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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사회주의를 지금!, 이곳에!(2007)

21c, 사회주의를 지금!, 이곳에!

- ‘21c 변혁을 위해’ 연재를 시작하며 -

 

박성인 / 노동자의힘 중앙집행위원장

 

지금 한 걸음을 내 딛을 때인가? 너무 이른가?, 아니면 늦었는가?

준비가 됐는가? 우리가? 아니면 노동자민중이?

현실적 능력이 있는가? 아니면 의지라도 있는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현실로부터? 아니면 이념으로부터?

아니 어떤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가? 우리는 대체 뭔가?

새삼스럽게 ‘21c 변혁’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또 연재를 기획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와 가슴을 온통 휘젓고 지나갔다.

“과연 지금 이 논의를 할 수 있는가?”와 “더 늦기 전에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명색이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한 주체가 되겠다고 자임하면서 아직도 이런 고민에 빠져있다니---.

더 이상 논의와 실천을 늦출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더 이상 논의와 실천을 우리 안으로만 수줍고 조심스럽게 가둘 수는 없다.

고민을 나누고, 드러내어 토론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과연 2007년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가?

 

“노동자와 민중은 자신들들에게 전가된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혁명’을 통해 다른 길을 찾는다”고 했는데, 과연 2007년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가?

저임금과 삶의 불안으로 고통받는 850만의 비정규 노동자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규직 노동자들, 직업 자체를 가져볼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실업자들, 저임금 속에서 가장 바닥의 일을 떠맡은 45만의 이주노동자들, 400만이 넘는 금융피해자, 농업포기정책과 기업농 정책으로 하향 분해되는 300만의 농민들, 또 끊임없는 해체의 위협에 직면하면서 불안한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300만 자영업자들, 철거민과 노점상들, 그리고 이 모두를 포함한 1,000만 빈곤의 시대. 20:80의 양극화의 시대.

87년 이후 민주주의가 ‘완성’됐다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10년 결과 드러난 한국사회의 감출 수 없는 자화상이다.

이것만인가? 이는 한국사회라는 동전의 한 면일 뿐이다. 반대편에는 1,000조원에 가까운 과잉 유동자본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은행이든 해외투자든 초과이윤 확보를 위해 어슬렁거리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채무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은 사상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억대 연봉자가 늘어난다. 재산과 소득은 물론 교육, 의료 혜택 등 경제와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양극화와 불균형은 점점 심화된다.

이와 관련한 조사 통계와 분석 자료는 신문 지상에, 학계 보고서에 넘쳐난다.

 

이쯤 되면 뭔가 일어나도 일어날 법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전가된 고통을 견딜 수 없는 노동자, 민중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는가?

IMF 이후 1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나마 일자리를 지킨 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몸을 움츠리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 장애인, 이주노동자들, 실업자들, 금융파산자들, 도시빈민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잠깐 이슈화할 뿐,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성장 동력의 창출과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해결가능하다는 목소리에 묻힌다.

20 대 80의 구조, 사회적 양극화는 구조화되었다.

그러나 80의 원인이 20이 아니라, 모든 80이 20이 될 수 있다는 헛된 기대와 환상이 전 사회를 휩쓸고 있다.

‘경쟁’과 ‘승자독식’은 당연하고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이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모두 부자되세요.” 부(富)는 더 이상 감추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최고의 가치가 됐다.

그래서 세상은 더욱 살만할 것인가?

그래서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인가?

누구에게는 살만하고 누구에게는 살만하지 않는가?

 

이제 대안 정치세력으로 서 나갈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얘기해야 한다.

거칠고 공허한 듯하지만, 그래서 아직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경제성장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경제 성장의 결과로 경제는 더욱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바로 그 경제 성장의 결과로 모두가 다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지금의 양극화와 빈곤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와 민중은 더 이상 전가되는 고통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그 때 그들은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다.

그 다른 대안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 올 지, 노동자 민중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아직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부터 그 대안으로 서 나가려고 한다.

아직은 작고 미숙한 목소리이자 몸부림이지만, 대안을 찾는 노동자민중들에게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할 것이다.

다른 세상이 ‘막연히’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의 얘기가, 우리의 바램만이 유일하게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의 역량이 그 대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만큼인지 아직 자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광풍이 온 사회를 휩쓸고 있는 현실에서, 21c 초반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정치사회세력만이 아니라, 어정쩡하고 밋밋한 이른바 진보 정치세력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고통받는 노동자민중과 함께 끝까지 함께할 동반자가 있음을, 노동자민중들과 함께 자본주의 자체를 지양하고자 하는 정치 사회세력도 있음을, 무의미한 소수가 아니라 유의미한 다수를 지향하는 세력도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세워나갈 것이다.

 

사실 늦었지만, 그래서 그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이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념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에서 출발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이 새로운 전망을 요구하고 있다. 당위가 아니라 구체적인 전망을 갈증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이은 53년 정전 분단체제가 이후 50년간 한반도와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지형을 근본적으로 규정해 왔듯이, 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에서 형성된 정치 사회 지형이 그 후 20여 년간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 지형을 규정해 왔듯이, 96~97년 총파업과 97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 형성된 신자유주의 지형이 여전히 지금의 지형을 규정하고 있듯이, 지금 형성되고 있는 정치 사회지형은 이후 10년 20년에 걸쳐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 지형을 규정해 나갈 것이다.

구조적인 전환기이다.

53년 정전 분단체제가 변화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와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라는 두 가지 모순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87년 민주화체제는 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이 신자유주의에 투항함으로써, 진보진영이 체제내화됨으로써 이미 해체 혹은 완성되고 있다.

97년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는 한미FTA와 뒤 이은 제2의 구조조정으로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런 구조적인 전환기에, 의미있고 현실 가능한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서기 위해, 우리는 얘기를 시작할 것이고, 함께 논의하고, 실천해 나갈 것이다.

 

아직도? 가능한가?

 

“아직도?”라고 반문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는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제기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21c 변혁’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빈곤과 양극화, 고용불안과 비정규직의 양산, 온갖 사회적 범죄, 환경 파괴, 공황, 그리고 군비증강과 전쟁 등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에 ‘자본주의’가 가로놓여 있다는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이 자본주의 체제가 영구불변한 것도 아니고 또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는 최선의 사회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쉽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이 자본주의 체제에 발을 딛고 있고, 그 속에서 먹고 살고 애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자 했던 20c의 여러 실험들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최대 능력은 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확신시키는데 있다는 얘기도 빈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시작할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왜? 문제의 근원은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도, ‘반권위주의’도, ‘반전평화’도 ‘반신자유주의’도 ‘반자본’의 전망과 결합하지 못한다면, 한낱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1c 변혁,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충분히 물을 수 있다. 또 물어야 한다.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투쟁은 상대적인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의 힘은 약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시 점점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위기에 직면할수록 자본은 그 노골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헤게모니적 지배력은 약화된다. 폭력적 지배라는 그 본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금융화, 무장화, 노동유연화는 자본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일 뿐이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공황’과 ‘전쟁’은 그 위기의 직접적인 표현이다.

물론 ‘자본’의 위기는 곧 노동자 민중에게도 ‘생존의 위기’로 다가온다.

그래서 노동자민중이 그 자본과 운명을 함께 할 수도 있다.

노동자민중이 자신의 생존의 위기가 바로 ‘자본의 위기’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며,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또 그 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다른 세상을 만드는 주체로 서 나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어렵고 힘들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 공세일 뿐이다.

 

‘현실의 요구’이자 ‘역사의 필연’

 

우리는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현대 자본주의가 불가피하게 이루어 놓은 많은 자원을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자원으로 활용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갖는 그 엄청난 능력 - 동원할 수 있는 물적 자원, 정보력, 조직력 등-에 위압당하지 않고, 그 엄청난 능력 이면에 감춰진 모순과 약점을 치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슬 그 자체를 끊을 수 있는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파악하고 거기에 힘을 집중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비판’만하는 투덜이가 아니라, 현실의 모순과 문제점을 책임있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있는 대안 정치세력으로 서 나가길 원한다.

 

우리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다시 반복하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20c 실험의 실패로 수많은 고통을 받아왔다.

회의와 패배주의가 우리를 짓누르고, 심지어 정치적 조롱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난 십 수년간 우리는 20c 실험의 실패에 대해 부둥켜안고 다시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새롭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왔다.

우리는 청산하지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무책임하게 해체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대책 없이 부등켜안고 고집하지만도 않았다.

우리의 대안에 대해 혁신하고자 했고, 확장하고자 했고, 재구성하고자 했다.

우리의 오류와 약점이 무엇이었는지, 우리의 강점과 보듬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했고 연구했고 토론했다.

우리는 ‘21c 변혁’에 대해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요구’이자 ‘역사의 필연’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바램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논의와 실천이 우리 스스로를 ‘21c 변혁’을 위한 주체로 성장시켜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이러한 시도는 현실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우리는 ‘21c 변혁’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우리의 거친 생각과 판단을 드러내려고 한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20세기 변혁전략에 대한 평가’로부터 우리는 ‘21c 변혁’의 상과 경로를 모색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어떠한 정치적인 실천을 해나갈 지에 대해 고민의 단면을 드러낼 것이다.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주체를 세워나가고, 또 어떠한 능력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아직 우리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의 과정이 남아 있다.

10년, 20년 넘게 실천과 이론으로 단련된 우리 동지들은 빈틈 하나도 허용하지 않고 치열하게 토론할 것이라 판단한다.

하나하나의 논의가 어떻게 우리의 정치적 실천과 연결되는지, 그런 정치적 실천이 노동자 민중 속에서 어떠한 정치적 영향력과 결과를 가져 올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구체적이고 진지하고 검토하고 또 검토할 것이라 판단한다.

물론 이 논의는 우리 내부의 논의만은 아니다.

다행히 이런 수준의 논의가 여러 조직들에서 활발하게 시작되고 있다.

논의의 속도와 수위를 맞춰 함께 활력 있게 진행되길 기대한다.

 

21c, 사회주의를 지금! 이곳에!

이 기획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성될 것이다.

 

1. 문제는 자본주의다. 변혁이다.

2. 20c 변혁전략, 평가와 교훈

3. 21c 변혁의 조건, 현대 자본주의

4. 21c 변혁전략에 대해

5. 노동자계급정당

 

이 구성은 필자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는 있다.

또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지면을 할애해서 논쟁을 진행해 나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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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정당(추) 창립총회 및 출범식

2013.11.09.(토)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노동자계급정당(추)') 창립 총회와 출범식이 원불교 서울회관에서 있었다.

2012년 대선에서 김소연 후보를 내세웠던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의 조직적인 성과는 일차로 이렇게 수렴됐다.

2015년 5월 1일 메이데이에 '노동자계급정당' 출범을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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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전국활동가대회

변혁적 현장 실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전국활동가 대회

 

2012.10.13.(토) 오후 1시

원불교 서울회관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전국활동가대회 조직위원회

 

전국에서 400여명의 현장활동가들이 모여,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모임'으로의 전환,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을 위한 선거대책팀' 구성 및 '공동선거투쟁본부' 제안을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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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는 노동자민중 후보’와 ‘아래로부터 공동선거운동본부’ 건설을!

투쟁하는 노동자민중 후보’와 ‘아래로부터 공동선거운동본부’ 건설을!

 

만약 우리의 정치를 보수세력에서 자유주의세력으로 ‘정권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우리의 독자적인 정치를 이미 접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정치를 의회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차지하여 자유주의세력의 2중대 역할이나 하는 의회주의적 진보정치 수준으로 생각했다면, 우리는 차라리 그냥 침묵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정치를 이른바 진보의 일부 명망가들처럼 진보와 개혁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이합집산이나 하는 정도의 정치를 꿈꾸었다면 우리는 애초에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정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이다.

우리의 정치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이어질 계급투쟁의 격화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운명을 가를 정치이다.

우리의 정치는 기껏 진보정치의 위기와 함께 동반침몰 할 정치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주체가 되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노동해방·인간해방 사회를 건설하려는 계급정치이다.

지난 30여 년간 노동운동의 전략적인 과제였던, 자유주의정치세력의 헤게모니를 벗어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마침내 현실화시키려 하는 노동자계급정치이다.

 

여기 ‘노동자계급정치’가 있다

 

통진당 사태로 인한 진보정치 전체의 위기에 질겁하여,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지역이나 현장으로 되돌려야 하지 않나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얼마 되지도 않은 조직역량으로 어떻게 대선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치를 수 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진보진영이 모두 모여 ‘노동중심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목표로 대선에 공동대응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문제제기’도 ‘우려’도 ‘제안’도 모두 어느 정도 절박한 몸부림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발걸음을 되돌리지 않고, 2012년 대선에 적극 대응하기로 결의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과 또 그들과 함께 하는 반자본세력들과 더불어.

위기에 처한 자본의 지배질서를 보수양당체제의 고착화와 기만적인 개혁을 통해 모면하려는 지배정치에 맞서기 위해.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적 전망을 ‘야권연대’, ‘연립정부론’으로 다시 자유주의정치세력에 헌납하는, 지긋지긋한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되살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미 실패한 진보정당운동처럼 다시 상층명망가들을 중심으로 진부한 정치적 이합집산을 더 이상 되풀이되도록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보다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변화‧변혁’에 대한 열망과 바램을 정치적으로 고양시켜 반자본투쟁의 정치적 주체로 서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대중적‧계급적 정치동력’을!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후보’이고, ‘아래로부터 공동선거운동본부 건설’이다.

노동자민중진영이 2012년 대선에서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는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대중적‧계급적 정치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즉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이 자신의 계급적 요구를 정치화해내고 직접 실천해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민중후보’ 세우기 운동이어야 한다.

‘지역‧현장‧부문별 공동선거운동본부’ 건설 운동이 되어야 한다.

‘아래로부터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비전‧정책공약(선거투쟁강령)’ 발표 운동이 되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선거재정’ 운동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투쟁하는 노동자민중후보’는 특정 정당‧정파의 후보가 아니라, 자본에 맞선 투쟁을 헌신적으로 해 온, 그래서 그 후보 자체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후보’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가질 수 있고, 정치세력과 노동자민중들이 인정하고 공감할 수 있는 후보를 말한다.

기존 진보정당, 정치단체,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 그리고 진보적 지식인들은 바로 이 운동에 복무하고, 기여해야 한다.

 

‘절망 없는 세상’, ‘희망 있는 세상’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후보’를 중심으로 ‘공동선거운동본부’를 세우고, 대중적인 ‘선거강령’운동을 전개해 나가자.

이미 지난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의 역사에서 외쳤던 요구를 ‘선거투쟁강령’으로 정치적으로 집약해내자.

 

‘절망 없는 세상’을 위해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파견 없는 세상!

야간노동 없는 세상!

산재 없는 세상!

민영화, 구조조정 없는 세상!

부채(빚) 없는 세상!

철거 없는 세상!

학벌 없는 세상!

핵 없는 세상!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

이 모든 바램을 모아 자본가 없는 세상을!”

 

‘희망 있는 세상’을 위해

"완전고용 동일임금을!

정규직화 노동3권 보장을!

임금하락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주간맞교대제 완전월급제를!

노동자 작업통제권을!

재벌과 금융 산업의 사회화를!

토지 국유화와 주택 공영제를!

교육평등권을!

대안에너지를!

정치사상의 자유를!

이 모든 투쟁을 모아 노동자민중의 권력을!"

 

후보의 공약 발표나 전문가 집단들이 정리한 정책공약 발표 방식이 아니라 ‘대중적 선거강령운동’으로 전개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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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실천연대(준)에 대한 국가보안법 탄압규탄 촉구 기자회견

노동해방실천연대(준)에 대한 국가보안법 탄압규탄 촉구 기자회견

국가보안법 철폐! 사회주의 활동의 자유 보장!

 

2012.10.08. 11:00

서울 중앙지방법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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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활동가대토론회(2012.9.09.일,철도회관)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활동가 대토론회

 

2012.9.09.(일) 13:00

철도회관 6층 철도노조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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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7차 총회(2012.09.08.토)

사노위 7차총회가 2012년 9월 8일, 충남 금산군에 있는 수련원에서 열렸다.

사노위는 2012년 대선에 공동선거운동본부를 결성해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후보'를 내세워 아래로부터의 선거운동을 통해 완주할 것을 제안하기로 결의했다.

또한 현장의 계급적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추진 중인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움직임에 적극 결합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장혜경 대표가 차기 총회까지 계속 연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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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탈핵 이야기

박흥렬 화백과 탈핵에너지 교수모임이 제작한 탈핵 만화를, 주식회사 에즈넷의 박병희 사장과 이은택 이사가 동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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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정치 시즌2’운동을!

‘진보 시즌2’운동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정치 시즌2’운동을!

 

‘혁신’의 이름으로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시도와 이에 맞서 ‘당원’의 이름으로 당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통합진보당 내 혁신파와 구당권파의 지리한 대립과 갈등은 이제 통합진보당 차원을 넘어 진보운동과 노동정치 전체에까지 위기의식과 평가/전망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현장의 노동자계급은 이 평가/전망을 둘러싼 논쟁에서 기권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통합진보당 사태로부터 ‘새로운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교훈을 적극 끄집어내고 실천해야 한다.

 

논의에 앞서 두 가지 점은 미리 확인하자.

검찰의 통합진보당 회원명부 압수수색과 이를 빌미로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공동의 대응을 하자.

그리고 통합진보당 사태를 ‘종북주의’ 논쟁으로 이끌어 가려는 지배세력의 시도에 대해서도 경계하자.

그건 별도의 논쟁 사안이다.

 

‘공안탄압’에는 공동대응을, ‘종북주의 논쟁’에는 경계를

 

먼저 우리는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로부터,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계산에 따라 ‘급조된 상층 중심의 당 통합’이 어떤 귀결에 이르게 되는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 당원 전체의 민주적 토론과 합의, 공동의 실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적 리더쉽을 창출해내지 못했을 때, 결국 상황이나 조건이 바뀌면 서로에 대한 이질감과 불신이 극대화돼서 표출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진보정당이나 노동자계급정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음으로 구당권파의 행태를 통해 드러난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경시’, ‘의석 확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 전략’과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지 않았을 때 ‘정치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적 절차’가 항상 절대적인 정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도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집권했고, 격변하는 정세에서는 대중들의 투쟁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뛰어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특히 제도정당정치와 선거와 관련해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수십 년에 걸친 ‘민주화 투쟁’의 성과로 되어 있다.

목적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과정과 절차를 밟느냐도 중요한,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진보정치가 보수정치의 행태와 다를 게 뭐 있나, 똑같다”는, 일반 시민과 현장노동자들의 냉소와 분노는 이런 ‘상식’의 표현이다.

진보운동이 내부 혁신을 통해 당내 민주주의를 확고히 정착시켜내지 못한 채 ‘자유주의’세력의 힘에 의해 혁신이 강제되고 있다는 점이 통합진보당 사태를 통해 드러난 진보운동의 비극이다.

노동자계급정치는 이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강제된 진보정당의 혁신

 

그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 몇 몇 자유주의좌파 지식인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진보 시즌2’ 운동이나 ‘오큐파이(점령, Occupy) 통합진보당’ 운동이다.

“통합진보당 내 다수파의 재구성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민주적으로 개조하자”는 이 운동은 한편으로는 진보정당 정파들의 낡은 관행과 관습, 패권적 조직문화 등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비판의 칼끝을 “현실과 유리된 ‘노동 중심성’”, ‘저항의 민주주의’에 겨냥하고 있다.

진보운동 전체를 낡은 노선과 이념, 조직문화, “군사독재와 싸우다 닮아버린 불행한 시대의 유산” 등으로 규정하면서, 진보를 자유주의적으로 개조하려 하고 있다.

‘개혁적 진보’라는 이름으로.

만약 노동자계급정치 운동진영이 이에 대해 분명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다시 노동자계급정치는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갇혀버릴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제 더 이상 통합진보당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합진보당으로 대표되었던 진보운동의 재편의 문제이자,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에 의지해 정치세력화를 꾀해왔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재구축의 문제이다.

그 방향은 ‘자유주의적 재편’이냐? ‘노동자계급적 재편’이냐이다.

‘닥치고 통합진보당’을 밀어붙였던 민주노총 상층지도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조건부 지지 철회’로 책임을 피해가려 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정치운동에서 후퇴해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치적 비관주의와 패배주의 또한 주장되고 있다.

 

‘진보 시즌2’운동이 아닌 ‘노동자계급정치 시즌2’운동을!

 

노동자계급정치운동은 지금 여기에서 후퇴해서는 안된다.

다시 기존과 같은 방식의 노조상층부의 조합주의적 정치를 되풀이 해서도 안된다.

‘노동 중심성’은 진보정당에서 노동의제를 다루는 것으로, 혹은 노조상층지도부가 진보정당에 결합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에 기댄 노동자정치세력화’, ‘노조상층부 중심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현장과 지역의 노동활동가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서, 반자본/사회주의적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

‘노동자계급정치 시즌2’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사태 때문이 아니라, 2012년 대선을 통해 어떤 정권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임박한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격화될 계급투쟁을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으로 이끌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 중심성’은 이 속에서 현실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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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의 장혜경 대표와 와락의 정혜신 의사가 만난다면?

사노위의 장혜경 대표와 와락의 정혜신 의사가 만난다면?

 

때 아닌 눈이 얼기설기 내리고

바람마저 철없이 매섭게 부는 3월 24일 오후 4시,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

시청광장에서 쫓겨 온 ‘희망광장’ 점거농성자를 중심으로

금속노동자들과 도시빈민들, 그리고 정당과 노동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이 모여

변혁운동진영의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대로 사이를 거침없이 휘젓는 차가운 바람 앞에서

수백 명이 모여

서로는 서로의 바람막이가 됐고,

서로의 체온만이 서로의 추위를 버티게 해주었다.

 

“재벌 금융수탈체제 해체”

“비정규직 정리해고 철폐”

“제주 해군기지 저지”

“FTA 전면 폐기”

“핵없는 세상”

“등록금 문제 해결”

“노동자 계급정치 실현”

 

‘변혁운동진영의 결의대회’는 7가지 구호를 내걸었다.

허영구(투기자본감시센타), 유명자(재능노조), 철거민대표, 김승호(사이버노대), 대학생, 조희주(노동전선), 홍세화(진보신당), 장혜경(사노위) 등의 정치발언이 이어졌다.

 

마지막 연사로 나선 사노위의 장혜경 대표는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야권연대가 왜 노동자 계급적 정치세력화를 왜곡하고 있는지’, ‘전태일이 어떻게 자유주의진영에 의해 이용되는지’, ‘자본주의의 철폐가 왜 사회주의인지’, 그리고 지금 ‘왜 노동자의 계급적 정치세력화가 절실하게 요구되는지’를 논리 정연하고 구체적이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정치발언을 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문화제- 눈물을 멈춰’가 이어졌다.

탑돌이 행사에 이어 백기완 선생의 강연, 와락의 정혜신 의사의 연설, 쌍용차노조 지부장의

연설, 그리고 송경동 시인의 시낭송이 있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상담과 치유를 담당하고 있는 정혜신 의사의 발언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77일간 투쟁을 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가 폭력에 의해 굴욕을 강요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를 박탈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 인간 자체는 심리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존재이고 모순덩어리이지만 그 자체가 정상이라는 것, 그것이 ‘인간’이라는 것, 오히려 인간의 고통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표백되고 단선적인 논리에 의한 국가의 폭력이 싸이코적이라는 것. 금속노조, 민주노총 등이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이 고립되지 않고 함께 살아야할 근거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 등을 정신과 의사답게 사려깊게 설명을 했다. 정혜선 의사는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정치’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이해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든 생각.

사노위의 장혜경 대표와 정혜신 의사가 만나면 어떤 얘기가 이루어질까?

정치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은 계급정치의 지평을 어떻게 새롭게 일구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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