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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호(통권9권)] 현 시기 남한에서 노동자당 전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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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기 남한에서 노동자당 전술을 위하여

 


양효식

 

 


1. 들어가며

 

  과거 레닌은 사민당, 노동당, 사회당 같은 서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을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이라고 규정하였다. 노동자운동의 상승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노동조합에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의회주의에 빠져들면서 노동자운동 내에서 자본가 지배체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어버린 정당이 이들 정당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이해를 위해 일관되게 투쟁할 것으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운동 내 자본의 마름 역할을 하는 정당이라는 점에서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이라는 모순적 규정이 내려지게 된 것이다.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은 그 정치 내용에선, 예를 들어 한국의 민주당 같은 부르주아 정당과 다를 바 없지만, 그러나 독립적인 노동자 정당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과는 달리 ‘은폐된 부르주아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으로서의 민노당이 그 동안 민주당에 대해 가졌던 차별성이 이것이었는데, 자본가 정치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으로 결성된 통진당은 정치 내용은 물론이고 독립적인 노동자 정당의 형식마저 털어버림으로써 그러한 차별성마저 소멸되고 있다. 통진당 결성은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즉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으로 이행하는 시발점이다. 이후 총선에서의 야권연대에 이어 이번 통진당 사태는 그러한 이행을 결정적으로 재촉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경과하여 “재창당 수준의 혁신”이 완료되면 통진당은 더 이상 은폐되지 않는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으로 ‘새로 나기’ 한 당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민주당의 위성정당으로, 나아가 흡수통합의 길로 빨려 들어가는 길이 될 것이다. 민주당과 아무 차별성도 없어진 통진당이라면 더 이상 제도권에서 독자적으로 설 근거도 여지도 모두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2. 계급적 독립을 팔아넘긴 민주대연합/야권연대가 문제의 본질이다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둘러싼 논의와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결과로 그 부르주아적 내용이 더 이상 외적 형식에 의해 은폐되지 않고 공공연해져 버림으로써 ‘저건 더 이상 노동자 정당이 아니다’ 라는 평가가 이제 소수 인자들 수준을 넘어 대중적으로 확산될 상황이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도래는 진정한 노동자 정당의 건설을 가져올 계기로 자리매김 될 것인가? 잃어버린 계급적 독립의 과제를 떠안고자 하는 노동자계급 정치세력이라면 기존 민노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와 파산을 딛고 올바른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로 이 상황을 부여잡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시작되고 있는 새로운 또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논의와 움직임은 대부분 기존 민노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와 파산의 교훈을 올바로 새기지 못한 채로 출발하고 있다. 실패와 파산의 원인은 민주대연합, 국참당과의 통합, 야권연대 등 자본가 정치세력과의 계급협조를 위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팔아넘긴 데 있다. 따라서 새로운 노동자당 건설의 중심 과제는 노동자운동 내에서 계급협조의 고리를 끊어내고 잃어버린 계급적 독립을 되찾는 데 있다.
  이것은 단순히 지금 통진당 사태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을 노동자운동 내에서 추방하고 자체 쇄신을 이뤄내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배반당한 계급적 독립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지금 막연하게 ‘혁신’이니 ‘재구성’이니 따라 외치는 것은 남의 깃발을 들고 흔드는 거나 다름없다. 그것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며 국민정당화로 몰고 가고자 청산주의 캠페인에 나선 사이비 진보주의자들의 나팔소리에 따라 춤추는 어릿광대짓에 불과하다.

 

  새로운 노동자당 건설의 문제는 계급적 독립을 수복하는 대적 투쟁의 문제이다. 새로운 강령⋅전술⋅조직의 무기를 가지고서 적들에게 빼앗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새로운 노동자당 건설 문제를 단지 내부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을 극복하는 조직운영의 문제나 조직 내부 질서의 문제로 제기하는 것은 파산과 실패의 원인을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방향에서 찾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민노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철을 되풀이 하는 식의 대안을 찾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현재 통진당 탈당을 준비하고 있는 <노동자연대 다함께>는 “전현직 민주노총 리더들이 노동계 정당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대안이다”라며, 그 당은 “공동전선적 모델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입장을 제기하고 있다. “당 모델보다는 공동전선 모델이 패권주의 폐해를 완화시키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레프트21 82호, “통합진보당의 위기 - 올바로 보기”)  
 

 

  열우당 2중대 노선, 국참당과의 통합, 야권연대/민주대연합 등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팔아넘기고 노동자운동을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치세력의 꼬리로 전락시킨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단지 내부의 패권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다함께>는 새로운 노동자 정당이 “참여 세력의 정치적ㆍ조직적 독자성과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전선적 모델”에 따른 연합체적인 당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위해 새 당이 필요한 것인가, “참여 세력의 정치적ㆍ조직적 독자성”을 위해 새 당이 필요한 것인가?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와 계급적 독립을 되찾기 위해 야권연대/민주대연합 같은 부르주아 정치를 철저히 일소하고 노동자계급 정치에 굳건히 바탕을 두는 노동자 정당을 제대로 다시 세워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열망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잡탕 정당은 설사 당내 패권주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파산과 실패의 교훈을 올바로 찾지 못하고 계급적으로 또 다시 배신자적인 정당이 되어 민노당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이다.

 

  새 당과 관련하여 지금 필요한 공동전선은 ‘당을 참칭한 공동전선’이 아니라 정확히 ‘당 건설을 위한 공동전선’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폭넓게 문호를 개방하는 공동전선조차도 최소한 야권연대와 단절하고 계급적 독자성 회복의 과제를 전제조건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있어도 공동전선의 최종 결말이 진정한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로 귀결될 것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최종 결말은 오직 투쟁에 의해서만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다함께>는 아예 새 당 자체가 공동전선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마저도 “참여 세력의 정치적ㆍ조직적 독자성과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다. 야권연대와의 단절과 계급적 독립의 과제는 거론조차 없다. 무엇을 위한 새 당인가? 결국 공동전선이라는 허울 아래 <다함께>가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제안하는, “전현직 민주노총 리더들이 새롭게 만드는 노동계 정당”이란 계급적 독립의 과제를 내팽개치고 또 다른 계급협조 야권연대를 추구하는 제2 민노당에 불과할 것이다.

 

 

3. “혁명정당 건설”과 정치 기권주의의 문제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은 혁명정당 창건으로 귀결될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혁명정당만이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와 계급적 독자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새 당 건설이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의 창건으로, 즉 구 민노당을 복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귀결될 경우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는 실패하는 것이다. 그 경우 이름만 새 당일 뿐 ‘민노당 복원’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량주의 ∙ 의회주의 정당은 제도권 진출과 국회 입성에 목을 매면서 민노당의 전철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야권연대 같은 자본가 정당과의 연합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 과정은 민노당이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압축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렇게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의 창건으로 귀결되면 계급적 독립의 과제는 또 다시 배신당하는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현재 프랑스 ∙ 독일의 좌파당(좌파 사민주의 정당) 같은, 초기에는 보다 좌익적인 외관을 띠는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이라 하더라도 혁명적 강령을 거부하는 한 계급협조 야권연대 전략구도 속에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점에서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에 기반을 두고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노동자 정당의 외관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노선과 정책을 펴며 결정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구원투수 역할을 하는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의 계급적 모순으로 인해 그러한 좌파당 역시도 민노당처럼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팔아넘기는 당일 수밖에 없다.      

 

  성공이냐 실패냐, 즉 계급협조 야권연대와 명확히 단절하고 계급적 독자성을 세우느냐 여부는 오직 투쟁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새로운 노동자당 건설이 혁명적 노동자당 창건으로 귀결될 것이냐, 아니면 개량주의 노동자당 창건으로 귀결될 것이냐는 오직 정치투쟁에 의해 결판날 것이다.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새로운 노동자 정당이 개량주의 정당으로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 같은 것은 없다. 예를 들어, ‘개량주의의 물적 토대’를 이유로 대중적 노동조합운동 차원의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필연적으로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다. 개량주의의 물적 토대가 있는지 없는지, 취약한지 굳건한지에 대한 논의 이전에 이러한 견해의 바탕에는 계급투쟁에서 정치의 우위를 부인하는 정치 기권주의가 깔려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이러한 정치 기권주의는 좌파 개량주의자들이 말하는 ‘남한에서 혁명정당 불가론’을 강화시켜 준다. 좌파 개량주의자들은 현재 남한의 자본주의 발달 수준과 노동자계급의 상태, 그리고 정치 지형 등을 고려할 때 사민주의 정당 수준을 넘어서기는 불가능한 것 아니냐, 또는 조직 노동자들이 혁명전위당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 독일의 좌파당처럼 좌파 사민주의 정도만 돼도 괜찮은 것 아니냐며 혁명정당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과거 레닌이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노동귀족의 형성 등 개량주의의 물적 토대를 확인했지만, 이것이 혁명정당 건설과 사회주의혁명으로 나아가는 데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낳는다고 주장하진 않았다. 당시 노동귀족이 제일 강했던 독일에서도 노동자계급에 대한 압도적인 장악력을 가진 기존 사민당을 넘어 혁명적 공산주의 정당으로 노동자운동의 대중적 선진부위들을 결집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개량주의(당시 사민당)를 겨냥한 혁명적 전술의 승리이며, 계급투쟁에서 정치의 우선성을 증명하는 주요 사례이다. 물적 토대가 무매개적으로 계급투쟁의 결말을 결정하지 않는다. 계급투쟁의 영역, 특히 당 건설투쟁의 영역에서 정치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는 ‘혁명주의’ 세력은 개량주의를 강화시켜주는 무정부 조합주의(아나코 생디칼리즘)로 전락한다.  

 

  안타깝게도 “혁명정당 건설”을 주장하면서도 이러한 정치 기권주의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동지들이 많다. 아무리 “혁명정당 건설”을 내걸어도 그 경우 혁명정당 건설은 언제나 추상적 선전의 영역에 머물 뿐 구체적 당 건설투쟁 전술로까지 나아가는 것은 영원히 미래의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투쟁 기권주의는 그냥 기권으로 끝나지 않고 대중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개량주의 정당으로 귀결되는 데 사실상 일조한다.

 

  한편 정치투쟁 기권주의는 대기론으로도 나타난다. 개량주의의 물적 토대가 공황으로 인해 약화되거나 소멸되고 그래서 개량주의 세력이 무력화되면 그 때 노동자들이 혁명정당 건설 쪽으로 옮겨올 가능성이 만들어질 것이다. 따라서 불필요하게 지금부터 개량주의 세력을 겨냥한 ‘인위적인’ 정치투쟁을 펴는 것은 오히려 대중적으로는 고립될 것이므로 지금은 경제적 생존권 투쟁으로 제한하고 여기에 집중해야 할 때다.... 등등. 설사 이러한 수동적 대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예컨대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 정리해고 철폐투쟁을 개량주의 주도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총파업투쟁으로 조직하겠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정치투쟁에서 기권하고 최소강령 수준으로 투쟁을 제한한다면 결코 개량주의 지도력에 대한 그 어떤 도전도 되지 못할 것이다. 경제위기와 세계공황이 노동자계급 지도력 문제를, 혁명정당 건설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바로 그러한 정세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주체의 전술이 필요하다. 정세 대응 프로그램을 위한, 정치강령을 위한 투쟁, 지도력을 둘러싼 정치투쟁이 필요하다.

 

 

4. 개량주의를 겨냥한 공동전선 전술
  
  새로운 노동자 당 운동에 기권하지 않고 이것이 혁명적 노동자당 창건으로 귀결되도록 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정치투쟁 전술이 필요하다. 혁명정당 창건으로 귀결되는 것에 반대하는 개량주의를 겨냥한 혁명적 전술이 필요하다.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주장하면서 부르주아 노동자 정당을 지향하는 개량주의 세력의 계급적 모순을 활용하는 노동자 공동전선 전술을 운용해야 한다. 당 건설투쟁 영역에서 공동전선 전술이 ‘노동자당 전술’이다.

 

  자본가 정치세력과 손잡은 통진당 결성과 야권연대로 노동자 정치운동의 공백이 생겨났다. 나아가 이번 통진상 사태로 그 공백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진보신당 세력을 비롯하여 통진당 왼쪽에 있는 다양한 ‘좌파’ 세력들은 이렇게 통진당이 퇴거해버린 공간으로 이동할 기회를 지금 보고 있다. 한편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에 의해 새로운 당 건설을 위한 발의와 이니셔티브가 나오고 있다. 혁명가들은 혁명정당 건설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해 이러한 운동에 가장 원칙적이면서 비종파주의적인 방식으로 개입해야 한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레닌과 트로츠키가 발전시킨 노동자당 전술에서 우리는 종파주의적 함정과 기회주의적 함정을 모두 피하면서 이러한 운동에 개입할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노동자당 전술은 대중적 사민주의 정당이 아직 없는 나라들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지도력 획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애초 제출되었다. 당시 미국 같은, 노동자계급의 독자 정치세력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취약한 나라들에서 노동자계급의 선진부위를 혁명정당 건설 쪽으로 획득하는 데 그 전술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조직들, 일차적으로 노동조합들은 부르주아 정당과 단절하고 노동자 정당을 결성하라!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을 비롯한 각종 노동자 조직들에 이러한 요구를 걸어야 한다.

 

  노동자당 전술은 대중적인 사민주의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또는 형식적으로 존재하더라도 노동자들에 의해 정치적 파산 선고를 받고 그 대중적 영향력이 무너지고 있는) 조건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공동전선 전술로 적용된 것이다. 당시의 서유럽처럼 노동자계급 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대규모 사민주의 정당이 존재하는 나라들에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공동전선은 실효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노동자들 다수가 그러한 사민당 ∙ 노동당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최근까지 민노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대표하고 있다고 노동자들이 보고 있어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움직임이 힘을 받을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레닌과 트로츠키도 대중적인 사민주의 정당이 안착해 있는 나라들에서는 노동자당 전술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5.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공동전선으로서의 노동자당 전술

 

  1930년대에 트로츠키는 이행강령을 정립하면서 체계적으로 노동자당 전술을 개념화했다. 노동자당 전술은 초기 코민테른이 사민주의 정당을 향해 적용했던 공동전선 전술의 변형판이다. 즉 그러한 사민주의 정당이 안착해 있지 않은 나라들에 맞춰 변형 적용한 공동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적인 사민당 ∙ 노동당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공동전선 전술로 설계된 것이 바로 노동자당 전술이다.
  대중적 사민주의 정당으로 안착하진 못했지만, 개량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치조직들이 존재하는 지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현 단계 남한에서 펼쳐져 있는 노동자운동의 정치 지형도 그러한 경우인데, 노동자당 전술은 바로 그러한 정치 지형 위에서 개량주의 세력을 향해 적용한 공동전선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동자당 건설투쟁을 위한 공동전선도 여타의 모든 노동자 공동전선처럼 해당 공동투쟁을 위한 요구 이외에 다른 전제조건을 달지 않았다. 즉 강령적 지향과 조직 소속이 어떠하건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지와 단절하는 노동자계급 독자 정치세력화/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 건설’에 동의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포괄해야 했고, 따라서 이 조건 이외에 어떠한 강령적 전제조건도 걸지 않았다. 이는 당연한데, 상대적으로 폭넓게 선진노동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공동전선이 되지 못한다면 공동전선을 하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개량주의 조직에 속하거나 개량주의 조직의 영향 하에 있는 노동자들과도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 ‘계급적 독립’에 동의하면 다 같이 공동전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가들은 항상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을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즉 공동전선의 전제조건은 아니지만, 새로운 노동자당은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을 위한 이행강령에 바탕한 당이어야 함을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명가들은 먼저 ‘새로운 노동자당 건설 공동전선’의 결성을 위해 투쟁하고, 결성되면 그 공동전선을 활용하여 강령을 둘러싼 투쟁을 노동자계급 선진부위 앞에서 펼친다는 계획이다. 강령을 둘러싼 투쟁은 강령 토론 ∙ 논쟁을 조직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전진을 위한 공동행동 속에서 어느 강령이 일관되게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지를 실천적으로 입증하는 것을 포함했다. 

 

  이 공동전선 사업의 최적의 결말은 새 당의 다수파 지위와 지도력을 전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개량주의자들이 새 당의 다수를 장악하는 것으로 결말난다 하더라도 혁명주의 세력은 공동전선을 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훨씬 더 확대 강화된 조건에 있게 될 것이다. 혁명가들은 계급적 독자 정당 건설 투쟁에 참가하지 않았을 경우에 비해 혁명정당 쪽으로 의미 있는 세력을 획득할 수 있는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개량주의 정당의 형성이 노동자당 전술의 목적인가? 아니다. 반대로 그 전술은 혁명적 강령을 위한 투쟁을 노동자계급 독자 정치세력화 운동 속으로 가져감으로써 개량주의 정당의 형성이라는 그러한 사태발전을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거슬러 올라가 맑스와 엥겔스도 19세기 당시 조건에서 노동자계급을 정치적 지형 위로 오르도록 부추기고 고무하기 위해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노동자계급 정당의 형성을 위해 노동조합에서 개량주의 세력들과 나란히 투쟁하는 한편, 이들 세력을 정치적으로 추수하는 것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투쟁에 혁명적 지도력을 공급하고자 했다. 이 방법이 1920년대 초 코민테른에 의해 전술로 발전되었고, 나중에 이행강령과 연결되어 체계화된 노동자당 전술로 정립되었다.

 

  레닌은 1920년대 초에 미국 공산주의자들을 위해 노동자당 전술을 권유했다. 선진 노동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코민테른 미국 지부는 이 전술을 내내 잘못 적용했다. 미국 지부에서 그 문제를 둘러싸고 맹렬한 분파 투쟁이 휘몰아쳤지만 어느 쪽도 레닌의 전술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한 분파는 소부르주아 자영농민들의 인민주의 운동과 손잡고자 계급적 독립을 위한 투쟁을 포기하는 쪽으로 가버렸다.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초창기 지도부인 제임스 캐넌이 이끈 다른 한 분파는 개량주의 정당의 형성을 혁명당 창건으로 가는 필수 단계(‘전술당’)로 봤다. 어느 쪽도 새 당의 건설을 위해 혁명적 이행강령에 바탕한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전망을 제출하지 못했다.

 

  트로츠키는 양쪽 모두 기회주의라고 옳게 비판했지만, 그러나 그의 최초 결론은 일면적이고 비변증법적이었다. 그는 노동자당 전술을 캐넌의 입장(혁명정당으로 가기 위해 개량주의 정당 형성을 필수 단계로 상정하는 일종의 ‘전술당’ 노선)과 동일시했다. 따라서 트로츠키는 그 전술을 기회주의라며 통째로 거부했다. 즉 먼저 새로운 노동자당을 창건하는 데 노동자 투쟁의 대중적 고양이 필요하다면 ‘개량주의 단계’는 불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혁명당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니까. 한편 대중적 고양이 없다면 개량주의 지도자들이 새 당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므로 결국 기회주의적인 전술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전술은 불필요하거나 아니면 기회주의이다. 

 

 

6. 이행강령과 노동자당 전술

 

  1938년에 트로츠키는 제3의 옵션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서 그 같은 이분법을 극복했다. 대중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개량주의 지도력을 타격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도록 이행강령과 공동전선 전술의 결합을 더욱 구체화하는 가운데서 제3의 옵션을 찾아낼 수 있었다. 트로츠키는 당시 사민주의와 스탈린주의가 지배하는 국제 노동자운동에서 혁명가들이 고립 상태를 극복하는 데 이행요구 투쟁이 필수라고 보았다. 이행강령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구는 그 어느 요구든 노동자계급과 노동자운동 현 지도부에게 공동전선 요구(예를 들어 정리해고, 직장폐쇄에 맞선 ‘노동자 생산통제’)로 제안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노동자 정당 건설’도 그렇게 공동전선 요구로 제안될 수 있다. 그런데 개별적으로 이러한 요구들을 노동자 공동행동을 위한 제안으로 제기하는 것은 전체 이행강령에서 다른 요구들은 내버리는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이행강령 중 단 하나의 요구나 슬로건도 버리지 않고서 특정 요구를 건 공동전선을 할 수 있다.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공동전선을 한다고 할 때 그 목적이 정치조직들의 단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 속에서 정치적 계급의식을 일깨우고 그러한 대중적 정치세력화 운동을 혁명적 강령 쪽으로 획득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노동자당 전술의 실행을 위해 이행강령이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이행강령 가운데 어느 시점에는 당면 요구가, 어느 시점에는 이행 요구가 정세와 국면에 따라 공동전선 요구로 각각 제기될 수 있다. 혁명적 코민테른 시기에 제출된 <전술에 관한 테제>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매 행동, 심지어는 가장 사소한 일상적 요구를 위한 행동조자도 혁명적 각성과 혁명적 교육을 가져올 수 있다. 혁명의 불가피성과 공산주의의 역사적 중요성을 노동자들에게 확신시켜 줄 것은 바로 투쟁의 경험이다.” 이와 같이 가장 사소한 생활 요구 투쟁이라도 그 투쟁을 혁명 및 공산주의와 연결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 혁명가들의 임무다. 따라서 그 어느 공동전선에서든 혁명가들은 투쟁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전략∙전술을 조금도 구부리지 않고 투쟁할 것이다. 또한 개량주의자들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수준으로 투쟁을 제한하는 무원칙한 타협을 철저히 배제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혁명가들은 노동자당 건설 공동행동에서 혁명적 강령만이 일관되게 계급적 독립과 노동자 독자 정치세력화를 담보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모든 공동전선이 그렇듯이 노동자당 건설 공동전선도 단지 선동적 결과물만이 아니라 조직적 결과물도 이루어내야 한다. 노동대중들 속에서 조직적 거점을 수립할 수 있는 매 기회들을 남김없이 사용해야 한다.(모든 각 정치조직의 노동자들과 무소속 노동자들로 구성된 공장위원회, 평조합원 공동행동 조직 등). 아래로부터 노동자계급 투쟁기관들을 강화하는 투쟁에 공동전선이 복무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개량주의자들이 선호하는 관료적 조직 형태들에 도전할 계급투쟁 구조를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신속한 승리를 쟁취하고 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 대담하게 투쟁을 밀어부칠 수 있게 해 줄 무기한 총파업 같은 전투적 투쟁방법을 공동전선이 채택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본의 권력에 도전하고 나아가 노동자계급을 권력 장악으로 이끌 이행강령이 새로운 노동자당 운동에 대한 혁명적 개입을 위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 창당대회라면 이행강령이 통으로 제출되어야 하지만, 공동전선 과정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직면한 구체적 정세와 과제에 따라 이행강령의 각 요구와 슬로건은 강조점과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 창당의 전제조건과 당 건설 공동전선의 전제조건은 당연히 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공동전선에서 개량주의에 맞선 투쟁은 운동 첫날부터 일어난다. 특히 개량주의 정치인들의 의회 물신주의에 맞서 혁명가들은 현장과 거리에서의 계급투쟁을 강조할 것이며, 이로써 공동전선 제1일부터 투쟁은 불가피하다.

 

  현장과 거리의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기회들을 남김없이 붙잡아야 한다. 혁명가들에게 전술은 노동자계급 선진부위에 맞춰진다. 개량주의와 충돌하며 그 왼쪽의 대안을 찾는 선진 노동자 주체들을 기준으로 전술 수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상 독자 정당을 위한 노동자운동은 모두 처음에 계급의 선진부위의 운동이었다. 새로운 노동자당이라는 사상이 광범위한 노동자들에게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혁명가들은 현장과 거리에서 자본가들에 맞선 전투를 떠맡을 태세가 되어 있는 선진 투사들한테, 계급 대중에게 전투적 지도력을 공급할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한테 공동전선 전술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선진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개량주의의 장악력을 끊어내고 보다 광범위한 계급 대중 속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동전선의 모든 투쟁사업들을 배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노동자당 전술의 목적은 혁명적 강령을 중심으로 노동자계급 선진부위의 정치적 조직화를 일궈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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