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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노동자..

참세상에 "삼성반도체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 발족"기사가 났군요.

"23세 황유미 씨 등 최근 7년간 노동자 5명 백혈병 사망"했다고 하는 군요.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조치가 취해지기 위해서 5명의 생명이 부족한 것일까요?

 

유사한 소송이 대만에서는 RCA(미국)를 대상으로 그리고 미국에서는 IBM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2년에 적은 글(깨끗한(?) 첨단산업의 더러운 비밀<노동자의 힘>)과 번역글(클린 룸의 더러운 비밀<사회진보연대>)이 있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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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첨단산업의 더러운 비밀

 

과학기술혁명을 주도했던 전자 산업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먼지하나 없이 ‘깨끗한’ 작업장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자본가들은 늘 첨단 기술의 깨끗한 작업장을 자랑해 왔다.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전자 산업인 반도체 공장들이 환경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첨단 전자회사의 ‘깨끗한’ 작업장이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말 대만에 있는 다국적 기업 RCA(Radio Company of America) 전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실상을 알리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미국 원정 투쟁을 전개했다. RCA 노동자 자력구제 연합(Self-help Association for RCA Employees)에 따르면 RCA에 근무한 노동자들 중에서 1998년까지 1375명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들 중 216명이 죽었다. 그리고 102명이 여러 가지 종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공장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살인적인 ‘깨끗한’ 작업장


RCA는 30여 년 전부터 미국의 대표적인 가전 제품 제조 회사였다. 1969년에 대만의 타오위엔(Taoyuan), 주후베이(Zhubei)와 이란(Yilan)에 공장을 지었고, 전체 노동자 수는 2-3만 명 정도 되었다. 1992년에 문을 닫은 RCA는 1986년에는 GE(General Electric) 소유였다가, 1988년에 프랑스 톰슨사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GE와 톰슨은 둘 다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이다. 1992년 문을 닫기 전까지만 해도 대만 정부는 RCA 공장을 대만의 대표적인 수출 회사의 전형으로 선정하는 등 철저하게 그들의 본 모습은 은폐시켰다. 1994년이 되어서야 타이완 환경보호국(EPA)은 RCA가 발암물질로 알려진 독성 폐기물과 유기 용매를 불법 매립하여 그 일대의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켰다고 공개했다. 그 후 1998년에 환경보호국은 RCA공장 지역을 영구 오염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현 RCA 공장의 소유주인 프랑스 톰슨사는 그 주민들과 노동자들의 질병과 그들의 공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대만 정부 보고서를 인용하며 반박하고 있다. 1999년에도 유사한 소송이 있었으나 기각된 바 있다. 노동자들은 수년동안 지속적으로 GE와 톰슨사를 대상으로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미국에 도착한 그들은 LA, 뉴욕, 워싱턴에서 거리 선전전 및 대중연설을 진행했으며, GE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항의 투쟁을 펼쳤다. 아울러 미국의 SVTC(Silicon Valley Toxics Coalition), 그린피스, AFL-CIO(미국노총) 등 미국 내 활동가들과 환경부 간부, 의원들과 만나 그들의 상황을 전했다.


이러한 첨단 산업의 문제는 비단 제3세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현재, 250여명의 노동자들이 대만 노동자들과 같은 이유로 뉴욕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IBM과 내셔날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 등 첨단 반도체 회사를 고발했다. 미국 노동자들은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수많은 독성 혼합물들이 선천성 기형과 유산 그리고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천성 기형아 출산, 암, 환경 파괴…

발뺌하는 자본가들


미국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노출된 독성물질의 양은 미국 정부의 직업 안전 보건부(OSHA)에서 설정한 기준치 이하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그 규정은 수십 종의 위험한 물질들이 항상 새어 나오고 있는 실제 작업장의 상태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의 작업장을 클린룸(깨끗한 방)이라고 부른다.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는 먼지가 나지 않는 방진복이라는 옷을 입고 작업한다. 그러나 이 옷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도체 칩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된 옷이다. 또한 클린룸의 공기도 일정하게 순환되지만 필터는 먼지만 제거하고 화학 가스는 제거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동안 발암물질 혹은 발암물질로 의심받는 수십 종의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그것을 호흡하게 된다. 첨단 산업의 클린(Clean)한 이미지는 안전하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1991년에 캐나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클린룸에 사용되는 약품과 유사한 화학약품에 노출된 임산부들은 125명중 13명이 기형아를 출산했다고 한다. 이 통계는 화학약품이 없는 다른 작업장에서는 125명중 1명 정도임을 감안할 때 매우 큰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스코틀랜드 조사에서도 남성노동자에서 나타나는 뇌종양 발생률이 평균보다 4배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의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암 발생률은 조사된 적이 없다. 1998년, 캘리포니아 보건 서비스부(California Department of Health Services)는 이에 대한 연구를 계획한 바 있었지만,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한국 전자산업 종사노동자의

정밀 검진과 작업장실태조사가 시급하다!


이렇듯 첨단 ‘공해’ 산업의 문제는, 전통산업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선진국에서 직업병 및 환경 문제가 발생하여, 자국의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부딪치게 되면 다국적 기업은 환경 규제가 허술한 제3세계로 이동한다. 예나 지금이나 다국적 기업은 한 나라에서 충분한 이익을 뽑은 다음 노동자들에게는 항상 직업병과 환경오염을 뒤에 남기고, 규제가 보다 허술한 제3세계로 이전했다.

차이가 있다면, 첨단산업에서 발생하는 직업병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그 원인 규명이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선진국과 제3세계 국가들의 노동자들이 거의 동시에 유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부나 연구소가 발간하는 첨단 산업에 관련된 자료들은 대부분 자본가를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산업 보다 첨단 산업에서 더욱 노동자-민중들이 대응하기는 힘들고, 장기간의 투쟁을 요구한다.


대만과 미국 노동자들의 이번 투쟁은 첨단 산업의 깨끗한 이미지 이면에 숨겨져 있는 더러운 음모를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에게 알려내기 위한 투쟁의 시작으로 의미가 있다. 특히, 전자 산업의 역사가 20여 년이 되고, 환경규제도 선진국보다 엄격하다고 볼 수 없는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에서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제일 우선적으로 한국의 전자 산업에서 작업장 실태에 대한 조사작업 즉,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독성물질들의 종류(첨단 산업의 자본가들은 독성물질의 종류를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할 것이다)와 그것이 인체와 주변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작업과 전자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리고 종사한 적이 있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건강상태에 대해 정밀 조사를 요구하는 투쟁을 시급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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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룸의 더러운 비밀

반도체 산업은 첨단 기술의 “클린 룸”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은 첨단기술의 보호 장치들이 마이크로 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수잔 Q. 스트라나한

1984년, 종합 검사 결과, 40세의 아미다 메사(Armida Mesas)는 유방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라틴계인(라틴계 여성들은 대부분의 소수민족보다 암 발생률이 낮다) 메사는 두 아들을 출산했으며(출산은 역시 감염을 낮춘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리고 7 자매 역시 이러한 병에 걸린 적이 없는데 그녀만 이런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나이 57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왜 그런 암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동료, 수자네 루비오(Suzanne Rubio)가 왜 36세의 나이로 유방암으로 죽었고 그녀가 알고 지내던 상당 수의 사람들이 왜 암에 걸리게 되었는지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 모두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있는 IBM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컴퓨터, 휴대폰 등, 하이테크 상품에 적용되는 실리콘 칩을 생산했던 것이었다.

메사는 다른 250명의 반도체 노동자들과 그리고 그 가족들과 함께 하이테크 공장에서 사용되는 독성 화학약품들이 노동자들에게 암을 유발하고 자녀들에게 선천성 기형을 일으키는 지 여부를 증명하고, 고용주들이 그 화학약품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보호대책을 새우지 않았음을 밝히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사회에 부각되지 않고 있다.”라고 요셉 라도우(Joseph LaDou) 박사는 언급하였다. 그는 직업병치료를 위한 국제 센터 회장이며, 1970년대부터 대규모 반도체 제조가 시작된 이래로 이 산업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거의 30만명의 사람들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 노동자들은 작업량의 1/4정도는 일상적으로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독성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노동자수는 백만명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회사중 인텔과 모트롤라와 같은 미국회사들은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매년 말레이시아, 필리핀, 중국에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 수 조원씩 투자하고 있다.

라도우 박사는 반도체 산업이 확대됨에 따라, 노동자들(그들 중 대부분은 여성이거나 소수민족이다)의 건강문제는 급격하게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훨씬 큰 문제다. 아마 석면에서 경험한 것보다 더 크게 만연될 것으로 본다”라고 경고했다.

반도체 칩이 만들어지는 “클린 룸(clean room)”에서, 노동자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덥을 수 있는 보호옷(통칭 토끼옷)을 입는다. 그러나 이 옷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칩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된 옷이다. 클린룸에서 공기도 일정하게 순환되지만 필터는 먼지만 제거하고 화학 가스는 제거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동안 발암물질 혹은 발암물질로 의심받는 수십종의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그것을 호흡한다. 이들 약품중에서는 톨루엔(toluene), 카드늄(cadmium), 아신(arsenic), 벤젠(benzene) 그리고 트리클로로에칠렌(trichloroethylene)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물질들 뿐아니라 여러 화학약품들의 혼합으로 생성되는 화합물 역시 피할 수 없다. 역시 이런 화합물들은 사람에게 미치는지 영향을 한번도 실험된 바 없는 물질들이다.

그러나 산업계 대표들은 노동자들에게 노출된 독성물질의 양이 모두 직업 안전 보건부(OSHA)와 같은 정부 기간에서 설정한 기준치 이하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 규정은 수십종의 위험한 물질들이 항상 세어 나오고 있는 실제 작업장의 상태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노동자 지지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노동자 지지자들과 전문가들은 노동자들이 여러 질병으로 스러지기 시작하자 그 규정의 효율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고, 고용주가 위험을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경고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25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뉴욕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IBM과 내셔날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 등 하이테크 반도체 회사를 고발하였다. 고발당한 회사는 이외에도 칩제조에 사용되는 화학약품을 생산하는 유니온 카브라이드(Union Carbide), 듀퐁(DuPont)과 이스트맨 코닥(Eastman Kodak) 등도 포함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수많은 독성 혼합물들이 선천성기형과 유산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첨단 산업의] 클린(Clean)한 이미지는 안전하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많은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산호세의 아만다 하위(Amanda Hawes) 변호사는 주장한다. 많은 IBM노동자들처럼, 24년가량 근무한 아미다 메사는 빅불루(IBM)에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IBM의 회사 관료는 “항상 우리들을 제일 우선적으로 [안전을 위해서] 개개인을 감독하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우리들은 그말을 완전히 믿었다”라고 메사는 [그때를] 회상했다.

메사는 1968년, 그녀의 나이 23세 때 코트 로드(Cottle Road)에 있는 IBM에 취직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지금의 실리콘 벨리인 산호세가 농장과 과수원이었을 때, 오랫동안 그 지역을 실리콘 벨리라고 불렸다. 1959년에 문을 연 그 공장은 인텔, 휴렛페커드, 내셔널 반도체, NEC 전자 등과 초창기 컴퓨터 회사중의 하나이다.
반도체 칩 제조에는 위험하다고 이미 알려져 있는 수백가지의 화학약품들을 사용한다. 접시 크기의 실리콘 웨이퍼를 가지고 여러 가지 산과 용매로 3차원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세기고 벗겨 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작업과정을 거쳐 생선된 수많은 미세 전기도선을 통해 반도체에 전기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매 공정마다 실리콘 웨이퍼에 화학약품 처리하여 평탄하게 하거나 아신과 같은 화학약품도 칩에 부분적으로 주입하여 특정부부에 전기를 잘 통하게 하기도 한다.

거의 20여년 동안 메사는 반도체 칩 제조 라인의 클린룸에서 일했다. 그녀와 동료 노동자들은 우선 보호 가운과 신발을 신은 후에 토끼옷(방진복)을 입었다. “반도체 웨이퍼에 있는 화학약품을 씻을 때 우리가 끼고 있는 장갑은 다소 거치적거린다. 장갑이 재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장갑을 벗고 작업하기도 한다.”

메사는 작업하는 동안에 종종 건강의 좋지 않음을 느꼈다. 두통과 축농증, 혹은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증세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1984년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후 완쾌되자 그녀는 다시 일터로 나갔다. 그러나 1991년에 다시 재발하여 유방절제 수술을 받게되었다. 그녀가 근무한 IBM은 그 이듬해 그만 두었다. 얼마 후 그녀의 코트 로드의 가까운 몇몇 동료들 뿐아니라 다른 노동자들도 역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맙소사, 이게 전염병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1988년 이들 작업 노동자들중 일부가 IBM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메사도 역시 소송을 제기했다. 약 50건의 소송이 켈리포니아에서 제기되었고, 뉴욕의 이스트 피셔킬(East Fishkill)과 버몬트의 에식스 정션(Essex Junction)에 있는 IBM 공장에는 약 200건 이상의 소송이 제기된 상태이다. 뉴욕의 아몽크(Armonk) 위치한 IBM은 가장 긴 역사 때문에 대부분의 소송의 초점이 되고 있다. IBM대변인은 이 소송에 대한 언급을 거절했다.

첫 소송은 이스트피셔킬(East Fishkill)의 IBM 공장 클린룸에서 일하였던 패지 칼튼(Faye Calton)과 미가엘(Michael)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들의 아들 자채리(Zachary)(16)는 심한 골격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1996년에 미가엘과 칼튼은 이 장애에 대한 보상으로 IBM에 4천만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작년 비밀에 붙인다는 조건으로 비공개된 금액에 타협하여, 재판까지 가지 않고 빠른 시간에 끝냈다. 그 당시 IBM은 “첨단 과학에 기초해서, 이 소송에서 IBM은 어떠한 책임도 없으며, 잘못된 조치도 없었음을 확신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뉴욕에서는 이 회사를 대상으로 80여건 이상의 소송이 있었고 올 후반기에 재판이 잡혀있다. IBM에 대한 캘리포나아 소송에서는 재판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소송건들이 있지만, 원고 모두에 공통적인 소송건이 있다; IBM 등 첨단 회사들은 그 회사에서 사용되는 화학약품들이 노동자들에게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동] 연구 제안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클리콜 에테르(glycol ethers)-반도체 산업에서 한때 널리 사용된 화학약품-가 실험실 동물 실험에서 불임을 유발 한다고 보고된 바 있다. 1989년에 반도체 산업 협회에 의해 지원되는 연구를 포함하여, 뒤이은 연구 보고에 따르면, 화학약품에 노출된 반도체 노동자들의 유산율은 예상치 보다 두배에 달한다고 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1990년대 중반에 되어서야 글리콜 에테르의 사용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갔다. 그러나 아직도 사용되는 많은 다른 화학약품들, 예를 들면 크실론(xylene), 트리클로로에칠렌, 페놀 그리고 아세톤 등은 불임과 관련이 있다. 1991년에 캐나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클린룸에 사용되는 약품과 유사한 화학약품에 노출된 임산부들은 125명중 13명이 기형아를 출산하였다고 한다. 이 통계는 화학약품이 없는 작업장에서는 125명중 1명 정도임을 감안할 때 매우 큰 수치임을 알 수 있다.

한 연구자는 반도체 제조업에 여성노동자들의 비율이 증가하기 때문에 불임 문제는 매우 위험한 문제라고 경고한다. 이 산업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2000년에 미국인들의 시급의 중앙값은 12달러이다) IBM과 같은 큰 회사는 12시간 교대 근무로 좋은 수익을 보장해 주었고,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에게는 상당해 매력적인 직장이었다.

최근에 전문가들은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유산, 불임 그리고 기형아 출산이외에] 또 다른 위험-암발생을 경고했다. 1985년 이전에도 IBM의 한 화학자는 그의 직장 상사에게 상당히 많은 그의 동료 노동자들이 여러 형태의 질병에 걸렸다는 경고 메모를 남긴 적이 있다. 그후 많은 연구 보고에 따르면, 전자 산업에 장기간 근무한 노동자는 특정 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 12월 영국 정부의 실제 조사 보고서의 내용 때문이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그린녹(Greenock)의 내셔널 반도체에 근무하는 4000명 이상의 노동자들 중에서 유방암, 폐암, 뇌종양 그리고 위암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미국의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암 발생률은 조사된 적이 없다; 1998년, 캘리포니아 보건 서비스부(California Department of Health Services)는 이에 대한 연구를 계획한 바 있었지만,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클린룸에서의 작업과 암발생이 관련이 있다는 충분한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 또한 “그와 같은 연구에 관여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반도체 산업 협회의 대변인 몰리 투틀(Molly Tuttle)은 주장하였다. 2000년에 그 협회는 이 연구를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자체 과학자문 위원회를 소집한 바 있다.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매우 심각하게” 논의되었다고 투틀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어떤 조치를 빠른 시간내에 취할 것이라고 믿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라도우와 존 배랄 3세(John Bailar III) 박사 그룹은 WHO가 클린룸 노동자들에서 암 발생률을 국제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직업병문제가 증가함에 따라 [이 문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넓은 영역에 걸쳐 깊이 있게 공중 보건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배랄박사는 암 관련 정부기관 담당자에게 1월에 보낸 한 편지에서 주장하였다. 특히 개도국의 노동자들은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개도국에서 직업안전에 관한 법률들이 약하게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고, 선진국에서 이미 위험하다고 밝혀진 화학약품과 장치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배랄은 스코틀랜드의 연구를 포함한 연구결과를 살펴본 후에 [즉시 이러한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 연구결과를 보면 상황이 심각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은 연구 결과에서도 공통적으로 신체의 4곳에서 암 발생-[유방암, 뇌종양, 폐암, 위암]-이 증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자료는 비록 [반도체내의 작업환경이] 암 발생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그 관련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라고 배랄은 주장하였다.

배랄에 따르면 유산, 선천성 기형 그리고 특정 암은 같은 화학약품에 의해 촉진될 수 있으며,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독성은 인간 유전자에도 손상을 입힐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화학약품에 노출된 후에도 수년 동안 건강상의 문제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밝히는 것은 무척 어렵다. “노동자들이 20여년 동안 이 산업에서 지속적으로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라고 브루스 포웰(Bruce Fowler)박사는 언급했다. 만약 [20년 전] 이 연구에 집중했다면 현재 노동자들이 법정소송에서 제기한 [많은] 의문에 대해서 상당수는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드 마츄작(Ed Matuszak)는 1988년 1월에 IBM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화학과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재료과학에 석사를 받은 에드는 빅블루로부터 다섯 개의 부서에서 일을 제안을 받았다. 그때의 행복감은 아마 북부 버몬트에서 최고였을 것이다라고 그의 아내 스잔은 회상한다. 그는 벌링톤(Burlington) 부근에 있는 엑식스 정션의 IBM공장을 직장으로 선택했고, 클린룸에 정교한 장치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종종 12시간의 긴 작업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일이 그에게 상당히 의미가 있음을 말하곤 했다.

2000년 3월 어느날 에드는 감기증세를 호소하며 퇴근했다. 몇 시간 후 발작증세로 뒹굴기 시작했고, 너무 심한 발작으로 어깨까지 탈골되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고열 때문으로 생각했지만, 응급실 의사는 정밀 조사를 해봐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 다음날 아침 “ MRI 촬영을 했다. 신경외과 의사는 매우 퉁명스러웠다. 그 의사는 에드가 뇌종양을 갖고 있으며 5년에서 10년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스잔은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에드(40)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되는 듯했다.] 의사도 낙관적으로 이야기 했다. 공장에서의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그의 직장 동료에게 랩탑컴퓨터를 요구했고, 다시 직장에 복귀하는 이야기를 했다.

재활기간 중 어느날 물리치료사는 간단한 수학 테스트를 했다. 그러나 그는 덧셈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순간 얼어 버렸다“ 고 수잔은 회상했다. 뇌종양이 다시 자라난 것이었다. 그해 6월 에드 다시 큰 발작을 일으켰고, 4주후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에드가 알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같은 병원 다른 병실에 에드의 동료 노동자 마이크 뷰드니(Mike Beaudry)도 역시 치명직인 뇌종양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작년에 죽었다.

수잔 마츄작은 “두 남자의 병이 그들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공장의 다른 노동자들은 심각하게 고려하기를 원치 않았다.“고 회상했다. “추측컨대, 그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수잔과 뷰드니의 모친은 현재 IBM에 대해 소송중에 있다.

에드 마츄작의 경우처럼 직장에서 남자들의 뇌종양 발생률이 평균보다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1975년에서 1989년사이에 죽은 1만명 이상의 IBM노동자들을 대상으로한 1996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년 혹은 그 이상 이 회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남성 기술자와 엔지니어사이에서 뇌종양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 자료만으로 [암발생의]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수치는 IBM이 [확실하게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포웰박사는 지적했다. 게다가 두 개 이상의 다른 연구 결과에서 전자 산업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뇌종양 발생률이 증가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스코틀랜드 조사에서는 남성노동자에서 나타나는 뇌종양 발생률이 기대치보다 4배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여전히, 이러한 통계수치는 스잔 마츄작과 같이 작업장과 남편의 죽음의 관계를 급하게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적절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클린룸에 사용되는 특별한 화학약품들이 직접 그 질병의 원임임을 밝히는 것은 헤라클레스의 힘을 빌려야 할만큼의 어려운 작업이다. 이는 연방정부의 보건 안전 가이드라인에 있는 100개의 화학약품 보다 더 많은 화학약품과 수십종 이상의 질병과의 관계를 밝혀 내야 하기 때문이다.

소송이 진행됨에 따라 노동자들은 산업계의 변호에 대응해야 한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작업은 국가에서 인정한 가장 안전한 산업에 속한다라고 변호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업자는 미국 노동통계국의 자료를 종종 인용하는데, 반도체 제조업은 그 자료 목록에 나열된 200여개의 산업중에서 6번째로 낮은 산재와 직업병의 비율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료는 작업중에 발생한 산재와 직업병에 관한 것이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병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2세에 발생하는 유전 병 혹은 불임에 관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자료의 누락-특히 젊은 여성이 많고 이직률이 높은 이 작업장에서-은 [반도체 제조업이 매우 안전하다]고 쉽게 오인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 단속위원도 첨단 산업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작업장을 감독하는 연방 기관 [역시] 반도체 공장에 대해서 특별한 감시와 연구를 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기록”들은 단속위원들게 단속에 있어 우선 순위를 갖지 않게 한다고 직업 안전 보건부(OSHA) 대표들은 지적하고 있다. “[산업체]가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도 없다’고 입장을 이야기할 때 무척 심한 좌절감에 빠진다. ‘네가 틀렸어, 너는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어. 우리에게 [직업병으로 확인된] 사망자 수를 [명확하게] 제시해봐, 그러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꺼야'라는 말은 항상 듣는다, 우리는 반도체 산업체들과 [싸움은] 오랫동안 이런식으로 반복해왔다.”고 산호세의 하위 변호사는 그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일부 산업 감시 전문가들은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널리 알려지고 값 비싼 소송을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만약 고용주가 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정부도 개입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변호사에게 가야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사람이다.“ 라고 라도우는 주장한다.

그러나 [설사, 변호사를 찾아가서 재판을 하더라도] 수십년 혹은 수년이 지나야 이러한 의학적이고 환경관련 법적 이슈들은 해결될 것이다. 라고 포웰박사는 지적한다. 그런 동안에 미국과 해외에서 반도체 산업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아파서 쓰러진 노동자들만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들에게 죄가 다면 단지 일을 필요로 했다는 것 뿐이다라는 사실을..”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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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레닌과 트로츠키


레닌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입니다.  원래 "레닌"이라는 사람은 위조 여건을 만드는 사람의 이름이었다고 하는 군요.

 

트로츠키 또한 본명은 "레프 데이도비치 브론슈타인"이며, 원래 "트로츠키"는 감옥에 있을 때 간수 이름이었고 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로자 룩셈부르크도 "유니우스라"는 가명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멕시코 반군의 지도자 마르코스 역시 본명은 "라파엘 세바스티안 기옌 비센테"라고 하며

"마르코스"는 사망한 동지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체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이지요.  뭐~ 80년대 수많은 활동가들이 가명을 사용했지요.

 

억압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실명제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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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I

I 편

 

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I

 

리차드 레빈스 (Richard Levins)

 

부르주아지의 부흥과 현대 과학의 탄생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프로그램에 이르게 된다는 생각은 맑스보다 3세기 앞선다. 과학은 신흥 부르주아지에게 생산 방법과 항해도구의 발전과 같은 실질적 가치를 주었고, 봉건적 관계에 복무한 신학의 권위에 저항할 수단도 제공해 주었다.

 

과학은 부르주아 혁명의 기치 중 하나였다. 민주주의처럼, 과학의 슬로건은 사회적 토대가 필요로 하는 그 이상까지 나아갔다. 과학은 구체제와의 투쟁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도전과 독립의 수준을 분명히 했기에, 잠정적으로 새로운 부르주아 질서에도 위협이 되었다. 그러나 과학의 실용적인 가치만이 논증되었다.

 

잉글랜드에서 과학은 17세기 중반에 사회적 지위를 얻었고, 실제로 영연방의 공식 정책이 되었다. 당국의 중요한 문제를 조사할 때 과학으로 인해 정치 혹은 종교까지 확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과학에 따른 자유가 위험한 선례를 남기지 않는다면, 유럽의 가장 보수적인 정부까지도 과학 부흥을 지원했다. 대부분 유럽의 기존 과학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타협을 받아들였고, 주목받을 만하지만 성가신 것은 발견조차하지 않았다. 혁명적인 갈증은 무뎌갔다. “이 시대 초기에 코페르니쿠스는, 신학을 비판하는 편지를 쓰고, 뉴턴은 신의 최초의 충격(역주- 뉴턴은 최초 물질의 운동에는 신이 개입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라는 가설로써 이 시기를 끝맺었다”(엥겔스, 자연 변증법)

 

과학과 철학의 통일

 

과학의 영역에 모든 인간 경험을 포함하려는 사람들은 실험실 과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실험실 과학은 좁게 경험적이며 신중하고 중립적인 것에 국한하려고 하며, 거대한 인간의 관심사에 개방형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들을 의심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철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했다. 둘 중 하나를 택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철학적 도구로 과학에 접근했고 과학적 탐구 대상으로 철학을 고찰했다. 엥겔스(자연 변증법)는 17, 18세기 과학의 기계론적인 사고방식을 기술한 후에, “자연에 대한 이런 경직된 사고방식에 균열을 일으킨 사람은 자연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였다(칸트의 태양계의 기원에 대한 성운설)”고 보고하였다.

 

맑스와 엥겔스가 발전시킨 세계관은 과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지적범주로 종합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 내용에는 사회적 토대, 조직형태 그리고 실천관계를 포함한다. 학계의 필요에 의해, 맑스주의를 전통적인 학문영역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들이 종종 있어 왔다. 예를 들어 알튀세르의 경우 맑스주의 과학을 맑스주의 철학과 분리하였다. 맑스주의자는 맑스주의를 대학의 경제학부에서, 역사학부에서, 정치 과학, 철학, 문학 혹은 자연과학부에서 가르치지만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동료나 학장이 이해하는 그런 경제학, 역사, 철학, 문학일 수는 없다. 확실히 이를 정당화하려는 지적 압력은 존재하고 있다. 단지 학문의 한 분야로써, 기본적인 것만을 성취하려 할 때 맑스주의는 파괴된다. 그러므로 맑스주의의 생존력은 맑스주의 사상의 발전을 위한 별도의 학술적 기반, 출판, 맑스주의 학교, 학회 혹은 정당 등에 의존한다.

 

맑스주의는 부르주아 혁명시기의 과학으로부터 권위에 대한 거부, 논증, (우리의 바램을 제거하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국제적인 지적 상호교류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맑스-엥겔스 시대에, 권위의 폐기란 세상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을 통해 종교적 권위를 폐기하고 모든 권의 도전하는 것 의미했다. 문맥상, 이러한 주장은 순진해 보인다. 편견 없이는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유주의 이성에서도 편견은 우리의 형성에 영향을 준다고 하며, 더 깊게 변증법적 이성에서도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편견의 폐기는 실제 연구수행이나 과학의 이상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과학에는 자기비판이 요구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오래된 것을 조망하며, 새로운 것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 방식을 항상 의심하는 지속적인 자각이 필요하다.

 

각각의 과학에는 실수를 인식하는 자기만의 전통적인 패턴과 그 실수를 피하기 위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맑스주의의 주요한 방법론적 통찰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유물론자의 가르침이다. 세계 상황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들(특히 이데올로기)은 그 상황[을 구성하는] 일부 정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그 상황 자체를 가지고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원칙은 모두 합쳐, 과학에 객관성과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진리 발견을 요구할 때 기초가 된다. 즉 객관성은 [과학이 가진 기본] 조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정이다. 그것은 우리가 편견을 갖고 세상과 맞서는 과정, 다른 사람의 편견이 우리의 편견과 맞서는 과정이며, 여러 가지 다른 편견으로 우리가 가진 여러 편견과 맞서는 과정이다. 객관화의 과정은 결코 끝이 없다.

 

객관성을 달성하기 위한 우리(맑스주의자의) 방법은 개인 특유의 편견과 다른 그룹의 편견에 대응해서 꽤 잘 작동한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같이 공유하고 있는 편견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동물 행동에 관한 연구는 실험의 정확성을 개선하고 해상도를 안정화시킴으로써 매우 정교한 실험을 수행할 수 있다. 반면에 거의 전반적으로 우리가 가진 성적 편견에내에서 연구가 수행된다. 그런 성적 편견은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의 활발한 저항에 의해서만 상당히 균열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이라는 말은 제한된 의미에서만 “객관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레닌이 “실무적인(businesslike)"이라는 말의 의미를 바람직한 성격으로 경험이 많고, 책임 있고, 훈련된 그리고 현실감 있는 성격으로 생각했지만, 교묘하거나 개인주의적이거나 탐욕적이거나 정직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반적인 말로 ”고결하다“는 의미는 용기 있고, 명예롭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지독하고 고집 있거나 성차별주의라는 뜻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학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이것의 의미는 실제 과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화된 과학을 의미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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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관련 최근 뉴스

진화론 관련 최근 뉴스

[번역]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

이 글은  1986년 미국의 좌파 잡지 먼슬리 리뷰지에 실린 리차드 레빈스의 글입니다. 하버드대 교수이며 생태학자인 레빈스는 한국에서도 이미 많이 알려진 맑스주의 과학자입니다(참세상에서 “과학, 사회, 혁명운동 그리고 변증법”이라는 글에서 소개된 바 있습니다). 이 글은  좌파가 왜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과학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를 비교적 명료하게 설명되어 있어 소개합니다. 이 글을 총 3부분으로 나누어 번역하고 있고, 이번에 이어 다음에는 ‘부르주아의 성장과 현대과학의 탄생’,‘과학과 철학의 통일'을 그 담에‘현실 과학 비판‘과 ’좌파와 과학‘을 번역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급하게 번역하느라 오역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문을 참조해 주세요)

  

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


리차드 레빈스 (Richard Levins)


내가 글을 배우기 전에 할아버지(아브라함 색만, Abraham Sackman)는 배드 비샵 브라운 신부(역주- 윌리엄 몽고메리 브라운, 미국 성공회 주교이자 공산주의자. 배드 비샵이라는 별명은 이교도 재판과정에서 붙여졌다.)의 “소년 소녀를 위한 과학과 역사”라는 책을 읽어 주셨다. 이 책에서는 과학과 역사는 서로 연계관계가 있음을 주장하였고, 그런 주장이 나에게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매우 흥미 있는 발견이었다. 할아버지는 사회주의-노동자들을 위한 교육에 최소한 우주론, 진화론 그리고 역사를 의식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교회에서 파문당한 맑스주의자 배드 비샵은 그의 책에서 과학과 역사를 분리할 수 없는 하나로 보았다. 그에게 인간의 역사는 자연 역사와 연속선상에 있었다.


과학과 역사는 몇 가지 이유로 맑스주의자들에게 중요하다. 첫째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지배계급의 지식 독점과 종교적인 반계몽주의에 저항하는 것이며 특히 신교도들이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사상에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이 건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이 질문에 우리의 대답은 이렇다. 


우리는 은하수 주변 바깥, 2류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위에서 최근에 살고 있는 하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바위에서 과거를 읽을 수 있고 우리의 노동으로 현재를 변혁하며, 별들의 미세한 빛의 조성을 프리즘으로 알아내고 또 의식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을 통해 우리 자신의 미래 발전을 도모한다.


세계를 알고, 지식화해야 한다는 열정적인 책임감은 우리의 적들에게는 오만함으로, 더 심하게 지독한 뻔뻔함으로 인식되었다. 적들은 맑스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 미학의 핵심으로 신비주의, 불가지론, 랜덤함, 비이성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40년대 고전 아서 커스틀러의 《요가 수행자와 인민위원 The Yogi and the Commissar and Other Essays》를 참조)

 

맑스주의자들에게 과학 기술의 발전은 세계에 대한 최신 지식을 얻는 다는 의미 이외에 특별히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기술과 사회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산 수단의 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발전은 변혁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과학은 단지 과학적 성취와 응용기술을 나열한 명부가 아니다. 그것은 특별한 사회 환경에서의 인간의 활동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에 대한 학습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야할 대상인 것이다. 최근 들어 점점 더 다양한 이슈들, 지식의 군사화, 건강, 환경 경제 발전, 여성 해방, 인종주의와 계급 서열화의 합리화 그리고 교육 문제 등에 대한 정치적 투쟁에서 과학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혁명 정당은 권력을 잡기 전과 후 모두 과학에 관한 프로그램을 채용해야 하고 이런 저런 과학적 근거를 형성하는 사회 운동과 어떤 식으로 공동 투쟁할 것인지를 배워야 한다. 맑스주의 과학자는 자본주의 하에서 과학이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속박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자본주의에 대항해야할 필요성을 인식한 사회주의자들은 과학의 문제들에 대한 초기의 관심을 부활시키고, 과학을 투쟁 활동과 연구를 위한 실천과제 속에 배치시켜야 한다.


과학을 이해하는 작업은 과학의 주요 모순을 명확하게 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현대 과학은 지식 성장의 역사에서 한 단계이며, 동시에 서구 부르주아지 계급에 속박된 창조물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과학이 그들의 이익과 권력 추구를 위해 필요한지를 묻고, 지금까지 발전된 과학으로 적절한 방법을 적용한다. 그리고 부르주아 사상에 순응할 수 있는 적절한 답을 찾아낸다. 현대 과학은 생산력의 한 부분이면서 생산관계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과학은 상품으로서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사이의 모순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실재(reality)를 해석하고 반영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실재를 혼미하게 하기도 한다. 또 과학은 부르주아 혁명의 산물이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처럼 부르주아의 욕망과 필요를 초월해서 때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그 근본 태생의 성흔은 결코 털어버리지 못한다.


과학은 지적 자유를 향한 저항의 함성이 되기도 하지만 억압과 지배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조작된 미신에 대항하는 계몽의 무기이기도 하지만 제 3세계 문화의 지식을 인종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로 파괴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학은 우리 존재 조건이기도 하고 정치의 대상이기도 하다. 또 이데올로기 장벽을 넘어 국제 협력의 장이기도 하지만 계급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다.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길잡이기도 하지만 독단적인 교조의 그리고 자기자랑의 미사여구가 되기도 한다. 내적인 면에서, 작은 규모에서, 한 연구소 규모에서는 과학은 지적 교양을 증가시켜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과학 활동 수준에서는 비이성적인 면이 증가하고 있다. 과학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지금 알려진 것으로 가정하고 연구하기도 하는데 종종 그러한 가정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맑스주의자는 이들 모순들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몇몇 학파들은 액면 그대로 이상화된 과학관을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서구 유럽 맑스주의자 특히 유로코뮤니스트들 중에는 맑스주의 영역을 진보적인 정치경제 프로그램에만 국한시키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자연 과학의 오용과 독점을 비판하는 것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개념을 “스탈린주의”로 보고 거부하고 있다.


맑스주의 당에서 이런 독단적 흐름은 과학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는 관심 없게 하고 과학을 객관적 실재와 동등한 것 그리고 (순수한) 진리로만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과학적 사회주의’처럼 ‘과학적’이라는 말을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말로 사용한다. 이미 엥겔스 시대에 “독일 사회주의는 최근에... 한층 더 터무니없는 잠꼬대를 지껄이며, ‘과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뻐기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엥겔스, 반듀링론) 그 이후 수십건의 체계적인 문건에서 단지 한 두 번 일어난 일을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주장해왔었고, 저자들은 그것을 인정해왔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비판하는 유로꼬뮤니스트와 독단적인 좌파 모두 과학을 진보적이며 객관적이고 해방을 담지한 힘이라는 이상화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화려한 묘사에 맞지 않은 과학은 그것 자체로 순수하지만 단지 외부에서 탐욕과 ‘이데올로기’로 오염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에 접근하는 유물론자는 이런 이상적인 정의에서 출발하면 안 된다. 명확히 과학은 자본주의와 함께 진화하는 것으로써 정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과학의 역할을 부르주아 혁명에서 해방의 힘으로 그리고 부르주아 사회를 견고하게 하는 힘으로 평가하고 짧게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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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변증법관련 토론

맑스주의 토론 사이트에서 '정말 오랜만에' 유물 변증법에 관해 짧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논란이 있지요. 물론 좌파과학자들은 유물 변증법이 자연에도 적용된다고

하지요. 저 역시 그렇구요.  시간나면 좀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분야입니다.

자료도 함 모아 보지요.

 

[Marxism] focus fusion/dialectial materialism (1)  관련 댓글도 참조 하세요.

[Marxism] focus fusion/dialectial materialism (2)

 

 

관련 문헌

Pro Dialectics of nature

 

1. Engels and natural science  Issue 65 of INTERNATIONAL SOCIALISM JOURNAL Published Winter 1994

2. The Philosophy of Marxism

3. Dialectical Nature: Reflections in Honor of the Twentieth Anniversary of Levins and Lewontin’s the Dialectical Biologist, Monthly review Vol. 57  

4. A science of our own: Marxism and nature - Marxist science   Monthly Review,  July-August, 1986  by Richard Levins  (강추)

5. 과학, 사회, 혁명운동 그리고 변증법 by 홍실이, 참세상

6. 기타  Richard Levins의 글

7. Engels’ Marxism by John Ree International Socialism 2:65, Winter 1994

8. `In Defense Of Frederick Engels' BY GEORGE NOVACK
9. 혁명의 제무장, 험난한 시기, 이론의 임무 by   Richard Levins  (추가 071024)

10. The revolutionary dialectic and the liberation of humanityBy Ann Robertson  Friday, 26 October 2007  (추가 071027)  

 

Anti- Dialectics of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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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의 끝은 어딜까?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 박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미래는 어둡다는 게 내 지론이다. 흑인들은 원래부터 백인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능이 똑같다는 통념은 환상이다
." (Pressian)

 

요즘은 유전학을 토대로 우생학 바람이 불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유전자 조작 및 검사는 우생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주고 있지요. 소련에서 유전학을 깡 무시한 리센코 사건 이후로, 유전학을 비판하는 모든 이론들이 다 무시되고 있지요.  종교쪽에서는 비판이 활발하지요.  

 

"나치는 우생학(優生學)을 이용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유태인과 집시를 학살하기도 하였다. 나치보다 먼저 우생학을 적용한 나라는 바로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1926년에 우생학을 기초로 단종 법안이 제정되었으며
이 법안은 정신박약아, 불구자, 유전적 질병을 가진 자들에게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하였고,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나 범죄자에게도 적용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이 법이 시행되는 기간 동안(1926-1935) 유전병, 신체부자유인,
정신박약아들 9931명을 강제로 단종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의 우생학은 이보다 훨씬 은밀하게 그리고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임신초기에 양수 검사나 초음파 검사를 통해 남자아이만을 선별한다든지, 유전적 결함이
있는 태아를 낙태시키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다.
난자매매의 경우, 상류층 대학 여성들의 난자를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이러한 우생학은 예전과 같이 국가에 의해 강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자율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시장과
가부장적 문화에 의해 강제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자유방임적 우생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유방임적 우생학은 지금의 신자유주의 문화와 너무나 닮아 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이 높은 비용의 유전자 기술의 혜택에서 소외될 경우 ‘하층민의 질병화’를 불러 올 수 있다. 그리고 임신 초기 태아 검사로 유전적 질병이 있는 태아의 낙태를 당연시하는 사회라면, 낙태 거부로 혹은 실수로 유전자 질병을 가진 자녀가 태어났을 때 그 양육 책임을 모두 개인 부모에게 지워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제공되었던 사회적인 복지 정책도 축소해 버릴 것이다"


실제 미국의 임신-출생 기술에 대한 흑백간의 경제적 접근권의 차이는 이를 반영하고 있다. 흑인 여성의 경우 백인여성보다 불임률이 1.5배 높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각종 성병에 대한 치료부재와, 영양 결핍, 출생과 낙태의 어려움 그리고 작업환경의 위험성 등에 기인한다. 그러나 인공수정의 경우 백인의 1/3 수준 정도만 진행되고 있다. 불임 시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흑인이지만 인공수정을 가장 많이 하는 부부는 고학력이며 풍요로운 백인들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면 흑인은 줄어들고 백인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진보평론)

 

 

 

1. 새로운 유전학과 우생학 박희주

2. 우생학 이념인가 과학인가 박희주

3. 우생학연구자여 반성하는가? 박노자 한겨레 21

4. 식민지 조선에서 우생운동의 전개와 성격 신영전

5. 우생학 연구 단편 김호연

6. 미국의 우생학 그리고 대번포트 정세권  

7. 우생학과 장애인

 

우생학을  강하게 거부하는 쪽은  종교쪽이죠. 박희주박사 역시 창조과학의 지적설계론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감안해서 우생학 비판글을 읽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또 좌파역시 우생학을 강하게 비판하죠. 대표적으로 굴드가 있지요. 좌파는 종교적으로 우생학을 비판하는 쪽과 과학적으로 우생학을 지지하는 쪽(?)의 경계에서 양자 모두를 노동자 시각으로 비판하고 극복해야 겠지요.  

 이에 대한  좋은 자료 보시면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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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효율적이라고?

오늘 모처럼 술을 마셨으니.. 한마디 해야쥐~~

우연히 회사 사람과 이런 저런애기하다가 문득 "그래도 자본주의가 효율적이다"는 말을 들었다. 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효율적이라고 느낄까?

대충 함 따져 보자 정말 그런지.. 

 

DRAM을 개발한다고 해보자.  DRAM은 과거 IBM도 했고 TI도 했다.. 그리고 삼성도 하고 하이닉스도 하고 STMicroelectronics, 하타치, NEC, 도시바.. 요기다 대만업체까지 더하면 수도 없이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각자 숨어서 개발한다.   여기에 엄청난 연구비가 투자되는데, 먼저 개발한 넘들이 안 갈켜주기 때문이다. 감추는 비용은 상당하다. 각 기업마다 CIA와 같은 보안 그룹이 있고.. 마치 비행기 탑승장과 같은 x-ray투신기도 있다. 각 컴퓨터 마다 보안프로그램이 깔리고, CCTV나 RFID, 엑티브벳지 등 노동자 감시 기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 이런 쓰잘떼기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은 말하기 조차 싫다.  

 

그래서 때로는 먼저 개발된 기술을 몰래 빼끼기도 하고(빼끼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빼긴 기술을 감추기 위해 여러가지 트릭을 쓰기도 한다(역시 많은 비용이 든다). 특허를 피하기 위한 기술은 또 어떤가?  쉽게 애기하면 쓰잘때기 없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자본과 노동자들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에 수백개의 기업들에서 이렇게 중복 투자와 함께 노동자들의 자유시간이 투자된다. 단지 쓰잘때기 없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이 게 효율적인가?

 

부가적으로 한마디 더 하면, 국내에는 국가과제를 좀먹는 날 파리들이 많이 있는데.. 물론 대학교에 많다. 이들은 우수한 두뇌를 가졌다고들 한다. (그 이유는 우수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지.. 지 잘나서가 아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정부 관료의 눈을 속여서 중복투자인 것을 숨기기 위해 과제의 제목을 머찌게 뽑는 일들을 한다.  제목을 머찌게 뽑으면 전문가가 아니면 중복투자인 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중복투자는 그렇다치고.. 이들 날파리들이 수행하는 연구 과제가 거의 모두 성공을하고 있단다.. 물론 그 성공이 거의다 거짓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눈감아 준다. 그것마져 없다면 대학교 교육은 완전 파산직전에 가기 때문에...

문제는 성공했다면서 .. 실제로 실패한 경험담을 숨기는 것에 있다. 수백억의 국가 연구비로 연구한 연구 결과(실패한 사례도 .. 그 연구에 진정성이 있다면 아주 훌륭한 결과이다) 중 가장 소중한 진정성 있는 연구 결과를 숨긴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연구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연구 윤리"어쩌고 하면서 날파리들을 욕하지 말자는 뜻임) 암튼, 수백억원의 국가 연구비가 투자 되지만 진정성있는 결과 하나 남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또한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다 아는 애긴데..) 지금 이 사회가 효율이라는 걸 따질때 빼 먹는 것이 있다. 두 기업이 경쟁해서 중복투자 해가며 기술 개발을 했고 한 기업이 승리해서 독점했다고 해보자. 이때 다른 한 기업의 노동자들은 쪽빡을 차고 서울역 한 귀퉁이에서 잠을 자야된다. 이 비용.. 이들 노동자들이 공교육, 사교육 해가며 들어간 비용도 있을 것이고 그동안 살기 위해 먹고 마신 비용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용이 모두 서울역 한 귀퉁이에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비용은 자본주의 효율성에 고려 대상에서 빠진다. 물론 패배한 기업에 들어간 연구비며 다양한 비용들도 다 고려대상이 아니다.

 

누가 반문을 할지 모른다. 그래도 자본주의에는 "경쟁"이라는 것이 있어 기술이 발전하지 않느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가 사회주의나 기타 대안 사회에서 "경쟁"이라는 것을 도입하지 말라고 한적이 있나? 맑스가 그런말을 한적있었나? 레닌이? 뜨로가? 내가 지식이 짧아서 인지 몰라도 없는 것 같다.  다른 사회(대안사회, 사회주의)에서도 경쟁하면 되지 않냐? 재미있는 경쟁도 많이 있다. 그러한 경쟁은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잘알 듯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효율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단 한가지.. 성공한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소유한 극 소수 자본가들만 보기 때문이며.. 자기도 그 자본가가 될 수 있다는 환상때문이다. 일종에 감정이입......

 

명확하다.. 자본주의에서 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 효율성이란 일종에 "구성된 효율성(만들어진, 각색된 효율성)인 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자...

미국 노동자들이 개발한 기술을 한국 노동자들이 그 기술을 이어 받아 다양한 곳에 적용해서 다시 공개하면 얼마나 좋은가?. 기존에 개발된 기술을 왜 또 개발해야 하나? X신 육갑트는 것도 아니구.. (술이 올라오니까 점점 본성이...)  이 짓이 비 현실적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그누 리눅스가 그러했고.. "과거"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러했다.

 

경쟁?

맘에 안맞는 넘들하고 같이 기술개발할 필요가 있을까? 따로 팀을 꾸려 맘에 안맞는 넘들 보다 먼저 개발해서 그 넘들 코를 납작하게 할 수도 있다.

 

날파리?

자신이 이 땅의 주인이고, 그 주인이 자신의 돈을 사용한다고 해보자.. 중복투자할 필요도 없고.. 중복투자를 받기 위해 날파리 짓을 할 필요도 없다. 또 실패를 숨길 필요조차 없다.

 

무임 승차와 보상(동기부여) 문제? 또 공유지의 비극??  (술깨고 추가함)

 

음.. 또 자본주의에서는  "무임승차" 문제와 "보상(동기부여)"문제가  없기 때문에 혹은 대안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효율적이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무임승차는 오히려  자본가들이다.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땅, 부동산 부자들이고 또 금융자본가들이다.  그들의 보상은 정당하며 효율적인가?  

 

보상문제(동기부여)와 무임승차 문제 그리고 공유지의 비극이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유는

첫째로

개인의 본성을 이기적이라고 '선험적'(몰역사적, 자본주의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이기적이다라는 주장)으로 규정해 버리고.. 그 잘못된 규정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혹은 과학(?) 적으로 주입시켜.. 무임승차와 보상 그리고 공유지들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기적유전자.. 등등)  

 

둘째로

 "분배"라는 문제만을 보기 때문이다. 분배의 문제만 보면 어떻게 생산했는지는(또 생산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생산된 것을 어떻게 나눌 건지만 생각한다. 그러면  한정된 파이만 보이게 되고 이 파이를 찾이하기 위한 경쟁만을 생각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문제로 보인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도 문제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도 문제가 된다... 공유지도 문제고, 무임승차도 문제고 보상을 못받아서 담에 생산안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결국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자본가들(혹은 국가관료들)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일만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체로써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를 같이 참여하고 결정을 했다고 하면.. 그 속에서 혁신을 일으킨 사람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물론 여기에 관료주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동기부여가 보상으로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교환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사회가 아닌, "필요에 의한 생산"이 주가 되는 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한다.  "필요" 자체가 동기 아닌가?  물론 개인 개인이 필요한 것을 각자가 생산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때 개인과 집단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주체들이 민주적으로 논의하는 그 과정은 개인과 집단을  (변증법 적으로<-- 사실 이 말이 쉽게 와 닿지는 않는다.. ) 묶어줄 수 있다고 본다.

 

또 공유지의 비극은 사라진다.  완전히 격리된 개인들에게 공유지를 맡긴다면 공유지의 비극이 있을 것이지만, 공동관리하고 계획하는 그런 공유지라면 공유지의 비극은 없어진다.  그리고 단 하나의 문제.. 노동자가 주체로 설 수 없게 하는 단 하나의 문제 "노동자와 자본가와의 문제"만 남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주인이라면.. 생산하든 하지않든 "굷어 죽지 않을 권리가 있는" 그러한 사회여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뭐 이만하자.. 글 적다 보니 화가나네.. (술먹은 다음날 다시 추가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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