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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호(통권9권)] <JW지회> 단결로, 연대로 직장폐쇄 철회 투쟁 승리, 비정규직 조직화와 더욱더 과감한 투쟁이 승리의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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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자신있게! 단호하게! 끈질기게!

 

[JW지회] 단결로, 연대로 직장폐쇄 철회 투쟁 승리


비정규직 조직화와 더욱더 과감한 투쟁이

 

승리의 관건!

 


구재보

 

 

 

  충남 당진에 위치한 JW생명과학(주)는 JW중외그룹 계열사로 한국에서 생산하는 링거수액의 60~70%를 담당하고 있다. JW중외그룹은 사업부문인 JW중외제약과 투자부문인 지주회사 JW중외홀딩스로 나뉘어져 있는데, 1945년 설립된 해방둥이라 일컬어지며 제약업계 10위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작년 10월 JW생명과학의 노동자들이 일어섰다. 생명과학과 한 울타리에 위치한 중외제약 노동자들과의 차별때문이었다. JW중외제약에는 이미 한국노총 소속의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다. 위원장이라는 자는 15년간 위원장직을 계속 차지하고 있었고, 얼마 전 치러진 위원장 선거에서 현 위원장과 맞붙은 노동자가 떨어졌다. 중외제약 자본은 선거에서 떨어진 노동자를 다른 계열사로 인사발령 했지만, 그는 홀로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신청해 승리했다. 그리고 결국 JW생명과학의 노동자들을 규합해서 노조를 설립하고 전국화섬노조에 가입했다. 현 JW지회의 지회장이 바로 그다.

 


노조설립 후 회유와 협박, 그리고 컨설팅 회사

 

  지회 설립 총회 과정을 통해 90여명이 지회에 가입했다. 자본은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끈질기게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했다. 자본은 브릿지컨설팅이라는 업체를 고용했다. 브릿지컨설팅은 오자마자 조직 진단이라는 내용으로 전 조합원에 대해 개별면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지회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급기야 10여명이 탈퇴하기에 이르렀고, 시급히 조합원 교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1부 근무자, 통상근무자, 2부 근무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조합원들을 모아 노조란 무엇인지, 자본이 왜 회유와 협박을 하는지, 그것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에 대한 교육들을 진행했다.

 


교섭 결렬, 98%의 압도적 찬성

 

  지회는 한편으로는 교육을 진행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단체협약 요구안을 마련해나갔다. 11월부터 올해 2월중순까지 9차례에 걸쳐 단체교섭을 진행했다. 그러나 자본은 한국노총 중외제약노조의 단체협약의 내용과 동일한 요구조차도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법에 명시되어 있는 그대로의 내용도 삭제를 주장했다. 총 90여개의 조항중 단 세 개 조항 정도만 합의되었고 결국 조정절차를 거쳐 파업권을 획득하고 98%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시켰다.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교섭만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매주 교섭속보와 투쟁소식지를 제작 배포했고, 공장 앞 출근선전전과 식당 앞에서 중식집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자본은 소식지를 배포하는 것에 대해서 경고장을 남발했다. 사내 질서를 흩트리기 때문에 소식지 배포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합원이 쉬는 시간에 전체 조합원에게 문자메세지를 발송한 것을 두고 근무지 이탈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감봉)를 때렸다. 또 라인 설비가 고장난 것을 두고 조합원이 고의로 고장냈다는 주장을 하며 대기발령을 때렸다. 지회는 이러한 탄압들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대응을 했다. 감봉 조치에 대해 조합원 전체가 식당 앞에서 대자보와 모금함을 만들어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이 모금운동에는 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도 함께 동참했고, 감봉 액수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모금되었다. 또 대기발령 조치와 동시에 조합원들은 식당 앞에서 하던 집회를 사무동 앞으로 옮겨 규탄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결국 사측은 일주일만에 대기발령을 철회했다. 첫 출근 선전전을 진행할 때는 때마침 쌍용차 희망텐트 ‘노동자참가단’ 동지들이 전국 순회 투쟁 도중 달려와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조합원 동지들은 처음으로 연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노총 충남서부지역지부 주최로 열린 JW지회 투쟁 승리 결의대회가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100여명의 지역동지들이 연대했고, 그동안 머뭇거렸던 조합원 동지들이 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부분적,공격적 직장폐쇄, 현장을 분리시켜라!

 

  2월 22일은 지역의 노동자들과 처음으로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2부 근무중이었던 조합원 동지들은 생애 처음으로 4시간 부분파업을 전개하고 문화제에 참여했다. 문화제가 끝난 후 모인 자리에서 조합원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듯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말 한 마디 못한 채 기계처럼 노예처럼 억눌렸던 삶으로부터 해방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러자 자본은 바로 다음날인 2월 23일 조합원 14명에 대해 직장폐쇄를 때렸다. 이에 지회는 곧바로 4시간 부분파업을 전개하고 연대한 지역의 노동자들과 긴급하게 직장폐쇄 규탄 집회를 전개했다. 자본의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다음날인 24일에 22명, 27일에 2명을 추가로 직장폐쇄를 때렸다. 72명의 조합원 중 38명은 공장 밖으로 쫒겨나고, 34명은 공장에 남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공격적 직장폐쇄를 부분적으로 때린 자본의 의도는 명확했다. 조합원들을 현장 안과 밖으로 분리시키려는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투쟁에서 현장 안과 밖의 조합원들이 담당하게될 투쟁과 거기에서 나오는 서로에 대한 불만들, 그리고 임금을 받고 못받고에 따른 분열등을 노렸던 것이다. 따라서 지회의 전술 역시도 현장 안과 밖의 조합원들이 겪게 될 분리를 막아내기 위한 것에 일차적으로 맞춰졌다. 지회는 곧바로 총회를 열어 자본의 직장폐쇄의 의도를 명확히 하고, 현장의 조합원들이 임금을 받게 될 경우 임금의 15%를 직장폐쇄된 조합원을 위해 사용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투쟁 전술을 논의했고, 분임조를 새롭게 편성, 격일마다 공장 안팎의 조합원들이 회의를 진행할 것을 결정했다.

 


투쟁의 독으로 작용한 직장폐쇄 가처분 소송

 

  자본의 직장폐쇄 단행 후 직장폐쇄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이유는 이렇다. ‘실제로 조합원들은 부분파업을 4시간 밖에 진행하지 않았고, 직장폐쇄를 맞은 조합원 중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사측의 직장폐쇄는 공격적이고 부당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측은 지회가 지속적으로 잔업 및 특근거부를 하고 있으며 심각한 태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직장폐쇄를 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법률이라는 것은 활용적 측면에서 고민되고 제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법률이 노동자들의 집단적이고 직접적인 투쟁보다 우위에서 제기될 경우 투쟁 자체를 뒤죽박죽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투쟁의 요구 또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작년 야간노동 철폐를 요구하며 투쟁했던 유성기업지회만 봐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유성기업지회는 야간노동 철폐를 걸고 투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직장폐쇄와 공권력에 의해 공장 밖으로 쫒겨난 후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현장복귀 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그 때부터 유성지회의 요구는 야간노동 철폐가 아니라 현장복귀와 직장폐쇄 철회로 대체되었으며, 급기야 굴욕적인 법원 조정안을 받고 현장에 복귀했다. JW지회 역시도 가처분 소송 이후 소송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파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고, 그것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파업을 하게 될 경우 소송결과에 불리하게 작용될 것이며, 그럴 경우 생계문제로 인한 조직력 훼손이 발생할 것이라는 이유때문에 지금 당장의 일차적 목표는 직장폐쇄 철회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장폐쇄가 두 달 넘게 경과하면서 조합원 내부에서의 문제들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측이 의도한바 현장 안팎의 분열이었다. 심각할만큼 문제가 크게 대두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방치할 경우 심각한 조직력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심도 깊은 고민과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지회는 현장 안 조합원들이 순번을 정해 천막농성에 결합하고, 출퇴근하면서 천막에 들러 밖의 조합원들과 함께 상황을 공유하고 토론하며, 연대투쟁에 적극 결합 등을 결정했다.

 


단조롭고 불투명하게 이어지는 투쟁 전술

 

  노조를 만들고 모든 것이 첫경험이었던 조합원들은 마냥 신기했고 활력이 넘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투쟁의 단조로움과 불투명함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본사 일인시위, 계열사 노동자를 상대로 한 집회 및 선전전, 식약청 집회, 대시민 선전전, 지루하게 계속되는 반복적 교육. 교섭도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자본의 반응이 무뎌져 가고 있는 상황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뭔가 새로운 투쟁을 한 가지 기획하고 실천했을 때 그것에서부터 나오는 새로운 경험들은 그 불만들을 일정정도 해소시켜낼 수 있었다. 때문에 지회는 뭔가 새로운 투쟁을 쌈빡하고 재밌는 아이디어 제출하듯 고민하기 시작했다.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그 목표에 부합될 수 있도록 전술이 제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날 그 날, 혹은 일주일 단위로 프로그램들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방식이었다.

 

  4월 23일부터 27일까지 4박 5일간 진행했던 상경노숙투쟁은 흐트러져 있던 조합원들을 다시 한 번 세우기 위한 투쟁이었다. 상경노숙투쟁의 목표는 첫째, 27일 서울 본사 앞 집회를 힘있게 전개하기 위해서 둘째, 흐트러져 있던 조합원들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곧추 세우고 현장 안팎의 조합원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셋째, 이 투쟁을 통해서 사측과 교섭자리를 만들어보기 위해서 넷째, 조합원들에게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조합원들과 함께 상경노숙 투쟁의 의미와 목표를 공유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이 함께 결합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천막농성장은 현장 동지들이 담당키로 했다. 상경노숙투쟁에서의 대부분의 일정은 연대투쟁이었다. 세종호텔노조, 쌍용차지부, 콜트콜텍지회, 재능교육지부, 대우자판지회, 기륭전자분회, 현대차비정규직지회, K2코리아지회,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 그리고 민주노총 서울본부 열사문화제에 결합했다. 그리고 27일 본사 앞 투쟁에서는 조합원 스스로도 놀라고 감격스러울만큼 연대가 풍성하고 화려했다. 투쟁을 마치고 돌아온 조합원들은 “노숙투쟁 한 번 더 하자! 연대의 힘과 소중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평가를 했다. 그리고 더욱더 과감하고 단호한 투쟁들을 해야한다고 제기하기 시작했다.

 


자본의 직장폐쇄 자진 철회

 

  상경노숙투쟁을 마치고 돌아온 조합원들의 활력과 사기는 살아 숨쉬고 있었다. 더욱더 과감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던 중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자본은 5월 3일 24시부로 직장폐쇄를 철회한다는 공고문을 붙였다. 사측이 밝힌 직장폐쇄 철회 이유는 첫째, 직원들의 경제적 곤란함을 해소하고 둘째, 노조의 쟁의행위를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첫째, 조만간 있을 가처분 소송 판결에서 사측이 패소할 것에 대한 부담감 둘째, 자본이 의도했던 바대로 현장 안팎이 분리되지 않았고 직장폐쇄 이후 조합원 이탈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점 셋째, 연대가 더욱더 확대되고 있으며, 더욱더 큰 투쟁을 할 것에 대한 우려가 직장폐쇄 철회의 진짜 이유다. 또 자본이 노조무력화 전략을 일정정도 선회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본의 전략이 실패함으로 인해 나온 판단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폐쇄 철회에 대해 조합원들은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했고, 한편으로는 기뻤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했다. 어리둥절했던 이유는 직장폐쇄가 갑자기 철회되었기 때문이며, 기뻤던 이유는 직장폐쇄를 사측 스스로 철회시켰기 때문이며, 걱정했던 이유는 아직 투쟁이 끝난 것이 아니며 사측의 탄압이 더 거세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합원들은 긴급하게 회의를 열고 현장 복귀를 결정했다. 그리고 조합원 전체 모임을 열고 현재의 상황을 공유하고 현장 복귀 전술과 사측의 탄압 예상치, 그리고 대처방안과 현장투쟁 전술에 대해 토론했다.

 


일차전 승리

 

  JW생명과학 자본과의 일차전은 조합원의 승리로 끝났다. 자본이 스스로 직장폐쇄를 철회하고 조합원들이 기세등등하게 현장에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로지 노동자에게 생명과도 다름없는 단결과 연대 때문이다. 투쟁이 본격화된 시점(2월 23일)부터 단 한 명도 이탈자가 없을 만큼 조합원들은 끈끈하게 단결했다. 또 쌍용차 희망텐트 ‘노동자참가단’의 연대를 시작으로 해서 크지는 않지만 지역노동자들이 보여줬던 연대와 받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유성지회,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보령화력환경지부, 프럼파스트지부 등 지역 투쟁 사업장에 대해서도 연대를 실천했다. 형식적인 연대가 아니라 연대하러 갔던 동지들에게 생기발랄한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연대를 실천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연대였다.

 


앞으로 가야할 길

 

  5월 7일 현장 복귀와 동시에 자본은 사무장 동지에 대해 대기발령을 때렸다. 복귀 조합원 전체에 대해서는 하루종일 GNP교육과 시험을 치르게 했다. 공장 밖 설치한 천막농성장을 철거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협박하고 있으며, 공장 내 66대의 CCTV로 조합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JW지회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지 일차전을 승리했을 뿐이다. 단체협약을 쟁취해야 하고, 민주노조를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자본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교섭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JW지회는 복귀와 더불어서 노조를 인정받기 위한 5대 핵심 요구를 결정했다. ①노조사무실 보장 ②전임자 보장 ③조합비 일괄공제 ④공장 내 교섭 ⑤ 연대동지들의 공장 출입 보장이 그것이다. JW지회가 자본을 상대로 완전하게 승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첫째 단결과 연대를 더욱더 확대해야 한다.
둘째 생산에 타격을 미치기 위한 더욱더 과감하고 단호한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셋째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 인턴, 이주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와 한국노총 중외제약노조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를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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