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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4/17
    21c, 사회주의를 지금!, 이곳에!(2007)
    푸르른 날

21c, 사회주의를 지금!, 이곳에!(2007)

21c, 사회주의를 지금!, 이곳에!

- ‘21c 변혁을 위해’ 연재를 시작하며 -

 

박성인 / 노동자의힘 중앙집행위원장

 

지금 한 걸음을 내 딛을 때인가? 너무 이른가?, 아니면 늦었는가?

준비가 됐는가? 우리가? 아니면 노동자민중이?

현실적 능력이 있는가? 아니면 의지라도 있는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현실로부터? 아니면 이념으로부터?

아니 어떤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가? 우리는 대체 뭔가?

새삼스럽게 ‘21c 변혁’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또 연재를 기획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와 가슴을 온통 휘젓고 지나갔다.

“과연 지금 이 논의를 할 수 있는가?”와 “더 늦기 전에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명색이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한 주체가 되겠다고 자임하면서 아직도 이런 고민에 빠져있다니---.

더 이상 논의와 실천을 늦출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더 이상 논의와 실천을 우리 안으로만 수줍고 조심스럽게 가둘 수는 없다.

고민을 나누고, 드러내어 토론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과연 2007년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가?

 

“노동자와 민중은 자신들들에게 전가된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혁명’을 통해 다른 길을 찾는다”고 했는데, 과연 2007년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가?

저임금과 삶의 불안으로 고통받는 850만의 비정규 노동자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규직 노동자들, 직업 자체를 가져볼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실업자들, 저임금 속에서 가장 바닥의 일을 떠맡은 45만의 이주노동자들, 400만이 넘는 금융피해자, 농업포기정책과 기업농 정책으로 하향 분해되는 300만의 농민들, 또 끊임없는 해체의 위협에 직면하면서 불안한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300만 자영업자들, 철거민과 노점상들, 그리고 이 모두를 포함한 1,000만 빈곤의 시대. 20:80의 양극화의 시대.

87년 이후 민주주의가 ‘완성’됐다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10년 결과 드러난 한국사회의 감출 수 없는 자화상이다.

이것만인가? 이는 한국사회라는 동전의 한 면일 뿐이다. 반대편에는 1,000조원에 가까운 과잉 유동자본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은행이든 해외투자든 초과이윤 확보를 위해 어슬렁거리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채무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은 사상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억대 연봉자가 늘어난다. 재산과 소득은 물론 교육, 의료 혜택 등 경제와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양극화와 불균형은 점점 심화된다.

이와 관련한 조사 통계와 분석 자료는 신문 지상에, 학계 보고서에 넘쳐난다.

 

이쯤 되면 뭔가 일어나도 일어날 법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전가된 고통을 견딜 수 없는 노동자, 민중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는가?

IMF 이후 1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나마 일자리를 지킨 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몸을 움츠리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 장애인, 이주노동자들, 실업자들, 금융파산자들, 도시빈민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잠깐 이슈화할 뿐,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성장 동력의 창출과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해결가능하다는 목소리에 묻힌다.

20 대 80의 구조, 사회적 양극화는 구조화되었다.

그러나 80의 원인이 20이 아니라, 모든 80이 20이 될 수 있다는 헛된 기대와 환상이 전 사회를 휩쓸고 있다.

‘경쟁’과 ‘승자독식’은 당연하고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이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모두 부자되세요.” 부(富)는 더 이상 감추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최고의 가치가 됐다.

그래서 세상은 더욱 살만할 것인가?

그래서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인가?

누구에게는 살만하고 누구에게는 살만하지 않는가?

 

이제 대안 정치세력으로 서 나갈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얘기해야 한다.

거칠고 공허한 듯하지만, 그래서 아직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경제성장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경제 성장의 결과로 경제는 더욱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바로 그 경제 성장의 결과로 모두가 다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지금의 양극화와 빈곤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와 민중은 더 이상 전가되는 고통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그 때 그들은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다.

그 다른 대안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 올 지, 노동자 민중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아직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부터 그 대안으로 서 나가려고 한다.

아직은 작고 미숙한 목소리이자 몸부림이지만, 대안을 찾는 노동자민중들에게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할 것이다.

다른 세상이 ‘막연히’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의 얘기가, 우리의 바램만이 유일하게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의 역량이 그 대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만큼인지 아직 자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광풍이 온 사회를 휩쓸고 있는 현실에서, 21c 초반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정치사회세력만이 아니라, 어정쩡하고 밋밋한 이른바 진보 정치세력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고통받는 노동자민중과 함께 끝까지 함께할 동반자가 있음을, 노동자민중들과 함께 자본주의 자체를 지양하고자 하는 정치 사회세력도 있음을, 무의미한 소수가 아니라 유의미한 다수를 지향하는 세력도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세워나갈 것이다.

 

사실 늦었지만, 그래서 그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이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념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에서 출발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이 새로운 전망을 요구하고 있다. 당위가 아니라 구체적인 전망을 갈증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이은 53년 정전 분단체제가 이후 50년간 한반도와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지형을 근본적으로 규정해 왔듯이, 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에서 형성된 정치 사회 지형이 그 후 20여 년간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 지형을 규정해 왔듯이, 96~97년 총파업과 97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 형성된 신자유주의 지형이 여전히 지금의 지형을 규정하고 있듯이, 지금 형성되고 있는 정치 사회지형은 이후 10년 20년에 걸쳐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 지형을 규정해 나갈 것이다.

구조적인 전환기이다.

53년 정전 분단체제가 변화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와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라는 두 가지 모순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87년 민주화체제는 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이 신자유주의에 투항함으로써, 진보진영이 체제내화됨으로써 이미 해체 혹은 완성되고 있다.

97년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는 한미FTA와 뒤 이은 제2의 구조조정으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런 구조적인 전환기에, 의미있고 현실 가능한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서기 위해, 우리는 얘기를 시작할 것이고, 함께 논의하고, 실천해 나갈 것이다.

 

아직도? 가능한가?

 

“아직도?”라고 반문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는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제기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21c 변혁’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빈곤과 양극화, 고용불안과 비정규직의 양산, 온갖 사회적 범죄, 환경 파괴, 공황, 그리고 군비증강과 전쟁 등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에 ‘자본주의’가 가로놓여 있다는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이 자본주의 체제가 영구불변한 것도 아니고 또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는 최선의 사회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쉽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이 자본주의 체제에 발을 딛고 있고, 그 속에서 먹고 살고 애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자 했던 20c의 여러 실험들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최대 능력은 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확신시키는데 있다는 얘기도 빈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시작할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왜? 문제의 근원은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도, ‘반권위주의’도, ‘반전평화’도 ‘반신자유주의’도 ‘반자본’의 전망과 결합하지 못한다면, 한낱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1c 변혁,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충분히 물을 수 있다. 또 물어야 한다.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투쟁은 상대적인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의 힘은 약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시 점점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위기에 직면할수록 자본은 그 노골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헤게모니적 지배력은 약화된다. 폭력적 지배라는 그 본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금융화, 무장화, 노동유연화는 자본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일 뿐이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공황’과 ‘전쟁’은 그 위기의 직접적인 표현이다.

물론 ‘자본’의 위기는 곧 노동자 민중에게도 ‘생존의 위기’로 다가온다.

그래서 노동자민중이 그 자본과 운명을 함께 할 수도 있다.

노동자민중이 자신의 생존의 위기가 바로 ‘자본의 위기’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며,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또 그 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다른 세상을 만드는 주체로 서 나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어렵고 힘들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 공세일 뿐이다.

 

‘현실의 요구’이자 ‘역사의 필연’

 

우리는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현대 자본주의가 불가피하게 이루어 놓은 많은 자원을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자원으로 활용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갖는 그 엄청난 능력 - 동원할 수 있는 물적 자원, 정보력, 조직력 등-에 위압당하지 않고, 그 엄청난 능력 이면에 감춰진 모순과 약점을 치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슬 그 자체를 끊을 수 있는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파악하고 거기에 힘을 집중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비판’만하는 투덜이가 아니라, 현실의 모순과 문제점을 책임있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있는 대안 정치세력으로 서 나가길 원한다.

 

우리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다시 반복하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20c 실험의 실패로 수많은 고통을 받아왔다.

회의와 패배주의가 우리를 짓누르고, 심지어 정치적 조롱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난 십 수년간 우리는 20c 실험의 실패에 대해 부둥켜안고 다시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새롭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왔다.

우리는 청산하지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무책임하게 해체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대책 없이 부등켜안고 고집하지만도 않았다.

우리의 대안에 대해 혁신하고자 했고, 확장하고자 했고, 재구성하고자 했다.

우리의 오류와 약점이 무엇이었는지, 우리의 강점과 보듬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했고 연구했고 토론했다.

우리는 ‘21c 변혁’에 대해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요구’이자 ‘역사의 필연’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바램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논의와 실천이 우리 스스로를 ‘21c 변혁’을 위한 주체로 성장시켜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이러한 시도는 현실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우리는 ‘21c 변혁’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우리의 거친 생각과 판단을 드러내려고 한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20세기 변혁전략에 대한 평가’로부터 우리는 ‘21c 변혁’의 상과 경로를 모색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어떠한 정치적인 실천을 해나갈 지에 대해 고민의 단면을 드러낼 것이다.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주체를 세워나가고, 또 어떠한 능력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아직 우리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의 과정이 남아 있다.

10년, 20년 넘게 실천과 이론으로 단련된 우리 동지들은 빈틈 하나도 허용하지 않고 치열하게 토론할 것이라 판단한다.

하나하나의 논의가 어떻게 우리의 정치적 실천과 연결되는지, 그런 정치적 실천이 노동자 민중 속에서 어떠한 정치적 영향력과 결과를 가져 올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구체적이고 진지하고 검토하고 또 검토할 것이라 판단한다.

물론 이 논의는 우리 내부의 논의만은 아니다.

다행히 이런 수준의 논의가 여러 조직들에서 활발하게 시작되고 있다.

논의의 속도와 수위를 맞춰 함께 활력 있게 진행되길 기대한다.

 

21c, 사회주의를 지금! 이곳에!

이 기획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성될 것이다.

 

1. 문제는 자본주의다. 변혁이다.

2. 20c 변혁전략, 평가와 교훈

3. 21c 변혁의 조건, 현대 자본주의

4. 21c 변혁전략에 대해

5. 노동자계급정당

 

이 구성은 필자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는 있다.

또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지면을 할애해서 논쟁을 진행해 나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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