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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9일은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인 '아버지의 발화점'(정창준)이 용산 참사를 소재로 하고 있어 소개합니다.
아버지의 발화점
정창준 / 2011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바람은 언제나 삶의 가장 허름한 부위를 파고 들었고 그래서 우리
의 세입은 더 부끄러웠다. 종일 담배 냄세를 묻히고 돌아다니다 귀
가한 아버지의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여름 밤의 잠은 퉁퉁 불
은 소면처럼 툭툭 끊어졌고 물묻은 몸은 울음의 부피만 서서히 불
리고 있었다.
올해도 김장을 해야 할까.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에요. 배추값이
오를 것 같은데. 대학이 다는 아니잖아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라
도 하면 생계는 문제 없을 거예요. 그나저나 갈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제길, 두통약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루함이 죄였다. 아름답게 태어나지 못한 것, 아름답게 성형하지
못한 것이 죄였다. 이미 골목은 불안한 공기로 구석구석이 짓이겨
져 있었다. 우리들의 창백한 목소리는 이미 결박 당해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낮은 곳에 있던 자가 망루에 오를 때는 낮은 곳마저 빼앗
겼을 때다.
우리의 집은 거미집보다 더 가늘고 위태로워요. 거미집도 때
가 되면 바람에 헐리지 않니. 그래요. 거미 역시 동의한 적이
없지요. 차라리 무거워도 달팽이처럼 이고 다닐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아니 집이란 것이 아예 없었으면. 우리의 아파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고층 아파트는 떨어질 때나 유용한
거예요. 그나저나 누가 이처럼 쉽게 헐려 버릴 집을 지은 걸까
요.
알아요. 저 모든 것들은 우리를 소각(燒却)하고 밀어내기 위한 거
라는 걸. 네 아버지는 아닐 거다. 네 아버지의 젖은 몸이 탈 수는
없을 테니. 네 아버지는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다. 어머니, 아버지
는 횃불처럼 기름에 스스로를 적시며 살아오셨던 거예요. 아 휘발
성(揮發性)의 아버지, 집을 지키기 위한 단 한 번 발화(發火).
* 조세희 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화법을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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