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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출발’을 위해(2007.01.02.)

‘즐거운 출발’을 위해

 

13년간의 인연

 

벌써 13년이 됐습니다.

한노정연이라는 ‘연구소운동’과 인연을 맺은 지가.

1993년 말 경이었습니다.

울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되어 2년 반 정도 징역살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징역을 사는 동안 세상은 확 바뀌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80년대부터 함께 운동했던 많은 동지들이, 혹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이념적인 지표를 상실하면서, 혹은 90년대 초반 투쟁과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실패에 좌절하면서, 혹은 당장의 생계와 가족 문제 때문에,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변혁 이념을 ‘청산’하는 것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80년대 신군부의 탄압과 억압 속에서도 그 모진 세월을 함께 버텨왔던 조직들도 하나둘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변혁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동지들은 생활 속으로, 대중조직 속으로, 지역으로, 부문 단체 등으로 ‘잠복’해 갔습니다.

 

후배 연구자들로부터 함께 연구소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은 때가 바로 1993년 말이었습니다.

80년대의 변혁운동이 ‘청산’하고 ‘해체’하고 ‘잠복’하고는 있었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은 전노협을 중심으로 두 차례의 총파업 투쟁을 전개할 만큼 성장하고 있었고, 노동운동의 성장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 때 두 가지 점을 고민하고 토론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의 전국적인 성장을 이론 정책적으로 지원해 나갈 단위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하나요, 노동자 대중운동의 발전과 결합하면서 변혁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이론적으로 다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그 둘이었습니다.

좌파 교수와 석박사 연구자들, 그리고 노동운동 내 좌파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연구 주체들이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치열한 논의 끝에 ‘계급성, 현장성, 전문성’을 연구소의 기치로 내걸기로 했고, 각종 연구 세미나팀의 조직, 월례발표회와 심포지움의 개최,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의 발간, 현장조사 프로젝트, 단행본의 발간 등 각종 사업을 계획했습니다.

이런 준비 끝에 1995년 7월 마침내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가 출범했습니다.

 

당시 한노정연의 출범은 단순히 하나의 연구소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운동’이었습니다.

흩어진 좌파 연구자들을 연결하고, 연구자들과 현장의 활동가들을 소통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성장하는 민주노조운동과 결합하여, 실천적인 긴장을 동력으로 그 속에서 변혁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찾으려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3년간 한노정연의 연구원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현장과 결합하며 연구를 해왔고,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한노정연은 유지되어 왔습니다.

끝까지 한노정연과 고락을 같이 한 연구자들과 현장의 활동가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노정연을 떠난 연구자들 모두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한노정연은 그간 그나마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한노정연과 맺은 13년간은, 3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 그야말로 청춘을 다 받친 세월이었습니다.

13년간 한노정연과 고락을 같이 하면서 많은 선배 동료 후배 연구자들로부터 배웠고, 또 노동 현장과 노동 운동의 활동가들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어 왔습니다.

이 점 이 글을 빌어 선배․동료․후배 연구자들과 현장․지역의 활동가들에게 “그간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활동비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호주머니돈 까지 써가며 연구하고 활동했던 연구자들, 현장의 프로젝트 보고서를 마무리하느라 혹은 <현장에서 미래를>에 기고할 원고를 마감하느라 밤샘을 밥 먹듯이 했던 연구자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이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가 지원했던 연구자들, 회원 관리와 회계 정리와 자료 정리라는 고달프지만 티도 안나는 실무를 묵묵하게 하던 연구자들, 그리고 한노정연의 일을 자신의 일보다도 더 소중하고 챙겨주고 걱정해 주었던 현장과 지역의 활동가들 ---.

한노정연이 지난 13년간의 활동 결과로 남은 소중한 성과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연구자들과 현장 지역의 활동가들일 것입니다.

저에게도 지난 13년간 한노정연과 맺은 인연이 가져다 준 가장 소중한 성과는 바로 이 분들입니다.

 

역사적인 소임과 역할

 

분명 한노정연은 지난 13년간, 아니 지난 10여 년간 명실공히 한국의 ‘좌파’ 노동이론연구의 대표 연구단체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랑스럽습니다.

비록 지금 ‘발전적 해소’라는 명분으로 해체하지만, 그래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한노정연은 2006년 지금, 변화하는 정세에 걸맞게 연구소를 새롭게 재편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유야 어쨌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내는 데도, 스스로를 발전적으로 재편해 나가는데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한노정연이 해왔던 역할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만약 한노정연의 역할에 대해 평가하시려면, 실제로 현실에서 그만한 역할을 입증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역할을 기대합니다.

문제는 한노정연이라는 틀을 유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이, 혹은 좌파 진영이 이러한 운동 양식을 어떻게 새롭게 창출해 낼 수 있을가입니다.

 

한노정연은 특정한 운동 발전의 소산물이었습니다.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 발전의 소산물이었습니다.

민주노조의 발전이 모든 운동의 발전을 대표할 때, 한노정연은 그 일각에서 자신의 역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은 한노정연의 모토였습니다.

한노정연은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그간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물론 여전히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의 전망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현실에서 노동운동을 어떻게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지의 문제는 여전히 모두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더더욱 노동조합 수준의 전망으로는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 전망을 구체화시켜내는 데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졌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노정연은 스스로를 한 단계 진전시켜 내지 못했습니다.

 

모든 조직은 자신을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한노정연 역시 그렇습니다.

스스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노정연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뭣보다도 역부족이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노동운동의 전망에 대해 한노정연은 구체적인 전망을 만들어나가지 못했습니다.

노동운동의 구체적인 현실과 호흡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는 한노정연만이 감당해야 하는 몫은 아니지만, 한노정연 역시 이러한 현실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한노정연은 변혁운동 진영 내부의 여러 견해의 차이를 조율하거나, 그러한 차이를 뛰어넘는 이론적 전망을 구체화해내지 못했습니다.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방안을 찾아내지도 못했고, 또 그런 능력을 갖춰내기에도 너무 부족했습니다.

현실의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노동운동 자체만이 아니라 전체 변혁운동의 전망을 요구하고 있었고, 변혁운동의 전망을 어떻게 현실화해 낼 것인가는 한노정연이 직면한 새로운 과제였습니다.

물론 한노정연이 이러한 과제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변혁운동의 전망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21C 사회주의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논의까지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까지였습니다.

한노정연의 역사적인 역할과 소임은. 안타깝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 있습니다.

아직도 뭐라고 똑 부러지게 정리하여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한노정연이라는 틀로는 더 이상 진전은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수준에서의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 가지 수준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연구역량들이 당분간 자신의 연구 활동에 좀 더 전념할 수 있는 구조들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연구소가 그동안 출판 사업부터 정기간행물 발간, 각종 교육사업, 프로젝트 사업 등을 해왔는데 여기서 많은 사업들이 연구소라는 틀 안에 묶여 있는 것보다는 좀 더 전문화해 질적으로 버전업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최근 몇 년간 좌파운동이 정체 내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을 어느 지점에서부턴가 타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는데, 좌파의 정치운동과 이론운동에 새로운 지형들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노정연의 발전적 해소가 좌파진영의 이러한 이론적 실천적 지점에서 하나의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자신의 마지막 역사적인 소임과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발전적 해산의 시기를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즐거운 출발을 위한 기다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이 만들어 지든지,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할 때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 둘 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불가피한 논리만을 따른다면, 이러한 바램 역시 요원한 일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노정연의 발전적 해소를 결정(결단)하면서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고 여러 이유와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어떤 일을 하든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무겁고도 엄중합니다.

특히 이러한 현실을 변혁하고자 하는 좌파의 현실은 더더욱 무겁고 엄중합니다.

그러나 무겁고 엄중한 현실을 그대로 무겁고 엄중하게만 받아들여서는 결코 현실을 변화시켜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좀 더 가볍고 경쾌하게 현실과 마주할 수는 없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역사의 발전, 운동의 발전과 일치할 수는 없는가.

사실 이런 의문은 80년대를 살았던 저나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되돌이켜 봅니다.

한노정연을 만들 때, 참으로 가볍고 경쾌한 심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밤을 세웠어도 힘들었어도 기뻤고, 그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가 너무 들어서인지 어떤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면, 그 출발은 어떤 ‘당위’나 ‘책임’이 아니라 ‘즐거움’으로부터 시작됐으면 합니다.

아직 인생을 오랜 산 것은 아니지만, 즐거운 것이 오래 간다는 판단이 듭니다.

자신이 즐거워야 동지들도 즐겁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다시 뜬금없는 바램일지는 모르지만, 한노정연의 발전적 해소가 서로를 다시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과 서로에 대한 기다림이 필요하겠지요.

 

2007.01.02.

사당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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