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두 아들 이야기

두 아들에게 들려준 '초보운전 십계명'

● 초보운전 10계명 ●

 

1. 음주 운전은 무조건 하지 말라! 걸리지 않을 정도면 괜찮겠지 하다가 음주운전이 습관이 된다.

 

2. 운전 중 뜻밖의 상황에 처했을 때, 당황하거나 쫄지 말라! 침착하게 대처하면 다른 운전자들이 알아서 대처한다.

 

3. 크던 작던 사고가 났을 때는 절대 자리를 피하지 말고, 사람 중심으로 대처하라! 사람이 다쳤는지 안다쳤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것은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사람이 다쳤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보험만으로는 안된다. 상대방이 다쳤을 때는 반드시 병원으로 가서 진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

 

4. 운전은 ‘흐름’과 ‘탄력’이다. 도로 주행 중일 때 무조건 천천히 간단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다른 차들과 흐름을 맞춰야 한다. 도로가 언덕일 때, 오를 때는 탄력을 받고, 내려갈 때는 탄력을 죽여야 한다.

 

5. 운전에서 앞차와의 간격을 잘 유지하는 것이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후미등으로 뒷차가 어느 정도 간격으로 따라오고 있는 지 확인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6. 안전운전은 ‘예측’운전이다. 도로의 상황, 차의 주행 속도 등을 판단하면서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지 예측하면서 대비해야 한다.

 

7. 운전을 잘 한다는 것은 악셀레다를 잘 밟는 것이 아니라, 브레이크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중요하다! 특히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차를 정지할 때 브레이크를 잘 활용해야 한다.

 

8. 빗길 운전을 할 때는 앞뒤차간 간격을 잘 확보해야 한다. 빙판길 운전을 할 때는 급출발이나 급정거를 하지 말아야 하고, 빙판길 내리막길에서 차가 미끌어질 때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꺾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사고가 더 커진다. 미끄러지는 방향으로 미끌어지게 놔두면서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

 

9. 야간 운전은 시야를 좁게 한다. 그래서 앞뒷차간 거리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운전하다가 졸리면 휴게소 같은데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라!

 

10. 주차할 때 동작을 작게 하지 말고, 크게 해라. 우회전을 할 때는 먼저 오른쪽을 살핀 다음 곧바로 왼쪽을 살피고, 좌회전을 할 때는 먼저 왼쪽을 살핀 다음 곧바로 오른쪽을 살펴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11학년 여름 모꼬지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11학년 여름 들살이

 

2012.07.07(토)~07.08.(일)

충남 태안반도 갈음이 해수욕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상급과정간담회3] '장독 뚜껑'인가, '판도라의 상자'인가

‘상급과정 간담회(3차)’, '장독 뚜껑'인가, '판도라의 상자'인가

 

 

언제나 출발점은 ‘애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인가 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논의를 하던지, 결국 다시 되돌아오는 지점은 ‘애들에 대한 애정’입니다.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겠죠.

 

1,2차 간담회를 통해 애들의 상태에 대한 얘기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3차 간담회(7.09.금.20:00)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다시 원점에서 얘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애들은 ‘하나’가 아니고, 다 ‘다르기’ 때문이겠죠.

 

‘무기력한 상황?’, ‘불안?’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많은 학부모들이 지금 애들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는 초점을 한 두마디로 정리하면, ‘무기력’과 ‘불안감’입니다.

물론 각 집안마다 사정과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

 

“우리 애는 전입생이다. 그간 발도르프 교육 받아온 아이들은 주체적인 사고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애는 안그런 것 같다. ‘여기는 시험을 안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하겠어’라고 한다. 못한다는 것인지, 안한다는 것인지 --- 전학 오면서 ‘대학’ 보다는 주체적으로 살 기 바랬는데, 주체적이지 못해 걱정이다.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 심각한 고민이다.”

 

“애들 사이의 개별적 차이(질적인 차이들)를 학교에서 개별적인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느냐? 일반학교는 10명만 건지고 30명은 포기하는데, 대안학교는 한 명 한 명 다 챙기는데 --- 가능하냐? 학교 커리큘럼을 충실히 따라가면, 1년 재수하면 대학 갈 수 있느냐? 가능하다는 판단이 있고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다.”

 

“학교에 보내면 주체적으로 잘 할 거라고 전제했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황이다. 개별 차이는 있겠지만, 뭔가 하기 위한 동기 부여가 뭘까? 시험도 하나의 동기 부여 계기인데---. 과제를 부과하는 것과 시험보는 것은 다르다. 개별 차이가 심할 거라고 생각한다. 개별 차이를 존중하면서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가? 경쟁 자체가 목표는 아니지만, 뭔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무기력한 상황,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해 줄 것인가? 학교 분위기가 경쟁을 터부시하지만, 동시에 분명하게 동기 부여를 해 주는 것도 없는 것 아니냐?”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아 있는 상황이다. 온실 속에 있는 것 같다. ‘대학’도 아니고, ‘질풍노도’도 아닌 ---.”

 

“애들이 모드 전환을 안하려고 하고, 뭘 목표로 세워 나갈 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다. 일반학교의 경우에는 시험이나 입시 등의 목표라도 있는데 ---. 학교도 모드 전환 안한 거 아니냐?”

 

이런 불안감은 집안 내에서 엄마, 아빠간에 이견 때문에 더 커지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간에 애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 엄마는 애가 학교에서 수업에 집중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여행도 하고 --- 자유롭게 커 나가길 바라는 입장이다. 근데 아빠는 공부를 시켜야 되지 않나고 얘기한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 어디서부터 이런 이견을 풀어내야 할 지 --- 가정내에서도 ‘불안정한’ 느낌이다. 엄마는 입시와 상관없이 상급과정 가자고 하지만, 아빠는 EBS 수학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확신’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다. ㅠㅠ.”

 

‘자극’, 혹은 ‘동기 부여’

 

애들 스스로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부딪혀 보려 하는 ‘역동성’”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대다수 엄마, 아빠들은 지금 애들이 ‘뭔가 무기력한 것 아니냐’는, 뭔가 ‘자극’이나 ‘동기 부여’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와 처방들이 있겠지만, 간담회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사고치면 다른 친구들은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애들 사이에 모델케이스가 없다. 비교 대상이 없다. 옛날에는 중학교 가면서 교복 입으면, 초등학교와 차이를 느꼈다. 형식 자체가 사고를 바꾸게 한다. 지금은 뭔가 ‘닫혀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과제는 텍스트안에서 하는 것과 텍스트안에서 해결할 수 없어서 다른 부분으로 확산시켜 내는 것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확산시켜 내는 과제가 중요하다. ‘확산적 과제’가 많아져야 한다.”

 

대다수 엄마, 아빠들의 끝모를(?) 걱정과 우려에 대해, 지난 9년간 언제나 그래왔듯이, 보이지 않게 과천자유학교의 한 가닥을 담당해 오신 선 모 아빠께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로 그런 우려들을 조금이나마 불식시켜 주셨습니다.

 

“학교 졸업 전까지 어떻게 지낼 거냐? 졸업 이후 벌어질 상황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졸업 이후에 본인이나 부모가 원하는 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학 못갈 수도 있다. 어떤 진로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가? 학교 다니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뭔가? 애들이 의욕적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그게 긍정적 모습이긴 하지만, 개인의 성향이나 개인별 시기 차이도 있을 수 있다. 애들이 무기력해져 있을 때 도와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은 당연하지만, 안 될 가능성도 많다. 닥달하다가 망칠 수도 있다. 애들이 자율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것이 나중에 힘이 될 것이다.”

 

“애들이 자유롭게 살고,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뭔가 마련해줘야 할 것만 해줘도 되는가? 12년 과정,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에 대해 다른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 ‘너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지 말아라’라고 해도 애들은 잔소리로 들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부모가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 지? 학교 프로그램 마련하게 하는 것? 학부모가 어떤 계기를 만드는 것? 기다리는 것?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한다.”

 

과천‘자유’학교에 걸맞게, 애들이 스스로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게 해야지, 너무 닦달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셨다.

그래도 저를 비롯한 대다수 소심한 ‘중생(衆生)’인 엄마, 아빠들은 어떤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볼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노력은 해야된다고 다들 느꼈을 겁니다.

 

고차방정식?

 

그런데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3차 간담회에서 나온 얘기들을 모아서 정리하려고 하다 보니 뭐랄까 ‘1차 방정식’이 아니라 ‘고차 방정식’ 수준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우리 상급 과정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고차 방정식’ 수준의 문제인데, 과연 우리가 그런 ‘고차방정식’을 풀어나갈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가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학교 제도적인 측면, 학교 운영의 측면, 상급교육 프로그램의 측면, 입시 문제와 검정고시 문제 --- 등,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부등켜 안고, 우리의 역량만큼 문제를 풀 수밖에 없는데 ---.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차 방정식’을 푸는 방안은 ‘수학’도 필요하지만 ‘예술’도 필요하다 --- 결국 문제를 풀어가는 주체는 우리들이고, ‘우리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풀어갈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 헉, 저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을 썼네요.

예민한 문제일지라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경지, 생각과 판단이 다르더라도 그 차이를 받아들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갈 수 있는 역량, 뭐 이런 게 ‘예술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서로간 신뢰’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걸 소중하게 가꾸어나가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우리에게 주어진 ‘상급과정’과 ‘진로’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나가기 위해 3차 간담회에서 제안된 내용을 다시 재정리해 보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안된 내용들은 애들에게 상급과정에 걸맞는 자극과 동기부여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서부터 학교의 제도적, 운영적 측면 모두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1) ‘1~8년담임과정’ 연속으로서의 ‘상급과정?’

 

우리는 ‘발도르프 학교로서 12년제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와 동시에 ‘상급과정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나갈 것인가’라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년제를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상급과정에 접근하는 경로’와 ‘상급과정을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12년제에 접근하는 경로’가 현실에서 부딪힐 수 있습니다.

 

“1~8학년 과정에서의 교육 목표와 상급과정의 교육 목표가 다르다. 상급과정은 애들이 ‘사회와 만날 준비’를 하고, ‘지식 교육’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1~8담임제 + 상급 카테고리인데, 지금은 담임과정 연속으로서 상급과정이 아니냐?”

 

“구조 변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현재 체제는 담임과정의 연속 분위기이다. 행사 등을 볼 때 담임과정의 관점에서 상급학년을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경험 많은 나라의 경험을 도입할 수 있는데, 유럽의 경험은 12년간을 편안하게 --- 미국의 경우는 12학년 때 대학 입시 준비 --- 차이가 난다. 한국의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12학년까지 학교에 믿고 맡기자고 하기에는 불안감이 든다.”

 

“가장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담임과정과 상급과정이 달라야 한다.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지 확인해야 한다. 지금 그렇지 못하다는데도 동의해야 한다.”

 

“달라야 한다. 학교 운영의 측면, 교육방식의 측면에서. 결국 아이들이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전제이고, 그렇다면 만들어줘야 하느냐? 스스로 만들어나가게 해야 하느냐?”

 

“아이들이 무기력하다는 진단에는 동의가 안되지만, 상급과정과 담임과정이 달라져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운영, 구조적 측면 / 커리큘럼 / 상급과정에 대한 이해 --- 고민돼야 한다.”

 

“아이들 무기력, 동기 부여가 안되고 계속 꺽기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것이 학교 구조상, 운영상 문제라면 큰 문제이다. 과연 그런가?”

 

“학교운영의 문제와 애들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

 

2) ‘상급과정’, 변화에의 요구들?

 

여러 수위의 진단과 제안들이 있었습니다.

참석한 모두가 동의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런 저런 고민과 단상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 하나가 만만한 문제들은 아닙니다.

한꺼번에 풀릴 문제도 아닙니다.

잘 모르지만, 자칫 발도르프 교육 목표와 프로그램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진단과 제안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간담회’인만큼,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또 그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급과정에서는 학년 체제가 느슨해져야 한다. 전체 교육 과정이 폭 넓어져야 한다.”

“교사들의 상급과정에 대한 의식, 구조적 운영적 측면, 두 측면 다 있다. 상급과정 준비에서 커리큘럼 준비 수준에 한정된 것 같다. 상급과정에서 대학 가느냐 안가느냐는 부차적이다. 20살 이후 어떤 삶을 살 것인지, 태도, 방법, 경험을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에포크도 듣고 싶은 것 선택해야 한다.”

 

“상급 교사의 정체성도 구조적으로 분명하게 전환해야 한다.”

“저학년 시각으로 고학년을 규정하는 것은 안맞다. 담임과정과 상급과정이 달라야 한다. 9학년 담임이 12학년까지 가는 것은 담임과정의 연속이다. 상급과정은 멘토선생님 하면 된다.”

“상급과정 교사회는 교육 관련해서 독자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져야 한다. 자칫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무기력해질 수 있다.”

“운영, 구조상의 문제는 이미 분리되어 있는데 --- 담임과정이 상급과정 아이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충분한가?”

“담임선생이 상급과정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문제의식은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 즉 담임과정으로는 상급과정을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다.”

“이사회 회의록을 보니, 교사회에서 상급교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급 분과만 있을 뿐이다. 상급만 전담하는 교사도 일부분이라고 나와 있다.”

 

“전체학부모회 운영에서 한 달 두 번의 회의 중에서 한 번은 상급학부모회로 했으면 한다.”

“상급과정 반별 반모임은 없어져야 한다. 상급과정 전체 모임으로 해야 한다.”

 

“‘사회와 호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교사에게 제안했을 때, 교사가 학생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예로 들면서 ‘기다려야 한다. 너무나 받아먹어만 와서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지켜보면 아이들이 때가 되면 성장하는가?”

“답답한 느낌이다.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제공해야 하는데 --- 아이들이 하고싶어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

 

3) 입시문제, ‘장독 뚜껑’인가? ‘판도라의 상자’인가?

 

입시문제에 대해 한 아빠가 ‘장독 뚜껑’을 열고 얘기해 보자고 했습니다.

참고로 이 아빠는 ‘계급장 떼고’ 얘기하는 것과 ‘장독 뚜껑을 열고’ 얘기하는 걸 참으로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대학 입시, 부모 각 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 아닌가? 학교와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일일이 학교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 학교가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안에서 다양하게 접근 가능하다. 어느 애가 대학을 가려고 하고,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대학 가야 하는데 --- 공부가 부족하다면 --- 공부하고 싶어할 때 어떻게 지도해줘야 하는가?”

 

“애들이 꿈도 희망도 없는 경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애가 의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 공부를 요청해서 관련 학부모와 의논해 봤는데, 기초를 잘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학교에 미술 방과후 프로그램을 요구했는데, 안되면 개인적으로 선택해도 좋은지 물었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해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애가 답답해 했다. ‘왜 절차가 복잡하냐? 자기는 급한데---엄마 맞어?’”

 

“과제를 내주는데 선생님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애들이 뭔가 과제를 집에서 계속 한다. 선생님에 대한 평가에서, 숙제에 대해 엄격하게 하면 ‘선생님답다’고 평가한다.”

 

“대학 입시 시험 보는 시기는? 대학을 선택하는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가? 12학년 마치고 바로 대학입시하면 애들이 힘들 것이다. 입시 문제, 한 번 더 논의해 보자. ‘장독 뚜껑 열고’ 논의해 보자.”

“검정고시 보는 시기와 12+1제 등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자.”

 

“검정교시에 대한 학교 규정이 무너졌다. 그 다음 무너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입시도 개별적 선택 가능성이 있다. 동의서 백번 써도 마찬가지다. 문서상 문제가 아니라 학부모들이 ‘발도르프 교육 완성해 보자’는 결의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 규정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8학년에서 상급과정 진학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다.”

 

역시 입시 문제는 ‘장독 뚜껑’을 열면, ‘판도라의 상자’로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두려워 마냥 뚜껑을 닫아 둘 수만도 없습니다.

그러면 ‘개별의 선택’문제로 강제됩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이 있었습니다.

 

“입시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다시 한 번 얘기하자!”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애들 진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제안도 있었습니다.

 

“애들이 꿈과 열정을 못갖는 것은 경험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부모들이 다양한 직업 정보를 애들에게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애들의 관심도 구체적으로 진전될 것이다.”

 

“간디학교의 경우, 한 학기에 1번 정도 특정 지역을 찾아가서 다양한 경험을 한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교육할 필요가 있다. 과천자유학교는 내부적인 커리큘럼 중심인 것 같다.”

 

“학부모들이 일일강사 풀을 만들어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학부모들이 자기 직업 경험을 이야기하는 기회를 갖자. 이에 대해서는 학교와 협의가 가능하지 않나?”

 

교육위원회에서는 그간 담임과정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해 왔는데, 2학기부터는 상급과정 대상으로 강연을 할 예정이라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급과정 간담회와 학부모회간 관계는 뭐냐는 제기에 상급과정 간담회는 ‘임의적이고 자발적인 간담회’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7.18.(일) 10:00, 학교 강당에서 젠녹 선생님과 상급과정에 대한 간담회가 있고, 이어서 14:00에 상급교사 대표의 제안으로 상급교사와 상급학부모간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상급과정 모꼬지’를 갖기로 했습니다.

일단 7월 25일(일) 14:00에 학교강당에서 갖기로 했습니다.

1박2일로 야외에 나가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일정을 잡기가 만만치 않아서 이렇게 잡혔습니다.

 

3차 간담회 내용을 정리하면서 슬슬 걱정이 됩니다.

1~3차 간담회에서 쏟아져 나온 이야기들을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담아갈 것인지?

혹 이런 정리가 누군가를 불편하게는 하지 않을지?

자칫 간담회에 참석한 일부 상급과정 엄마, 아빠들의 생각들이 전체 상급과정 학부모들의 생각으로 오해되지는 않을지?

아마 7월25일 모꼬지(?) 간담회에서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매듭짓는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간담회의 결론으로 ‘제안’할 수 있는 내용들을 걸러내는 것.

앞으로 어떤 절차와 경로를 따라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불행히도

제가 다음번 사회를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ㅠ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과천자유학교 상급과정 두번째 학부모 간담회

‘상급과정 간담회(2차)’

 

회의 중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음 상급과정 간담회(7.9.금.20:00) 사회를 떠맡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허를 찔린 셈(?)이죠.

사실 7월9일에 선약이 있는데, ㅠㅠ --- 참석해서 사회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간담회에서는 1,2차 간담회의 연장선에서 계속 논의를 하자고 해서, 사회를 맡은 본인으로서는 불가피하게 지난 1,2차 간담회의 내용에 대해 되새김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차 간담회 내용은 메모를 못해서, 2차 간담회(6.25.금) 때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간략히 정리해 봤습니다.

 

1. 9~10학년 아이들의 상태

 

우리 애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상태에 대한 진단은 우려와 걱정이 다수였습니다. 물론 낙관하는 얘기들도 있었지만 ---.

 

“천방지축이다.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한다.”

“막연해 한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재미도 없고, 고민도 없고 ---”

“무언가 ‘힘’이 없음을 답답해 하는 상황이다.”

 

아직은 판단하기 조금 이르고 “11학년(고2)이 되야 뭘 하는지 알 수 있는 시기”니 초조해 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습니다.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안심’ 혹은 ‘확신’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들이 다수인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는 이런 말이 조금 위안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이 클 때를 되돌아보라.”

 

이런 말을 들으면 사실 뜨끔해지지만, 엄마, 아빠들의 마음이라는 게 그래도 자신들보다는 자식들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지라 ---

 

 

2. 9~10학년 학부모들의 판단과 태도, 바람

 

애들을 걱정하지만 결국 아이들보다는 애들에 대한 부모들의 판단과 태도, 욕심, 바람 등에 대해 어떻게 바라 볼 것인지가 더 문제입니다.

 

결국 부모들이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간담회 때 이런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애들은 자기 속도대로 간다.”

“애는 내버려두면 잘 크는 건데 --- 너무 조급하게 다그치는 것은 아닌지---”

“10년 뒤에 애한테 무슨 말을 들을까가 걱정된다.”

“자기 밥벌이라도 잘 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애들에 대한 실날같이 가느다란(?) 믿음 역시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확신한다’고 하는데 그건 ‘확신’하지 않고서는 견뎌내기 어렵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 생각해봅니다.

 

“애들이 안개가 걷히는 경험을 하게 될 거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조금 더 적극적인 바람도 있었습니다.

 

“미래를 두고 애들과 부딪혔으면 좋겠다.”

 

근데 애들은 알죠. 미래를 두고 부모들과 부딪혔을 때, 많은 경우 결국 부모 뜻대로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 그래서 감추거나 피하거나 얼버무리거나 ---- 헉, 이건 제 경험이었습니다.

최 모 아빠 같은 경우는 본인이 자랄 때 결코 이렇지 않았을 거라 맹세코 확신합니다.

 

한 엄마가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시면서 이런 얘기도 하셨네요.

 

“미래에 저당 잡혀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

 

 

3.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결국 본론은, 간담회를 하는 취지는, 애들의 ‘진로’ 문제와 ‘대학 입학’ 문제입니다.

여기서 조금은 예민한 문제가 있다는 걸, 그날 간담회에서 느꼈습니다.

‘진로 문제’=‘대학 입시’라고 생각하는 것.

즉 진로 문제를 대학 입시와 등치시키는 것에 대한 경계, 조심스러움 등이 표현됐습니다.

물론 두 가지가 완전히 별개의 문제는 아니지만, ‘진로’ 문제와 ‘대학 입시’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날 나온 얘기를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별개이기 하지만 그래도 입시도 중요한데’라는 생각을 그동안 남몰래, 속으로만 가지고 있었지만, 그날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진로 문제와 대학 입학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진로문제는 삶에 대한 가치관의 문제이고, 자기 삶의 힘을 길러 가는 문제이다.”

 

‘진로’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들이 조금 더 진전됐습니다.

 

“진로에는 두 측면이 있다. 하나는 ‘뭘 할까?’이고, 다른 하나는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현실화시킬까?, 즉 방식과 경로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애들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할 때, 애들이 ‘뭘 할까’를 결정해 나가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 만이 아니라, 애들이 진로를 고민하고 결정할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것까지 고민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최 모 아빠로부터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들었던 이야기라 이제는 거의 외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목표만이 아니라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 경로 등 ----.

 

 

4. 방안들

 

간담회에 참가한 엄마, 아빠들이 모두 동의했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과 판단들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애들의 ‘진로’ 문제와 관련하여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지금 정리한 것은 그 날 나온 이야기를 그냥 제 생각대로 재구성해 본 것입니다.

 

1) 내적인 힘!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견디게 하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려면 ‘체력’이 필요하고, 또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내게 하는 에너지(힘)’가 필요하다.”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풍부해졌으면 한다. 그리고 애들이 꿈을 현실화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 내는 것이 중요하다.”

“애들이 스스로 선택을 할 때, 잘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힘, 시련을 극복해 내는 힘. 이 힘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생활과 교육과 운동을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생활이 몸에 베는 것, 현미와 채소 위주의 식사 습관을 갖는 것, 악기를 다룰 수 있고 오케스트라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이것이 장기전을 할 수 있는 베이스가 된다.”

 

아! 이렇게 정리해 보니, 그날 간담회에 참여한 상급과정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 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상급과정 엄마, 아빠들이 애들의 지금 상태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끝 모를 걱정을 하는 지도 ---.

소극적으로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련을 견디고 극복해 내는 힘’, 좀 더 적극적으로는 ‘꿈을 현실화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을 아이들이 상급과정에 가져주길 바라는, 그리고 그를 위해 엄마, 아빠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학교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엄마, 아빠들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조금은 낙관적일 수도 있고, 또 조금은 더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봅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2) 학습, 혹은 지성을 갖추는 일

 

상급과정에 들어오면서 엄마, 아빠들이 애들의 성장, 진로와 관련하여 가장 관심을 갖는 지점이 ‘학습’ 혹은 ‘지성을 갖추는 일’일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진단과 방안에 대한 얘기들이 오갔습니다.

 

“9~10학년은 지성이 깨어나는 시기이다.”

“애들이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저학년 때의 감성적 교육 중심이 고학년 때도 그대로 지속되는 분위기가 문제다. ‘열심히 공부해야 돼’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지적인 깨우침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애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람은 모든 부모님들이 바람일 것입니다. 아마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바람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문제는 학벌사회인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대학 입시’라는 족쇄가 우리를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사실 ‘지성’을 갖추는 것과 ‘대학 입시’는 별개의 문제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민들도 이야기됐습니다.

 

“비행기가 뜨려면 활주로를 달려야 한다. 대학입시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 영, 수는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다. 근데 이런 생각은 학교의 교육방침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수학은 뒤처지면 힘들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입시경쟁이 모든 교육을 규정하는 이 현실에서.

입시에서 성공과 실패가 아이들의 삶과 미래를 규정하는 이 ‘학벌사회’에서.

결국 우리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맞딱뜨리고 넘어서야 하는가?

상급과정 간담회는 그런 모색을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개별적이 아닌, 통으로 ‘함께’ 풀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3) 방안들, 단상들, 제안들

 

몇 가지, 이런저런 방안들이 제안됐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을 가지고 3차 간담회에서는 좀 더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어디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건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제안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찾지 말고 학교시스템 내에서 내용을 밀도 있게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학습에서 외부교육 필요한가? 학교의 학습에 충실하면 전환할 때 힘이 생긴다.”

“학습 내용은 학교 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충실히 따라가지 못할 경우에 메꿀 수 있는 방안으로 학교에서 방안을 마련하는 것, 학부모들이 학습도우미 등을 만드는 방안, 애들끼리 함께 풀어낼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이 있을 수 있다.”

“일반 학교와 비교했을 때 과천자유학교에서 교과과정이 빠지는 것은 없다. 문제는 일반학교의 경우에 고2까지 진도를 마치고 고3때는 시험 보는 스킬을 훈련시킨다는 것인데, 이 문제를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

“더딘 아이들에 대해서는 ‘배려’가 필요하고, 문제 아이들에 대해서는 치료교육이 필요하다.”

“잘 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애들에 대해서도 배려가 필요하다.”

“어떤 것을 하고 싶어하는데 만약 학교의 현실이 그것을 채울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일차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학교 내적으로 이 문제를 얼마만큼 밀도 있게 방안을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가입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때 ‘학교 내적’이라고 하면,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 모두가 서로 어떻게 맞물려가면서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점과 관련하여 이런 고민도 표현됐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형성돼야 가능하다. 분위기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인데, 불필요한 ‘오해’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제안들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철학을 독자적인 과목으로 가르쳤으면 한다.”

“책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문법, 문장구성, 논리 등.”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상급과정과 담임과정이 분리되어야 한다. ‘따로 또 같이’가 필요하다.”

 

 

5. 마무리하며

 

3차 간담회 사회를 맡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간담회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런 생각들이 언뜻 들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괜히 그날 나온 이야기의 풍부함을 제약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은 아닌가?

다른 엄마, 아빠들은 걱정이 안되는데, 특히 최 모 아빠가 걱정이 됐습니다.

시시각각 호시탐탐 시비를 걸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이런 정리가 그 빌미를 주는 건 아닌지 이 글을 정리하면서도 계속 걱정이 됐습니다.

 

다음으로 우려가 되는 것은 고백하건데 제가 발도르프 상급과정에 대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걱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런 건 이미 책에 다 나와 있다며 ‘공부 좀 해라’고 할 때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어느 뒷풀이 자리에서 최 모 아빠로부터 ‘공부 안한다’는 핀찬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앞에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사실 마음이 조금은 뜨끔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정리하면서 이런 각오도 새롭게 해봅니다.

 

“상급관련 책도 빠른 시일 내에 꼭 봐야지.”

 

그럼 9,10학년 엄마, 아빠들, 금요일(7.09.) 오후 8시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0.7.01.

9학년 현이 아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 2008 청소년인권선언

이 선언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2008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이하여 인권단체들이 진행한 ‘2008 인권선언 운동’에 참여하면서 만들고 발표한 선언입니다.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 전국의 여러 청소년들에게 청소년인권으로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답을 받아낸 것들, 그리고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지금까지 운동을 하면서 가져온 고민들을 가능한 한 많이 녹여내려고 노력했습니다.

 

 

2008 청소년인권선언

 

 

1. 청소년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어. 청소년이라고 해서 누리지 말아야 할 인권 따윈 없다구!

♪ ‘미성년자’라는 말은 청소년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말이야. ‘미성년자’라는 말을 사전에서 지워버리자!

♪ 나이가 적다거나 학생이라는 등의 이유로 차별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라우~

♪ 처음 만나서 나이 좀 많다고 곧장 반말하거나 막 대하는 건 정말 뷁이야.

♪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가 학교에 다니는 건 아냐. 탈학교 청소년이라고 해서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당신이 바로 문제라오. 또한 청소년들은 학교에 다니는지 여부를 비롯해서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로 차별받지 않아야 해.

 

2. 청소년은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행동할 권리가 있어.

♪ 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의견을 표현하거나 시위나 집회나 점거를 하거나 수업거부나 시험거부나 등교거부나 가출 등등의 파업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권리야.

♪ 처벌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하고, 인권침해 현장에서 당장 멈추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 ‘예의’나 ‘학생의 본분’, ‘자식의 본분’ 같은 말로 우리의 정당한 인권을 위한 행동을 공격하거나 하면 못 써.

 

3. 청소년에게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어. 우리를 위한다는 핑계로 니들 맘대로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좀 존중하란 말야!

♪ 나의 삶의 주인은 나야.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직업이나 가치관을 비롯해서 우리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살지 결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고, 우리는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어.

♪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거짓된 핑계로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하라! 찜질방, 게임방, 노래방 등에 10시 이후에 출입을 금지하거나, 청소년통행금지 거리를 지정하거나, 셧 다운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청소년 보호가 아니라 청소년의 행동에 대한 통제라구!

♪ 만일 이 사회에 위험하거나 유해한 것들이 있다면 청소년에게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해.

 

4. 청소년들은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할 때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해.

♪ 교사, 교장, 교육감, 지방자치단체, 국회의원, 대통령 등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인간들을 선택할 수도 탄핵할 수도 있어야 해.

♪ 청소년들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반영하고 직접적으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해. 시늉만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실제로 충분히 반영하시오!

♪ 교칙이나 집안에서의 규칙 등을 정할 때 청소년 당사자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해.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다 없애!

♪ 청소년에게는 성탄절 씰이나 수능 떡값 등의 성금을 강제로 내지 않을 권리가 있어.

 

5. 청소년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사회로부터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돈을 쓸 때도 다른 사람을 대리인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쓸 수 있어.

♪ 돈이 없어서 밥을 못 사먹거나, 교통비가 없어서 가고 싶은 곳을 못 가게 되거나, 난방비가 없어서 추위에 떠는 일 등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한 사회적 보장이 있어야 해.

♪ 먹고 살기에 필요한 적절한 돈을 벌 기회가 박탈당하지 않아야 해. 어리다는 이유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이 번 돈을 남에게(부모 등등) 맡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이런 것들을 사회에서 보장을 해주어야 하는 거라구!

 

6. 청소년은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일하는 목적이 생계를 위한 것이건 다른 용도를 위한 것이건 상관없이 청소년들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해.

♪ 청소년 노동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부당해!

♪ 노동을 하는 청소년에게는 안전하고 좋은 노동환경에서 적절한 임금과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고, 착취를 당하지 않아야 해.

♪ 청소년에게는 노동 조건을 바꾸기 위해 행동할 권리가 있고, 이런 행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선 안 돼.

♪ 청소년을 강제로 동원해서 노동시킬 수 없어. 예를 들면, 봉사시간을 채워오게 하거나 다른 강압적인 방법으로 봉사활동이나 참여하고 싶지 않은 행사에 강제로 참석시켜서는 안 돼.

 

7. 청소년들은 적절한 살 곳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해.

♪ 청소년들이 사는 곳은, 살만한 넓이와 시설의 좋은 환경이어야 하고, 생태적이면서 건강에 나쁘지 않아야 하고, 가능한 한 청소년들이 살고 싶어 할 만 한 곳이어야 해.

♪ 쫓겨나서 살 곳이 없을까봐 다른 사람들(부모 등등)의 일방적인 명령을 들어야 하거나 인권침해 등을 당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해.

♪ 가출은 청소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 만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적극적 표현 방식일 수 있어. 청소년들이 원하는 독립적 주거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해. 쉼터나 그룹홈처럼 지금 있는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적인 주거들도 더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이 되어야 하고,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해.

 

8. 청소년의 사랑과 성적 행위, 성적 자기결정권을 막거나 짓밟지 마!

♪ 청소년에게는 나이와 성적 지향(동성애, 이성애 기타 등등),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짝사랑하고 연애하고 성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 청소년은 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 권리가 있어. 성은 청소년이 알아서는 안 될 비밀스런 분야가 아니야.

♪ 청소년은 성매매나 성폭력, 성적 착취를 당하면 안 돼. 또 성매매 같은 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지도 않아야 하지. 그러기 위해 청소년의 주거권이나 경제적 권리 등 다른 인권들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해.

♪ 이성애만이, 또는 여/남 성별이분법이 당연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건 무개념이야.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모두 차별 없이 존중하란 말야!

♪ 단, 성차별, 폭력을 저지르는 마초스런 행동 등은 인권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어!

 

9. 청소년에게는 자기 머리카락이나 복장 등을 마음대로 하고 꾸밀 권리가 있어.

♪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 교복을 입고 이름표를 달게 하지 마! 사복을 입을 자유도 있다구!

♪ ‘학생다움’ 또는 ‘청소년다움’은 누가 정하냐? 염색, 파마, 삭발, 레게, 고데기, 생머리 등등 청소년은 자기의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어.

 

10. 청소년이 동네북이냐? 청소년은 위협적인 폭력이 없는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어.

♪ 때리지 좀 마! 교사나 부모(보호자)나 다른 어른이나 또래나, 누구든 우리에게 매질, 발길질, 주먹질, 기합, 모욕 등의 폭력을 행하지 말아야 해.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어떤 이유라도 그게 폭력이나 괴롭힘을 당할 이유는 될 수 없어. ‘사랑의 매’는 거짓말이야.

♪ 청소년은 학도호국단 등으로 동원되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어.

♪ 청소년들에게는 당연히 살 권리가 있어. 입시경쟁이나 안전사고나 폭력이나 빈곤함 등을 비롯해서 청소년을 죽음으로 내모는 모든 직⋅간접적인 폭력들은 사라져야 해.

 

11. 청소년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어야 해.

♪ 집에서 통금시간을 정해놓거나, 학교에서 밖에 나갈 때 외출증을 끊어야 한다거나 해서 우리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아선 안 돼.

♪ 청소년의 신체적 조건이나 경제적 조건이나 국적 등 때문에 교통수단 이용을 비롯한 이동에 제약이 있어선 안 되고, 필요한 지원이나 제도, 시설 등을 사회가 책임져야 해.

 

12. 청소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알고 싶은 것들을 알고 살 수 있어. 안 그럼 답답해서 어떻게 사냐?

♪ 인터넷이나 거리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디에서나 자신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언론, 전단지, 영상 등등을 만들고 배포할 권리가 있어. 이런 것들을 검열하거나, 허가받지 않았단 이유로 훼손하거나 탄압해선 안 돼.

♪ 청소년은 자신들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집회나 시위를 할 권리가 있어. 학교에서나 거리에서나 청소년들은 허가를 받지 않고도 집회를 할 수 있고, 집회를 했단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해.

♪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원하는 정보를 못 접하거나 미디어를 쓰지 못하게 해선 안 돼. 청소년들에게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이 충분히 지원되어야 해.

 

13. 청소년은 자신만의 공간과 영역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게 관련된 정보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어.

♪ 부모나 교사나 경찰이 마음대로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일기장이나 다이어리 등 우리만의 기록을 보는 건 인권침해야!

♪ 바꿀 수도 없는 주민등록번호로 우리에게 번호를 매겨서 관리하고, 지문을 다 찍어야 하는 주민등록증을 강요해선 안 돼. 급식비를 안 낸 사람을 걸러내려는 등의 이유로 함부로 지문을 찍게 해서도 안 돼.

♪ 야 이 스토커야, 너 내가 그렇게 좋냐? 감시카메라로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휴대폰으로 위치추적을 하는 등의 스토커 짓은 우리의 안전을 핑계로 우릴 통제하는 거야!

♪ NEIS를 비롯한 성적 등등 개인 정보에 대한 공개는 인권침해야. 성적표도 맘대로 집에 보내거나 하지 말란 말야.

 

14. 청소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상을 생각하고 주장할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있어.

♪ 종교계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고 해서 강제로 종교의례에 동원하거나 헌금을 내라고 하지 말고, 종교를 가지고 차별하지도 마! 그리고 부모나 가족이 믿는 종교를 청소년들이 똑같이 믿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강요하지 마.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사라져야 해.

♪ 국가보안법이라거나 정부, 교사, 부모 등의 권력으로 특정 사상을 강요하거나 특정 사상을 처벌하는 건 박물관으로 보내자.

 

15. 청소년에게는 인간답고 민주적인 교육에 대한 권리가 있고, 강제로 교육을 받지 않을 권리도 있어. 교육에서는 인권이 지켜져야 해.

♪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돈이 없거나 신체적 조건이나 등등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에서 좀 알아서 했으면 해. 그리고 교육은 되도록 공짜인 게 기본 아니겠니?

♪ 공부 왜 해? 청소년은 시험 치는 기계가 아니야! 시험점수로 매겨진 등급으로 우리를 판단하고 차별하지 말라구. 입시경쟁을 폐지하란 말이다!

♪ 야간‘자율’학습이라면서 강제로 실시하는 건 뭥미? 청소년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스스로 만들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해. 교과서건 뭐건 다 내용을 정해서 그대로 따르라고 하지 말란 말야.

♪ 교육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고 소통이야.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 해. 청소년에게는 교사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훈계는 너만 하냐! 너나 잘하든지!

♪ 단순한 주입식 교육이 아닌 개인의 특성과 창의력을 살릴 수 있고 다양성 있는 교육과 넓게 생각하고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

♪ 선후배 관계나 나이, 직위 등의 사이에서 차별이나 폭력, 외국인이나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이나 아웃팅, 폭력, 기타 인권침해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권을 알고 존중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인권교육은 꼭 있어야 해.

♪ 청소년은 역사적 진실을 알고 탐색하고, 사회의 현실, 과학적 지식, 사는 데 필요한 여러 기술들 등을 비롯해서 중요한 학문들과 자기가 알고 싶은 것들을 원하는 만큼 많이 배울 권리가 있어. 외국어 교육은 영어 같은 한 언어만 신봉하고 빡센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하고 또 하고 싶은 외국어를 즐겁게 배울 수 있어야 해.

♪ 교육 환경은 충분히 좋아야 하고, 교육 재정이나 예산도 충분해야 해. 예를 들어, 수십명씩 오밀조밀 부대껴야 하는 교실이라거나, 찌는 여름이나 꽁꽁 어는 겨울에 에어컨, 히터 등을 교무실에만 빵빵하게 틀고 학생들은 손도 못 대게 하는 건 대체 뭐니?

 

16 청소년은 쉬고 싶을 때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해.

♪ 방학, 휴가, 공휴일이나 쉬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 되는 건 물론이고, 생리나 아플 때 쉬고 싶을 때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해. 학교 등에는 청소년들이 쉴 수 있는 휴식시설이 마련되어야 해.

♪ 청소년은 잘 쌀 권리가 있어. 수업시간이라는 등의 이유로 화장실이 급한데 못 가게 하거나 하면 안 돼. 병 걸리면 책임질 거야? 화장실의 청결 상태나 시설, 숫자도 충분히 좋아야 해.

♪ 잠 좀 자자! 우리는 충분히 컨디션이 회복될 만큼 잘 수 있어야 해.

♪ 빡센 경쟁교육이나 생존의 위협 등도 청소년들이 충분히 쉴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없어져야 해.

 

17. 청소년에게는 놀 권리가 있어. 또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들을 통해 즐길 권리도 있지.

♪ 청소년은 자신의 취미를 즐길 수 있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 돈이 되는 것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문화들이 보장되어야 하고,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화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도 보장되어야 해.

♪ 보호라는 핑계로 19금 딱지를 붙이거나 공부하라면서 청소년들의 문화를 통제하거나 하는 건 부당해. 사전심의로 나이 제한을 두는 건 검열이고 통제야!

♪ 사회는 바람직하고도 다양한 놀거리들을 제공하고 장려해야 해야 할 책임이 있어.

 

18. 청소년은 먹고 싶은 것을 잘 먹을 수 있어야 해.

♪ 청소년에게는 생태적이고 건강에 좋은 먹거리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어. 청소년은 취향이나 사상이나 종교 등의 이유로 음식을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어.

♪ 담배나 술 등의 기호식품을 단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먹지 못하게 해서는 안 돼. 이것들이 정말로 유해하다면 이것들을 아예 없애거나 유해성을 알리고 줄이거나 끊는 것을 도와야지, 청소년이란 이유로 강제로 금지하는 건 청소년을 만만하게 본 인권침해야.

♪ 청소년은 원산지, 생산 방법, 유통 경로, 유해성 등 자신이 먹는 것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해.

 

19. 청소년은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어. 충분한 휴식과 여유, 그리고 적절하고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 등은 중요해.

♪ 청소년은 충분히 건강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해. 청소년의 건강권은 청소년의 의사를 존중하는 속에서 그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해.

♪ 의료 서비스의 과정에서 청소년이라거나 경제적인 조건 등등 때문에 제대로 설명 받지 못하거나 치료받지 못해서는 안 돼.

♪ 학교에서 체력검사나 신체검사를 할 때도 그렇고, 에이즈 감염 등 의료상의 정보를 함부로 알리거나 청소년의 동의 없이 가족들에게 알려선 안 돼.

 

20. 청소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해.

♪ 청소년들은 충분히 실수하고 경험을 쌓아갈 권리가 있어.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꾸고 추구할 권리가 있어.

♪ 청소년들의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이 사회가 가능한 한 제공해야 해.

♪ 청소년의 행복은 미래의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의 것이어야 해. 청소년은 지금을 사는 인간이고, 미래로 삶이나 행복을 유예한 인간이 아냐.

 

P.S. 여기에서 선언한 권리들은,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할 권리로 오해해선 안 돼. 모든 인권은 소중하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협동1,2,3-판란드식 교육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협동1,2,3-핀란드식 교육

 

<프레시안>2008.10. / 성현석 기자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협동 (上)

 

어릴 때 읽은 동화 한 토막. 어떤 사람이 지옥 구경을 하게 됐다. 지옥에서는 밥 먹는 시간이 제일 괴로웠다. 밥상에 팔만큼이나 아주 긴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이는 까닭에, 음식을 제대로 입에 넣기가 힘들다. 밥그릇이 엎어지기 일쑤다. 그럼, 흙에 뒤범벅이 된 음식을 서로 먹겠다고 싸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진저리를 치던 사람이 이번에는 천국 구경을 하게 됐다. 지옥과 반대로, 천국에서는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즐겁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밥상이 똑같다. 역시 긴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여 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음식을 흘리지 않는다. 긴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서로에게 떠 먹여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협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같은 밥상, 즉 같은 물질적 조건에서도 '협동' 여부에 따라 행복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각자 생수 사서 마실 돈으로 수돗물 관리에 투자하는 게 낫다" 

북유럽을 돌아다니는 동안, 이 동화를 떠올리게 한 사례는 많았다. 핀란드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된다. 스웨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들은 수자원 관리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다툰다. '숲과 호수의 나라'라고 불리는 자연환경도 한 이유다. 하지만 '깨끗한 물'을 시민에게 공급하기 위한 공적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점이 더 큰 이유로 꼽힌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수돗물의 질을 믿을 수 없어서 각자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경우, 그리고 수돗물을 믿고 마시는 경우. 이 둘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사회적 비용이 더 클까. 물론, 각자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경우다. 생수를 사서 마실 돈을 모아서, 수돗물 관리에 투자하면 결국 모두가 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이게 협동 모델이다.

북유럽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런 협동이 가능한 이유를 물었다. 부러움 섞인 질문이었다. 대부분 답변이 신통치 않았다. 누구나 뻔히 짐작할 수 있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더 착해서?…경쟁보다 협동이 더 실용적이니까!" 

귀에 쏙 들어오는 대답을 한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한국인 유학생 신경아 씨였다. 신 씨는 캐나다에서 작곡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핀란드 헬싱키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전공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그는 "이곳 사람들이라고해서 특별히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대답을 시작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흔한 답변처럼 들렸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제도적 차이 외에,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생각에서도 다른 대목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보다 자세하게 이어진 대답은 이랬다. "핀란드 문화는 아주 실용적이다. 협동과 연대에 바탕을 둔 사회 모델 역시 실용적인 판단의 결과처럼 보인다. 복지가 강한 사회니까, 유난히 착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하면 틀렸다.

햇볕이 적은 핀란드는 사람이 살기에 썩 좋은 환경이 아니다. 게다가 오랜 식민지 경험을 갖고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직후에는 격렬한 내전도 겪었다. 독일, 스웨덴의 지원을 받는 백위군과 러시아 혁명을 지지하는 적위군 사이의 유혈 충돌이다. 당시, 백위군이 승리하면서, 좌익은 대부분 러시아로 쫓겨났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일 측에 가담했던 탓에 소련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전쟁 뒤에는 소련과의 무역량이 많았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경제가 파탄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런 역사를 가진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내부적으로 무한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대답은 주 핀란드 한국 대사관 관계자가 전한 이야기와도 통하는 면이 있었다. 대사관 관계자는 "북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유럽의 변방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핀란드는 자원이 적고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사람에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한 명도 낙오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인권과 연대 의식이 유난히 강해서라기보다, 경쟁을 자제하고 협동을 강조하는 모델이 더 '실용'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각자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것보다, 세금으로 수돗물 관리에 투자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설명과 닮았다. 북유럽에서 만난 한국인들 중에는 '믿을 수 있는 수돗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점수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 순간, 교육이 망가진다" 

'수돗물 모델'과 닮은 사례는 많다. 그 중 하나가 교육이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세금으로 거둬서 공교육에 투자하면 모든 아이들이 훨씬 질이 높은 교육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돗물과 교육은 다른 측면이 있다. "내가 꼭 남보다 더 좋은 물을 마셔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자신이 마시는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가 문제일 뿐이다. 굳이 남과 차별화해야 할 필요는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꼭 남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많다.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앞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교육의 질보다 '남과 차별화'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다. "모두가 나쁜 교육을 받더라도, 우리 아이가 전체에서 1등을 하면 만족스럽다"라는 생각이 번지는 경우다. 수돗물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 나쁜 물을 먹더라도, 내가 그중에서 가장 좋은 물을 먹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리는 없으니까.

'차별화'하려는 욕망이 질을 높이려는 노력보다 두드러지면, 당연히 전체적인 질은 떨어진다. 교육이 사회적 차별화의 통로가 될 때, 이런 일이 생긴다.

"학교에 서열이 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북유럽 사회가 결정적으로 돋보이는 대목이 이 부분이다. 직업, 학력, 학벌 등에 따른 차별이 매우 적다. 학교에서 받은 점수가 사회에서 받는 대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적다는 뜻이다. 대학 교수, 법조인 등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직업으로 쏠리는 현상도 약하다. 오히려 생산직과 육체노동자가 높은 소득을 거둔다. 장인(匠人)을 존중하는 문화 때문에, 한 가지 기술을 꾸준히 익힌 사람에 대한 대우가 좋다.

출신 학교를 따지는 문화가 거의 없다. 북유럽에서 만난 교사, 교육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전한 이야기다. 한국에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북유럽 교육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하는 '입에 발린 말'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헬싱키 시내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통계청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라울라 씨는 "학교 간에 서열이 있다고? 글쎄, 핀란드에서 그런 게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 했다. 혹시 그가 '좌파'인 걸까. 그렇지 않다. 그의 정치 성향을 물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중도 우파 지지자' 라고 일러줬다.

녹색당 지지자이며, 오케스트라 연주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앙띠 씨는 같은 질문에 "시벨리우스 음악대학이나 헬싱키 종합대학, 오울루 공과대학 등은 외국에도 좀 알려진 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무리를 하면서까지 이들 학교에 들어가야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또 관련 분야 종사자들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면, 학교의 명성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완벽한 평준화는 아니지만, 학교 간 순위 매기기에 열을 올리는 문화와 거리가 멀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우열반 없앤 이유…다양한 아이들이 팀 단위로 공부할 때 성취도가 높다" 

핀란드에는 명문고, 명문대가 없을 뿐 아니라 우열반도 없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부터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져 온 교육개혁이 핀란드 교육의 틀을 완전히 바꿨다. 우열반은 1985년에 사라졌다. 대신, 학력이 높은 아이와 낮은 아이가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경쟁보다 협동을 중시하는 쪽으로 교육정책의 기조가 바뀌면서부터다.

교실 안에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이 있고 이들이 팀(Team)을 이뤄 공부할 때, 학업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게 정부 차원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 한다. 또 개인 간 점수 경쟁에만 열을 올리느라, 서로 협동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채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에서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고려됐다. 사회 생활은 대부분 남과 협동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더 실용적"이라는 한국 vs "경쟁은 경쟁력을 망친다"는 핀란드

경쟁에서 협동으로 교육 정책의 기조를 옮기는 변화 속에서 반발은 없었을까. 헬싱키에서 만난 한 대학원생과의 짧은 대화 속에 힌트가 있다.

"평등 교육이 이뤄지는 셈이네요." "그런 셈인가요. 아무래도 교육에서 차별을 없애는 게 더 실용적이죠." 

똑같이 '실용'을 내세웠지만, 한국 정부가 택한 방향과는 다른 길을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그 길의 끝은 어떻게 다를까.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협동 (中)

 

핀란드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1인당 술 소비량이 세계 1위다. 그래서 알콜 중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꼽히곤 한다. 날씨가 좋은 금요일 저녁이면, 술병을 들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5월 1일 노동절에는 도심 한복판에서 거창한 술판이 벌어진다.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시민과 함께 건배를 외친다.

이렇게 술과 가까운 문화 탓인지, 고등학생들도 술을 많이 마신다. 한국에도 술을 마시는 고등학생이 종종 있지만, 핀란드에서는 공원 등 눈에 띄는 곳에서 마시는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 다르다.

핀란드, 공부하는 시간은 가장 적은데 학력은 1위  

술병을 들고 몰려다니는 고등학생들을 보며, 이 나라가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력조사)에서 종합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물론, 청소년 시기에 술을 접하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유분방한 문화 속에서도 높은 학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부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핀란드는 수업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다. 사교육도 거의 없다. OECD가 학생들이 학교 밖·가정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조사한 결과 역시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PISA 순위는 최상위권이다. 핀란드를 바짝 뒤쫓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핀란드와 달리 사교육이 활발하고, 학생들이 학교 밖·가정에서 공부하는 시간도 매우 긴 편이다.

"수학 숙제 있으면 마음이 매우 무겁다"…한국 33.2%, 핀란드 6.7%  

그런데,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핀란드는 학력과 학습흥미·동기가 모두 높은 반면, 한국은 학습흥미·동기가 최하위권이다.

2003년 PISA 수학 부문 결과를 보면, 한국은 홍콩과 핀란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도와 학습 동기는 전체 41개 나라 가운데 각각 31위와 38위였다.

당시 학습태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수학 숙제를 하려고 하면 마음이 매우 무거워진다"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이 한국은 33.2%, 일본은 51.5%였다. 반면, 핀란드는 6.7%에 그쳤다. OECD 평균은 29.2%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안절부절 못한다"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국 학생들은 44.3%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일본 학생들은 42.1%로 비슷했다. 핀란드는 15%, OECD 평균은 29.0%였다. 학습흥미·동기에 관한 답변에서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교육제도 및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합은 2분지엔의 초뿔말이다?"…'염불 외기'가 수학 교육을 대신한 사회

수학 문제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린 학생들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어른들 역시 그렇게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 공부는 군 복무만큼이나 괴로운 일이라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사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글이 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주역(周易)을 어찌나 즐겨 읽었는지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기자의 위편삼절은'수학의 정석(定石)'이었다. 읽고 풀고 베개 삼아 베고 자다 일어나 다시 읽고 풀다 보니 책이 걸레처럼 돼버렸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1000쪽 넘는 책 두 권이 거의 암기(暗記)된다. 문제의 관상(觀相)만 척 보고도 정답을 고를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 덕에 입시 점수는 좋았지만 암기의 힘은 끈덕졌다. 요즘도 꿈속에서 기자를 시그마와 인테그랄 사이로 몰아넣고 진땀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달 27일자 <조선일보> 기사 일부다. 문갑식 기자가 <수학의 정석> 시리즈 저자인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을 인터뷰한 기사다.

같은 지면에 문 기자가 쓴 글을 보면, 더 적나라한 이야기도 나온다.

"1977년 겨울 서울 종로2가 뒷골목 학원가가 생각납니다. 중3 겨울방학 때 '기본수학의 정석'과 '고교기본영어'를 수강했습니다. 수학강사는 염불(念佛)처럼 공식을 외우게 했습니다. '말은 초뿔엔마일의 공차' '합은 2분지엔의 초뿔말이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첫째는 수열의 말항(末項) 구하는 것, 두 번째는 수열의 합(合) 구하는 공식입니다. 수학 정석의 저자이자 상산고를 최고의 자립형사립고로 만든 홍성대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떠오른 31년 전 기억입니다." 

"수학의 본질은 자유"인데…"한국 학생들은 왜 가만히 있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한국남자들끼리는 재미있지만 외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처럼, 문제풀이 요령을 염불처럼 외운 이야기도 역시 '국내용'일 뿐이다.

이처럼 엽기적인 방식으로 공부한 이야기를 북유럽 사회에 전하면, 한국에 대해 아주 이상한 인상을 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핀란드 학생들이 "수학 숙제를 하려고 하면 매우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대답한 비율이 6.7%에 그친 데서도 눈치 챌 수 있는 사실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한국 학생들은 문제풀이 요령을 외우는 것으로 수학, 과학 공부를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과장해서 이야기 한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학생들이 가만히 있느냐"라고 물었다. 재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일을 강요하는데 저항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집합론을 창시한 수학자 칸토어는 "수학의 본질은 자유"라는 말을 남겼지만, 수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서 '집합'을 배우는 한국 학생들은 "수학의 본질은 고통"이라는 말에 더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가 수학과에 가리라고는…"

그래서 한국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북유럽으로 건너가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문 기자보다 세 살쯤 어린 스웨덴 교포가 겪은 일이다. 정혜영 <프레시안> 스웨덴 통신원의 남편인 그는 1980년대 초에 가족과 함께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당시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스웨덴에서도 고등학교에 다니게 됐다.

스웨덴 사민주의가 낳은 성과가 절정을 구가하고 있을 당시, 그가 놀란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 하나가 "수학이 재미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그였다.

뒤늦게 수학의 재미에 눈을 뜬 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내가 수학과에 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스웨덴 방정식과 한국 방정식이 다를 리는 없다. 수학 교과서 속에 담긴 개념은 만국 공통이다. 단지,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시그마와 인테그랄 사이에서 진땀을 흘리는 악몽을 꾼다는 문갑식 기자도 스웨덴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면, 수학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문제의 관상(觀相)만 척 보고도 정답을 고를 지경"을 '병리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권장하는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칸토어가 말한 '수학의 본질'로부터 계속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수학 교과서 속 개념을 차분히 숙지할 여유 없이 문제 풀이 요령을 외우기에만 급급한 풍토에서는 "단지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제약만 받을 뿐, 어떤 생각도 허용되는" 수학의 자유를 실감하기 어렵다. 또, 눈에 보이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추상적 사고를 제대로 경험하기도 힘들다.

"□+□=10"과 "1+9=□"의 차이…"'생애 첫 지식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나"  

스웨덴 학교에서는 덧셈·뺄셈을 가르칠 때, "□+□=10. □에 각각 들어갈 숫자는?"과 같은 유형의 문제를 자주 출제한다. 아이들은 "1과 9, 2와 8,…9와 1" 등 여러 개의 답을 적는다.

초보적인 산수를 배울 때부터 "문제의 답은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배어든다. 음수와 양수, 유리수와 무리수, 실수와 허수 등 수(數)에 대한 개념이 넓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어릴 적 접했던 문제의 답이 더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만났던 산수 문제의 답은 "1과 9, 2와 8,…9와 1"만 있는 게 아니라 "-79와 +89, 5.13과 4.87, 1+10i와 9-10i…" 등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 □에 들어갈 숫자는?"과 같은 문제가 주를 이루는 한국, 일본 등과 다른 대목이다. '생애 첫 지식 활동'을 답이 하나인 문제로 시작하는 셈이다.

산수를 익히는 것은 추상적 사고를 하는 첫발을 떼는 작업이다. 이전까지는 사과, 배, 엄마, 아빠 등의 낱말을 익히는 수준에 머무르던 아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 배, 엄마, 아빠 등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지만 하나, 둘, 셋은 그렇지 않다. 숫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개념화하는 데 주로 쓰이지만, 실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처음 익힐 때, 답이 하나뿐인 문제로 시작하는 것과 답이 무궁무진한 문제로 시작하는 것은 얼핏 사소해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다. 이런 차이가 훗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창의와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로 이어질 수 있다.

평가가 교육의 목적으로 통하는 한국ㆍ일본

한국, 일본 등에서는 왜 '답이 하나인 문제'로 산수를 가르칠까? 이 역시 '답이 여러 개인 질문' 이다. 콕 짚어서 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답이 여러 개인 문제'로 산수를 가르치기 어려운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게, '평가'가 목적이 돼 버린 교육 문화다. 평가는 아이들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그런데 평가 결과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에서는, '평가 점수를 잘 받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 버린다. 이렇게 되면, 답이 모호하거나 무수히 많은 문제는 내기 어렵다. 답이 선명한 문제, 그래서 평가 결과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기 힘든 문제만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 문제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어른이 돼서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답이 모호하거나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라는 뜻이다. 답이 하나인 문제를 푸는 데만 능해서는 좋은 어른이 되기 어렵다.

반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평가는 수업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라는 입장에 충실한 편이다. 이곳 교사들이 교육에 대해 유난히 더 뚜렷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학교에서 '등수'를 매기지 않는 문화' 때문이라는 게 교육 전문가들이 흔히 하는 설명이다.

성적표에 '등수'가 없다

핀란드와 스웨덴 모두 7세~15세까지의 의무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9학년제 기초학교(종합학교)가 의무 교육 기관이다. 단, 핀란드에서는 원하는 학생에 한해 10학년까지 다닐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기초학교 8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에 해당) 때 처음으로 성적표를 받는다. 핀란드에서는 1~2학년 때는 점수가 아닌 문장 표현으로 된 성적표를 받는다. 3학년 이상이 되면, 성적표에 평점이 나오기도 한다. 점수에 따른 평가를 실시할지 여부, 점수를 매기는 기준 등은 지방 교육위원회가 정한다.

성적표에 점수가 기재돼 있다면, 당연히 '등수'도 매겨져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적어도 의무교육 기간 동안에는, '등수 매기기'가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또 굳이 '등수'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거의 없다. 평가의 성격 역시 다른 학생과 비교하기 위한 게 아니다.

게다가 전국, 혹은 지역 단위의 일제고사도 금지돼 있다. 이미 폐지된 일제고사를 부활시킨 한국과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정답이 없는 과제에 대한 주관적 평가  

'등수'가 무의미한 문화는 수업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북유럽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특정 주제에 대해 조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아이들이 똑같이 푼 뒤, 정답을 택한 비율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방식에서는 객관적인 '등수'가 매겨질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 작성처럼 뚜렷한 정답이 없는 과제에 대해 교사가 평가한 내용에 대해서는 등수가 큰 의미가 없다. 성적표에 기재되는 점수는 학생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교사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학생, 학부모들도 이런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물론, 교사를 믿고 존중하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문화는 특히 핀란드에서 견고한 편이다. 스웨덴 등 다른 북유럽 국가에서는 교사에 대한 불신이 상대적으로 강해서 사회 문제로 꼽히기도 한다.

개인별 평가가 아닌 팀별 평가…자기 점수만 챙기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그리고 북유럽 학교에서 가장 흔한 수업 방식은 팀(Team)을 이뤄 진행하는 협동 작업이다. 이 경우, 평가 역시 팀 단위로 이뤄진다. 팀에 속한 학생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팀 전체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학력 수준이 높은 아이도 팀 성적이 나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팀 구성원은 혼자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또, '혼자서만 똑똑한 사람'보다 팀워크(Teamwork)에 능한 사람이 기업과 정부에서 더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실용적인 고려도 작용했다. 자기 점수를 높이는데만 골몰하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는 한국 교육과 대조적이다.

수업에서 협동 작업을 진행하는 팀은 학력 수준이 서로 다른 아이들로 구성된다. 교사는 각각의 팀이 학력과 성격 등 여러 면에서 최대한 다양한 아이들로 구성되도록 배려한다.

학력 수준이 다른 아이들끼리 계속 대화하면서 개념을 터득한다  

기자가 헬싱키에 있는 라또까르따노 학교를 방문했을 당시, 5학년 교실에서는 과학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교사가 던진 질문에 대해 아이들이 팀 단위로 토론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인터넷과 도서관을 이용해 미리 관련 자료를 찾아왔다. 서로 다른 자료를 갖고 있는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같은 팀 안에서도, 어떤 아이는 이미 관련 자료를 충분히 읽었다. 다른 아이는 자료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토론해서 함께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앞에 나가서 팀이 찾아낸 답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팀 단위 토론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교실은 시끄럽게 달아오르고, 교사는 가만히 지켜본다.

이 과정에서 관련 개념을 먼저 깨닫는 아이가 나온다. 이 아이가 다른 팀 구성원에게 스스로 이해한 바를 설명한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여전히 엉뚱한 질문을 퍼붓는다. 이런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먼저 이해한 아이도 설명을 계속 보완하고, 스스로 이해한 바를 되짚어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팀 구성원 대부분이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교사가 제시한 문제의 답을 찾는다.

토론 과정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도 주눅 드는 기색이 없다. 이해가 안 되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남보다 조금 먼저 깨달아서, 수업 내내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던 아이들은 대화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키운다.

토론에서 뒤쳐진 아이들, 그들을 위해 학교와 교사가 있는 것  

이런 설명을 듣고서, 궁금증이 일었다. 학습 속도가 유난히 더뎌서 팀에 기여하지 못하는 학생이 따돌림을 당하는 일은 없을까.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교사에게 물었더니,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과연?' 그래서 이 학교 사뚜 홍깔라 교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의 대답을 요약하면 이렇다.

"끝내 토론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학교와 교사의 역할은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수업에서 다루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교육과정을 별도로 마련한다.

아이들이 이런 과정을 이수하는 것에 대해 창피스러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력이 낮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와 교사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문화는 학교와 사회에서 학력 차이에 따른 차별을 겪지 않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다."

사뚜 홍깔라 교장은 이야기를 마치며 학교를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boat)'에 비유했다. 출렁이는 배 위에서는 한 명만 몸을 잘못 움직여도 배가 균형을 잃고 뒤집어진다.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한 명만 생겨나도, 학교는 제 구실을 못하는 셈이라는 뜻이다.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협동 (下)

 

핀란드에는 '친일파'가 많다.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가진 이들이 흔하다는 뜻이다. 이 나라를 오래 지배했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한 이유다. 이런 반감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꺾은 작은 섬나라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핀란드가 독일, 일본 등과 같은 편에 섰던 사실도 한몫했다. 1939년 겨울, 부동항(不凍港, 얼지 않는 항구)을 탐낸 러시아의 침략으로 영토의 10%를 잃어버린 핀란드가 "적의 적은 동지"라는 판단에 따라 러시아의 반대편에 섰던 것.

물론, 이런 호감은 일방적이었다. 일본에서 '친핀란드파'라고 할만한 사람은 드물었다. 폐허 위에서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이 대륙 반대편에 있는 추운 나라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별로 없었다.

모방의 나라 일본, 핀란드 교육에 관심 갖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 핀란드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력조사) 결과가 이유다. PISA 2006 수학 평가에서 일본 고등학생은 10위를 기록했다. 읽기 능력 평가에서는 14위에 그쳤다. 3년 전보다 각각 4위, 1위씩 후퇴한 결과다.

 일본 교육계가 들썩였다. 일본 학생들도 한국처럼 혹독한 입시 교육에 시달린다. 그런데 늘 PISA 1등을 차지하는 핀란드는 평균 학습 시간이 가장 짧다. 또 아이들의 학습 만족도 역시 1위다. 괴로움을 꾹 참고 공부한 일본 학생들이 실컷 놀면서 지내는 핀란드 학생들에게 한참 뒤지는 셈이다. 일본 정부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자신보다 앞선 사례를 배우는 일본 사회의 순발력이 발휘됐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 유력 신문은 핀란드 교육에 관한 분석 기사를 여러 차례 실었다. NHK 등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출판계 역시 분주해졌다. 핀란드 교육을 다룬 책들이 서점가에 쏟아졌다. 이 가운데 일본 츠루분카 대학 후쿠타 세이치 교수가 쓴 <경쟁하지 않아도 세계 제일>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이를 보완한 책이 <경쟁을 벗어나 세계 최고의 학력으로-핀란드 교육의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한국에서 번역돼 나왔다.

또, 일본 안에서 핀란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치솟자, 주일본 핀란드 대사관은 핀란드 교육을 알리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경쟁 없이 최고가 된 비결" 

핀란드 교육에 대한 일본 교육계의 관심은 "경쟁 없는 교육이 높은 성취도를 거두는 이유"에 맞춰져 있다.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괴로움을 참고 견뎌야하며, 이 과정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일본 사회 주류의 오랜 통념과 배치되는 사례인 까닭이다.

물론, 핀란드 교육에 관심을 기울인 게 일본만은 아니다. PISA 결과가 나온 뒤, 핀란드 정부에 '1등의 비결'을 묻는 세계 언론의 취재 요청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11가지 교육 원칙을 공통 답변으로 발표했다. 내용은 이렇다.

1. 가정, 성별, 경제 상황, 모국어와 관계없이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할 것.

2. 지역에 관계없이 교육 활동이 가능할 것.

3. 성별에 따른 분리와 차별을 부정할 것.

4.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할 것.

5. 종합제 학교 운영을 통해, '선별하지 않는 기초 교육'을 실시할 것. (특정 기준에 따라 골라낸 아이들만으로 채워진 학교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 평준화 교육을 옹호하는 입장인 셈이다.)

6. 전체적인 틀은 중앙에서 조정하지만 각 지역의 실정에 맞게 실행할 것. 교육행정은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입장에 서서 유연하게 이뤄져야 함.

7. 모든 교육단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협동하여 활동할 것. (윗 학년과 아래 학년, 초등교육과정과 중등교육과정 사이에 긴밀한 연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

8. 학생의 학습과 복지에 대해 개인의 특성에 맞게 지원할 것.

9. 시험과 성적에 의한 등수 제도를 없애고, 학생의 발달 시점에 맞춰서 학생을 평가할 것.

10. 교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

11.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른 학습 개념을 도입할 것.

협동을 통한 개념 형성…'사회적 구성주의'에 바탕을 둔 수업 설계  

이들 11가지 원칙 가운데 후쿠타 세이치 교수가 특히 주목한 것은 마지막 원칙이다. 핀란드 학생들이 "경쟁하지 않아도 세계 제일" 학력을 갖게 된 결정적 요인이 '사회적 구성주의'에 바탕을 둔 교육방식이라는 것.

'사회적 구성주의'가 뭘까. 교육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구성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구성주의에 대해 알아야 한다. 구성주의에 따르면, 지식은 교사의 머릿속에서 학생의 머릿속으로 복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식은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완벽하게 객관적인 지식은 없다. 이렇게 보면, '사실(fact)'이 하나여도, '지식'은 학습자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을 놓고 지식을 구성하는 작업은 혼자 진행할 수 없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 속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더구나 모든 지식은 사회적 '맥락(context)' 속에서만 고유한 의미를 띤다. 얼핏 사회와 동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자연과학 지식조차 이런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생각이 구성주의 위로 겹치면서 나온 개념이 '사회적 구성주의'다.

협동을 통해 학생들이 개념을 형성하는 핀란드식 수업 방식은 철저하게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라 설계돼 있다. 핀란드 교육당국자들은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른 수업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고양한다고 믿는다. 교사가 객관적인 지식을 학생에게 전수한다는 발상에 바탕을 둔 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미 나와 있는 모범답안을 모방하도록 유도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교육에서 경쟁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 애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치열한 경쟁은 모방하는 능력을 키우는데는 유리하지만, 창조성을 소모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기르려면, 경쟁보다 협동을 장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교육 당국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고도로 철학적인 개념인데, 핀란드 교사들이 이런 개념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후쿠타 세이치 교수가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이르멜 하리넨 보통교육국장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르멜 하리넨 국장은 "그렇다. 핀란드에서는 모든 교사들이 '사회적 구성주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런 대답이 과장된 것인지, 실제에 정확하게 부합하는지 여부는 확인하기 힘들다.

다만, 핀란드 학교에서 교사에 따라 수업 내용이 다른 경우가 흔하다는 점은 사실이다. 지식은 학생이 스스로 구성해가는 것이므로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수업 방식도 드물다. 대개의 수업이 팀 단위로 진행된다. 평가 역시 팀 단위로 이뤄진다. 그래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학생과 경쟁하며, 자기 점수만 챙기는 학생은 나타나기 어렵다. 한 교실 안에 있는 팀들이 각기 다른 내용을 익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교실 안에서 획일적인 척도에 따른 경쟁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진도의 압박"이 없다…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

그런데 구성주의, 사회적 구성주의 등은 한국 교육계에 낯선 표현이 아니다. 현행 7차 교육과정이 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학생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7차 교육과정의 취지가 실제 수업에서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국 교사들은 구성주의, 혹은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라 수업을 하기 힘든 이유로 "진도의 압박"을 꼽는 경우가 많다. 학생의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교사가 같은 속도로 교과 진도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개념을 형성하도록 할 만한 여유를 갖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핀란드 학교에서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른 수업이 잘 진행될 수 있는 이유 한 가지가 드러난다. 핀란드에서는 개별 교사가 사실상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도록 돼 있다. 국가는 큰 틀에서 개별 교과교육의 목표를 정할 따름이다. 이런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어떤 교재를 택해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칠지 여부는 전적으로 개별 교사에게 맡겨져 있다. 교사마다 수업 내용과 진도가 다를 수 있는 배경이다.

'표준'은 경계 대상이다…등수 매기는 시험은 없다 

학생들이 교사에 따라 다른 내용을 익히고 있으므로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통 평가도 불가능하다. 또 학력에 대한 표준을 정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표준(Standard)'이라는 낱말은 핀란드 교육에서 경계 대상으로 여겨진다. 모든 학생이 따라야 할 표준이 없으니, 개별 학생이 표준에 얼마나 다가갔는지 측정하기 위한 시험도 없다.

핀란드 학생들은 종합학교(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친 과정)을 졸업하는 16세가 돼서야 첫 시험을 치른다. 종합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남과 비교하는 시험을 겪지 않는다. 두 번째 시험은 인문고등학교 3학년 때 치르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이다.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것은 핀란드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웨덴 등 북유럽 교육이 대부분 이런 특징을 띠고 있다. 안승문 스웨덴 웁살라 대학 객원연구원이 겪은 사례에서도 이런 특징이 드러난다.

한 주제를 파고들면서, 탐구하는 법을 익힌다

안 연구원의 딸은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다 웁살라에 있는 종합학교로 전학했다. 딸은 지금 학교에서 받는 역사 수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학기 내내 '로마'만 다뤘다고 했다. 로마 역사에서 주제를 정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업을 학기 내내 했다는 것.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이런 식의 수업이 흔하다. 대학 강의처럼 한 가지 주제만 다루는 이런 식의 수업은 교과 내용 전체에 대해 고르게 시간을 안배하는 한국 수업과 많이 다르다.    학기 내내 한 가지 주제만 다루면, 학생들이 고른 지식을 갖추기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 실제로, 학생들은 천차만별의 지식을 갖게 된다. 어떤 학생은 로마 역사에 정통한 반면, 프랑스 혁명사에 대해서는 백지에 가깝다. 다른 교사와 함께 수업한 학생은 1차 세계대전에 대해 해박하지만, 고대 그리스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니까,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문제를 풀도록 요구하는 게 무의미해진다.

이런 식의 교육이 가능한 배경에는 단편적인 지식을 고르게 습득하는 것 자체는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있다. 오히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면서, 지식의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지식 자체보다 탐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주제에 대해 폭넓은 자료를 수집해서 고유한 시각으로 엮어낸 경험은 다른 주제를 탐구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고른 지식을 쌓기보다 깊은 통찰력을 키운다

그리고 한 학기 내내 '로마'를 주제로 보고서를 쓴다면,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다. 또 특정 시기에 명멸한 숱한 인간 군상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로마'라는 프리즘으로 인간과 사회의 보편적 특징을 살피는 것. 이 정도면 역사 수업의 목표로 충분하다는 게 북유럽 교사들의 생각이다. 모든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지식의 범위는 매우 좁게 설정돼 있다.

학생들이 단편적인 지식을 외우기보다 개념을 깊이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수학 수업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수학 시간에 학생들이 각각 다른 문제를 풀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복잡한 응용문제를 모든 학생이 풀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관심 있는 학생만 풀면 된다.

대신, 교사는 모든 학생이 방정식, 함수 등 추상적인 개념을 깊이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문제 풀이는 이런 개념이 구체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소개하는 절차일 뿐이다. 수학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도 문제만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내면 높은 평가를 받도록 돼 있는 한국, 일본 등과 다르다.

교사는 전문직…자율성에 걸맞은 책임감을 요구받는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교사에게 높은 자율성을 보장하는 북유럽 식 교육이 실효를 거두려면,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문제 풀이 요령을 가르치는 수준이라면,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 없다. 하지만 개념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하려면, 교사의 실력이 중요하다.

또 교사가 자율적으로 수업 내용과 교재를 정하도록 돼 있는 상황을 게으른 교사가 악용할 수도 있다. 교육 내용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교사가 학생들이 왜곡된 개념을 익히도록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위험에 대해 북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뚜렷한 답은 없다.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믿을 따름이라고 한다. 이런 경향은 핀란드에서 더욱 뚜렷하다.

핀란드에서는 교사가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모든 교사가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다. 교직의 사회적 위상도 높다. 안승문 연구원은 핀란드에서 초중등 교사는 한국에서의 대학 교수와 비슷한 위상을 누린다고 전했다. 그래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을 꼽을 때면 교사가 늘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급여 수준은 높지 않다. 사회적 평균 임금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핀란드 교사들은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주당 35~40시간쯤 일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부대끼다보면, 갑작스럽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노동시간이 확 늘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휴가일수는 다른 직업과 비슷하다.

반면, 정신적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핀란드 교육 전문지 <오뻬따야(Opettaja)> 보도에 따르면, 2005년 핀란드 교사 5명 중 1명이, 교장 3명 중 1명이 학부모들로부터 심한 정신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핀란드 학부모들은 교사의 전문성을 신뢰하면서도, 사소한 권리 침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특징이 한편으로는 교사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핀란드에서 교직이 왜 인기가 있을까. '안정적인 직업'이어서? 그렇지 않다. 북유럽 사회는 노동조합이 강력하고, 복지가 잘 돼 있는 편이어서 무슨 일을 하건 고용 불안을 심하게 느끼지 않는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도 교사, 공무원과 비슷한 안정성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안정성'이 직업 선택의 기준이 되는 일은 드물다.

"가르치는 즐거움, 협동 속에서 싹 튼다"

핀란드 학생들은 교직을 택하면서 "재미있는 일"이라는 이유를 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핀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 전공이 예능 계열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일의 즐거움'은 직업이나 전공을 택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교사가 되려는 이들은 보통 "어릴 때부터 남을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라고 이야기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대부분의 수업이 협동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보다 조금 먼저 개념을 터득한 학생은 동료들을 돕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보면, 이런 역할을 즐기는 학생들이 나온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이 먼저 터득한 개념을 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법을 늘 궁리한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주로 교육학 계열을 택한다.

동료들과 가장 잘 협동하는 학생이 교사가 돼서 다시 협동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런 순환이 이뤄지는 한, 핀란드식 교육을 향해 쏟아지는 "경쟁하지 않아도 세계 제일"이라는 찬사는 시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우학교 6년을 마치며

이우학교 6년을 마치며

 

“요즘 느끼는 건데 절 ‘이우’라는 곳에 보내(준 용기-두 줄로 지워진 부분임)주기 위해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결이가 지난 해 크리스마스 때 카드에 적어 보내 온 글입니다.

결이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왜 엄마 아빠가 ‘갈등’했을 거라고 생각하냐고.

결이가 졸업할 때까지는 그냥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결이가 지금 이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판단과 느낌을.

물론 궁금합니다.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지.

그래서 졸업하는 날에 결이에게 물어 볼 생각입니다. ‘이우 학교, 어땠냐?’고.

아마 결이가 졸업하면서 느끼고 판단한 만큼, 꼭 그만큼 이우에서의 6년은 의미를 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우학교를 보낼 때, 무슨 대단한 ‘용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딜레마와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6년 전에 결이를 이우학교에 보낼 즈음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짧은 머리’를 강요했던 지난 세대의 억압에 맞서 소위 ‘민주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싸운 수십 년간의 노력의 결과, 엄마 아빠의 세대는 자녀들에게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개성’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과 물질적인 조건을 열어 주었지만, 동시에 그 ‘자유로운 개성’이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의 틀 속에서 경쟁의 승자와 패자로 나뉠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 또한 남겨주었다.

그래서 아빠인 나는 갈등한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신자유주의적 경쟁’에서 우리 애들이 패배하지 않도록 공부할 것을 부추긴다. 두 아이가 ‘자유로운 개성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할 것을 바라면서도, 현실의 경쟁에서 뒤쳐지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진다.

머리를 빡빡 깎고 싶다는 결이에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윽박지른 것은 ‘빡빡 머리’에 대한 나의 ‘감성적 반감’도 있었지만, 동시에 이 신자유주의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지 말고, 공부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초조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소박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결이‘들’이 시험 성적에 의해 평가되거나 재단되지 않길 바랐습니다.

경쟁 논리보다 공동체 속에서 서로 존중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습니다.

무엇보다 결이‘들’이 가지고 있는 소질과 개성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길 원했습니다.

‘대안’학교 자체에 대한 여러 논란이나 그 실험의 성공 가능성, 그리고 결이‘들’이 그 실험의 첫 대상일 수 있다는 점 등 초창기의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우는 의미있는 하나의 시도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결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06년 5월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고1이 돼서야 간신히 마련한 핸드폰으로 문자메세지를 보내왔습니다.

 

“아빠 나 머리 좀 튀게 자를께” / “어떻게?”

“음 닭머리, ㅋㅋㅋ”,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 / “너무 튀지 않겠니?”

“음 그걸 노린건데 ㅜㅜ 해도 괜찮지?” / “니가 감당할 수 있겠니? 알아서 결정해라”

“나 닭머리 결심했어”

 

영국 축구 선수인 베컴의 닭머리를 생각했는데, 웬걸 결이는 그날 저녘에 가운데 머리털만 남기고 나머지를 다 밀어버린 ‘스킨해드’를 해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다.

당황 --- 분노(?) ---

그래서 결이를 붙들고 협박(?)했습니다. “스킨해드는 안된다. 스킨해드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이건 개성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스킨해드족과 한 집에 같이 살 수 없다. 니가 아무리 니 마음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결국 그렇게 비춰질 수 밖에 없다 --- 운운.”

결국 결이를 끌고 이발소로 데려가 머리를 빡빡 밀게 했습니다.

간신히 한 고비를 넘겨 안심하던 중, 열흘 뒤에 다시 결이로부터 문자메세지가 왔습니다.

 

“아빠 나 축구공 스크래치해도 돼?” / “축구공 스크래치가 뭔데?”

“음 그냥 해보고 싶은건데 머리에 축구공 모양으로 파는거야” / (심각한 고민 끝에) “결아, 네 개성이 꼭 머리로만 나타나야 하는 거니? 다른 것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없니?”

“음 나도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볼께” / “그래”

 

드디어 설득시켜 냈다고 안심하던 중, 다시 열흘 뒤 --- 문자메세지로 최후 통첩!

 

“아빠 저 오늘 머리 자를께요. 돈은 그냥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거니까 용돈으로 할께요”

 

그날 축구공 스크래치한 결이의 머리를 보며, 화를 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억지로 잘했다고 할 수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냥 무시해서 지나쳤는데 ---

다음 날 결이 엄마로부터 전해들은 결의의 한마디 ‘결정타’ 때문에 하루종일 넋을 잃고(?)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는 내가 곰곰이 생각한 결론이 꼭 아빠의 생각대로 되야한다고 생각하나봐”

 

이렇게 결이는 한 ‘인간’으로 커갔습니다.

물론 6년간 머리를 길렀다 밀었다 변화무쌍했지만, 그 내면은 아빠에게 ‘결정타’를 날릴만큼 쑥쑥 자랐습니다.

엄마 아빠는 결이 ‘속’에서 이우를 언뜻 보았고 느꼈습니다.

 

***

 

“아빠, 내가 잘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작년, 그러니까 결이가 고2 때 가을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급히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해서 밤늦게 들어 온 내게 결이가 뜬금없이 한 얘기였습니다. 얘기인즉슨, 1여 년간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온갖 열정을 쏟아 붓다가, 진로를 바꾼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은 노래와 연기를 잘 하고 싶어서 였는데, 잘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고민한 결과 과학을 잘 할 수 있고, 그래서 문과에서 이과로 바꾼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뮤지컬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은근히 부담이 됐었습니다.

그래도 본인이 원한다면 그러라고 했었습니다.

1년간 온갖 노력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스스로 방향을 고쳐 잡았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했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 결정 때문에 지금 ‘고생’하고 있지만, 판단이 또 달라질 수 있지만, 자신이 스스로 내린 선택과 결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 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우에서 결이가 얻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빠, 요즘 많이 헷갈린다. 나는 시간을 가지고 집중해서 문제를 푸는 게 내게 맞는 것 같은데, 수능은 잘 안맞는 것 같아.”

 

며칠 전, 개학을 앞두고 결이를 다시 학교 앞 자취방으로 데려다 줄 때 자동차 안에서 결이가 토로한 고민이었습니다.

“앞으로 80여일 밖에 안남았으니까, 그 때까지만 참고 일단 수능 준비에 전념해 봐. 대학에 들어가면 네가 하는 공부 방식이 커다란 장점이 될 거다”고 조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 친구가 촛불집회에 같이 가지고 했는데, 가고 싶었는데 --- 안갔어. 한 번 가면 촛불집회에 계속 빠져버릴 것 같아서.”

 

“그러냐. ---” 그 날 차 안에서 저는 결이에게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이를 자취방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면서,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난 6년간 결이는 저렇게 자랐는데, 우리는 여전히 ‘원점’에 있구나.

엄마 아빠의 딜레마와 불안도, 우리의 교육 현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구나.

그래도 졸업하는 날, 아니 수능이 끝나는 날, 수능 결과에 관계없이 결이에게 이렇게 물어 볼 생각입니다.

“이우 학교 6년간, 행복했냐?”

 

***

 

(꼭 드리고 싶은 얘기)

이우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님들 그간 고마웠습니다. 사실 지난 6년간 저의 가족이 학교일이라고는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무임승차한 기분입니다. 그래도 선생님과 여러 학부모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6년간 무사히 학교를 마치게 됐네요. 그래서 ‘학교에 대해’ 편지를 쓰라고 했는데, ‘결이’ 얘기밖에 쓸 수 없었습니다. 여러 어려움과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저희는 졸업하는 날 결의로부터 이런 답변을 들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6년간 행복했다”고.

 

2008.08.27.

3학년 박결 엄마 유영란, 아빠 박성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결정타!!! (2006.6.22.)

결정타!!!

 

 

40여일 전, 이우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큰 애한테서 문자메세지가 왔다.

"아빠 나 머리 좀 튀게 자를께" / "어떻게?"

"음 닭머리, ㅋㅋㅋ",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 / "너무 튀지 않겠니?"

"음 그걸 노린건데 ㅜㅜ 해도 괜찮지?" / "니가 감당할 수 있겠니? 알아서 결정해라"

"나 닭머리 결심했어"

영국 축구 선수인 베컴의 닭머리를 생각했는데, 웬걸 결이는 그날 저녘에 가운데 머리털만 남기고 나머지를 다 밀어버린 '스킨해드'를 해서 집으로 들어왔다. 당황 --- 분노(?) ---

결이를 붙들고 협박(?) --- "스킨해드는 안된다. 스킨해드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이건 개성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스킨해드족과 한 집에 같이 살 수 없다. 니가 아무리 니 마음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결국 그렇게 비춰질 수 밖에 없다. --- 운운"

결국 결이를 끌고 이발소로 데려가 머리를 빡빡 밀게했다.

 

간신히 한 고비를 넘겨 안심하던 중, 열흘 뒤에 다시 결이로부터 문자 메세지가 왔다.

"아빠 나 축구공 스크래치해도 돼?" / "축구공 스크래치가 뭔데?"

"음 그냥 해보고 싶은건데 머리에 축구공 모양으로 파는거야" / (심각한 고민 끝에) "결아, 네 개성이 꼭 머리로만 나타나야 하는거니? 다른 것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없니?"

"음 나도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볼께" / "그래"

 

드디어 설득시켜 냈다고 안심하던 중, 다시 열흘 뒤 --- 문자메세지로 최후 통첩!

"아빠 저 오늘 머리 자를께요. 돈은 그냥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거니까 용돈으로 할께요"

그날 축구공 스크래치한 결이의 머리를 보며, 화를 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억지로 잘했다고 할 수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냥 무시해서 지나쳤는데 ---

다음 날 결이 엄마로부터 전해들은 결의의 한마디 때문에 하루종일 넋을 잃고(?)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아빠는 내가 곰곰히 생각한 결론이 꼭 아빠의 생각대로 되야한다고 생각하나봐"

 

2006.06.22.

관악산 밑자락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두 아이를 둔 아빠의 선택(2003)

두 아이를 둔 아빠의 선택

 

 

빡빡머리

 

“아빠, 나 머리 빡빡 밀어도 돼?”

몇 달 전, 초등학교 졸업을 앞 둔 큰 애가 뜬금없이 내게 물어왔다. 기가 막히기도 하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물었다.

“왜?, 튀고 싶어서?”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

이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즉각 “쓸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윽박질렀다. 평소 가져왔던 “아이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이성적인 교육관’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빡빡 머리’에 대한 ‘감성적 반감’이 느닷없이 먼저 튀어나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지금 곰곰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빡빡 머리’에서 첫 애의 ‘자유로운 개성’을 본 것이 아니라, 내가 자라 온 지난 수십년 간 나를 억압했던 ‘군부독재의 망령’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40대 중반에 든 지금까지 한번도 머리를 길게 길러보지 못했다. 60년대 국민학교 때에는 강제된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의 가난 자체가 머리를 짧게 깎도록 했고, 70년대 중고등학교 때에는 무조건 머리를 ‘이부’로 깎아야만 했다. 이어 70년대 말에 대학교에 들어가서 머리를 길러보려다 곧장 군대에 가게 되어, 다시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깎아야 했다. 제대한 후 노동운동을 한다고 들어간 80년대 노동현장에서도, 두 차례에 걸친 투옥으로 신세진 4년간의 징역에서도, 나의 머리는 항상 ‘통제’의 대상이 되어. 짧게 깍여야 했다.

그래서 30대인 90년대까지, 나의 ‘민주주의’에 대한 바램은 “언제가 머리를 길게 길러보리라”는 문화적(?) 욕구와 얽혀 나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 꿈을 끝내 이뤄내지 못했다. 그것은 군부독재시절과 같은 억압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짧은 머리에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왜 머리를 빡빡밀면 안돼?”라고 불만스럽게 재차 묻는 첫 애에게, 아빠의 이런 속사정을 장황하게 이야기 해 줄 수는 없었다. “그냥 안돼”라는 나의 답변에, “알았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돌아서는 첫 애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자유로운 개성’조차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세대의 ‘역사적인 잔재’가 다시 나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음을 느꼈다.

 

졸업식장에서

 

“이제 여러분이 ‘신자유주의적인 경쟁의 시대’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

한겨울 추위가 여전한 2월 중순의 어느 날, 첫 애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두 발을 동동거리며 지리한 졸업식 행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나는, 학교 교장의 ‘훈시’를 흘려 듣다가 갑자기 두 귀와 뒷머리를 곤두세우게 됐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라는 대목 때문이었다. 주위가 소란해서 그 이후 ‘훈시’를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을 갖춰나가야 한다”는 요지의 ‘훈시’였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이라는 뜻을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에 두 귀와 뒷머리가 곤두 선 것은 아니었다. ‘자유로운 개성’을 추구하면서 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교장의 훈시처럼 ‘신자유주의적인 무한 경쟁의 바다’로 내던져저서, 오직 그 ‘경쟁’에서 이길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뼈 속 깊숙이 새겨 넣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 나의 뒷머리를 한없이 곤두서게 했다.

그날 첫 애의 졸업식 이후, 후배와 함께 한 어느 술자리에서 이런 느낌을 이야기했다가 “뭘 새삼스럽게 이제야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면박만 받았다. 요새는 과거와 달리 성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4~5학년 때 이미 판가름이 다 난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져 왔던 교육에서의 양극화는 이미 구조화되었고, 그것도 초등학교 시절에 승부가 결정난다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이라는 대세’가 이미 초등학교 학생들의 미래까지를 규정하는 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초등학생을 둘이나 둔 아빠인 나는 새삼스럽게 망연자실해졌다. 이 ‘신자유주의적 경쟁’에서 내 아이를 ‘승자’로 키울 것이냐, ‘패자’로 키울 것이냐의 양자택일이 나의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짧은 머리’를 강요했던 지난 세대의 억압에 맞서 소위 ‘민주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투쟁한 수십년 간의 투쟁의 결과, 아빠의 세대는 자녀들에게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개성’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과 물질적인 조건을 열어 주었지만, 동시에 그 ‘자유로운 개성’이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의 틀 속에서 경쟁의 승자와 패자로 나뉠 수 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 또한 남겨주었다.

그래서 아빠인 나는 갈등한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위해 투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신자유주의적 경쟁’에서 우리 애들이 패배하지 않도록 공부할 것을 부추긴다. 두 아이가 ‘자유로운 개성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할 것을 바라면서도, 현실의 경쟁에서 뒤쳐지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진다.

머리를 빡빡 깍고 싶다는 첫 애에게 “쓸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윽박지른 것은 나의 ‘빡빡 머리’에 대한 ‘감성적 반감’도 있었지만, 동시에 이 신자유주의적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쓸데 없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지 말고, 공부를 통해 경쟁력을 키원야 한다는 초조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빠의 결단과 선택

 

이런 딜레마와 불안은 나만의 고민은 아닌 것 같다.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둔 현장의 많은 ‘전투적인 활동가’들 역시 이런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을 위해, 나아가 고용불안을 항상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맞서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전투적으로 전개하는 현장활동가들도 자기 자식들은 학교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성적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감당할 수 없는 사교육비조차 아낌없이 투자한다고 한다.

현장에서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이 고스란히 자녀들의 신자유주의적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밑걸음으로 투자되는 모순된 현실, 이런 모순된 현실의 쳇바퀴를 벗어날 수는 없는가?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두 아이를 둔 아빠로서 내가 결단하고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실천이다.

 

하나는 두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시험성적에 의해 아이들을 판단하지 않고, 경쟁 논리보다 공동체 속에서의 상호 협력을 중요시 여기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소질과 개성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교육하는 ‘대안학교’에 두 아이를 보내는 것이다. ‘대안학교’운동 자체에 대한 여러 논란, 그 실험의 성공 가능성 여부 등 아직 초창기의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이 딜레마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시도’일 수 있는 판단에서 결단을 했다. 만약 이러한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진다면 소위 ‘공교육의 정상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다른 하나는 활동가로서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혁․교육 개방’에 맞선 투쟁을 해 나가는 것이다. 올해 3월, 한국 정부는 2001년의 WTO 뉴라운드의 계획에 따라 교육 부문에 대한 개방 계획을 확정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교육 개방을 위해 그 간 정부는 4대 입법을 추진해 왔는데, “무자격 외국인도 외국어 교사로 임명할 수 있는 ‘교육공무원법개정(안)’, 학교의 기업화를 더욱 빨리 촉진시키려는 ‘산업교육진흥법(안)’, 국공립대 사유화를 밀어부치는 ‘국립대특별법(안)’, 외국인 학교를 제한없이 허용하여 귀족학교-평민학교를 공공연하게 서열화하려는 ‘경제자유구역법’”(노동자의 힘 정치토론자료(2) [3월 WTO-교육개방 저지투쟁, 노동자계급이 나서야 한다] 가운데서) 등이 그것이다.

만약 교육 개방이 WTO의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교육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교육의 상품화와 양극화로 인한 교육 비용 증대의 고통은 더욱 우리 노동자들의 삶을 압박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애들의 운명은 이제 초등학교가 아니라 유치원 때부터 구조적으로 결정될 지도 모른다.

교육부문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개방은 노동자들의 현실에서의 삶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인 우리 아이들의 삶의 전망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개혁과 개방에 맞선 투쟁은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대안 사회’의 건설을 위한 투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과거 ‘민주화투쟁’ 시기에 짧은 머리를 강요하는 억압에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그 짧은 머리에 익숙해져 버리는 어리석음을 다시 범하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개성’을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아이들이 욕구가 ‘새로운 대안공동체’ 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40대 중반의 아빠가 다시 디딤돌을 놓아 나가야겠다.

 

2003.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