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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낙엽족’과 ‘캥거루족’(2004.09.08.)

‘젖은 낙엽족’과 ‘캥거루족’

 

“일에 쫓겨 이렇다할 취미도 노년에 대한 설계와 준비도 없이 퇴직을 맞아, 일상생활에서 자립하지도 못하고 부인에게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하는” 남성 노인을 가리켜 ‘젖은 낙엽족’이라고 한다.

“마치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듯 부인을 24시간 졸졸 따라다니며 한사코 붙어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도쿄대학 여교수가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한국 사회도 이미 2000년에 65세 이상의 노인인구 비율이 7%가 넘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이러한 ‘젖은 낙엽족’ 현상이 이제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젖은 낙엽족’은 “아침 일찍 출근해 매일 밤 회식하고, 휴일엔 안방에서 뒹구는 생활을 수십년간 해 온 직장인” 출신이 많고, 질병, 고독감, 경제적 빈곤, 사회와 가정에서의 역할 상실 등으로 고통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굳이 65세 이상 노인으로까지 갈 필요도 없다.

IMF 외환위기 이후에 ‘오륙도’, ‘사오정’이 당연시 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운명은 ‘젖은’ 낙엽은 아닐지라도 ‘추풍낙엽’과 같은 처지로 몰리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전면화되면서 생겨난 신조어 가운데, 또 ‘캥거루족’이라는 것이 있다.

“취업난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지 않기 위해 휴학을 하거나,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취직하지 않거나, 취직을 하더라도 임금이 적어 부모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청년 실업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새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캥거루의 특이한 생태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1998년에 프랑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지가 ‘캥거루 세대’라 부른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캥거루족’도 이미 한국사회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최근에 대학생 가운데 1/5이 휴학했다.

20대의 48%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최근 2년간 대졸취업자의 평균나이가 15개월 가량 높아졌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청년실업자가 머지않아 백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평균 취업경쟁률은 83:1에 달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캥거루족’이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30~40대 취업 노동자들은 ‘젖은 낙엽족’과 ‘캥거루족’ 사이에 끼어 있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당장의 고용불안도 버겁지만, 10~20년이면 자신이 혹은 자식들이 닥칠 문제다.

아니 당장 부딪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소위 노인문제 전문가들은 ‘젖은 낙엽족’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자기계발에 힘쓰고, 효율적인 자산운용계획을 세워 최소한 9억원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청년실업 문제의 전문가들은 캥거루족이 생기는 원인이 경제 불황에 따른 취업난도 있지만, “부모세대처럼 아등바등 살기도 싫고 웬만한 직장은 눈에 안 차는” 젊은 세대에게도 그 책임이 있기 때문에, “눈높이를 낮춰 사회의 밑바닥부터 경험을 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문제는 개인에게 있으니 개인이 알아서 책임지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충고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 ‘경제발전이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시대’,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의 제도화에 따라 고용불안이 일상화된 시대’에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것인가?

‘고용’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들의 ‘삶의 양식’ 전체를 어떻게 새롭게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자노보칼럼] 200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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