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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Why Socialism?"을 읽기 전에 (I)

/* 몇년전에 사노위 계간지(월간지인지 정확하지 않음) 기획이 있었죠.  그때 적은 원고인데 오늘 우연히 E-mail 정리하다 발견이 되었네요. 그후 사노위 계간지가 무슨 이유인지 유야 무야 되고, 이글은 그냥 사라졌고.  후속편도 적지 못하고 기억속으로 사라졌죠. 암튼, 우연히 발견해서 다시 읽어 보니, 반갑기도 하고해서 blog에 올립니다.  혹 comment하실 꺼 있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아인슈타인의 “Why Socialism?"을 읽기 전에 (I)

 

사람들에게 아인슈타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고 하면, 어릴 때 낙제했고, 대학도 1년 재수 했지만 결국 천재성을 드러낸 과학자, 혹은 덥수룩한 머리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다소 세상과 동떨어진 연구소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천재의 모습, 그리고 실생활에 어둡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한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아인슈타인에 대해 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스라엘국가를 반대한 친 유대주의자(시온주의자)였으며, 원자폭탄 제조를 요구해 놓고 나중에 원자폭탄개발에 반대한 사람, 혹자는 여성편력이 심했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듯 싶다.

 

그러다 아인슈타인 글 “Why Socialism"이라는 글을 보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된다. 이 글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무정부 상태가 악의 진정한 근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나쁜 점 중에서 가장 최악은 개인을 불구자로 만드는 것’이라며, 이 악을 제거하는 것이 ‘사회주의 계획경제’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 ‘계획경제가’ 모두 ‘사회주의가 아’님 환기시키며 관료주의 문제나 민주주의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을 연상하게 하는 이글은 미국의 좌파 잡지 [월간평론(Monthly Review)] 창간호(1949년)에 실려 발표되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매카시 광풍이 시작이 되는 해이기도 하며, 그의 나이는 71세였다.

 

나치는 그를 처단 명단에 올렸고, 미국은 FBI를 통해 그를 22년 동안 비밀 감시해 1800쪽의 문서를 남겼다 이러한 사실은 이 글이 어쩌다 나온 글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서 상당한 정치적/철학적 활동의 결과에서 나온 것임을 암시해 준다. 이를 증명하듯 [위키페디아]라는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아인슈타인은 과학논문으로 300여편 이상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과학 분야가 아닌 글들도 150여편이나 되며, 이 중에는 사회주의와 국제 관계와 같은 철학적, 정치적 주제에 대해서 다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1905년, 혁명을 준비하며

 

아인슈타인은 1879년 독일 울름에서 중소 자본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시기는 사회주의자들에게 특별하다. 1870년에는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1878년, 1879년에는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태어난 해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4살 되는 해 맑스가 사망했다.

 

어린 시절 아인슈타인은 다른 아이들처럼 호기심이 많았고 자연의 비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독일 뮌헨의 루이트폴트 김나지움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그는 권위주의적인 독일 김나지움 교육에 항상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16세 때 군사적 기풍과 주입식 교육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돌연 우울증과 신경과민이라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자퇴해 버렸다.

 

학교를 자퇴한 아인슈타인은 비교적 자유로운 스위스로 건너가 스위스의 연방공대(ETH)에 지원하였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고1을 중퇴하고 바로 대학 입학시험을 본 것이다. 입학시험은 두 부분으로 진행되었는데, 하나는 전공시험이고 다른 하나는 교양시험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교양시험의 성적이 좋지 못해, 스위스에서 고등학교 1년을 더 다닌 후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군 입대를 거부하고 국적을 포기한 때도 이 시기이다.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던 것이다.

 

스위스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인슈타인이 후일 특수상대성 이론을 펼치기 위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중, 아인슈타인은 벌써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맥스웰 이론과 갈릴레오의 상대성의 원리 사이에 있는 모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갑돌이가 시속 60km의 속도로 일정하게 달리는 차안에 있고, 갑순이가 시속 40km로 달리는 차에 있다고 하자. 갑돌이는 갑순이 차가 시속 20km 속도로 뒤처지게 보이고, 반대로 갑순이는 갑돌이 차가 시속 20km 속도로 앞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갑돌이가 61km속도로 속도를 증가시키면(가속시키면) 갑돌이가 느끼기에 시속 60km에서 61km로 변했으니, 1km속도 증가(가속도)를 확인할 수 있고, 갑순이도 갑돌이 차가 20km에서 21km로 변했으니 1km의 속도가 증가(가속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운동법칙 ‘힘=질량X가속도’ 에 따라 질량이 같고 가속도가 같기 때문에, 갑돌이가 관찰한 운동법칙과 갑순이가 갑돌이 차를 관찰한 운동법칙이 같다. 이것이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이다. 즉, 관찰하는 사람이 등속도로 움직이든, 정지해 있든 물리 법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빛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보면 어떻게 될까? 16세 아인슈타인에게 고민은 이 것이었다. “빛에 올라타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갈릴레오의 이론에 따르면 “내가 빛과 같은 속도로 운동하면서 빛을 바라본다면 제자리에서 진동하는 빛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과학을 집대성한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는 관측자가 움직이거나 정지하거나 상관없이 항상 일정해야한다.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은 10년 동안 지속된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에서도 성적이 아주 우수했거나 천재적인 특이한 기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수학이 싫어 수업을 빼먹고, 실험을 하거나 사색을 즐겼다. 그리고 성적과 무관하게 관심 있는 학문에 대해서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 학교에서 성실한 마르셀 그로스만과 미셀 안젤로 베소 그리고 첫 번째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를 만났다. 이들과 학창시절 내내 철학과 과학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다. 이때 마흐에 대해서도 많은 토론이 있었고, 마흐가 뉴턴의 절대 시공간에 대한 비판한 것에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졸업 시점이 다가왔을 즈음, 아인슈타인은 교수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학교에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1902) 여기 저기 비정규직 강사로 전전하다가 다행히 친구 그로스만 아버지 덕분으로 스위스 베른에 있는 특허국에 취직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취직하면 대부분 회사일 에 쫓겨 다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틈이 없는데, 당시는 좀 달랐을까? 아인슈타인은 친구들과 ‘올림피아 아카데미’라는 모임을 만들어 계속 과학과 철학에 대한 토론을 즐겼다. 그이 이론적 업적은 바로 이 모임의 자유로운 토론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학창시절 친구이자 아카데미 구성원이었든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한다(1903년). 수학 전공인 밀레바는 수학을 싫어했던 아인슈타인의 중요한 동료 파트너였다. 이렇듯 아인슈타인의 생활은 아주 평범했다. 오히려 이러한 평범한 생활이 주류 과학계의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했다는 평도 있다.

 

1905년의 혁명

 

 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는 1905년은 아인슈타인에게도 경이로운 해였다. 그는 양자역학, 특수 상대성 이론, 그리고 브라운 운동에 대한 논문을 제출한 해였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그의 첫 번째 논문은 <정지 액체 속에 떠 있는 작은 입자의 (열의 분자운동론에 의한) 운동에 대하여>로 브라운 운동(랜덤 운동)에 관한 것인데, 물속에 꽃가루가 무작위로 (랜덤하게) 운동하는 원인에 대한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주류과학은 원자나 분자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꽃가루의 무작위 운동의 원인을 열에 의한 대류로 보았다. 마흐와 물리화학의 창시자 빌헬름 오스만발트가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지할 수 없는 것, 즉 감각을 통해 보여줄 수 없는 것은 자연과학에 있어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실증주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기술로 측정할 수 없는 원자와 분자의 존재를 강력하게 부정하였다. 주류에 대한 도전은 늘 안타까운 희생을 요구하였다. 통계 역학으로 유명한 볼츠만은 원자론을 바탕으로 이론을 발표하다 에너지론 학자들에게 시달려 결국 자살을 하였다. 실증주의자들은 원자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을 터무니없고, 악랄한 유물론이라고 물아세우며, 존재의 기초는 물질이 아닌 에너지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볼츠만의 손을 들어 주었다. 원자(분자)가 실재한다는 가정을 대범하게 받아 들였고, 꽃가루의 무작위(랜덤한) 운동은 물 분자에 의한 충돌에 의한 것으로 계산해서 만족할만한 설명을 얻어 내었다.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인식론적 입장은 젊은 시절 나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지금은 본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왜냐 하면 그는 사색, 특히 과학적 사색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구조적이고 이론적인 본질을 올바른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했다. 그 결과 구조적, 이론적인 특성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이론, 예를 들어 원자의 동역학 이론에 대해 비난하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 고 비판하였다. 당시 레닌 역시 [유물론과 경험 비판론]에서 오스트발트의 ‘에너지론’을 비판하였다. “운동을 물질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마치 사유 활동을 객관적인 실재로부터 분리하거나 내 자신의 감각을 외부 세계로부터 분리하는 것과도 똑같다. 다시 말해 그것은 관념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질과 상관없는 운동을 가정하면서, 즉 물질을 부인하면서 흔히 사용하는 속임수는 바로 물질과 사유 사이의 관계를 무시하는 데 있다. 마치 이 물질과 사유 사이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음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실제로는 은밀하게 이 관계를 끌어 들인다. 애초에는 이관계가 표현되지 않다가 어쩔 수 없이 점차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러한 성과는 논쟁을 완전히 끝내지는 못했다. 볼츠만이 자살을 택한 것도 아인슈타인이 이 논문을 발표한 다음해 였다. 이 논쟁을 종식 시킨 것은 그로부터 2년후 프랑스 물리학자 장 페렝이 실험으로 입증하고 나서였다.

 

두 번째 논문은 <빛의 방출과 변화에 관련된 예시적 관점에 대하여>라는 양자역학에 관한 논문이다. 혹자는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부정했다고 알고 있는데, 오히려 양자역학의 성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과학자였다. 이 논문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독일 베를린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였던 막스 프랑크가 빛이 양자화 되어 있음을 발견하던 때로 되돌아가 보자.

 

당시 물리학자를 괴롭힌 것은 가열된 물체에서 나오는 에너지였다. 고전물리 이론을 종합하여 그 에너지를 계산한 레일리, 진스는 가열된 물체에서는 무한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복사) 해야 하는 모순에 부딪혔다. 고전물리학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플랑크였다. 그는 가열된 금속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계산하는 수식에서 우연히 면적을 구하지(적분을 사용하지)말고 개별입자의 덧셈(수열의 합)으로 계산을 하면 실험과 동일한 수식을 얻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인 에너지 다발로 방출하고 흡수한다는 의미였다. 플랑크는 이 에너지 다발을 광양자(quanta)라고 불렀다.

 

그러나 에너지가 불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측정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마흐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던 당시로서는 이러한 수식 결과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주류 과학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 준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두 번째 논문에서도 대범함을 발휘했다.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다발이라는 광양자 가설을 받아들여, 이미 실험적으로 알려진 광전효과(빛을 금속판에 쪼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효과)의 여러 특성들을 명확히 밝혔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뉴턴의 빛의 입자론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 입자론으로는 빛이 회절과 간섭을 하는 파동의 성질을 설명할 수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의 물리학자 밀리칸은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0여 년간에 걸쳐 매우 정밀한 실험을 반복하다 결국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아인슈타인 보다 2년 늦은 1923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광양자 이론과 빛의 이중성(파동성과 입자성)의 모순은 이후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아인슈타인의 진정한 명성은 세 번째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라는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논문은 어느 날 갑자기 천재의 재능을 발휘한 논문이 아니라 16세 때부터 10여 년간 지속적인 연구와 토론의 산물이며, 그리고 이제까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성과들을 집대성한 결과였다.

 

당시 맥스웰에 의해 빛이 전자기파임이 입증 되었고, 전자기파는 절대로 정지하지 않는다는 특성도 실험과 이론으로 증명되었다. (전자기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인데, 변하는 전기장이 자기장을 발생시키고 다시 변하는 자기장이 전기장을 발생시키면서 앞으로 퍼져나간다. 즉, 전기장이든 자기장이든 하나가 정지해 버리면 빛은 사라져 버린다.)

 

아인슈타인은 갈릴레오의 상대성의 원리와 빛의 속도 불변성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빛의 속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정하고, 공간과 시간을 상대화시켜 해석했다. 여기서 시간을 상대화 시켰다는 말은 사람들 마다 시간이 다르게 간다는 뜻이다. 이 말은 충분히 이상하게 들리기 때문에 수식을 이용해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빛의 속도를 일정하다고 하자, 그런데 그 속도는 분자에 공간을 변수로 분모에는 시간을 변수로 갖는다. 간단하게, ‘속도 = 거리(공간)/시간’ 이라는 수식을 생각해 보자. 공간이 상대적으로 변한다면 시간도 상대적으로 변해야 분자, 분모의 변화가 서로 상쇄되어 변하지 않는 속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개념의 변화는 상식을 완전히 전복시켜 버린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기차안의 갑돌이에게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기차 밖의 갑순이에게는 따로 따로 일어난 사건으로 보인다. 관찰자에 따라 측정 결과가 다르다고 관찰자의 ‘의지’에 의해 결과가 좌우된다는 식으로 해석해 버리면 곤란하다. 그런데 기차안의 갑돌이는 갑순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갑돌이가 보기에 갑순이는 동시에 발생한 사건을 따로 따로(시간을 두고) 측정해 놓고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두 사람 각각은 모순이 없는데, 두 사람이 만나면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빛과 같이 고속으로 운동을 하면 이런 일은 실제로 발생한다. 이 이론은 경험만으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한 번 알려준다. 아무튼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이들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 것으로, 물리법칙은 모든 관성계(등속운동을 하는 좌표계)에서 똑같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상대성 원리’라고 부르지 말고 ‘불변성의 원리’라고 부르자는 제안도 있다.

 

특수 상대성 원리는 아무리 쉬운 책을 봐도 이해하기가 힘이 든다. 그러나 이해하기 힘든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 이유는 특수 상대성 원리는 바로 4차원 공간, 즉 가로(x)-세로(y)-높이(z) 축에다가 시간(t)의 축을 더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차원에 사는 개미는 3차원을 이해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3차원에 사는 우리들은 4차원의 세계를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이후 많은 실험과 측정으로 증명이 되었다. 우주에서 지구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떨어지는 미세 입자들 수명을 측정하는 실험에서, 실제 수명이 길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특수상대성 원리의 수식을 전개하다 보면, 유명한 E=mc^2 이라는 에너지-질량 등가 법칙, 즉 에너지 질량의 “상호 전환” 관계를 유도할 수 있다. 이 관계는 후일 원자력 에너지와 원자 폭탄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획기적인 발견을 이끌어 내었다. 1920년 후반에 물리학자 디락은 특수상대성이론을 양자역학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물질’이 필요함을 이론적으로 증명하였고, 1933년에 와서 실제 반물질인 양전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양전자는 현재 병원에서 측정 장치로 이용하고 있다.

 

1905년에 특수 상대성에 관한 논문 발표를 하고나서 상당한 논란이 기대했지만 의외로 조용했다. 그의 논문의 우수성을 알아 본 사람은 당시 ‘물리학 연보’ 편집장이었던 막스 플랑크 였다.

 

 이들 논문으로 아인슈타인은 조금씩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1911년 프라하에 2년 계약직으로 강의하던 아인슈타인은 당시 연방공대 교수인 친구 그로스만의 도움으로 1912년 8월 연방공대의 교수직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로스만과 일반 상대성이론을 만들기 위한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자유로운 스위스는 아인슈타인에게 또 다른 선물을 제공했다. 그 곳에는 당시 여러 사상가들과 혁명가들의 피난처였던 오데온 카페(Odeon Café,)가 있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수업을 빼먹고 사회주의나 아나키스트 학생들과 정치적 토론에 참여하기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여기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우리에게 친숙한 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트로츠키 그리고 몇 년 후에 레닌이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참고서적

 

D.P 그리바노프 “아인슈타인 -철학적 견해와 상대성이론” 일빛

홍성욱, 이상욱외 “뉴튼과 아인슈타인” 창비

김성원, “빛보다 빠른 것은 없을까” 과학동아 2005

David Renton, "Albert Einstein's Socialism" RETHINKING MARXISM, Vol. 13 (2001)

Wikipedia "Albert Einstein's Political view"

John J. Simon "Albert Einstein, Radical : A Political Profile", Monthly Review (2005)

Albert Einstein "Why Socialism?" Monthly Review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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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th 맑스코뮤날레 영상모음

끝없이 강요되는 '자본주의' 노동속에도 시간이 남는 날도 있군요. 다행스럽게도 인터넷은 지나간 여러가지 일들을 다시 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현장에서의 긴장감과 친밀감.. 그리고 재미있는 뒷풀이는 못하지만 남는시간,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해법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6th 맑스코뮤날레 일정과 순서 입니다.

 

아직 정리 중입니다.  양해를..  

 

1. 세계 자본주의 위기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1.1)[6th맑스코뮤날레] 세계자본주의의 위기: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발표 : 장시복, 토론 : 곽노완)

   1.2) 유로존 위기와 노동자 투쟁(발표 : 금민, 토론 :송종운)

   1.3) [6th맑스코뮤날레]중국, 자본주의 구원투수? 또 다른 진앙지?- (발표:이정구, 토론 : 송종운)

   1.4) 경제위기와 제국주의 (발표 김어진, 토론 : 하태규)

   1.5)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 왜 사회주의인가?(발표 :김인식, 토론 :고민택)

 

2. 자본주의와 가부장체제, 적-녹-보라, 새로운 주체형성

  2.1부 : 자본주의-가부장체제, 적-녹-보라 패러다임, 페미니즘

      2.1.1)

 [6th맑스코뮤날레]자본주의와 가부장체제, 적녹보라 새로운 주체형성

 

[6th맑스코뮤날레]가부장체제와 적녹보라 패러다임- 고정갑희

[6th맑스코뮤날레]가부장체제와 적녹보라 패러다임- 토론:조형근

 

[6th맑스코뮤날레] 적녹보라 연대의 이론적 쟁점과 과제- 심광현

[6th맑스코뮤날레]적녹보라 연대의 이론적 쟁점과 과제- 토론 권정임

 

[6th맑스코뮤날레] 적녹보라: 자본주의 내/외부와 주체의 형성- 박영균

[6th맑스코뮤날레] 적녹보라: 자본주의 내/외부와 주체의 형성- 토론 엄남이

 

 

 

 2.2부 적-녹-보라, 주체형성, 운동

[6th맑스코뮤날레] 적녹보라, 불편한 동거 또는 새로운 패러다임?- 서영표

[6th맑스코뮤날레] 적녹보라, 불편한 동거 또는 새로운 패러다임?- 토론 황주영

 

[6th맑스코뮤날레]적녹보라 패러다임과 새로운 주체형성- 이은숙

[6th맑스코뮤날레]적녹보라 패러다임과 새로운 주체형성- 토론: 서동진

 

[6th맑스코뮤날레]음란과혁명:색 얻지 못한 자들,색스러운 자들- 권명아

[6th맑스코뮤날레]음란과혁명:색 얻지 못한 자들,색스러운 자들- 토론 신병현

 

3. 한국사회 분석

 

[6th맑스코뮤날레]한국자본주의에서 위기와 축적의 절대적 일반법칙- 정성진

[6th맑스코뮤날레]한국사회 계급구조 변화와 이데올로기- 장귀연

 

4.  반자본주의(사회주의) 대중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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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실천연구소 2012 동계강좌] 사회과학방법론 /김진업교수 --비판적 실재론

과학철학에 대한 이런 좋은 강의가 있었군요.  우~~~아~!!!!

세상 좋아졌네요. 이런 강의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니.. 

특히 알고 싶었던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을 아주 잘 설명해 줘서

너무 좋습니다. 

 

  과학철학속에서 허우적 거리다.. 찾은 과학기술 구성주의..

그들의 주장 중에서  "성찰"해라 뭐.. 이런 것이 가장 크게 와 닿았는데..

옳은 말이긴 하지만.. 실천을 하기 위해 너무 많은 성찰을 요구하고, 성찰을 통해   무엇을 찾아

내야하지만.. 결국은 상대주의이기 때문에 찾아 봐야 "없다"는 결론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천을 매몰시켜 버렸죠.. . 

 (뭐.. 적어도, 나는 그랬습니다. 공부만 하다 죽어라는 사상 같은 느낌?

   주류과학 비판을 위해  지나치게 상대화하다 보니 너무나도 뻔한 사이비 과학을 비판하는데

    너무나 많은<불필요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느낌? ..)

 

그러다.. 인터넷을 뒤지다 우연히 발견한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 ... 당시 해외 메일링리스트도 있고

여기 저기서 소개되고 있었고.. 한국에도 번역까지 되어 있더군요.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

 

2007년인가?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읽다가 이해하는데  완전 실패~

이 강의 듣고 다시 도전해봐야 겠어요. 아직 책장에 있네요. (ㅋㅋ.... 이번엔 성공해야지..)

 

 

바스카는  20세기 후반에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계몽"을 과감하게 다시  불러 옵니다.

 

"우리가 열망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계몽의 여명을

밝히는 것, 즉 18세기의 부르주아적 계몽이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 혁명 그리고

식민지 노예제 전복에 관련되었던 것과 같이, 장래의 어떤 질서에 관련되는 것은,

장래의 어떤 질서에 관련되는 사회주의적 계몽의 여명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스카의 이 책은 시작부터 힘이 느껴집니다.

1장 마지막 구절에서

"사회주의를 우리 시대의 이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판적 실재론이 안내하는)

굳건한 지적 작업과, (사회관계의 변형을 지향하는) 정치적 실천이 필요하다." 고 적고있습니다.

  (오 ~ 이 형언할 수 없는 자신감은 뭐지? )

 

이 책은 과학을 공부하는 의미를 부여해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맑스, 엥겔스가 다윈에게 느꼈듯이, 자유-책임에 얽매여서가 아니라 ..

새로운 (변혁의) 흥분을 느낀것 처럼...

 

 

 

[사회실천연구소 2012 동계강좌] 사회과학방법론 1- 1 / 김진업

[사회실천연구소 2012 동계강좌] 사회과학방법론 1- 2 / 김진업

[사회실천연구소 2012 동계강좌] 사회과학방법론 2-1

[사회실천연구소 2012 동계강좌] 사회과학방법론 2-2

 

[사실연 2012 동계강좌] 사회과학방법론 3-1 (2주 정리) - 김진업

[사실연 2012 동계강좌] 사회과학방법론 3-2 (비판적 실재론) - 김진업

[사실연 2012 동계강좌] 사회과학방법론 3-3 (비판적 실재론) - 김진업

 

[사실연 2012 동계강좌] 사회과학방법론 4-1 (복습) - 김진업

[사실연 강좌] 사회과학방법론 4-2: 자연과학에서의 실재론 - 김진업

[사실연 동계강좌] 사회과학방법론 4-3: 자연과학에서의 실재론 - 김진업

 

[사실연강좌] 사회과학방법론 5-1: 자연과학에서의 실재론(복습)

[사실연강좌] 사회과학방법론 5-2: 과학의 이데올로기들로서의 철학들

 

사회과학방법론 6-1: 과학의 이데올로기들로서의 철학들 (복습)

사회과학방법론 6-2: 사회과학적 지식의 가능성과 자연주의 한계

 

사회과학방법론 7-1: 사회과학적 지식 가능성과 자연주의 한계 (복습)

사회과학방법론 7-2: 과학적 설명과 인간해방

 

사회과학방법론 8 : 비판적 실재론과 마르크스과학 (종합토론)

강의 묶어 놓은 곳 
https://www.youtube.com/watch?v=M-bqLq0w8a4&list=PLMiTmGBQHnxk0JbfROeOkzCe-uHNCQ1fi 

참고자료  (21년 7월 4일 추가)
1.  왼쪽날개의 마르크스 경제학 
     2강이 "비판적 실재론과 노동자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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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보고

 

이 영화가 윤회를 다룬 영화라고 했다.
윤회? 윤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 어디에서 윤회 사상이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몰라 윤회라는 단어를 한번 찾아봤다. 
http://ko.wikipedia.org/wiki/%EC%9C%A4%ED%9A%8C
 
"일정한 깨달음, 경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그 깨달음, 경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하여 이 세상으로 재탄생한다는 교의 또는 믿음이다.
윤회의 교의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겪는 삶의 경험이 자신의 발전에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상태 또는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소 이 세상으로의 윤회가 끝난다."

윤회의 최종은 궁극의 깨달음(절대정신으로의 회기?)인듯한데  이 영화는 궁극의 깨달음은 없다.
과거의 노력이 점차 발전해서 현재에 이르고 밝은 미래로 나아간다는 고리타분한

종교 비스무리한 근대적( 착취적!!) 내용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주인공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무늬의 점이 있는데 바로 윤회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ㅋㅋ.. 난 워쇼스키 남매가 친절을 배풀어 준거라는 생각이 든다. 6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니까

헛갈려서 짜증내는 사람을 위해서.. 이 넘이 주인공이다~~~ 라고 알려주는 장치... 뭐 이런거....ㅋㅋ

 

이 영화에서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지만,우연히 스쳐지나는 것이지(우연히 마주치는것이지), 과거의 결과가 현재를

인과론적으로 강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와 과거는 같이 작동한다. 미래도 마찮가지다.

 

과거 선행의 축적이 현재의 발전을 이끌어 낸다는 식의 노래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는 밝지도 않다.
현재와 과거 미래는 수직적이 아니며 수평적이다. 오직 과거에서 바로 그 당시 현재
  미래에도 바로 그 당시 현재 그리고 현재의 주체는 기존의 억압과 관섭에 저항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다. 과거에 의존의존하고 과거의 존재를 신격화 우상화

하지도  않는다.  (손미신이라는 믿음의 관습을 깨고 나온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 "에서의 투쟁만을 이야기 한다.
그 중심에는 이데올로기로 속에서 빠져 나오는 복재 노동자 "손미"가 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타인들과 묶여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는 현재의 타인들 뿐아니라

과거의 타인과 미래의 타인이 서로 묶여 있다고 주장한다.  지독한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는 지금

이런 말들의 발견은 반가운 일이다.

 

이 영화에 대해 재미있네 없네 말이 많은데.. 난 재미있었다. ㅋㅋ 난 워쇼스키 남매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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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받은 영화 몇개

1. 와이키키브라더스(2001, 임순례) :

2번째 봤을 때 영화의 의미가 다가왔다.  아직까지 내가 본 최고의 영화다. 임감독이 이번에 "남쪽으로 튀어"라는 영화를 내놓았다. 기대된다.

 

2. 파란자전거(2006, 권용묵감독) :

우연히 봤는데.. 여운이 길다. 아주 ~~  난 배우 오광록이 좋다. 그의 연기는 어색한듯 자연스럽고 깊이가 있다.

 

3.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새(1975,밀로스포먼) :

명작영화중에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는 첨이다. 혹 영화를 보게 된다면 간호사역에 루이스플래처에 주목하면서  보면 재미있다. 그녀의 연기는 섬뜩하다!  

 

4. Mr Nobody(2009, 자코반 도마엘<-- 제 8요일 감독) : 

현대 주류과학에서 주장하는 내용들.. 신화화 해서 아무도 안티를 제기하지 못하는 20(1)세기 과학을 농담으로 경쾌하게 받아친다.  이런"허무맹랑한 듯한" 애기를 과학이 하고 있다면서...   ㅋㅋ

 

5. 보리밭에 흔드는 바람(2006, 캔로치) :

선거때 마다 차선을 맨날 강조하는 넘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캔로치 는 역시 거장이다.

 

6. 스테이(2005, 마크포스트)   :

엄청 햇갈린다. 그러나 마지막에 정리해 준다~ . 이와 유사한 반전영화들 중에서 이상하게 이 영화가 기억에 아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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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자본주의 나..

 

밴처 생활 4년...  점점 나쁜 넘으로 변해가는 나~ 스스로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와 멀어지고...

 

주말... 밤 낮 할 것 없이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자와 멀어지고...

 

문득... 자본주의가 이런거구나... 햐~ 

 

그러니까 기가막히게 돌아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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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날인 F/U

회사 부근에서 인감 증명 발급받으려다 지문날인을 안해 거부당한 적이 있었는 (http://blog.jinbo.net/yskim/102)

, 진보네트워크 등의 단체에서 이런 활동을 지속하고 있군요.  감사~~~ 

 

 

 

 

서울시 인감증명 제도 개선을 위한 의견서

 

2012년7월23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함께하는시민행동, 진보신당(준)

 

 

배경

 

○ 최근 인감증명 발급과 관련하여 사고 방지 등을 명목으로 인감증명 발급기관인 서울시 산하 자치구에서 지문인식기 확인 강제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음

○ 또한 지문날인 제도의 인권침해성에 항의하고자 오랫동안 주민등록증 발급을 거부해온 시민들이 인감증명의 발급을 요구할 경우, 자치구가 타신분증 제시를 수용하지 않고 지문날인된 주민등록증 제시를 강제하는 사례 또한 다수 발생하고 있음

○ 한편 정부에서는 인감증명 폐지 방침을 세우고 있는 바 서울시 및 산하 자치구에서 인감증명 폐지를 선도적으로 대비하는 한편, 인감증명 제도의 인권침해성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지문인식기 확인 및 주민등록증 제시를 강제하지 않도록 행정지도할 것을 서울시에 요구하는 바임

○ 더불어 주민의 지문 등 생체정보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 및 관련 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바임

 

 

인감증명의 연혁

 

○ 역사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왕의 옥새 또는 서간 등에 날인하는 낙관 등 인장(印章) 문화가 존속되어 왔음

○ 서구에서도 밀납봉인에 문장등을 새긴 인장(seal)을 찍는 관행이 있었으나 근대 이후 공적 사용은 사라짐

○ 인장의 날인과 이를 통한 확인은 문서 등의 작성이 실제 본인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통용되어 왔음

○ 한국에서 인감에 의한 공적 확인이 근대적 제도로 도입된 것은 일제가 본격적 식민지배를 시작한 직후인1914년 조선총독부령으로 공표된 인감증명규칙에 의한 것임

○ 해방 이후에도 인감증명규칙이 공사에 걸쳐 적용되어 오다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하여1961년9월23일 인감증명법으로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2012년7월19일 현재16차에 걸쳐 개정됨)

○ 현재 세계적으로도 법률행위에 있어 인감을 통해 본인을 확인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 대만, 일본3국에 불과하며, 대만은 실질적으로 인감증명의 사용이 거의 사문화된 상황이고 일본의 경우2000년대 들어와 인감증명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축소하여2004년부터는 부동산 거래에서 인감증명 사용을 중단한 상황

 

 

인감증명법의 구조

 

○ 증명청: 시장(특별시장 및 광역시장 제외), 군수 및 자치구청장

○ 발급기관: 증명청 및 증명청으로부터 위임 받은 읍, 면, 동장 또는 출장소장

○ 운영방식: 본인 도는 대리인의 방문 신청 후 발급하여 인감대장에 그 사항을 기록 보관하고 필요시 증명청 등이 신청인에 대하여 그 증명을 발급함

○ 주요용도

2008년 통계- 부동산 거래25.7%, 은행 담보대출24.9%, 인허가 양도9.2%, 자동차 양도8.2% 등

2011년 행안부 자료– 은행 담보대출24.7%, 부동산 거래24.1%, 자동차 양도14.6%, 인허가 양도6.8%, 전세권 설정5.8% 등

○ 인감증명 발급 현황

2008년4,846만 통, 2010년 약4,300만 통

○ 인감증명 발급신청 주체: 2010년 행안부 통계로는 본인87%, 대리인13%

○ 발급방식: 2003년3월25일까지는 소지하고 있는 인감과 신고된 인감을 비교 확인한 후 증명청 등에서 수기로 증명을 발급하였으나, 2003년3월26일부터는 인감전산화를 통해 비교절차 없이 전국에서 발급

○ 인감증명 활용의 목적: 주로 재산권과 관련된 법률행위를 함에 있어 법률행위의 상대방이 본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

 

 

인감증명제도의 문제점과 현재 상황

 

○ 행안부는2009년 이후 제도개선 차원에서 인감증명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인감증명제도를 폐지할 것을 계획하고 있음

○ 행안부는2011년3월, “본인서명 사실확인제” 도입을 필두로 하는 인감사용 축소방안을 발표

○ 동시에2011년1월까지 총209종에 달하는 인감증명 요구 사무 중120종을 감축한 바 있음

○ 행안부의 주장에 따르면, 인감도장의 제작 및 관리에 불편함이 따르고, 서명에 의한 경제활동의 보편화 추세에 부합하지 못하는 등의 한계로 인해 인감증명을 장기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것임(2011년3월30일 행안부 보도자료 중)

○ 2009년 행안부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1) 정부추산 연간2500억 원에 달하는 인감증명발급사무비용 소요, (2) 공공분야에 인감증명 발급 전담인원으로 총4,050개 기관에서 약4,000명 이상이 운용되고 있으며, (3) 인건비와 시스템 유지관리비 등으로 연2,000억 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

○ 행정기관에서 광범위하게 요구되는 인감증명의 관행으로 인하여 사적거래에서 역시 불필요한 분야에까지 과도하게 인감증명이 요구되고 있음

○ 인감의 위조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감 및 인감증명서를 위조하여 부동산 사기, 금융사기, 채무변제 등에 악용 등 불법 및 위법행위에 이용하는 사례 발생

○ 재산권 관련 거래 등이 있을 때마다 인감증명을 발급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제기되어 왔으며,

○ 특히 공인인증서 등을 활용하여 전자적 방식으로 공적 증명을 하는 방식이 확대되는 현대적 추세와 맞지 않고

○ 외국 투자자로 하여금 자국의 공증문화에는 없는 인감제도를 요구하게 됨에 따라 국제적 표준(global standard)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

 

 

인감증명 제도 폐지에 대한 반대논리

 

○ 매년4,000만 통의 인감증명이 발급되고 있으나 연평균 인감사고 건수는190여 건에 지나지 않아 그 사고율이라는 것이 불과0.0005%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그 희박한 사고 중에서도 특히 인감의 위변조에 의한 사건은 연간10건도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감의 위조 등에 따른 불안요인을 이유로 인감을 폐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음

○ 전자적인 방식으로 활용되는 공인인증서나 서명 등은 특히 노약자 등 취약계층이 활용하는데 불편함이 따르므로 이에 대한 대책 없는 인감증명 폐지는 사회적 약자를 더욱 불리하게 함

○ 인감증명 발급을 위해 부담되는 인지대가600원(인감증명법시행령 제19조제1항제1호)인데 비하여 재산권 거래 등 법률행위를 위해 사적 방식의 공증을 받게 될 경우 부담이 대폭 증대할 것임

○ 인감증명은 공신력을 갖춘 정부가 개인에 대한 신용의 보증을 서는 것인 반면, 인감증명을 대신할 것으로 예정되는 사적 공증은 계약당사자가 보증의 부담을 스스로 지는 것이므로 본인의 책임성이 현저하게 강화되는 경향 발생

 

 

반대논리에 대한 재반론

 

○ 인감의 위변조에 의한 사고가 전체 인감증명 발급 건수 대비0.000025%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감제도의 안정성을 증명하는 수치라기보다는 인감증명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

○ 부동산 등 재산권 관련 실제 거래에 있어서 본인확인, 공증은 인감증명 외의 방식으로 지금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인감증명만의 고유한 보증능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임

○ 노약자 등 전자적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의 경우 사실상 인감증명을 이용한 거래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상황이 거의 대부분이고, 본인확인의 경우 인감증명이 아니라도 가능한 대안이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음

○ 경제적 부담의 경우에는 인감증명이 없어짐으로 인해 해소될 수 있는 것이지 인감의 대체물을 찾게 되어 늘어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음. 공증이 필요한 고가의 거래의 경우 인감증명이 아니더라도 이미 비용이 지불되는 공증(예를 들어 법무사의 등기대행 또는 변호사의 공증 등)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 또한 무료로 발급되고 있는 공인인증서의 경우 법적으로 그 효력을 어디까지 하느냐의 문제일 뿐 이미 광범위한 거래활동에 이용되고 있음

○ 국가의 공신력이 아닌 본인 책임이 과도하게 늘어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민간의 계약관계에서 중심이 되는 자기책임의 원칙을 무시한 주장임. 국가 공신력이라는 것은 일종의 부가장치일 뿐 실제 계약의 문제는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 근대 이후 사적자치의 원칙임

○ 근래 문제가 된 인감관련 사건의 경우, 그 양태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원인은 인감증명에 과도한 공적 신뢰를 부여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로서 개인의 사실 확인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을 것임

 

인감증명 발급과 지문날인의 관계

 

○ 특히 인감증명 발급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지문을 날인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임

○ 인감증명법 및 시행령 상 신청인 본인 또는 대리인의 지문을 요구하는 규정은 다음과 같음

 

 

인감증명법

제12조(인감증명의 발급) ① 인감증명을 받으려면 본인 또는 그 대리인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자치구가 아닌 구의 구청장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 및 제12조의2에서 같다)이나 읍장·면장·동장 또는 출장소장에게 신청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다만, 대리인인 경우에는 자신의 무인(拇印)을 하여 직접 제출하여야 하고, 미성년자와 한정치산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 제출하여야 하며, 금치산자는 법정대리인이 제출하여야 한다.

 

인감증명법 시행령

제7조(방문에 의한 인감신고) ②증명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인감신고를 받은 때에는 그 신고인이 본인인지 여부를 주민등록증, 자동차운전면허증, 장애인등록증(주민등록번호 및 주소가 기재되어 있지 아니한 장애인등록증을 제외한다) 또는 여권(재외국민인 경우에는 여권, 외국인인 경우에는 외국인등록증, 국내거소신고자인 경우에는 국내거소신고증과 여권을 말한다. 이하"주민등록증등"이라 한다)에 의하여 직접 확인하고, 신고인이 보는 앞에서 인감대장의 해당란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후 인감란에 인장을 날인하여야 한다. 이 경우 증명청은 인감대장의 비고란에"구술신고"라 기재하고, 신고인으로 하여금 관계사항을 확인하게 한 후 그의 무인을 받아야 하며, 법정대리인이 미성년자 또는 한정치산자와 함께 방문한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의 무인을 받아야 한다.

③증명청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한 방법으로 신분확인이 곤란한 경우에는 인감신고인의 무인을 주민등록전산자료와 전자적 방법으로 대조하여 확인할 수 있다.

 

제7조의2(인감보호의 신청 및 해제) ④제1항 단서의 규정에 의한 인감보호 신청을 받은 증명청은 인감대장의 인감보호신청란에 요청한 사항을 기재하고 신청인(미성년자 또는 한정치산자의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으로 하여금 확인하도록 한 후 신청인이 본인인 경우에는 서명 또는 무인을, 대리인인 경우에는 무인을 받아야 한다.

 

제8조(서면에 의한 인감신고) ④증명청은 제2항 및 제3항의 규정에 의한 신고를 받은 때에는 인감대장의 해당란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하고 인감지를 첨부하여 인감대장과 인감지가 겹치는 부분에 직인으로 간인한 후 인감대장의 비고란에 그 사유를 명시한 후"서면신고"라고 기재하여야 하며, 대리신고인으로 하여금 신고사항을 확인하게 한 후 그의 무인을 받아야 한다.

 

제12조(인감의 말소 및 부활) ④제2항 및 제3항의 규정에 의한 인감말소·부활신청을 받은 증명청은 주민등록증등에 의하여 본인 또는 대리인의 신분을 확인하고, 인감말소·부활신청서의 인감 및 법정대리인의 인감의 진위여부를 확인하여야 하며, 본인 또는 대리인의 신분과 인감임이 확인된 때에는 인감대장 비고란에 인감말소·부활일자 및 그 사유와"말소신고"·"부활신고"로 표기한 후 신청인의 무인을 받아야 한다.

 

제13조(인감증명의 발급) ④인감증명의 발급신청을 받은 인감증명발급기관은 주민등록증등에 의하여 본인이나 법정대리인 또는 위임을 받은 자임을, 미성년자 또는 한정치산자의 경우에는 그 법정대리인의 동의여부를 확인한 후 복사방지를 위한 특수용지를 사용하여 별지 제14호서식의 인감증명서를 발급하여야 하고, 별지 제15호서식의 인감증명발급대장에 수령인이 본인인 경우에는 서명 또는 무인을, 대리인인 경우에는 무인을 받은 후 이를 교부하여야 한다. 이 경우 인감증명발급기관은 주민등록증등에 의하여 신청인의 신분확인이 곤란한 때에는 제7조제3항의 규정에 의한 방법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⑤인감증명발급기관은 제4항의 규정에 의하여 인감증명을 발급할 수 없는 때에는 인감신청인은 인감신고인의 소관증명청을 방문하여 인감증명서의 발급을 신청하여야 하며, 신청을 받은 인감증명발급기관은 제1항 내지 제4항의 규정을 준용하여 본인 또는 대리인의 신분 등을 확인한 후 인감대장의 신고인감을 복사하여 이를 별지 제14호서식에 첨부·간인하여 발급하고, 별지 제15호서식의 인감증명발급대장에 수령인이 본인인 경우에는 서명 또는 무인을, 대리인인 경우에는 무인을 받은 후 이를 교부하여야 한다.

 

 

○ 현행 주민등록법은 만17세 이상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열손가락 지문을 찍도록 하고 그 지문정보를 전산화하여 경찰로 하여금 관리토록 하는 반인권적 제도를40년째 이어오고 있음

○ 인권시민단체는 지난15년 이상 동안 현행 주민등록법, 주민등록법 시행령 및 시행 규칙에 따라 일괄적으로 전국민의 지문날인을 강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인권침해를 이유로 그 폐지를 주장해오고 있음(2011년11월 헌법소원 제기로 현재 위헌심사 중임)

○ 인감증명 발급 시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것 역시 그 수단의 적절성이나 실효성을 검토할 때 불필요하게 생체정보를 과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써 인권침해라고 할 것이며

○ 특히 인감증명제도 자체가 폐지되려는 현재에도 굳이 지문날인을 요구하는 것은 제도의 부당함으로 인한 당사자의 피해보다는 관행에 익숙한 행정기관이 제도의 규정을 빌미로 행정편의를 도모하는 이외의 의미가 없음

○ 따라서 인감증명법이 당장 폐지되지 않고 상당 기간에 걸쳐 유예기간을 두어 폐지한다고 하더라도, 인권침해적인 강제지문날인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됨

○ 지방자치체 차원에서 주민의 생체정보수집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여 이를 조례로 제정함으로써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문 등 생체정보 수집에 제동을 걸 수 있으며

○ 인감증명법과 관련하여 인감의 등록과 증명의 발급 과정에서 부당하게 지문을 날인할 수 없도록 관내 행정기관의 관행을 개선하는 것은, 비록 법률 및 시행령에 근거를 둔 지문날인이라고 할지라도 조례가 민원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 더욱 유리할 경우 법령의 위임범위를 초월한 것이라 볼 수 없으므로 가능한 일임

 

단기 인감증명 과정에서 지문날인 폐지 및 장기 인감증명제도 폐지

 

○ 행안부의 인감증명제도 폐지에 관한 계획은 비록 논리적인 측면에서 비판받을 근거가 있다고 할지라도 앞서 본 것처럼 그 비판 역시 충분히 반박될 수 있음

○ 위 각 이유를 근거로 판단할 때 인감증명제도는 장기적으로 폐지되어야 할 것임

○ 그러나 단기적으로 인감증명제도는 일정기간 유지될 것이며, 인감의 등록 및 증명의 발급과정에서 부당하게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행정행위는 계속 될 것으로 예측됨

○ 증명청 등에서 이루어지는 인감증명 발급과정에서의 지문날인을 억제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지방행정기관에 의한 생체정보 수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조례로 제정할 필요 있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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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사상사 [프래시안]링크

이런 것이 있었군요.

 

우리 눈으로 보는 서양현대철학 1: 마르크스주의 사상사 (완결)

마르크스 사상은 과연 세상을 구할 것인가? [좌담] 


1부: 마르크스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까지

1강(3월 8일): 마르크스, 엥겔스 - 서유석 호원대
교수
2강(3월 15일): 레닌,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트로츠키 - 박영균 건국대 HK교수

3강(3월 22일): 로자 룩셈부르크와 인터내셔널운동사 - 김성민 건국대 교수

4강(3월 29일): 마오쩌둥 - 이철승 성신여대 연구교수

5강(4월 5일): 그람시 - 이순웅 숭실대 외래교수

6강(4월 12일) 루카치 -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

7강(4월 19일) 벤야민 - 연효숙 중앙대 외래교수

8강(4월 26일) 프랑크푸르트학파 - 이현재 서울시립대 HK교수


2부: 알튀세에서 지젝까지

9강(5월 3일): 알튀세 - 문성원 부산대 교수

10강(5월 10일): 포스트알튀세주의(발리바르, 바디우, 랑시에르) - 박기순 충북대 교수

11강(5월 17일): 영국문화주의(레이몬드 윌리암스 등) - 현남숙 가톨릭대 초빙

12강(5월 24일): 월러스틴 - 김성우 상지대 겸임교수
교수
13강(5월 31일): 라클라우, 무페 - 박영욱
숙명여대 교수
14강(6월 7일): 가라타니 고진 -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
15강(6월 14일): 네그리 - 박영균 건국대 HK교수
16강(6월 21일) 지젝 -이병창 전 동아대 교수

 

기타

마르크스, 런던에 있는 그의 유적을 찾아
자본의 정치경제학인가, 노동의 정치경제학인가?

근대철학의 완성자, 헤겔 철학 I

새로운 시대를 여는가? - 헤겔 Ⅱ

신(神)과 민주주의 : 스피노자

 

 

노동자 혁명당 추진모임 월간 정세지 창간 준비호

<연재 3> 소련에서의 계급의식과 붉은 파시즘

<연재4> 중국에서 마오주의의 환상과 적색테러

 

미디어 오늘

중 공산당 90주년, 마오를 다시 말한다 (현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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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 (사회주의 닭)

 

 

딸아이가 병아리를 쌌다.. 원래 학교앞에 파는 병아리의 자본주의적 임무는 ..

애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죽음에 대한 심오한 고민을 안겨 주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다..

 

병아리의 교환 가치는 1000원, 뽀너스로 3일분의 식량이 따라 왔다.

 

근데, 이 놈이 안죽는다.. 3일.. 4일.. 식량이 떨어졌다.. 아침부터 죽어라 울어 땐다..

이 놈이 자본주의적 임무를 완수하고 장렬히 전사해야 하는데.. 자본주의를 띄어 넘고 있다.

 

죽일 수도 없고... (지금 죽이는 것은 '자본주의 교환 가치에 굴복하는 행동이다'라는 심오한 생각이 스친다.)

 

인터넷에 접속했다...

 

 병아리 사료비 3500원 + 음... 또 톱밥을 깔아 줘야 된단다.. 톱밥 9000원(뭐가 이래 비싸..)

헉.. 운송비 2500원...  (비장한각오로... 사용가치를 위해.. 과감히 교환 가치를 희생하마..)

 

통닭값보다 비싸다..(아.. 다시 교환가치가 아른거린다...)
 

 

 

 

주문한 물량이 도착했다.. 헉.. 톱밥이 한가마니나 왔다.. 그것도 회사로.. 

 

집이 아파트인데.. 이 넘이 안죽고 닭이 되면 우짜지...

 

그때 고민하자.. 

 

자본주의를 띄어 넘은 우리 뼝아리 만세~

 

우리 주위엔 사회주의적인 거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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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넘이 벌써 이만큼  컸어요 ㅋㅋ

 

사회주의 뺑아리가 닭이 됐다. 닭이 되자, 똥을 무기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 똥칠갑을 하고.. 심지어 사유재산인 식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베란다의 안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철장에 가두어 버렸다. 많은 배려를 했다. 새로운 먹이통과 물통.. 그리고 닭권리를 생각해서 좀 큰 철장에..

 

그러나 이 넘은 그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 넘이 붉은 머리띠와 목띠를 두르고 해방을 향해 "투쟁"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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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법칙은 차연된다 ~

 음.. 철학에는 머찐 개념들이 많다.. 하나만 도입해 보자.

 

궁극적 과학 법칙은 없다~ 과학법칙은 차연(differ"ance")된다 ..

 

일단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그런데 이 말이나.. 과학기술 법칙은 변증법적으로 진화한다.. 라는 말이나..  아직까지는

차이를 모르겠다. 그 진화과정에 궁극적인 "어떤 것"이 없다는 것, 진화가

진보가 아님을 명확하게 하면  큰 차이가 없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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