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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6호] 선거 전술 - 기본원칙과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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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전술 - 기본 원칙 

 

 


  선거 전술의 기본 원칙에 대해 상술하기 전에 먼저 의회민주주의의 기원과 성격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 보자. 부르주아 의회민주주의는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최초의 자본주의 강국들에서 계급투쟁이 무르익어 가는 토대 위에서 만들어졌다. 20세기에 이들 나라들이 제국주의 열강으로 거듭 발전함에 따라 식민지 세계로부터 초과이윤을 착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제국주의 부르주아 계급은 자국 노동자계급을 달래는 개량책으로 이 거대한 초과이윤의 일부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개량과 양보조차도 노동자계급의 투쟁 없이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한 투쟁의 연장선에서 그 투쟁이 의회 선거와 결합하는 과정은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이 과정을 주도한 제2 인터내셔널 정당들(독일 사민당, 영국 노동당 등)의 개량주의적 타락과 함께, 양보와 개량을 따내기 위한 투쟁 자체가 이들 ‘노동자’ 정당의 정치적 실천을 지배하게 되었다. 자본의 양보 여지가 커지고 이들 노동자 정당의 의회주의가 고착화되면서 노동자계급 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이 더욱더 강화되었다.

 

  노동자계급이 의회와 선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한 혁명가들은 이 환상을 걷어내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걷어낼 것인가? 대중이 그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무가치함과 그 야바위성을 볼 수 있게 해 줄 전술을 제출, 운용함으로써다. 혁명가들의 의회 및 선거 전술에서 그 바탕을 이루는 기본 원칙이 초기 코민테른(스탈린주의가 지배하기 전인 1919-22년 시기의 코민테른)에 의해 정립되었다. 이 기본 원칙 가운데 여기서는 선거 전술에 한정해서 살펴보자.


1. 대선이나 총선 등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혁명가들의 전술은 선거에 대한 대중의 환상을 걷어내고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의식을 발전, 강화시키는 데에 그 일차적 목표가 있다. 따라서 혁명가들이 자본가계급에 기반을 둔, 또는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표하는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라고 호소, 선동하는 상황은 존재할 수 없다.

 

  사회주의를 자임하는 세력이 이른바 ‘비판적 지지’라는 이름 아래 과거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부르주아 후보에게 표를 찍으라고 선동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자본가계급과는 전혀 무관한 세력인 것처럼 스스로를 내세우는 자유주의 시민운동에 바탕을 둔 정치집단(예컨대 박원순 후보진영이나 녹색당 같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실제로 똑같은 부르주아 정치세력임에도 단지 은폐되어 있을 뿐으로, 이들 후보를 지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2. 사회주의자들은 선거가 제공하는 연단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후보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사회주의 후보의 공약은 사회주의 강령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 사회주의 강령을 구체적 정세에 맞춰 적용한 바로서의 <행동강령>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같은 행동강령이 없는 사회주의 후보 전술이란 기만이며, 따라서 행동강령의 정립은 사회주의 후보 전술의 전제이다.

 

3. 사회주의 선거 캠페인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지지자들(선진노동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사회주의 쪽으로 획득하고 그들을 조직화하고 노동자계급 속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데 있다. 당선은 언제나 이 목적에 종속되어야 한다.

 

  선거 캠페인 자체는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요구들을(가장 기초적인 생존권적 요구들이라 하더라도) 쟁취하기 위한 직접적인 대중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부각시키는 운동이어야 한다. 한편 집권해서 또는 의회 진출을 통해 무언가 변혁을 해낼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부나 의회 같은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활용해서 그러한 목적을 이룬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부각시키는 운동이어야 한다. 오직 이러한 기초 위에서의 당선만이 승리일 수 있으며, 정부나 의회 무대 내에서의 사회주의 전술 운용을 위한 확실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 표를 분열시키는 것”이 될까봐 우려하거나 그러한 악선동에 영향 받아 후보 내는 것을 꺼려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개량주의자들이 당선되어 기만적인 국가기구에 들어가는 것보다 선진노동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쪽으로 새롭게 충원되고 조직화되는 것이 계급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 일이다. 특히 총선의 경우 개량주의자들이 우세한 노동자계급 밀집 지역에서 후보를 내는 것이 노동자계급 표를 분열시킨다는 이유로 자제되어선 안 된다. 가장 계급의식적인 노동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사회주의 선거 캠페인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4. 조직 규모나 주체 역량의 문제로 인해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의 후보를 낼 수는 없지만, 다른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 후보가 있을 때 비판적 선거 지지의 형태로 노동자 공동전선을 가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결정 기준은 이 개량주의 정당의 노선과 정책이 아니라 그 후보가 노동자계급과 맺고 있는 관계이다. 개량주의자들이 친노동계급적 공약(예를 들어 정리해고제 폐지)을 내걸고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얻어서 당선될 수 있겠지만, 자본가 체제 안에서 그러한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은 설사 그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크게 제약 받을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에게 이 점을 환기시키고 경계시켜야 하며, 그러한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때 개량주의자들과 그들의 노동계급 기반 사이에 생겨나는 모순을 활용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모순 때문에 개량주의 정당을 상대로 한 공동전선의 운용이 가능해 진다.

 

  이 전술은 그러한 후보가 노동자계급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직(개량주의 노동자 정당이나 노동조합)을 대표하여 출마하는 경우에 적용될 수 있다. 여기서 비판적 선거 지지란 후보의 강령을 비판하는 기초 위에서 그 후보에게 표를 찍으라고 노동자들에게 촉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한번 사회주의 강령은, 후보에게 제기하는 요구안의 형식으로 수행되는 사회주의 선전의 토대가 된다. 이 강령이 개량주의자들의 강령보다 우월함을 설명해야 하며, 뿐만 아니라 개량주의 정당이 과거에 했던 제한적인 약속들마저도 이행하지 못해온 이력을 알려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 비판으로 노동자 대중들이 쉽게 이 개량주의 당을 버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 당이 자신의 최근 약속을 지키도록 강제할 노동자계급의 대중행동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 개량주의자들과 공동전선을 하면서도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행동강령을 정면으로 내건다. 그리하여 개량주의 후보 및 정당에 대한 비판과 경고를 조금도 자제하지 않는다.

 

5. 사회주의자들이 독자 후보를 낼 수 있는 기반이 안 되어 제도권 개량주의 정당 후보에 대해 비판적 선거 지지를 할 경우 그러한 비판적 선거 지지가 상당 기간에 걸쳐 되풀이 하여 필요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불가피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비판적 선거 지지 전술이 결코 개량주의 후보에 대한 항상적이고 자동적인 승인 같은 것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전술을 이렇게 반복적으로 운용하면 전술이 전략으로 탈바꿈해 버릴 위험성을 안게 되는데 이러한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이 전술은 또한 개량주의 정당의 집권을 노동자계급이 실제로 경험해 보아야만이 개량주의와 단절시킬 수 있다는, 따라서 일단 개량주의 정당이 집권토록 하는 데에 노동자계급의 전략적 필요성이 있다는 관점으로 전락할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전술 운용은 언제나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입각해야 한다. 부르주아 정부들 간의 ‘정권교체’(‘진보적 정권교체’까지 포함하여)가 노동자계급이 직면한 위기에 대한 사회주의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동자계급이 그 자신의 지배를 강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전에 특정 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정권 타도’나 ‘정권 퇴진’ 같은 공허한 슬로건을 내거는 것은 개량주의 정당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지켜주거나 확대해 줄 수 있다는 위험한 환상을 유포하는 것이 된다.
  또한 개량주의 정당에게 집권하여 사회주의 강령을 받아 안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결코 사회주의자들의 슬로건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개량주의 정당이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보다는 ‘차악’이라는 이유로 노동자계급에게 개량주의 정당을 지지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그러한 개량주의 정당이 집권하면 반드시 자본의 공격에 맞선 반격 또는 방어의 한 형태가 되어줄 것이라는 위험한 결론을 내포하고 있다. 개량주의 후보가 당선되어 부르주아 노동자 정부가 들어서면 애초 계획된 자본의 공격이 용이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자들의 행동강령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상황은 단지 일시적으로 끝날 것이다.

 

6. 자본가계급이 계급투쟁의 분출을 꺼뜨리기 위해 선거를 이용하는 경우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투쟁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직접행동이 더 우월하고 중요함을 제기해야 한다. 이 경우 선거 보이콧이 필요하다. 혹은 제도권 정당들에 맞서 전투적 투쟁 대표자들(파업위원회, 공장평의회 등등)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전술로서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보이콧 전술을 실행하는 상황은. 선거 참여가 노동자계급을 현재 전면화 되고 있는 투쟁(예를 들어 부르주아 질서를 넘어설 기세를 띤 혁명적 봉기)으로부터 명백히 분리시키는 상황이거나, 또는 대중들이 선거의 반혁명적 의도를 명확히 간파할 수 있는 상황(1905년의 러시아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지지할 수 있는 후보가 전혀 없는 경우에는 반드시 선거 기권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계급 후보가 없을 때(개량주의 정당 후보조차)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에 동조적인 후보라는 이유로, 또는 노동조합 등 노동자 조직의 공식적 지지를 받는 후보라는 이유로 부르주아 정당 후보(한국에서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야권단일화 후보나 미국에서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 후보 같은)에게 투표하라고 노동자계급에게 권할 수 없다. 따라서 선거 기권이 불가피할 경우, 모든 후보에 대해 노동자계급의 반대를 표시하기 위해 투표용지를 손상시키는 등의 캠페인을 전개함으로써 선거 기권에 따르는 수동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편 이것이 특정 상황에서는 사회주의 조직의 행동강령에 대한 지지도를 측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7. 사회주의자들이 비혁명적 정당들한테 비판적 지지를 보낼 경우 이는 그 당이 노동자계급과 맺는 관계를 근거로 해서 보내는 것이다. 후보 개인의 견해나 대중들 사이의 덕망이 비판적 지지의 근거로 되어서는 안 된다. 한편 노동운동 내 이른바 ‘우파’ 후보에 대당하는 ‘좌파’ 후보라는 것이 지지를 차별화할 근거가 될 수도 없다.

 

8. 중도주의 후보의 공약이 여타 후보의 공약보다 좀더 낫다는 것을 근거로 중도주의 후보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서도 사회주의자들은 마찬가지로 반대한다. 중도주의자라 함은 혁명적 입장과 개량주의적 입장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집단을 말한다. 중도주의가 (일시적으로나마) 노동자계급의 지도부 위치에 있을 때는 이러한 동요가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중도주의 조직(주로 연합조직)이 결성되곤 하는 사회적 위기의 조건 때 특히 그러하다.
  보통 중도주의 조직의 공약은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으로부터 취사선택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고, 그 때문에 개량주의 공약보다 질적으로 나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인데 왜냐하면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의 우월성은 그 요구들 각각이 그 자체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요구들이 하나의 통으로 권력 장악을 위한 전략으로서의 누적적인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혁명 전략의 단지 한 부분만을 포함한, 그리고 이것을 개량 전략의 일부분 -- 즉 자본가계급과의 협조 전략 -- 과 뒤섞은 그러한 선거 공약을 내거는 당은 노동자계급을 재앙으로 이끌 당, 투쟁의 결정적 계기에서 분열로 이끌 당이다.

 

  유의미한 노동계급 세력들이 개량주의와 진정으로 단절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쪽으로 이탈해 나올 때 중도주의 후보가 이러한 단절을 대표하는 경우, 그러한 ‘투쟁 후보’에 대해 원칙적으로 비판적 선거 지지를 보낼 수 있다. 이것은 그러한 후보가 개량주의 정당 내 공공연하게 반동적인 상대 진영에 대항하여 출마하는 후보일 경우와, 개량주의 정당의 ‘공식’ 후보에 대항하여 출마하는 후보일 경우 모두에 적용된다. 중도주의자들이 노동자계급 내 중요한 세력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경우(설사 그들이 선거에서 일정 정도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라도), 또는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대표하지 못하는 경우 그러한 비판적 지지를 보내서는 안 된다.

 

9. 계급투쟁의 발전으로 인해 지역적 또는 전국적 차원에서 ‘계급 프라이머리’(노동자 예비선거) 같은 것이 구체적으로 가능한 경우 사회주의자들은 민주적이고 책임 있는, 그리고 진정으로 대표성을 갖는, 노동자 조직들의 전원회의(토론회, 집담회 등) 개최를 제기할 수 있다. 어느 노동자 정당 후보가 이번 부르주아 선거에서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할지, 어떤 요구들을 내걸어야 할지를 토론하여 결정하는, 그러한 ‘노동자 프라이머리’에 대한 요구이다. 이러한 전술을 위한 선전· 선동을 통해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환상이 가장 강한 개량주의 지도자들을 시험대에 올려놓을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전원회의 또는 ‘노동자 예비선거’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행동강령을 제기하고, 가능한 경우 독자 후보를 내놓는다. 이러한 회의체가 진정으로 대표성을 갖고 민주적일 경우에는 통상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채널을 통해 사회주의 후보를 출마시킬 때보다 사회주의 선전 선동에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회의체가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대표성을 갖는다는 조건 하에서 회의체의 결정에 따라 부르주아 선거에서 자신의 후보를 철수시킬 수 있고, 결정된 ‘노동자 후보’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보낼 수 있다.

 

10. 오직 일관된 사회주의 정치만이 철저히 노동자계급 독자적인 정치를 담보할 수 있다. 비혁명적인 일체의 정치 흐름들(현재 통진당에 대당하는 ‘진보좌파정당’ 흐름, ‘노동자계급정당’ 흐름, 범좌파블록 등등의 중도주의적 흐름까지 포함하여)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자본가계급의 한 분파와 손잡는 계급협조(예를 들어 민주대연합/ 야권연대)로 흐를 속성을 내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들이 그 같은 정치 흐름들을 향해 제기할 기본 요구는 ‘자본가계급과 단절하라!’이다. 이 요구는 개량주의 노동자 정치세력들의 인민전선 정치가 어떻게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조직적 독립성을 파괴하는지를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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