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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비판’과 ‘계급적 선택’(2004.07.07.)

‘도덕적 비판’과 ‘계급적 선택’

 

‘도덕적 비판’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2004년 임금협상을 위한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6월 말,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고소득 노동자의 임금인상 자제를 통해 노노간 임금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비정규직 해결방안(?)을 제출했다.

당연히 시의적절하게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해 줬다.

지난 6월 10일에는, 144명의 사회원로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동결과 삭감을 요구”하면서, “대기업 노조의 이기심”에 대해 “도덕적인 비판”을 가했다.

5월말 청와대 노사정 간담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대기업 노조들이 중소기업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현대차 노조를 질타(?)한 지 얼마 안되서의 일이다.

“노동계의 정규직 지상주의는 노동시장 왜곡과 고용시장 악화를 초래할 뿐”이고, “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조건 양보와 경영계의 노력을 통해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현실적인 해결책 마련”에 노동계가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경제5단체가 강변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두 달 전인 5월 초의 일이다.

 

이로서 지난 몇 달에 걸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도덕적 해법(?)’은 완성됐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자제와 노동유연화의 전면화’가 그것이다.

정부와 재계와 보수언론이 주도하고, 사회원로와 노총의 지도부가 들러리를 서면서,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지고 있다.

비정규직 해결의 공은 이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넘겨졌다.

정규직 이기주의를 넘어 선 ‘도덕적 선택’의 문제로 됐다.

 

‘계급적 선택’

 

도덕적 선택을 강요하는 거대한 공세 앞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도덕적으로” 혼란스러워 하고 동요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공헌 기금’을 제안하기도 하고, 비정규직을 대리한 임금협상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혼란과 동요는 위로부터의 위선적인 ‘도덕적 비판’과 아래로부터 비정규직의 ‘계급적 비판’이라는 이중의 공세에 더욱 빠지게 할 뿐이다.

이런 혼란과 동요가 지속될수록,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 바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그 자체라는 점은 은폐된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이 상대적인 고임금일 뿐이고, 사실은 잔업특근 등 장시간 노동과 근골격계로 대표되는 노동강도 강화의 결과라는 점은 가려진다.

 

‘도덕적 비판’ 앞에서 동요할수록 계급적 현실은 은폐된다.

계급적 현실이 은폐될수록, 노노간 대립이 더욱 부각되고, 정규직 노동자는 더욱 고립되며, 비정규직 문제해결은 지연된다.

정규직 노동자는 이러한 계급적 현실을 은폐하는 사슬을 끊어야 한다.

그 출발은 먼저 잔업특근과 노동강도 강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실노동시간을 단축하여 ‘법정노동시간’으로도 ‘생활임금’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출발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일상적으로 연대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존재가 정규직 고용안정의 안전판”이라는, 강요된 현실을 계급적 단결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실천이 지금 시기 민주노조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다.

 

2004.07.07.

[현자노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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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 ‘유연화’, ‘개혁’, 그리고 ‘사회적 합의’(2004.06.07.)

‘안정’, ‘유연화’, ‘개혁’, 그리고 ‘사회적 합의’

 

‘임금안정’

 

‘안정’이란 말이 있다.

그 자체로는 좋은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이 단어를 ‘임금’이란 말과 연결하면, 즉 ‘임금 안정’은 곧 임금을 동결하거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뜻이 된다.

그래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일단 ‘안정’을 해치는 것이 된다.

지난 2월 노사정위원회가 추진했던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에서는 “향후 경영계가 인위적인 고용조정을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 노동계는 “2년간 임금안정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 표현을 사실 그대로 “임금을 동결”하거나 “임금인상을 자제하기로 했다”고 바꿔 보자.

합의의 결과로 생길 대중적 분노를 미리 거세해 버린 느낌이 들지 않는가?

 

‘노동유연화’

 

‘노동 유연화’라는 말도 지난 10여 년간 익숙하게 듣던 말이다.

1990년대 초반에 소위 ‘신경영전략’이 일반화되면서 알려진 용어다.

‘유연화’! 얼마나 부드러운 표현인가?

그러나 이 부드러운 표현도 ‘노동’과 결합하면 으시으시해 진다.

‘노동유연화’!, 곧 기업가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노동자를 해고시킬 수 있고, 필요한 시간에 언제든지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노동시장의 유연화’라고 고상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유연화’에 노동자들이 저항한다면, 그 노동자들은 해고로 인한 삶의 고통에 항변하기도 전에, 노동시장을 ‘경직화’시켜 국가의 경제발전과 회사의 발전을 저해하는 자로 찍히게 된다.

 

‘노사관계 개혁’

 

‘개혁’이라는 말도 그렇다.

현실을 바꾼다는 뜻이다.

만약 그 현실이 부당하다면, 그래서 지켜야만 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그 현실을 ‘개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개혁’이 ‘노사관계 개혁’으로 되면, 바꿔야 할 내용과 대상이 전혀 엉뚱해져 버린다.

노무현 정권이 ‘선진노사관계 로드맵(단계별 일정표)’이라는 것을 만들어 노사관계를 선진적 수준 국제적 수준으로 개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개혁’한다는 것이 다름 아니라, 정리해고와 변형근로, 그리고 파견근로를 기업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장하겠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개혁되어야 할 대상은 이러한 정리해고나 파견근로에 저항하는 노동자나 민주노조가 되고, 이들은 ‘반개혁 세력’이 된다.

게다가 IMF 외환위기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로 양산된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고용 경직성’ 때문이고, 따라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정규직이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하지 못한 결과, 이러한 여론 공세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

 

노무현 정권 2기 들어, ‘사회적 합의’가 위로부터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6월 4일에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만들어져서 ‘노사정위원회 기구 개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추진될 내용은 ‘임금안정’, ‘노동유연화’의 제도화, 그리고 그를 통한 ‘노사관계의 개혁’이 될 것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용어에 현혹되지 않고 ‘임금억제’와 ‘정리해고’, 그리고 ‘비정규직의 제도화’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적 단결’ 뿐이다.

 

2004.06.07.

[현자노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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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들의 촛불시위를 보며(2005.05.11.)

‘경쟁위주의 입시정책 반대, 내신등급제 상대평가 반대’ 촛불시위를 보며

 

지난 5월 7일, 내신등급제와 상대평가제를 반대하는 고등학생들의 촛불시위로 언론이 떠들썩할 때, 필자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이었다.

촛불시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교육청 관계자 및 학교교사 760명이 동원되고, 100개 중대 1만여 명의 경찰 동원되어 결국 전국적인 시위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400여명의 고등학생들만이 광화문에 모여 ‘입시 경쟁 교육에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촛불 추모제’를 치렀지만, 그들의 이 사회와 어른들과 교육정책을 향한 절규와 울부짖음에는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때 이 땅의 천만노동자들이 외쳤던 절규와 울부짖음이 그대로 베어 있었다.

 

그것은 철부지들의 투정이 아니라, 한마디로 학생들의 ‘인간 선언’이었다.

그들이 “학생들은 돼지처럼 학교라는 우리에 갇혀서 시험이라는 것에 사육돼, 등급에 따라 백화점(일류대학)과 정육점(이삼류대학)으로 간다”고 외쳤을 때, 학교나 학원에 수감되어 격리되어 경쟁을 강요받는 생활이 강제수용소처럼 느껴져 “친구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곳이 학교가 되었고, 이건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87년 당시 병영 같은 공장의 현실을 폭로하고,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들이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이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춰 살지 않겠다”고 주장했을 때, 공장의 진정한 주인은 노동자이고,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민주노조를 건설해야 한다던 87년의 노동자들의 뜨거운 바램과 열망을 다시 보는 듯 했다.

 

그들은 이 땅의 교육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내신등급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서열화의 입시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가 공고한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살인적인 대학입시경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한나라당이나 일부 보수언론들이 학생들의 주장을 빌미로 ‘고교등급제의 적용과 ‘본고사 부활’의 흐름으로 연계시키려는 정략적인 시도가 한심하고 치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올 들어 벌써 20여명의 학생들이 성적을 비관하며 자살한 것은 ‘개인적인 자살’이 아니라고, 그것은 “학생들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불신하게 하고, 학생들끼리 무한 경쟁으로 치고 받으라는 식의 입시제도”때문이라고, 그래서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내용에 바보같이 억눌려온 시대의 종말을 선포하기 위해 우리가 모인 것”이라고 그들이 선언했을 때, 그들은 이미 ‘교육의 한 주체’로 우뚝 선 것이었다.

 

우리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어른’이고자 한다면,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이 땅의 교육 현실을 헤쳐 나갈 한 주체로 인정하고, 나아가 논술이든, 내신이든, 수능이든 어느 하나 놓칠 수 없어 결국 3,4중고에 처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경쟁 위주의 신자유주의적 입시정책’과 ‘대학 서열화’, 그리고 ‘학벌주의’에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

더 이상 그들만의 외로운 ‘촛불시위’가 되어서는 안된다.

 

2005.05.11.

[현자노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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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낙엽족’과 ‘캥거루족’(2004.09.08.)

‘젖은 낙엽족’과 ‘캥거루족’

 

“일에 쫓겨 이렇다할 취미도 노년에 대한 설계와 준비도 없이 퇴직을 맞아, 일상생활에서 자립하지도 못하고 부인에게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하는” 남성 노인을 가리켜 ‘젖은 낙엽족’이라고 한다.

“마치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듯 부인을 24시간 졸졸 따라다니며 한사코 붙어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도쿄대학 여교수가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한국 사회도 이미 2000년에 65세 이상의 노인인구 비율이 7%가 넘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이러한 ‘젖은 낙엽족’ 현상이 이제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젖은 낙엽족’은 “아침 일찍 출근해 매일 밤 회식하고, 휴일엔 안방에서 뒹구는 생활을 수십년간 해 온 직장인” 출신이 많고, 질병, 고독감, 경제적 빈곤, 사회와 가정에서의 역할 상실 등으로 고통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굳이 65세 이상 노인으로까지 갈 필요도 없다.

IMF 외환위기 이후에 ‘오륙도’, ‘사오정’이 당연시 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운명은 ‘젖은’ 낙엽은 아닐지라도 ‘추풍낙엽’과 같은 처지로 몰리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전면화되면서 생겨난 신조어 가운데, 또 ‘캥거루족’이라는 것이 있다.

“취업난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지 않기 위해 휴학을 하거나,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취직하지 않거나, 취직을 하더라도 임금이 적어 부모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청년 실업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새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캥거루의 특이한 생태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1998년에 프랑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지가 ‘캥거루 세대’라 부른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캥거루족’도 이미 한국사회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최근에 대학생 가운데 1/5이 휴학했다.

20대의 48%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최근 2년간 대졸취업자의 평균나이가 15개월 가량 높아졌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청년실업자가 머지않아 백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평균 취업경쟁률은 83:1에 달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캥거루족’이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30~40대 취업 노동자들은 ‘젖은 낙엽족’과 ‘캥거루족’ 사이에 끼어 있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당장의 고용불안도 버겁지만, 10~20년이면 자신이 혹은 자식들이 닥칠 문제다.

아니 당장 부딪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소위 노인문제 전문가들은 ‘젖은 낙엽족’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자기계발에 힘쓰고, 효율적인 자산운용계획을 세워 최소한 9억원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청년실업 문제의 전문가들은 캥거루족이 생기는 원인이 경제 불황에 따른 취업난도 있지만, “부모세대처럼 아등바등 살기도 싫고 웬만한 직장은 눈에 안 차는” 젊은 세대에게도 그 책임이 있기 때문에, “눈높이를 낮춰 사회의 밑바닥부터 경험을 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문제는 개인에게 있으니 개인이 알아서 책임지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충고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 ‘경제발전이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시대’,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의 제도화에 따라 고용불안이 일상화된 시대’에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것인가?

‘고용’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들의 ‘삶의 양식’ 전체를 어떻게 새롭게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자노보칼럼] 200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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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손가락의 비밀(2006.12.29.)

새끼손가락의 비밀

 

 

우리 몸에서 감각이 가장 예민한 부분이 ‘손’과 입술입니다.

가장 감각이 둔한 부분은 등이라고 합니다.

손가락, 손바닥, 손목이 정확한 동작을 통해 얻은 감각을 척수를 통해 뇌에 전달할 때 우리는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새끼손가락의 비밀

 

순전히 물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손의 기능은 3가지입니다.

주먹을 쥐는 것, 물건을 잡는 것, 그리고 손을 펴는 것입니다.

이 3가지 기능 중 어느 하나라도 손상되면 손은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엄지와 주변 근육은 물건을 집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엄지손가락이 움직이는 범위도 가장 크고 화려하며 근력도 가장 셉니다.

나머지 손가락도 3가지 기능에 나름대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손가락의 기능과 관련해서 우리가 잘 모르거나 잊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새끼손가락의 역할입니다.

다른 손가락에 비해 별 쓸모없을 것 같아 보이는 새끼손가락이 사실은 손동작에서 중심축의 역할을 하고, 손힘을 사용할 때 기본축의 역할을 합니다.

인간의 몸은 어떠한 동작을 하던 반드시 고정된 중심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정적인 동작을 할 수 있습니다.

 

손동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새끼손가락이 없으면 손힘을 제대로 쓸 수 없습니다.

가장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새끼손가락이 사실은 묵묵하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상대방과 약속을 할 때 새끼손가락을 걸고 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새끼손가락을 걸지 않고 엄지끼리만 하는 약속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건강한 감각

 

하나의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별 볼일 없는 위치에서 드러나지 않게 묵묵하게 새끼손가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중심축이 있어야 그 조직은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역동적인 힘은 이러한 중심축이 얼마나 잘 세워져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이 중심축, 기본축이 무너지면 그 조직은 전혀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엄지손가락의 화려한 동작도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거꾸로 이러한 중심축과 기본축이 탄탄하다면 엄지손가락은 물론 다른 손가락들도 힘 있고 자신감 있게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어느 조직이 위기나 어려움에 처했다면, 위기와 어려움이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바로 중심축이자 기본축의 역할을 해 왔던 활동가들이 무너지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 대개 금방 드러나지 않고, 그래서 소홀하게 판단하거나 지나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파급력은 만만치 않다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물론 모두가 다 새끼손가락과 같은 역할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는 다 스스로 새끼손가락 같은 역할을 자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조직은 현실 변화의 예민한 지점들을 읽어내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그 조직의 생명력과 건강함이 달려 있습니다.

건강한 감각을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200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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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성 마비’를 넘어, 혼자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것!(2007.11.30.)

‘경직성 마비’를 넘어, 혼자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것!

 

 

지금은 다시 기억하기도 끔찍하지만, 꼭 4년 반전에 아내가 교통사고로 척추신경을 다치고, 몇 차례 고비를 넘기면서 재활치료를 통해 조금씩 걷기 시작했을 때, ‘경직’과 ‘통증’이라는 새로운(?)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다.

경추 3번과 4번 신경이 손상을 입었지만, 그나마 다행히 신경이 전부 끊기지 않아 완전 전신마비는 모면할 수 있었고, “걸을 수 있다”는 실날같은 희망을 가지고 재활 치료를 받는 중에 맞닿게 된 ‘도전’인 셈이었다.

사실 배설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즉 똥오줌을 스스로 가눌 수 없는 ‘완전마비’가 아니라는 점만으로도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힘겨운 물리치료의 결과로 근력이 생기고 신경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근력과 함께 ‘경직’이, 신경이 살아난 만큼의 ‘통증’이 동반된 것이다.

 

당시 재활 치료과정에서 알았지만, 마비에는 ‘경직성 마비’와 ‘이완성 마비’가 있었다.

‘경직성 마비’는 불필요하게 신경이 극도로 긴장하면서 온 몸이 뻣뻣하게 되는 것이고, ‘이완성 마비’는 몸이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못한 채 축 늘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아내는 ‘경직성 마비’였다.

조그만 자극에도 신경이 뻗쳤고, 사지 전체에 팽팽하게 긴장된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경직만큼 통증이 수반됐다.

손상으로 흐트러진 신경은 온갖 알 수 없고 가눌 수 없는 통증을 뇌로 전달했다.

그 때마다 아내는 ‘경직’과 ‘통증’의 고통을 호소했다.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앨 수도 없다는 점에 절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초기 재활치료 과정에서는 이완성 마비에 비해 경직성 마비가 빨리 걸을 수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경직’으로 걷는 것은 보지 못하고, 잘 서고 잘 걷는다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다행히 경험이 풍부한 물리치료사는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통증’에 대해서는 “통증은 신경이 살아있다는 것”이라 위안해 주면서, “경직으로 서는 것이 아니라, 무릎과 허리를 굽히고 무게 중심을 앞으로 옮기면서 그 탄력으로 서는 훈련을 해야 한다”면서, ‘경직’으로 서는 것에 안주하지 않도록 물리치료를 했다.

지팡이나 기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서서 걸을 수 있을 즈음에, 물리치료사는 “지금 몸이 완전히 고정된 상태다. ‘안정’된 것과 ‘고정’된 것은 다르다. 몸통이 움직이면서 안정돼야 제대로 걸을 수 있다”고, ‘고정’된 몸과 ‘안정’된 몸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양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몸통’을 움직이면서 안정돼야 제대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혼자 걸으려면 위급한 상황에서 혼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병원은 온실이고, 바깥세상은 현장이기 때문이다.”

4년 반이 지난 지금, 아내는 아직도 양 손에 힘을 빼지 못하고 있고, 몸통이 자유롭지 못하며, 위급한 상황에서 혼자 대처할 수 없어서, 혼자 서서 걷기는 하지만 ‘제대로’ 걷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모든 사람이 갓난아기 시절에 이미 마친 걷기 학습을 아내는 지금 ‘의식적’으로 훈련하고 있다.

제대로 걷기 위해.

4년 전 6개월간의 재활치료를 마치고 병실을 나설 때 물리치료사가 했던 마지막 이야기가 아직도 귓전에 남아있다.

 

“경직은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이다. 경직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 한번은 넘어질 것이다. 그 때 어떻게 순간적으로 대처하느냐가 혼자 걸을 수 있는지에 관건이다.”

 

2007.11.30.

관악산 남쪽 기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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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간 베를린 묵언기행(黙言紀行)

25일간 베를린 묵언기행(黙言紀行)

 

몸이 불편했지만 발도로프 교사자격 취득을 위한 마지막 연수과정을 포기할 수 없다는 아내의 간청(?)을 받아들여, 보호자 자격으로 연수생 일행과 함께 동베를린에 도착한 것은 1월 21일경이었다.

 

출발 이전부터 이미 각오하고 예상도 했지만, 독일어라고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어 25일간 눈만 부릅뜨고 입은 꾹 다문 묵언기행(黙言紀行)이 시작됐다. 간혹 통역자로 함께 간 동갑나기 이(李) 선생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 외에는 돌아다니며 직접 보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처음에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서 멀리 가는 것조차 두려워, 아내가 교육을 받고 있는 낮 시간 동안 숙소와 학교가 있던 동베를린의 중심가인 알렉산더프라츠(광장) 근처만 걸어서 돌아다니곤 했다.

 

독일어를 모르니 궁금한 것을 누구에게 물어 볼 수 없고, 책이나 자료도 읽을 수 없어, 그냥 발 가는대로 돌아다니면서 가벼운 눈요기만 하던 어느 날, 낯선 거리와 광장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로자 룩셈부르크 스트라셰(거리)’, ‘칼 리히프크네히트 스트라셰’, 그리고 ‘마르크스엥겔스 광장’이었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아니 자본주의체제로 흡수 통일된 지 벌써 15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과거 동독 시절의 거리 이름이 그것도 자본주의체제를 혁명을 통해 타도하려고 했던 사회주의 사상가와 지도자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가?

 

만약 한반도에서 북한이 남한 자본주의체제로 흡수통일된다면 ‘김일성 광장’, ‘김정일 거리’ 등등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이미 내전을 통해 분단된 체제에서 태어나 숨막히는 반공 반북의 메카시즘적 제도와 문화 속에서 47년간 살아 온 남한의 한 활동가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이런 정도였다. ‘동서독의 분단체제는 남북간의 6.25.와 같은 대량살육의 내전을 겪지 않아, 서로에 대한 증오와 적대가 그리 크지 않았던가 보구나.’ 아니 ‘과거 마르크스의 혁명이론이 소련의 도덕교과서로 박제화됐던 것처럼, 로자 룩셈부르크나 칼 리히프크네히트의 사상과 실천도 그 생생한 혁명성이 거세되어 아스팔트 거리 이름으로 박제화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머릿속을 맴도는 이런 저런 상념과 궁금증에 대해,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 후배의 답변은 나의 알량한 상상과 추측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리는 것이었다. “독일인은 칼 마르크스나 로자 룩셈부르크를 사회주의 혁명가가 아니라 동서독 분단 이전의 ‘독일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거리 이름과 광장 이름을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과거 동독에 있던 구소련의 잔재들은 이미 대부분 정리했다.”

 

독일 민족이 위대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독일이 지배계급이 무섭다고 해야 하나? 25일간의 묵언기행(黙言紀行) 동안, 겨울 내내 검은 구름에 가려 햇빛이라고는 거의 볼 수 없는 베를린의 날씨처럼, 무겁고 어두운 상념만이 머릿속을 짓눌렀다. 아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느라 매일 지나쳤던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에도 다른 거리와 마찬가지로 개똥들이 이리저리 뒹글고, 마르크스엥겔스 광장 주변의 건물도 다른 건물들처럼 온통 뜻 모르는 낙서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되돌아보니 단지 독일어만 몰라서 25일간 묵언(黙言)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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