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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멋진 공동체를 위해

이랜드 비정규직 문제로 운동 진영이 뜨겁다.

비정규직 개악법에, 노조를 사탄으로 여기는 기업가까지.. 열받지 않고 넘어가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세상은

기업가의 도를 벗어난 , 해도 너무한 작태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지 비정규직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향하지 못한다.

과연 이 분노가 진화하여 이 상황을 재생산하는 구조로 향할 것인가?? 이랜드 노동자들의 절규와 동시에

종합주가지수 2000이라는 주가 상승에 환화하는 시민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 학생운동 말미에 고시로 돌아선 후배 한 명을 봤는데, 그 후배에게 사회진보연대 동향에 좀 관심을 기울이라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어이구"였다. 꽤 높은 결의를 보여주던 친구였는데, 한 번 돌아서니, 다시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개인의 영달 앞에 명분이 없나보다.. 학생운동의 결의가 허위적이었던 건지, 아니면 그놈이 기회주의적인 것인지.. 여러 사람 만나보면 전자인것 같기는 하지만...어쨌건, 이 구조적 재생산이 그나마 학생운동을 근 오육년간 했던 놈들도 교문 밖에서 완벽하게 무장해제시키는 것을 보면 만만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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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보존 법칙

다섯 가지

 

시간에 대한 불변성 -> 에너지 보존 법칙

위치에 관한 불변성 -> 선운동량 보존 법칙

보는 각도에 대한 불변성 -> 각운동량 보존 법칙

 

입자에 관한 불변성

전하 보존 법칙

바리온 보존 법칙

렙톤 보존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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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ient

 

곡면의 한 점 P에서 Gradient는 Normal Vector이다.

 

그렇다면 함수 F(P)의 gradient는 어떤 의미? 

 

먼저 Gradient가 정의되는 과정을 생각해봐야 한다. 시작은 점 P에서 v에 대한 기울기 Dv F(P)부터이다.

 

v에 대한 기울기는 기하학적으로 직선 tv 에 대한 기울기 Dv  = lim(t-->0) { F(P+tv) - F(P) / |tv| } = d / dt {t=0} F(P+tv) 로 부터 주어진다.

 

F(P)가 미분가능하다라는 것은 기하학적으로 (P, F(P))에서 접평면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접평면을 y = F(P) + a. (X-P)  (a == normal vector)라 하면

 

lim (X->P) { F(X) - F(P) - a.(X-P) /  X-P } =0  . 분자가 분모보다 더 빨리 0에 접근해야 한다. 이 때 X = P+v 라 하면

 

lim X-->P == lim v-->0 이다.  정리하면 위 식은   F(P+v) - F(P) - a. v  = o{v}

 

이 때 위 식을 다시 한 번 바꾸어보자. 아주 작은 v 를 tv (t -->0)으로 쓸 수 있다.

 

 lim (t->0){  F(P+tv) - F(P) - a. tv  / |tv| } = 0  ==>  Dv F(P) = a.v

 

그런데 이 때 v가 e1 이라면 De1 F(P) = a1 이 된다.

 

grad F(P) = ( D1 F(P), ... ,Dn F(P) ) =  (a1, a2, .., an) = a .

 

즉 Normal Vector가 된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함수의 등위면에서는 Normal Vector!

 

하지만 함수 자체에서는 다르다.  함수 자체에서 grad F(P) 는 Dv F(p) = grad F(P) . v 로 주어지고 이 말은 즉 v에 대한 기울기를 구할 때 사용된다. v를 독립변수로 생각하면 v가 grad 와 평행일 때 F(v)는 가장 빠르게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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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mal Vector

평면에서 한 점에 대한 Gradient는 그 점에서의 Normal Vector다. 즉 한 점에서 모든 기본 방향으로의 편미분 값이 국소적인 그 면과 수직이라는 건데..  사실 1 변수 혹은 2 변수 함수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는 잘 와 닿지 않는 이야기이다.

R^n --> R^n+1  이 되는 좌표에서 (P, f(P)) 점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으로 법벡터부터 생각할 때는 등위면에 대한 접평면이라는 관념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 차원을 햇갈리면 안된다.  즉 (P, f(P))에서는 Normal Vector는 (grad f(P), -1) 과 같은 방식이다.

 

차원이란 서로 Orthogonal 해서 수렴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 현상 많은 부분들은 다차원으로 생각해야 한다. 경제와 이데올로기. 자연과 인간사회, 등등이 그러한 것들이리라. 좀 더 복잡하게 많은 차원들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 현상은 스칼라가 아니라 벡터라는 점에서 다변수 함수에 좀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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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경로

한미  FTA 저지 투쟁도 그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도 그러하고, 최근 십여년 이상 대부분의 투쟁들은

제자리 걸음인 듯 보인다. 참가자들의 수가 크게 느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투쟁의 내용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무언가 막혀 있는데, 이를 해쳐갈 지혜가 부족한 것인지, 이것이 이 시대 정세의 절대적 한계치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하여튼 어려울 때일수록 만사무용론과 만사노력론으로의 편향은 경계해야 할 것인데, 한 때 전자가 유행했다면, 이제 남은 최후의 활동가들은 후자쪽으로 경도되고 있는 듯도 보인다. 시야가 안보이는 도로에서는 잠시 서서 사태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열심히 달린다고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나에게 학습은 매우 중요한 문제인 듯 한데, 특히 관성화된 학습을 벗어나는 것이 문제이다. 150여년 전의 자본론을 외우는 것이나, 그렇다고 최근의 프랑스 철학을 가져다 쓰는 지적 근본주의-해체주의를 경계해야 하며, 또한 자신의 당파의 커리큘럼을 따라 개념의 레토릭을 만드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바이다. 이러한 점에서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지배계급의 과학과 이데올로기와 토론 가능한 학습이다.  박수도 부딪혀야 소리를 내는 법, 운동 진영의 말과 행동이 도덕적 원칙이거나 혹은 지구인과 외계인의 대결이 되어서는 곤란하며, 더욱 중요하게는 관성을 깨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외부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가능한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는 자연과학, 특히 모든 과학의 기본이라 할 물리학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지금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를 읽고 있는데, 물리 법칙의 연역과정과 수학적 증명에서의 발달은 매우 흥미롭다. 또한 뉴턴 역학 이외의 현대 물리학이 던져줄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가져본다.

 

다음으로는 거시-미시 경재학 개론 정도는 제대로 익혀 봐야 할 것이다. 경제의 수학적 모델링과 여러 지배적 개념들에 충분히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뒤메닐-레비, 폴리 등의 최근 마르크스 경제학을 이해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마르크스 ABC 만을 외우는 것으로는 안된다.

 

그리고 근대 철학도 계보적으로 확실하게 익혀 둘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근대 정치 이념 비판의 맥락과 현재적 해석을 위해서는 철학의 지도가 필요하다. 또한 학습의 효율을 위해 통계학, 미적분학 정도의 수학은 매우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아 근데 이걸 다 언제 한담... 젊어서 너무 반지성적으로 놀았더니, 30대에 고생하는구나. 그래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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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무침

민들레를 무침
 
 
 
1.
‘쓰다’라는 말은 달지 않고 먹기 힘든 맛을 표현할 때 쓰지만 간혹 입맛을 돋아 주는 맛을 표현할 때도 쓰인다. 씀바귀, 도라지 등의 나물과 요즘 유행인 카카오 초콜릿 등이 대표적인 음식들이다. 이렇게 맛있게 쓴 음식들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는데 바로 민들레 무침이다. 우리 주변에 흔하게 널려 있고, 쑥처럼 잘 캐가지도 않는 민들레가 의외로 좋은 요리 재료가 된다.
내가 민들레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길가에서 민들레를 팔고 있는 할머니를 통해서였다. 등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잡초를 팔고 있는 할머니가 신기하여 왜 잡초를 팔고 있냐고 물어 보자, 할머니는 이 민들레가 매우 맛있는 나물이라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봉지 담아 나에게 건넸다. 이미 사고 말고는 물 건너간 상황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한 마디 더 건넸다. “생각보다 써!”
다음 날 저녁 냉장고 한편을 가득 채운 민들레를 요리해봤다. 세상에 먹지 못할 식물은 없는 법이다. 나물의 기본 요리법으로 무쳐놓은 민들레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맛있었다. 향은 그다지 없었지만, 쓴 맛과 나물의 생기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거친 야생의 맛, 민들레꽃처럼 살라 했던 노래 한 구절이 생각나게 하는 맛이었다.
민들레를 요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들레를 다듬어야 한다. 꽃과 시들거나 색이 바랜 부분을 떼어내고 찬 물로 깨끗이 씻어 흙도 닦아 낸다. 그리고 끓는 물에 1분 정도 데친다. 너무 오래 데치지 않도록 주의하자. 무청이나 배추와 같이 삶아서 보관한 후 국에 넣어 먹는 야채들은 조금 푹 삶아도 괜찮지만 쑥, 시금치, 고사리 등과 같이 나물 자체의 향과 맛을 즐기는 나물을 푹 삶아 버리면 향과 생기가 다 날아가 버린다.
다음으로는 양념을 만들 차례다. 개인적으로 나물 양념에는 세 가지 계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된장․들기름 계열, 고추장․참기름 계열, 간장․마늘 계열이다. 된장․들기름은 나물 자체의 맛을 살리는 양념이고, 고추장․참기름은 양념과 나물의 조화를 중시하는 양념이다. 간장․ 마늘 계열 역시 나물 자체의 맛을 살리는 양념이다. 된장․들기름의 경우 나물 자체의 향과 맛이 좀 거칠 때 쓴다면, 간장․마늘은 나물의 향에 된장조차도 방해가 될 때 쓰인다. 그렇다면 왜 된장․참기름 계열은 없을까? 물론 된장에 참기름도 조화가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참기름의 강한 향이 된장의 구수한 맛을 압도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고추장의 경우 고추장 자체가 워낙 강한 맛이라 참기름과 어울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민들레 무침은 된장․들기름이 제격이다. 쓴맛을 즐기되, 그 거친 맛을 약간 다듬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시금치, 고사리 등은 다들 알다시피 간장․마늘을 가지고 양념한다. 워낙 나물 자체가 맛이 좋다보니 굳이 된장이나 고추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간장 정도로 살짝 짠 맛을 주고 마늘로 향을 주는 정도가 좋다. 물론 이 경우도 약간의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쓰기는 하지만 아주 소량으로 그쳐야 한다.
된장에 들기름을 적당량 넣고, 마늘과 파를 잘게 썰어(혹은 으깨어) 넣어준 후 잘 섞는다. 데친 민들레에 양념을 넣고 추가로 들깨 가루를 넣는다. 들깨 가루는 민들레의 거친 질감을 완화시킨다. 완성!
참고로 나는 민들레 무침과 함께 쑥 무침을 해먹었는데, 이 때 쑥을 고추장․참기름으로 양념을 하였다. 앞에서 쑥과 같이 향이 좋은 나물은 된장이나 간장이 좋다고 하였는데, 이 경우 이미 민들레를 된장 양념으로 하기도 하였거니와 민들레와 같이 거칠게 쓴 맛의 나물을 먹을 때 쑥과 같이 섬세한 향의 나물을 그대로 취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쑥 향을 즐기다 바로 쓴 나물을 먹으면, 쓴 맛은 더욱 고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강한 쓴 맛과 고추장․참기름 맛 속에 스며든 쑥 향이 더욱 조화롭다.
민들레는 튀김으로 해먹어도 좋다. 다듬은 민들레를 조금씩 묶은 다음 튀김가루를 무쳐 튀기면 된다. 막걸리 안주에 매우 좋을 듯하다.

 

-- 갈월동 기행에 썼던 글 중 일부이다. 좀 더 자세한 것은 월간 사회운동 2007년 6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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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파 이론과 경제학에서의 순환 문제

물질파 이론에 따르면 일견 무규칙해보이는 파동은 사실 파동 묶음이다. 즉 푸리에 변환으로 분해하면 많은 정규 사인파로 나누어지고, 이 정규파들은 물질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원소들에 대응한다.

 

그렇다면 경기 곡선을 분해하면 어떠한 곡선들이 나올까? 슘페터가 종합했던 순환 묶음이 나올까?  

자본주의 경제가 몇 개의 정규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옳은 가정일까?

뒤메닐 식으로 이야기하면 1890년대와 1980년대를 터닝 포인트로 하는 기술 변화 곡선이 있을 테고... 10-20년 짜리 주글라 곡선이 있고...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 곡선이 있을까... 이 종합이 자본생산성 변화 곡선이 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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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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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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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정책

 

에너지 정책에 대한 연구가 매우 절실해 보인다.  석유 자원 고갈과 더불어 환경 오염 이슈가 나날이 커져 갈 것이다.

이 신종 산업이  이윤율 회복의 전위가 될 지,   변혁운동 진영의 새로운 사회 설계를 위한 고지가 될 지..  지금까지는

전자에 가까워 보인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좀 더 경제학적인 접근

자연/인간의 근대적 구별에 대한 철학적 비판

재생 에너지 등 기술적 한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

현안에 대한 개괄을 담은 보고서

 

정도가 필요한 듯

 

 

레디앙과 프레시안의 에너지 정책 코너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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