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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호(통권9권] <자료> 노동자정부 전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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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노동자정부 전술에 대하여1)

 

 

 

  코민테른 제4차 대회에서는 노동자정부 전술을 놓고 많은 논의가 전개되었다. 논의의 초점은 개량주의 정당과 공공연한 부르주아 정당 간에 정부 구성을 놓고 경합하는 나라들에서 어떤 전술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에 놓여 있었다. 어느 당이 정부를 구성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두고 코민테른은 노동자정부 슬로건이 “공동전선 전술로부터 불가피하게 따라 나올 수밖에 없음”을 승인했다.

 

  심지어는 이와 다른 경우의 나라들에서도 그 슬로건은 “일반적 선전 슬로건으로서 어디서나 실천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노동자정부라면 노동자 조직들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하고,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의 이해에 따라 행동해야 하며, 노동자 조직들을 무장시켜야 한다는 등의 주장은 공산주의적 선전의 기본 구성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슬로건을 어떻게 전술로 사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였는데, 4차 대회에서는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립해내지는 못했다.

 

  그 후 이 문제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5차 대회에서 궤도를 이탈해 버렸고, 그 뒤에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이 부르주아지와의 공공연한 연합(인민전선)을 위해 그 슬로건을 기각시켜버리면서는 논의 자체가 중단되어 버렸다.

 

  그러나 4차대회의의 심의안과 테제들에는 혁명주의자들에게 진정한 “노동자정부”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특징들이 무엇인지가 나타난다.

 

“노동자정부의 최대 임무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무장시키고, 부르주아 반혁명 조직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생산 통제를 도입하고, 주요 과세 부담을 부자들에게 넘기고, 반혁명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노동자정부가 가능한 경우는 오직 대중들의 투쟁 속에서 탄생하는 경우, 그리고 투쟁을 수행할 수 있는 노동자 조직들 - 노동대중들 중 가장 억압받는 부분들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들 - 의 지지를 받을 경우일 뿐이다.”

 

  이것이 혁명주의자들이 쟁취하고자 하는 정부 유형을 묘사한 것이라면, 비혁명적 노동자 정당들에 대한 공동전선의 일환으로 노동자정부 슬로건이 제안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그 슬로건은 대수학적 성격[백지수표의 경우처럼 거기에 누가 무엇을 써넣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는 의미에서. 즉 세력들의 역관계와 투쟁에 의해 내용이 결정된다는 의미에서]을 가진다. 혁명주의자들에게 이 정부는 부르주아지와의 혁명적 전쟁을 선포하는 정부이다. 그러나 개량주의자들에게 이 정부는 부르주아 체제를 관리하는 정부일 것이다.

 

“진정한 노동자정부의 구성, 그리고 혁명적 정책을 추구하는 정부의 존속은 결국 격렬한 투쟁으로 이어지며, 종국에는 부르주아지와의 내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노동자정부 수립” 슬로건에 혁명주의자들이 부여하는 내용이라면, 그 슬로건이 공동전선으로서 제안될 수 있으므로 개량주의자들 및 개량주의 지도력의 영향 하에 있는 노동자들은 그 슬로건에 비혁명적 내용을 부여할 수 있고, 아마 그렇게 할 것이다. 따라서 4차 대회는 그러한 ‘노동자정부’ 레테르가 붙여질 가능성이 있는 5가지 정부 유형을 식별하여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첫 번째 가능성은 “자유주의 노동자정부”였다. 사회주의를 공언조차도 하지 않는 노동당 정부가 이 경우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섰던 노동당 정부가 그 사례였고, 영국에서도 곧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다면 이런 경우일 공산이 컸다. 두 번째는 “사회민주주의 노동자정부”인데, 독일에서 존재했던 사민당 정부가 여기에 속했다. 이 두 경우 모두 “부르주아 노동자당 정부”였으며, 현실에서는 부르주아지와의 은밀한 연합이었다.

 

  코민테른은, 혁명적 공세를 피하기 위해 부르주아지가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이러한 정부들이며, 혁명주의자들이 이러한 정부들에게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줄 수 없지만, “그러한 정부조차도 객관적으로 부르주아 권력의 해체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음”을 승인했다.

 

  이는 그러한 정부가 노동자들의 대표체로서 권력에 오르면 애초 하려고 했던 것보다 더 나아가도록 강제되며, 그럼으로써 지지 노동자들의 기대와 요구 수준을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러한 정부는 필요하면 어디서든 부르주아지와 한 편이 되는 것이 필연적이므로 개량주의 정당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또한 가속화시킬 수 있다.

 

  세 번째 가능성은 노동자 ․ 빈농 정부였고(당시 동유럽 나라들에서 가능했던 정부), 네 번째는 혁명주의자들이 참가할 수 있는 노동자정부(즉 노동자 공동전선의 정부적 표현)였다. 이 두 경우 모두 혁명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부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혁명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필요성을 아직 인정하지 않는 노동자들, 즉 사민당 소속 노동자들, 기독교 정당 소속 노동자들, 무당파 생디칼리스트들 등등과 함께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자들은 일정한 조건에서는 그리고 일정한 보장이 갖춰진다면, 공산주의적이지 않은 노동자정부를 지지할 태세가 되어 있다. …… 이 세 번째와 네 번째 유형의 정부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참가할 수 있다. 이들 정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대표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가는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이행 단계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가 구성되는 곳에서는 그러한 정부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섯 번째 가능한 노동자정부 형태는 혁명주의자들 자신이 정부를 구성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단 하나의 “순수한” 노동자정부 형태였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같은 것이었다.            
노동자정부들에 대한 코민테른의 유형 분류는 오늘날 다소 시대착오적인 지점이 있다. 구래의 “자유주의 노동당”과 사민주의 정당은 하나로 수렴되었고, 그에 따라 두 유형의 “부르주아 노동자 정부들”도 하나로 “융합”되었다.

 

  또한 4차 대회에서 채택된 노동자정부에 관한 테제에는 이미 1922년에 발전하기 시작한 코민테른 내부 투쟁의 흔적을 띠고 있는데 이것이 나중에 코민테른의 타락을 수반하였다. 예를 들어 지노비예프는 노동자정부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동일시하고자 하였다. “노동자정부”는 단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동의어”일 따름이라는 그 같은 해석은, 노동자정부 슬로건이 공동전선 제안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지점을 그 슬로건에서 제거해버리는 해석이다. 지노비예프의 사용법으로 보면, 그 슬로건은 오직 최후통첩주의적으로만, 예를 들어 사민주의 정부를 겨냥하여 최후통첩주의적으로만 제기될 수 있었다. 

 

  이러한 최후통첩주의는 그 기회주의적 대립물로 쉽게 전화될 수 있다. 스탈린과 부하린이 “노동자 ․ 농민 정부”를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라는 역사적으로 퇴물이 된, 따라서 반동적인 개념과 동일시했을 때 바로 그랬다.
  이것은 결정적인 점, 즉 그러한 정부는 강령적으로 볼 때 부르주아 정부라는 점을 모호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스탈린과 부하린은 중국에서 그러한 정부의 구성을 강령적으로 필수적인 혁명 단계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러한 정부는 트로츠키가 설명한 바와 같이 “사회주의 혁명의 길에 놓인 주 장애물”이며, 따라서 노동자정부 전술에 대한 부정이다.

 

  코민테른 테제에 담긴 그 같은 느슨한 정식화들에 내재하는 위험은 세 번째 및 네 번째 노동자정부 유형과 관련하여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여기에는 공산주의자들이 포함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코민테른은 공산당원들이 그러한 정부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엄격히 규정해 놓았다. 일단 코민테른의 동의가 절대적 전제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정부에 들어간 공산당 소속 각료들이 가장 엄격한 당 통제 하에 있어야 하며, 노동자 혁명 조직들과 가장 긴밀한 접촉을 맺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산당 소속 각료들이 절대적 독자성과 비판의 권리를 허용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경우에든 혹은 여타 이유들로 인해 공산주의자들이 이러한 노동자정부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
  4차 대회가 있은 지 일 년도 안 되어 문제가 터졌다. 독일 내에서 사민당과 독립사민당이 장악한 지방정부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 그리고 그 지방정부들에 공산당원들이 들어간다면 어떤 조건으로 들어갈지를 놓고 분열이 일어났는데 이로 인해 독일공산당은 파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노동자정부 전술의 올바른 사용법은 러시아에서 2월 혁명과 10월 혁명 사이의 몇 달 간에 볼셰비키가 보여준 실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볼셰비키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넘길 것을 요구했을 때 사실상 그것은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조직들에 바탕을 둔 정부, 즉 나중의 용어법으로 말하면 노동자정부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볼셰비키는 그러한 정부를 구성할 실제 세력이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미리 규정해 놓지는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그 요구는 “대수학적”이다. 정부 구조의 차원에서 요구되고 있는 모든 것은 그 정부가 소비에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부의 정치적 임무들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즉각적인 평화, 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 모든 은행의 국유화, 토지를 농민에게, 이러한 조처들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한 국가 무장력 (즉 소비에트 민병대)의 사용 등.


  이러한 조처들이 최소한의 필수적 요구들이라는 인식을 노동자들이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였는데, 볼셰비키는 마침내 이러한 인식 쪽으로 노동자들을 획득함으로써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에 대해 이러한 강령(프로그램)을 채택하도록 훨씬 더 큰 압력을 조성해내는 데 성공했다. 볼셰비키는 이러한 압력과 함께 “부르주아지와 단절하라!”라는 요구를 결합시켰다. 그러나 멘셰비키는 그 강령을 실행하는 것도, 부르주아지와 단절하는 것도, 자신의 근거를 소비에트에 두는 것도 다 거부하였다. 볼셰비키가 조성해낸 압력은 이러한 과정에서 소비에트 내 멘셰비키의 다수파 지위를 급속히 파괴해 나갔다.

 

  권력이 실제로 소비에트로 넘어갔을 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소비에트 정부는 스스로의 근거를 소비에트 권력에 두고 필수적 조처들을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정당들, 즉 볼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좌파로 구성되게 되었다. 볼셰비키는 권력 장악에서 소비에트의 역할을 물신화시키지 않았다. 7월의 날들 이후 볼셰비키가 소비에트에서 내쫓기고나서 볼셰비키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요구를 접어버렸다. 대신에 레닌은 공장위원회를 노동자정부의 권력 기반이 될 수 있는 조직 형태로 보기 시작했다. 코르닐로프 사태 이후 소비에트가 다시 민주화되고 나서야 소비에트는 다시 볼셰비키 선전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코르닐로프 쿠데타 동안 볼셰비키는 반동에 대항해 “부르주아 노동자정부”를 무조건적으로 무장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볼셰비키의 목적은 혁명이 진전되기 위해 필요한 군사적 준비를 가능케 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계속해서 멘셰비키를 권력에 있게 함으로써 그들의 파산과 계급적 배신이 노동자계급의 다수에게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지는 정확히 케렌스키(당시 부르주아 노동자정부[임시정부] 수반)에 대한 “교수형 집행인의 올가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것은 실제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부 형태가 되었던 또 다른 노동자정부를 위한 길을 닦았다.

 

볼셰비키의 노동자정부 전술 사용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노동자들의 필요에 답하면서 동시에 노동자계급 국가권력에 대한 필요를 제기하는 즉각적 조처들로 구성되는 “행동강령”을 내거는 것.

 

  2) 이 강령(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정부로서 노동자정부가 제기된다. 처음에는 대수학적으로. 그 정부의 정확한 구성은 미리 규정되어 있지 않다.

 

  3) 노동자 정당들에게 부르주아지와 단절하여 이러한 노동자정부를 구성하라고 요구한다. 단 정부의 방어와 지지를 노동자들의 독자적 투쟁조직에 의존할 것을 분명히 하면서.

 

  4) 개량주의자들이 대중의 지지를 아직 잃지 않고 있는 한 혁명주의자들은 반동에 대항해 개량주의자들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주지 않고 완전한 독자성을 유지한다. 
     
  5) 개량주의자들이나 중도주의자들에 의해 구성된 정부지만 소비에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 혁명주의자들은 반동에 대항해 그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방어할 것이다. 그러한 정부가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한 혁명주의자들은 봉기에 의해 이 민주주의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다.

 

  6) 이 전 과정에 걸쳐 혁명주의자들은 자신의 강령 및 조직 상의 독자성을 지켜나간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전위 및 그 배후의 노동자 다수가 혁명의 필요를 인식하는 쪽으로 획득되자마자 혁명주의자들은 국가권력 장악에 나서야 하는 바, 혁명주의자들은 이러한 자신의 목적의식을 지켜나간다.

 

  오직 현실 사회세력들의 충돌만이 노동자정부 요구에 정확한 “산수학적” 내용을 부여할 수 있다. 그리하여 1917년에 소비에트 2차 대회 이전의 올바른 슬로건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였던 데 비해 2차 대회 때는 “볼셰비키 ․ 사회혁명당좌파 정부 수립”이 올바른 요구였다.


  개량주의자들에게 소비에트에 바탕을 둔 정부를 구성하라고 하는 요구가 노동자정부 전술 사용의 중심 요소이긴 하지만, 그 요구는 언제나 정치 강령(정치적 프로그램)에 종속되어야 한다. 소비에트가 대의체인 한 소비에트는 혁명주의가 다수파일 수 있는 것만큼이나 반동이 다수파일 수 있다.
  소비에트의 존재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1918년 11월 독일혁명에서 부정적으로 입증된 바 이다. 거기서 권력은 노동자 ․ 병사 대표자 평의회의 수중에 있었다. 1917년 2월의 러시아에서처럼 그 평의회들은 권력을 그들의 개량주의 지도자들에게 건네주었다. 사민당 지도자들인 에베르트와 샤이데만이  막스 폰 바덴 공과 연합하여 왕정을 구해내려 한 그들의 시도가 실패하고 난 뒤에  선포한 정부는 노동자평의회에 기반을 둔 공화주의 정부였다. 그것은 그 형태에 있어 노동자정부였다.
  그러나 그것의 정치적 내용은 부르주아 노동자정부,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공세를 봉쇄하고 종국에 파괴하기 위한 부르주아지와의 은밀한 연합이었다. 사민당 지도자들은 평의회에서 그들이 받고 있는 지지를 이용하여 그들의 권력 기반을 국회와 바이마르 헌법을 통해 의회적 기구로 이전시켰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그들 정부의 형태를 그 내용에 조응하도록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이제 부르주아지와의 공공연한 “인민전선” 연합을 이룬 개량주의자들은 1919년 한 해 내내 그들의 부르주아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전위세력을 테러하고 말살해 나갔다. 여기서 혁명적 전위세력이 노동자 다수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상황을 교묘히 이용했다.

 

  1920년 3월의 카프 폭동은 개량주의가 계급들 사이를 오가면서 책략을 부릴 그 능력이 절대적 한계점에 몰리게 될 때 어디까지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 주었다. 부르주아 군대가 개량주의 지도자들인 에베르트와 샤이데만과 노스케를 버렸을 때 당시 행동에 나선, 그리고 부분적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에 의해 이들은 계속해서 권력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레기엔이 쿠데타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동자정부”를 제안했을 때 (그가 의도한 것은 ‘부르주아 노동자정부’ 였다.) 에베르트 등 이들 사민당 지도자들은 그 제안이 자신들을 노동자계급으로부터의 너무 큰 압력 하에 놓이게 할 것임을 눈치 챘다. 그러한 상황에서 노동자평의회를 정부의 기초로 공공연히 선포하는 것은 사민당 스스로가 볼 때도 자신들이 실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기대치만 노동자들 사이에 조성해 놓는 꼴이 될 것이었다. 이러한 전망에 직면하자 사민당은 부르주아지와의 새로운 연합을 이루는 쪽으로 선택하였다.

 

  일단 새로운 정부가 권력에 확고히 안착하자 국방군이 동원되어 노동자평의회들을 무장 해제시켰다. 레기엔의 제안 당시에 공산당은 그러한 ‘노동자정부’의 구성을 원리적으로 반대했고, 거기에 맞서 혁명의 필요성을 들이밀었다.

 

  이것은 사민당이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고리에 걸린 사민당의 고리를 풀어주는) 꼴만 된 종파주의적인 대응이었다. 이때에 노동자정부 전술을 올바로 사용했다면, 그것이 가져다주었을 효과는 분명하다. 그러한 노동자정부의 정치 프로그램, 즉 다음과 같은 조처들을 관철시켰을 것이다. 무장한 노동자 평의회의 법제화, 자유의용군의 해산,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즉각적인 동맹, 베르사유 조약에 따른 전쟁 배상에 대한 반대.

 

  이 모든 것이 실행되었다면 레기엔의 길에 장애물을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동시에, 공산당이 노동자 정당들로 구성된 정부라는 사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반동에 맞서 그러한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방어하는 태도를 취했다면 이것은 공산당으로 하여금 사민당 소속 대중들과 더 긴밀히 접촉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개량주의자들에 대해 부르주아지와의 연합을 구성하지 말라는 압력을 더 강화시켜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량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와 연합을 해버렸을 경우 노동자들은 개량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을 해산시키고 무장 해제시키려 하자마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독자적 행동을 취할 준비가 더 잘 되어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보다 자본주의 선진국들에서 개량주의가 노동자계급에 대한 더 큰 장악력을 가지고 있고, 그 중 독일의 개량주의는 이 점에서 선두주자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혁명가들로서는 독일의 경험이 제공하는 교훈들을 학습하고 숙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의 방어와 정부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구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량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정부와 관련하여, 그것이 형태상 부르주아 입헌정부(즉 부르주아 노동자정부)건 혹은 형태상 노동자 조직들에 기반한 정부(노동자정부)건 혁명주의자들은 반동에 대항하여 (필요한 경우) 무장을 하고 그 정부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치적 지지는 오직 혁명의 길을 취하는 노동자정부에게만, 즉 ‘진정한’ 노동자정부를 규정하는 핵심 조처들을 실행에 옮기는 정부에게만 주어질 수 있다. 코민테른과 제4 인터내셔널이 그랬듯이 우리도 부르주아 노동자당들이나 중도주의자들이 그러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음을 입증시켜 보일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행강령>>이 설명하는 것처럼, “완전히 예외적인 환경들(전쟁, 패전, 재정 파탄, 대중들의 혁명적 압력 등등)의 영향 하에 스탈린주의자들을 포함한 소부르주아 정당들이 그들 스스로 하고자 했던 것 보다 더 멀리 나아가 부르주아지와 단절하는 길로 가게 되는 이론적 가능성을 미리 무조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사민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와 단절한 “진정한 노동자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이러한 만에 하나의 이론적 가능성을 트로츠키가 승인한 것을 가지고서 그의 아류 지지자들은 자기들 멋대로 왜곡시켰다. ‘그러한 사민당과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을 포함하는 정부가 노동자정부이다’ 라는 식의 명제로 둔갑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사회당-공산당 정부가 부르주아 노동자정부라는 의미에서가 아닌 어떤 다른 의미로의 노동자정부인 것처럼 말한다든가, 또는 영국 노동당에 의한 노동자정부 구성이 그 자체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한다든가 하는 것은 가장 비겁한 기회주의이다.

 

  우리는 그 같은 방식으로 “노동자정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코민테른 4차 대회 테제의 정신은 아주 분명한 것이었다: “노동자정부”란 다음과 같은 것을 실행하는 정부를 가리킨다. 부르주아지를 무장 해제시킨다. 생산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통제권을 제거하기 위한 조처들에 착수한다. 이러한 정책들을 강행하고 정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을 그들 자신의 조직들을 통해 무장시키며 이들 조직에 정부 스스로가 책임을 진다.

 

  우리가 노동자정부 “요구”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공동전선의 원리들에 맞춰서 혁명주의자들과 비혁명주의자들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지키거나 강화시켜내기 위해 정부 수준에서조차도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제안이 곧 노동자정부 “요구”에 담긴 실천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량주의자들과 중도주의자들에 의해 구성되는 여타의  모든 정부 형태들은 “부르주아 노동자정부”로 지칭되는 것이 정확한 용어법이다. 명백히, 노동자정부를 직접적인 요구로 제기할 지 여부는 정세 조건에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권력 문제가 제기되는 혁명적 위기의 경우들이 아니라면 혁명주의자들은 ‘노동자정부’를, 진정한 혁명적 노동자정부에 관한 선전으로 제기하는 한편, 이와 동시에 정부를 구성한 개량주의 정당들에게 부르주아지와 단절하고 노동자의 이해를 위한 구체적 조처들을 취하라고 요구한다.  

 

 

 


 

<각주>

 

1) 이 자료 글은 해외 좌파 잡지 <Permanent Revolution> 1호에 실렸던 글 ‘The Workers' Government’를 번역한 것이다.

http://www.permanentrevolution.net//?view=entry&entry=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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