과 정치조직과의 관계 설정 문제는 바로 위 일반원칙을 되살리는 수준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위 일반원칙은 그 뒤 비록 사문화되었지만 아직 폐기되지는 않았다. 민주노총(대의원)에게 통진당이 진보정당이 아니라는 것을 결의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의 주장일 수는 있어도 그것을 중심으로 한 운동은 한계가 뚜렷하다. ‘선언운동본부’의 현실을 보더라도 이미 알 수 있다. 나아가 단지 현실적 한계 때문만이 아니라 그 운동이 갖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한다. 즉 그 운동을 중심에 놓을 경우 의도와 상관없이 또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둘러싼 논쟁과 실천이 지난 과거를 되풀이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다시 말해 프레임과 패러다임 그 자체를 문제 삼는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과거에 갇히는 효과만을 낳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민주노총 대대는 제 정파 사이의, 더 정확하게는 이미 충분히 관료화된 상층 간부 사이의 의미 없는 정쟁터가 된 지 오래다. 어떤 면에서 민주노총 대대는 부르주아 의회 이상으로 대중과 괴리되어 있으며 대중으로부터 자립해 있다. 그 정도가 심해 대대를 겨냥하여 아래로부터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낸다는 것 자체가 무망한 일이다. 아니 그럴수록 대중에 대한 직접 정치를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뿐이다. 이는 단지 특정 정파의 패권 때문만이 아니다. 이미 특정 정파를 떠나 모든 정파에게 일반화 되어 있다. 이른바 3분립(국민파, 중앙파, 현장파)구도나 좌/우 구도조차도 벌써 무너진 상태다. 오직 조합주의, 개량주의 정치를 둘러싼 현실적 이해관계만이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결과와 무관하게, 대중들에게 운동으로서, 요구와 주장으로서 그래도 객관적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일반원칙을 최대한 되살리자고 말하는 것 정도이다. 그 이상의 운동과 주장은 각자 알아서 펼쳐 나가야 한다.

 

  배타적지지 자체를 유지하면서 배타적지지의 대상을 누구로 또는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이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 배타적지지는 과거에도 별 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늘날 ‘진보정당’이 그나마 현재와 같은 수준밖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배타적지지 방침이 민주노총 조합원을 부르주아 정당의 영향력으로부터 떼어내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없다. 민주노총 조합원을 수동화시키는 부작용이 더욱 컸을 뿐이다. ‘진보정당’이 민주노총을 수단으로 대하는 데 일조했을 뿐이다. 더 나아가 혁명세력의 성장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정파를 떠나 활동가 대부분을 ‘진보정당’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진보정당’의 성장조차 왜곡시켰다고 할 수 있다. 배타적지지를 통해 민주노총 조합원을 정치화시킬 수 있다거나 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에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사실 통진당을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상황이 훨씬 더 복잡하다. 그러나 통진당을 결성해서는 안 된다거나, 결성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너무도 당연하다. 통진당이 성립되기 이전에 민주노동당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일어났던 것도 그 때문이다. 통진당을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해서 그것이 곧 통진당이 진보정당이라는 근거는 될 수 없다. 통진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훨씬 더 부족하며 따라서 아직은 진보정당이라고 말하기에 너무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진당은 진보정당이냐, 아니냐 이전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통진당이 자본가정당의 한 분파와 통합한 정당이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통진당이 가장 앞장서서 민주통합당과의 민주대연합(야권연대/후보단일화/반MB선거연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사실에 기초해 현재의 통진당을 얼마든지 반대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 통진당 반대는 곧 민주대연합을 반대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지금 진짜 문제는 통진당이 진보정당이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민주노총이 규정한 대로 통진당, 진보신당, 사회당이 모두 진보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모두 노동자계급의 대안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3 진보정당’ 모두를 한꺼번에 부정할 수 있는 현실적 동력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 ‘진보정당’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과 세력이 아직 대중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박원순, 안철수, 나꼼수 현상이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며, 더 대중들 가까이 있다는 데 있다. 즉 ‘아니지만, 그 무엇은 아직 없는’ 상태,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이제부터라도 ‘없는 현실을 있는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세력화 운동의 요체가 여기에 있으며, 그 성패 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다.

 

 

평조합원운동과 혁명정당 건설

 

  먼저 평조합원의 직접행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운동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운동은 과거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키는 운동과는 질을 달리한다. 지금의 민주노총이 자본가 정당과 손잡는 민주대연합을 하더라도 한국노총과 같은 어용노조로 규정할 수는 없다. 민주노총이 한국노총과 근본적으로 달라서가 아니다. 현 정세가, 지금의 계급관계가 87년 이전의 상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아래에서의 정세가 아니다. 또한 민주노총 조합원이 경험 없는 (초보)노동자들이 아니다. 숱한 투쟁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이미 ‘진보정당’ 10년 이상의 역사를 함께 했다. 평조합원운동은 바로 거기에 기초해야 한다. 민주노총을 분화하여 정파 노조로 재편하려 하거나 민주노총 자체를 이른바 적색노조로 만들려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평조합원운동을 크게 두 가지 전망을 제시하는 속에서 진행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첫 번째 전망은 평조합원운동은 노동조합을 전투적으로 재편시키는 것과 맞물려서 진행시켜야 한다. 노동조합을 버리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을 노조관료 지도부에게 맡겨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다수 노동자(조합원)를 노조관료 지도부에게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자연히 평조합원운동을 일으킬 토대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부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양되어야 할 대상이다. 노동조합은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노동조합이 갖는 이중적 성격은 노동자가 갖는 이중적 성격과도 연동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한편으로는 지배체제의 한 기제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체제가 노동자에게 가하는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다만 그 정도는 정세와 역량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은 일반적, 일상적으로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 원칙적 조직이라는 것이 이제까지 드러난 역사이다.

 

  두 번째 전망은, 평조합원운동은 평의회 건설운동과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혁명 세력이 주장했던 의회주의, 사민주의, 대리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즉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분리시키는 양날개 전략은 파탄 났으며 이것이 바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가 실패한 결정적 원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아직 한국의 현실에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의회를 통한 수권(집권)전략은 이미 서구에서 실패로 끝났으며 한국만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즉 평조합원운동은 방금 말한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에 그치지 않고 평의회 건설로 나아갈 수 있는 결절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것은 곧 평조합원운동이 방어에서 공세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점을 기본적, 원칙적으로 예비/준비해야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노동자계급의 권력 담지체로서의 평의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 과제 또한 실패로 끝날 수 있다.

 

  물론 평조합원운동과 평의회 건설 운동은 일직선상에 있지 않다. 평의회는 노동조합만을, 즉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하여 건설할 수 없다. 전체 노동자계급, 즉 훨씬 더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프롤레타리아를 포괄해야 한다. 그러나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조직노동자, 즉 그들이 속해 있는 노동조합을 배제하고는 평의회 건설 운동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편 평의회 건설은 혁명적 시기, 혁명적 정세에나 가능하다는 주장도 주의해서 말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평의회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정세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일상적 시기에는 평의회 건설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까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평조합원운동과 평의회 건설 운동 사이에 만리장성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 의회주의에 대한 거부와 그 대안은 혁명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의회 건설도 함께 있다. 노동조합도 그렇지만 평의회 역시 그 못지않게 계급투쟁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바로 이 같은 운동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혁명정당 건설 운동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평조합원운동 그 자체를 일으키는 것과, 평조합원 운동이 지향해 나가야 할 전망, 즉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과 평의회 건설 운동을 앞장서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혁명정당의 존재와 역할이 필수불가결하다.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노동자계급정당’, ‘반신자유주의 세력의 결집체’ 등으로는 현 정세를 돌파할 수도, 통진당 반대 투쟁을 힘 있고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도, 새로운 정치세력화 운동을 펼칠 수도 없다. 기껏해야 통진당보다 무엇 하나 나은 것도 없는 상태에서 단지 왜소함만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역사와 계급에게 필요하고 필요할 때 그에 맞는 운동과 투쟁을 펼치지 않고, 자기 조직이 처해 있는 조건에 맞춰 역사와 계급을 끌어다 맞추려는 것은 성공할 수도 없으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아니 현재의 조건에서는 오히려 통진당에게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통진당 반대투쟁과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또 다른 의회주의로 갈아타는 것을 저지하고, 나아가 2012년 투쟁이 ‘반MB 선거심판론’으로 왜곡되는 것을 또한 저지해야 하는 것이 현 정세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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