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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호(통권9권)] 통합진보당 사태와 새로운 노동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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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사태와 새로운 노동자당

 

 

양효식

 

 

 

 

    1. 통진당 사태 - 평가와 전망

   1)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최종 파산 → 국민정당으로 ‘새로나기’
   2) “재창당 수준의 혁신” - 야권연대에 더욱 목을 매다
   3)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안정화 구도도 함께 파탄 나고 있다

 

     2. 야권연대와 단절하는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

   1) 야권연대에 문을 열어놓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로는
      보수우익의 공세에 맞선 투쟁조차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없다
   2) 야권연대 구도를 돌파할 대안 정세구심과 대안 지도력의 문제
   3) 계급적 독자성은 일차적으로 정치 강령의 문제다

 

     3. 새로운 노동자당 - 전망과 과제

   1) 계급적 독립을 수복하기 위한 대적 투쟁
   2) 혁명정당 건설투쟁을 다시 전진시키기 위한 전술
   3)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전선

 

 

 

 

 

1. 통진당 사태 - 평가와 전망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는 수면 아래서 진행되고 있던 당의 성격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모두들 전망하듯이 이번 사태를 경과하면서 통진당은 그 나마 남아 있던 노동자 정당의 흔적마저 지워버리고 완전한 ‘국민정당’으로 넘어갈 태세다. 지금 수면 위에서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는 당내 파벌 간 쟁투와 권력 이동은 사실 이러한 변화의 외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은 연초에 민노당이 국참당과 통합하여 통진당을 결성했을 때,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에서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정당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자본가 정치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민주당과 다를 바 없는 완연한 부르주아 정당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던 것이다. 민주당과는 달리 통진당이 민주노조운동에 기반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로서의 민노당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고, 아직은 공식적으로 민주노총에, 즉 조직 노동자들 사이에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통진당 사태로 인해 그러한 역사적 뿌리가 지워져버리고 노동자 지지 기반도 대거 떨어져나갈 상황이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를 비롯한 통칭 ‘우파’ ∙ 국민파 관료들이 당장 통진당을 포기하고 독자적 길을 모색할 것 같지는 않다. 조합원들의 이탈을 부추기거나 방치할 것 같지는 않고, 자신들이 단속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아직 이탈을 막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선에서 통진당과 야권연대 지지에 앞장섰던 그들로서는 자신들도 이번 통진당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고, 따라서 조합원 대중들 사이에서 그 권위와 신망이 급격히 실추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진당 사태가 안고 있는 거대한 파장과 폭발력을 놓고 볼 때 향후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통진당 배타적 지지나 야권연대 대세론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적 다수파의 지위조차 결정적으로 흔들리는 상황까지 예상된다.

 

  통진당이 설사 분당 사태로까지 가지 않더라도 노동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통진당으로는 안 된다’는 정서와 논리가 확산될 수 있는 토양이 광범위하게 형성될 것이다. 통진당이, 예컨대 노동자계급에 대한 장악력을 가지고 다른 대안적인 노동자 정당이 들어서는 것을 차단하는 데 그 동안 성공해 온 서유럽 사민주의 정당들 같은 지위로 안착할 가능성은 이제 결정적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 남은 가능성은 국민정당, 즉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으로 안착하는 길이겠지만, 민주당의 존재로 인해 그러한 여지마저도 극히 협소한 조건에서 결국 예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민주당의 위성정당화와 나아가 흡수통합의 길이다.

 

 

1)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최종 파산 → 국민정당으로 ‘새로나기’

 

  이와 같이 통진당 사태는 민노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최종 파산을 확인사살 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이번 통진당 사태는 한편으론 이러한 파산을 딛고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정치지형이 형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통진당이 국민정당화하면서 퇴거한 자리에 노동자 정치운동의 공백 상태가 생겨났고, 이것이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그 어느 때 보다도 긴급한 일정 위에 올려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통진당 사태의 본질과 함의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 당권파가 밀어붙이고 있는 “재창당 수준의 혁신”과 이에 따른 당내 권력 이동에 대해 기존 당권파는 ‘쿠데타’로 간주하여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지만, 무대 위 배우들의 행위 그 배후에서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는 당의 질적 변환, 즉 부르주아 정당으로의 ‘새로나기’에 대해서는 당권파 입장에서도 -- 그것에 대해 그들이 의식하든 못하든 -- 저항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 아니, 반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참당과의 통합부터 총선 야권연대까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민주대연합 ‘공동’정부로 나아가기 위한 이 모든 포석이 애초부터 당권파 자신들이 발기한 사업이고 자신들이 가장 앞장서서 밀어갔던 전략적 행보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의회주의를 통한 제도권 진입 야망에 눈이 멀어 그러한 민주대연합 전략노선이 결국은 자신들을 삼켜버리고 있는 이번 사태로까지 이어질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뿐이다. 

 

  당권파에게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자본가계급과 손잡는 민주대연합을 위해서 언제든 희생시킬 수 있는 하위 전술이다. 민주대연합은 전략 목표이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그 목표를 위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수단이 목표와 충돌할 때는 내다버리고 다른 수단을 채택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 중심의 야권연대 연립정부로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당의 성격 변화도, 즉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버리고 국민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 당권파의 민주대연합 전략노선이다.

 

  다만 그 과정을 자신들이 주도하고, 결과물의 최대수혜자도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당내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은 당권파가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자기 권력 근거다.  이 권력 근거가 이번 사태로 철저히 해체될 상황이다.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에서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으로의 이행을 완성하고 민주당 중심의 민주대연합정부 전략을 일관되게 밀고 갈 최적의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를 이번 사태가 정리정돈해 준 것이다. NL 당권파보다는, 당 행사에서 애국가를 불러야 한다는 국참당계가 미션을 수행할 최적의 주체다!

 

  당내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에 대한 단죄와 청산은 이러한 정리정돈을 위한 매개이다. ‘재창당 수준의 혁신’의 방향은 단순히 당내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을 명분으로 한 ‘혁신’의 실 내용은 국참당계 중심의 당내 세력 재편을 통한 국민정당/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으로의 이행의 완성이다. 그리고 야권연대 강화를 위한 이러한 최적의 ‘내부 정비’를 통해 민주대연합 연립정부로 거침없이 내딛는 것이다. 

 

  결국 통진당 사태의 본질은 이러한 이행을 더욱 더 순탄하게 하고 가속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궁정쿠데타다. 기존 당권파가 이행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워낙 상식 이하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 있어 더 이상 믿고 맡길 수가 없기 때문에 당권 경질이 불가피한데도 평화적 당권 교체에 완강히 저항하니 ‘혁신 비대위’ 등의 기습적인 정변이 동원된 것이다. 이것이 사태의 본질이고 전말이다.

 

 

2) “재창당 수준의 혁신” - 야권연대에 더욱 목을 매다

 

  이러한 이행과 그 이행의 촉진을 위한 당내 권력이동 정변에 대해서는 통진당 밖으로부터도 강력한 지원과 엄호사격이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겨레 같은 자유주의 언론과 ‘진보진영’의 자유주의 인사들이 여기에 앞장서고 있다. 그들은 당권파의 비민주성과 회의장 폭력사태를 빌미로 “진보정치의 재구성이 절실하다”면서 사실상 부르주아 정당으로의 신속한 이행을 채근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가장 숨김없이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 김기원 교수의 5월 17일자 한겨레 칼럼 <개혁적 진보는 살아 있다>이다. 김기원은 지난 희망버스 운동에 대해서도 정리해고 철폐는 사회주의에서나 가능하므로 비현실적인 구호라며 비난했던 자이다. 그는 이번 통진당 사태에 대해서도 “시장과 국가의 질 향상, 즉 공정한 시장경쟁과 민주적 효율적 국가를 추구”하는 ‘개혁적 진보’를 강화시키는 것이 통진당 혁신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정리해고 철폐 요구를 사회주의와 엮어서 함께 “비현실적”이라는 악선동을 펼쳤던 것에 이어서 이번에는 통진당을 아예 건전 국민정당으로 육성, 강화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김기원의 주문이 뜬금없는 별종 같은 제안이 아니라 사실 기존 당권파든 신 당권파든 통진당 제세력이 모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정리해고 철폐 요구를 버리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철폐 요구를 구부리지 않고서는 민주대연합 정부로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야권연대의 길을 갈 수가 없다는 것을 김기원만이 아니라 통진당 제세력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원이 무슨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의 주장이 통진당 입장에서 특별히 새로운 것도 아님에도 여기서 인용한 이유는 그가 정리해고 철폐 요구에 대한 비난에서부터 ‘개혁적 진보’로의 통진당 혁신 방향까지 이번 사태를 거쳐 통진당이 기착할 종착점을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해주는 미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최종 마무리되고 나서 통진당이 마침내 도달할 정체성은, “정리해고 ∙ 비정규직 철폐”는 비현실적 요구라며 가장 ‘솔직하게’ 반대하고 나설 세력이 주도하는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일 것이다.

 

  이와 같이 통진당 안팎에서 앞 다투어 주문하고 있는 ‘재창당 수준의 혁신’과 ‘진보 재구성’의 내용을 보면, 통진당 사태에 대한 우리의 평가를 더욱 더 확증시킨다. 한편, 혁신을 요구할 자격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그 자신이 혁신의 대상인 민주노총이 지금 조건부 지지 철회를 내세우며 통진당에 요구하고 있는 이른바 ‘노동 중심’의 혁신 방향을 통진당이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우리의 평가를 변경시키지 않는다. 구 민노당 체제에서든 현 통진당 체제에서든 현장활동가들과 평조합원들의 주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조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고, 노동자들을 표 찍고 돈대는 기계로 전락시키는 의회주의가 계속 지배하는 조건에서 ‘노동 중심성’은 당 내에서 단지 노조관료들의 권한과 위상을 강화시켜 주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 부르주아 정당, 국민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것과 이러한 종류의 ‘노동 중심성’과는 전혀 충돌할 일이 없다.  

 

 

3)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안정화 구도도 함께 파탄 나고 있다

 

  거대한 파장을 안고 있는 통진당 사태는 지금 전 세계 대공황과 자본주의 체제 위기 심화를 배경으로 해서 전개되고 있음을 상기하자. 남한의 경우도 지금 유럽 재정위기 격화로 인한 유럽계 자금 이탈이 본격화하면서 세계공황의 한 가운데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 증시폭락, 환율급등, 공공부채 ∙ 가계부채 위기 폭발, 은행 도산 등 금융공황 국면을 거쳐서 산업공황으로 폭발할 내적 조건이 남한 경제에도 무르익어 있다. 수백조원대로 쌓여가는 대기업 사내유보금은 투자 대비 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생산적 투자처가 없다는 것, 그래서 자본의 과잉축적 ∙ 과잉생산 위기가 수면 아래서 내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금융공황을 계기로 이 실물경제 위기가 폭발한다면, 작년부터 중소업체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 기업도산과 직장폐쇄는 작은 예고편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한 구조조정, 정리해고, 긴축, 민영화 등 자본의 위기 전가 공격도 전면화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함께 정치위기도 격화되고 있다. 그 동안 미국과 함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부르주아 지배체제를 유지해 왔던 유럽이 뒤흔들리고 있다. 총파업과 전투적 가두시위 등 대중투쟁이 일상화하고 있고, 그와 함께 선거에서도 기존 양당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좌우 양극화가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한 축을 담당해 왔던 기존 사민주의 정당을 대신해서 그보다 왼쪽에 있는 세력들이 선거에서 약진하고 있다. 프랑스 대선 1라운드에서 좌파전선의 멜랑숑 돌풍이나 그리스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SYRIZA)의 제2당 부상은 모두 자본주의 정치위기가 격화되고 있는 사례들 중 일부이다. 결선에서 승리한 프랑스 사회당 올랑드 후보가 긴축 반대를 전면에 내건 것도 대중투쟁의 고양과 그 여파로 인한 사회 전반적인 좌경화 물결의 압박을 받아 그 동안의 ‘사회자유주의’ 노선(블레어의 제3의 길, 슈뢰더의 신중도 등 신자유주의의 사민주의적 버전)을 뒤로 물리고 좌클릭 몸짓을 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에서도 자본주의 정치위기는 아직 초기적인 형태지만 이미 불거지고 있다. 이번 통진당 사태로 다시 확인되고 있는, ‘민노당을 통한 의회주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최종 파산’이 바로 자본주의 정치위기의 한 발현이다. 이 파산과 함께 부르주아 지배체제 안정화 구도도  파탄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진당 사태를 계기로 현재 보수우익의 이념공세가 통진당과 야권연대를 겨냥해 광란적으로 펼쳐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총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서유럽처럼 남한에서도 의회주의 ∙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을 통해 노동자들을 체제내화 시켜내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안정화에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객관적으로 민주노동당에게 그런 배역이 주어졌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국참당과의 통합, 민주당과의 야권연대 강화 등을 거쳐서 이번 통진당 사태에 이르면서 그러한 역할도 끝장났다. 서구 사민주의 정당처럼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으로 안착하지도 못한 채 파산해버리고 국참당계를 중심으로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으로 넘어가면서 노동자들의 지지 기반이 대거 떨어져나가는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민주노총이 설사 통진당 사태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무시하고 현재 조건부 지지철회에서 다시 지지 회복으로 입장을 선회한다 하더라도 대중적 수준에서 노동자들의 지지를 다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민노당 운동의 최종 파산과 함께 제도권 노동자 정당을 통한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안정화 가능성도 날아가 버리고 있는 것이다. 통진당이, 예를 들어 압도적인 조직노동자 기반을 가지고서 대안적인 노동자 정당을 허용치 않는 서유럽의 사민당, 노동당, 사회당 같은 지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이제 결정적으로 닫혀 버렸다. 이번 사태 이후로 노선적으로도 더욱 우경화하고 노동자 지지 기반도 대거 날아가 버린 통진당에게 남은 길은 민주당과의 야권연대에 더욱 목을 매고 민주당의 부속 정당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심지어 흡수통합의 길로 빨려드는) 것뿐이다.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총자본의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전락하여 노동자들의 체제내화에 별 역할을 할 수가 없는 통진당은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는 정당이다.

 

  야권연대/민주대연합 전략이란 것도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을 통해 노동자 대중을 자본가 야당의 지지부대로 만들어 안정적인 부르주아 양당체제(한국에서는 보수정당 대 민주대연합블록)를 구축할 수 있을 때 총자본에게 의미가 있는 것인데, 민주당의 부르주아 위성정당(민주당 별관)으로 전락해버린 통진당의 경우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민주대연합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고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만 있는 미국식 양당체제 같은 것이 안착될 여지도 없다. 남한의 민주당이 미국 민주당처럼 노동조합운동의 자발적 지지를 끌어낼 정도의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계급적으로 별 의미를 갖지 못하는 한국노총이라면 모르겠지만 민주노조운동에 관한 한 민주당이 그럴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 어쨌든 이와 같이 노동자들, 특히 조직노동자들의 체제내화가 차질을 빚으면서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안정화 구도도 깨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 경제가 조만간 세계공황의 한 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면 지배체제의 불안정과 정치위기 또한 전면화할 것이다. 그리고 개량주의의 물적 토대가 문제가 되면서 현재 유럽의 계급투쟁 상황이 더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닐 것이다.

 

 


  2. 야권연대와 단절하는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

 

 

1) 야권연대에 문을 열어놓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로는 보수우익의 공세에 맞선 투쟁조차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없다

 

 이러한 정세 조건과 이를 배경으로 민노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최종 파산 및 국참당계를 중심으로 한 통진당의 국민정당화는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식 무대에서 노동자 정치운동의 공석 상태를 낳고 있다. 객관적으로 이것은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긴급한 일정 위에 올려놓고 있다.

 

  현재 통진당 사태가 당장은 선진노동자들을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정치 기피증과 냉소주의를 더욱 부추기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새누리당과 조중동 등 보수우익 세력들의 전방위적인 이념공세와 공안몰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노동자들 사이에 정치적 위축감이 조성될 수 있다. 이를 빌미로 야권연대/민주대연합에 대한 반대전선을 뒤로 물리고, 이른바 반‘파쇼’ 전선, 반새누리당 전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노동운동 진영 일각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반MB 야권연대 강화론에 다름 아닌 이러한 주장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위축을 타개하는 방향이 아니라 또 다시 노동자운동을 민주당과 야권연대의 꽁무니부대로 전락시켜 보수우익의 공세에 맞선 대항을 오히려 봉쇄하는 방향이다. 야권연대에 반대하는 전선을 명확히 하는 대안 노동자당 건설을 위한 정치투쟁의 전면화를 통해서만이 보수우익의 공세에 대항하는 실제 전선도 형성할 수 있다.

 

  통진당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지도부를 비롯한 각급 노동조합 관료 등 야권연대/민주대연합 지지 세력들은 자본가계급의 한 분파와 손잡는 그들의 계급협조 노선으로 인해 반새누리당, 반MB 투쟁조차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총선 전후로 계속 폭로되고 있다. 현재 보수우익의 공세에 대해 민주당은 물론이고 통진당과 민주노총 지도부가 보이고 있는 수세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라. 야권연대와 단절하지 않고서는, 따라서 야권연대에 대당하는 새로운 대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명박정권과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일관된 비타협적 투쟁을 담보할 수 없다. 설사 ‘변혁적’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내건다 하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야권연대/민주대연합/인민전선에 문을 열어 놓고 추진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면 ‘변혁’은 고사하고 반MB/반새누리당 투쟁조차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없다.

 

 

2) 야권연대 구도를 돌파할 대안 정세구심과 대안 지도력의 문제

 

  이와 같이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의 대전제이자 대원칙은 야권연대와의 단절이다. 현 계급투쟁 정세에서 야권연대와의 단절은 그 어떤 새로운 노동자당 프로젝트에서도 절대적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노동자투쟁들과 개별 투쟁전선들이 민주노총의 야권연대 구도를 벗어나서 전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야권연대에 대당하는 대안 정세구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에 대한 기획을 담고 있지 않은 그 어떤 새로운 노동자당 프로젝트도 정세적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각급 노조관료들을 통해서 노동자운동에 행사되고 있는 야권연대의 정세적 규정력에 대당하는 대안 지도력이 되지 못하는 그 어떤 새로운 노동자당 프로젝트도 정세와 계급투쟁에 무가치하며 따라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야권연대와 단절하는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는 이와 같이 정세적 대안 지도력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계급적 독자성은 일차적으로 정치적 프로그램, 즉 강령의 문제이다. 강령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제1의 담보물이다. 이것은 추상적인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또 미래의 어느 시점에 결정적인 정세가 도래할 때나 명확히 하면 되는 문제도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당면 투쟁전선을 포함하는 정세 대응 프로그램의 문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폐지부터 재벌 문제, 정부 구성 문제(야권연대/민주대연합 연립정부냐 야권연대와 단절하는 노동자정부냐)까지 이들 사안에 대한 노동자계급 자신의 프로그램을 갖고 대(對) 자본 ∙ 대 정권 전선을 치느냐 아니면 자유주의 자본가 정치세력 주도의 야권연대와 제도정치권의 프로그램에 휩쓸리고 결국 그 꼬리로 전락하느냐의 문제다. 따라서 “비정규직 ∙ 정리해고 없는 세상” 슬로건을 비현실적 요구라며 비난하는 악선동에 정면으로 맞서서 그 요구를 “재벌 몰수 ∙ 국유화”와 “노동자정부” 요구로까지 연결시키는 그러한 정치 프로그램을 내걸고 투쟁하는 당만이 진정한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를 구현할 수 있다.

 

  자본가 정당과 함께 하는 야권연대 연립정부(민주대연합 정부)는 정리해고 ∙ 비정규직 철폐 요구를 사회주의에서나 가능한 요구라며 기각할 것이다. 따라서 야권연대에 대한 정치적 태도 문제를 회피하면서 정리해고 ∙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일관되게 밀고 갈 수 없다. 그 요구를 “비정규직 차별 축소”, “정리해고 요건 강화”로 구부리지 않고 일관되게 밀고 간다면 “노동자정부” 요구를 비껴갈 수가 없다. 정부 문제에 대해서, 정치투쟁 요구에 대해서 기권하면서 정리해고 ∙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비타협적으로 전개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리해고 ∙ 비정규직 철폐 요구는 고립적인 요구로서가 아니라 일련의 정치 프로그램의 한 부분으로서 배치되는 요구여야 한다. 이러한 정치 강령을 배제하는 종류의 새로운 노동자당 프로젝트는 현실가능성을 핑계 대며 “비정규직 차별 축소”,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 야권연대 공약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결국 현재의 진보신당처럼 조직적으로는 독립적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정치 내용에서는 결코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라고 할 수 없는 당을 또 하나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보신당 세력이나 또는 그 좌익을 구성하는 좌파노동자회처럼 비정규직 ∙ 정리해고 철폐 요구를 이러한 정치투쟁의 요구들과 연결시키기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면, 말로는 아무리 비정규직 ∙ 정리해고 철폐에 동의하는 체 하더라도 결국 강령에서는 야권연대 세력들의 공약과 다를 바 없는 당이 될 것이다. 그래서 조직적으로 아무리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형식을 취한다 하더라도 정치 내용에선 결국 민노당/통진당과 마찬가지로 계급적 독립의 과제를 배신하는 당에 불과할 것이다.

 

 

3) 계급적 독자성은 일차적으로 정치 강령의 문제다

 

  이와 같이 새로운 노동자 정당이 계급적 독자성과 정세적 대안 지도력을 담보하는 당이어야 한다면, 건설될 당이 어떤 성격의 당이어야 하는지가 분명하다. 그 당은 반드시 위와 같은 혁명적 정치강령을 가진 혁명적 노동자 정당이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새로운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 혁명정당 대신 또 다른 진보정당이나 애매모호한 ‘좌파정당’으로는 조직 형식만이 아니라 정치 내용에서까지 일관되게 계급적 독자성을 견지할 수 없다.
  야권연대에 반대하고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를 열망하는 노동자들은 새로운 노동자 정당이 또 다른 의회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 건설로 귀결되지 않도록 전면적인 정치투쟁에 나서야 한다. 혁명정당 대신 초기 민노당을 복원하는 수준으로, 또는 좌파 사민주의 정당 정도로 귀결된다면 민노당 파산의 궤적을 -- 이번에는 압축적으로 급속히 -- 되풀이 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야권연대 구도로 다시 빨려들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이 혁명정당 창당으로 귀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은 그냥 당위가 아니라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 새로운 노동자당 건설이 성공하기 위한 유일한 담보 조건이다.

 

  계급적 독자성을 담보하는 새로운 노동자 정당은 당연히 ‘노동 중심’이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가 말하는 ‘노동 중심’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재 <노동정치 제안자 모임>을 추진하고 있는 중앙파 세력들이 주장하는 ‘노동 중심’도 계급적 독자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이 노동 중심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지만, 지금까지 야권연대에 맞서 계급적 독자성을 위한 그 어떤 정치투쟁, 정치선동도 수행하지 않아 왔다. 야권연대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담보할 그 어떤 정치 프로그램도 발전시켜 본 바도 없고, 그럴 의지도 보인 바 없다. 오직 민주노총 내 ‘우파’/국민파에 반대한다는 범좌파 블록으로서의 종파적 정체성 이외에 그 어떤 계급적 독립을 위한 투쟁도 회피로 일관해 온 이런 세력이 중심이 돼서 새로운 노동자당이 만들어진다면 그 당은 시작부터 야권연대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편 상층 노조관료 중심이 아닌 설사 건강한 의미의 노동 중심이라 하더라도 정치투쟁의 프로그램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최소강령 수준으로 제한해서는 통진당과 민주노총의 야권연대 전략구도를 돌파할 수 있는 대안 노동자 정당이 될 수 없다. 특히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 위기 정세에서 비정규직 ∙ 정리해고 철폐 요구를 노동자통제 하에 재벌 몰수 ∙ 국유화와 노동자정부 같은 정치투쟁의 요구와 결합시키는 이행강령에 반대하고 최소강령 수준으로 제한하는 정치세력화라면 아무리 노동 중심으로 조직상의 독자성을 갖추더라도 결국 내용적으로 계급적 독자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정치투쟁의 계기에서 야권연대 계급협조에 문을 열어놓을 것이다. 진정한 노동 중심성이라면 계급적 독자성을 일관되게 견지할 수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강령)으로까지 이어지는 혁명적 노동 중심성이어야 한다.

 

 

 
  3. 새로운 노동자당 - 전망과 과제
 

 

1) 계급적 독립을 수복하기 위한 대적 투쟁

 

  민노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최종 실패했다. 이번 통진당 사태는 이미 민주대연합/야권연대로 만신창이가 되어 온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최종 파산을 확인시켜 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로써 공백 상태로 남게 된 자리는 어떤 식으로든 메워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의 필요성과 의제가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고, 누구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그 백지수표를 어떤 내용으로, 어떤 방법으로 채울 것이냐이다. 즉 어떤 강령 ∙ 노선으로 당의 정치적 토대를 구축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정세 현안과 계급적 투쟁 과제들을 당 건설투쟁의 과제로 받아 안는 방식으로 주체들의 결집을 이루어낼 것인가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러한 정치적 내용과 건설 경로의 문제를 제껴버리고, 오로지 그 공석을 차지하는 데 어떤 세력 조합이 최적의 조합이 될 것인가, 어떻게 판짜기를 해야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나 관심을 두는 정치공학적인 접근방식은 냉소주의자들한테나 맡겨두자.

 

  이 공백 상태는 누가 먼저 차지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자본가 정치세력과 손잡는 통진당 결성 및 야권연대로 인해 무너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다시 세우는 문제이다. 자본가 정당과 단절하고 말 그대로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이루어내는 문제이다. 그래서 공백을 메우는 것은 끼리끼리 모여서 새 당의 깃발을 들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팔아넘겨진 계급적 독립을 수복하기 위한 대적 투쟁을 조직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파산과 실패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지난 정치세력화에 대한 교훈을 철저히 새기는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강령 ∙ 전술 ∙ 조직의 무기를 가지고서 대적투쟁에 나서야 한다. 초기의 민노당을 다시 복원하는 방식으로는 계급적 독자성을 회복하는 당면 목표에서조차도 실패하고 말 것이다. 민노당이 창당하던 1990년대 말과 비교할 때 지금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팔아먹기 위해 뛰고 있는 세력이 노동운동 내에 그 때보다 몇배, 몇십배는 더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2) 혁명정당 건설투쟁을 다시 전진시키기 위한 전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염원하는 모든 노동자들과 손 붙잡고 마땅히 혁명주의 세력들도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데 나서야 한다. 혁명정당 건설의 과업을 자임하고 있는 혁명주의 세력들은 현재 모든 투쟁의 계기에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혁명정당 건설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 정치 내용과 방법∙경로 면에서 당 건설투쟁의 구체적 전술을 내오지 못해 왔다. 이미 통진당 결성과 야권연대로 인해 지금까지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파산하면서 객관적 일정에 올라 있는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이 이번 통진당 사태로 더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혁명주의 세력들은 그 동안 교착 상태에 있는 혁명정당 건설투쟁을 다시 전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술을 이제 이러한 지형 위에서 수립해야 한다. 그러한 전술 수립의 객관적 조건이 숙성되고 있다.
 
  혁명주의 세력들은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를 열망하는 노동자들과 어깨 걸고, 객관적 일정에 오른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이 혁명적 노동자 정당의 창건으로 귀결되도록 투쟁해야 한다.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공동행동과 논의의 과정에 개입할 뿐만 아니라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 혁명주의 세력들이 발휘할 선도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야권연대에 반대하여 계급적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모든 노동자들 속에서 새로운 노동자당 건설을 위한 공동전선을 제창하고 이 공동전선으로 불러 모으는 것이다. 이 공동전선으로 모이는 데는, 자본가 정당과 단절하고 계급적 독자성을 담보할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위해 함께 투쟁한다는 조건 외에 어떠한 전제조건도 둘 필요 없다. 이 목적에 동의한다면 현존 개량주의 정치조직에 소속된 노동자들과도 함께 해야 한다. 공동전선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선진 노동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두루 포괄하는 틀이어야 한다.  

 


3)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전선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 지형 위에서 혁명정당 건설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한 공동전선 전술은 처음에 이와 같이 ‘과도적 틀’(새로운 노동자당 건설을 위한 공동전선체)의 건설을 수반하지만, 그러한 과도적 조직 그 자체가 물론 목적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토론과 공동행동의 과정을 통해 이 과도적 조직을 혁명적 강령 쪽으로 획득하여 이 과도적 조직이 혁명당 창건으로 귀결되도록 투쟁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을 비타협적으로 전개할 때만이 공동전선이 최종적으로 강령 ∙ 노선에 따라 갈라지더라도 공동의 틀에 참가한 많은 선진활동가들이 다시 새롭게 혁명정당 건설투쟁 쪽으로 함께 나아갈 것이다.

 

  혁명주의 세력들은 지금 펼쳐져 있는 이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 지형을 혁명정당 건설투쟁을 전진시킬 전술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지형에 공동전선 전술로 개입하여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 운동이 노동자들의 계급적 독립을 위한 열망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열망에 진정으로 충실하게 부응하는 것은 공동전선에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을 위한 혁명적 이행강령이 최종 채택되도록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현 정세에서 혁명정당 건설투쟁을 전진시키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자,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진정한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라는 성공적 결말로 이끌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다.1)  

 

  혁명주의자들은 새로운 노동자당 건설 공동행동에 참가하는 선진활동가 주체들 사이에서 새 당이 그 같은 혁명적 강령을 채택할 때만이 진정한 독자 정치세력화를 이뤄낼 수 있음을 설득하고 입증시킬 수 있다. 현 정세에서 오직 혁명적 강령에 바탕한 혁명정당 창건의 길 이외에 새로운 노동자 정당이 성공적으로 건설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기존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당, 또는 좌익 사민주의 정당 등으로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담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현 사민주의 정당들의 ‘사회자유주의’(사민당판 신자유주의) 대신 케인스주의를 선호하는 좀 더 좌익적인 부르주아 노동자당(사민당에서 왼쪽으로 떨어져 나온 프랑스 ∙ 독일의 좌파당 같은)으로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가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특히 현 자본주의 체제 위기로 인해 그러한 좌파 개량주의의 물적 토대가 더는 과거처럼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러나 물론, 결말은 물적 토대가 아니라 투쟁에 의해 결정된다. 공동전선의 최종 결말, 즉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에 성공하느냐, 아니면 민노당 복원 수준으로 귀결되어 결국 실패하느냐는 오직 투쟁에 의해서만 결정될 것이다.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이 혁명정당 창건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함께 개입하고 투쟁하자!

 


 

<각주>

 

1) 공동전선으로서의 새로운 노동자당 전술에 대해서는  창간호의 다음 글 <현 시기 남한에서 노동자당 전술을 위하여>를 참조할 것. ‘노동자당 전술’이 혁명적 맑스주의 전통 속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어떠한 전술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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