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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2차총회(2011.1.15.토~1.16.일)

사노위 2차 총회가 2011.1.15.(토) 16:00에 시작해서 1.16.(일) 06:00까지 이어졌다.

14시간에 걸친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장시간 토론과 의결에도, 참석한 회원들은 진지했고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다.

"회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사회주의 당 건설'에 대한 갈망 때문인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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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출범 축하시-송경동] 모든 것이 돌아온다

모든 것이 돌아온다

-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실천위원회> 출범을 맞아

 

송경동(시인)

 

 

 

유령들이 돌아온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이

무엇을 가졌다고 착각하던 이들이

헐벗은 몸으로, 찢긴 몸으로, 온몸과 정신에 쇠사슬을 감고

집단적으로 돌아온다

 

유령들을 따라 유령들이 돌아온다

인류의 뜨거운 열망과 생성 위에 구더기처럼 기생하며

풍요로운 대지의 자궁을 좀먹고 초토화시키던

자본의 유령들이

혼비백산 다급하게 돌아온다

 

모든 것이 돌아온다

끝났는지도 모른다던 혁명의 역사가 돌아온다

숨겨진 일상의 핏빛 적대가 결전을 향해

숨가쁘게 돌아온다. 낡고 죽은 노동의 똥통에서

찬란한 자유의 날개들이 퍼덕이며 돌아온다

 

돌아온다, 보라

모든 것이 돌아온다

살아 있다는 긍지, 잊어버렸던 연대의 따뜻한 손길

사적소유의 온갖 금기와 통제와 폭력을 넘어서는 참다운 용기의 무리들

그 새로운 인류들이 다시 돌아온다

자본의 공포와 협박으로부터 벗어난 생기발랄한 웃음들이

자유로운 농담과 춤이 경계 없는 상상이

 

돌아온다. 보라

모든 것이 돌아온다

그것은 하나로만 오지도

둘로만 오지도 셋으로만 오지 않는다

그것은 총체적으로 오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발본적으로 전투적으로 온다

수치를 넘어 산술적 평준을 넘어

부문을 넘어 지역을 넘어 국가를 넘어

민족과 인종과 성의 분리와 차별을 넘어

착취받는 모든 존재의 굳건한 연대로, 총단결로, 총투쟁으로

전계급적으로, 전지구적으로, 전우주적으로

 

온다. 그것은 경이로움과 함께

무엇보다 내 안에서, 우리 안에서 온다

오랜 비만과 개량의 거푸집을 부수고

오랜 고립과 망상의 지하 생활을 뚫고,

오랜 위축과 자학의 번데기를 찢고

획일을 넘어 교조를 넘어

안일과 무지와 독선과 아집과 분열을 넘어

낡은 나와 우리를 찢는 고통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생명으로 아름답게 돌아온다

 

나의 당이, 우리의 당이

모든 피압박노동자민중의 당이 돌아올 때

이 모든 것이 돌아온다

독점자본의 금고 속에 억류당했던 인류의 모든 미래가 돌아오고

사람들이 빼앗겼던 온갖 자율적 창조적 권능이 돌아오고

자연의 모든 아름다운 가치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퇴행했던 모든 것이 뼈저리게 계면쩍게 돌아오고

생기 잃었던 모든 존재들이

새로운 생의 활기로 벅차게 돌아와

대지는 새로운 관계로 요동치고

역사도 비로소 비틀린 얼굴을 바로잡으며

환하게 돌아온다

 

하지만 잊지마, 동지들

이제 막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혁명은 과시나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을

혁명적 노동자당의 당파성은 문건의 주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권력 찬탈을 위한 상층의 이전투구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한 선전과 선동은

때로 아무 말하지 않고 흘리는 실천의 피 한 방울에 있기도 하다는 것을

보이지 않되 굳건한 조직의 신경망 세포 한 줄기 한 줄기에 시퍼렇게 서려 있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당당한 다수여야 하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자유로운 개인들의 창조적 발현이 모든 해방의 기초와 전제가 되는 세계의 건설

그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영예이며 기쁨이며 보람이라는 것을

 

잊지마, 동지들

당당하되 겸허하게

투철하되 아름답게

오늘부터 쓰여지는 새로운 세기의 역사가

우리의 자랑을 넘어

모든 피압박노동자인민의 자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마, 동지들

모든 것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그 전율을, 그 긴장을, 그 전쟁을, 그 환희를, 그 적개심을, 그 사랑을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불렀다는 것을

불러 깨워 함께 가자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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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

 

<노동자의힘>154호(종간호)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노동자의힘 10년은 결코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을 겁니다.

10여 년간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었던 동지들 모두가 다시 사회주의당에서 10년, 아니 그 이상의 희노애락을 함께 하자고 결의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함께 하지 못했거나, 혹은 함께 하다가 노동자의힘을 떠난 동지들이 사회주의당에서 함께 어깨를 걸 수 있다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노동자의힘 10년은 사회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의 역사는 물론,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노동현장, 사회의 현실, 그리고 일상에서 자본의 논리, 지배계급의 논리에 분노할 줄 알고, 분노할 뿐만 아니라, 그런 문제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 설득할 줄 알며, 나아가 상식과 일상의 논리로 반자본의 지적⋅정서적 공감과 투쟁을 조직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생태주의적 가치를 수용하면서 생활의 ‘불편’함을 즐겁게 감수할 수 있고, 여성주의적 가치를 수용하면서 일상의 ‘피곤’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으며, 직접민주주의를 위해 ‘효율성’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다면.

가장 인간적인 것을 가장 정치적이게 하고, 가장 일상적인 것을 가장 혁명적이게 하며, 가장 현장적인 것을 가장 전국적이게 할 수 있는, 거꾸로 가장 정치적인 것을 인간적이게 하고, 가장 혁명적인 것을 가장 일상적이게 하고, 가장 전국적인 것을 가장 현장적이게 할 수 있는 ‘혁명적인 센서리모터(Sensory Motor, 감각체계)’을 가질 수 있다면.

 

21c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 아니 살아남는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내팽겨쳐 버린 사회주의라는 꿈 하나를 미련하게 붙들고, 힘겹게 부둥켜안고 온 10년이었습니다.

‘노동자의힘’이라는 조직이 있었기에 함께 고통을 나누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미숙함과 정치적 견해의 차이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그 상처까지도 함께 보듬으면서 온 10년 세월이었습니다.

때로는 정치적 불명확함 때문에, 때로는 능력의 부족으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안팎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스스로 좌절하기도 했지만,

‘노동자의힘’이라는 전국적 정치조직이 있었기에,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에 아낌없이 함께 할 수 있었고, 또 현실에 대한 정치적 긴장과 실천을 팽팽하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지난 10여 년의 경험과 성과에 바탕하여 이런 바람을 가져봅니다.

21c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자’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서로를 ‘해방’시키는 과정이자 만남이었으면 합니다.

건설할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서로 머리와 가슴과 손발을 맞대서, 함께 ‘해방’을 상상하고 기획하고, 조직적으로 실천하고, 그래서 더욱 풍부하고, 더욱 설레이고, 더욱 즐거운 삶과 운동의 터전이었으면 합니다.

그 풍부함과 설레임과 즐거움이 노동자민중들에게는 ‘정치적 희망’으로, 지배계급에게는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로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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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힘 해산결의문

노동자의힘 해산 결의문

 

 

 

오늘, 우리는 노동자의힘의 발전적 해산을 결의했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의지로 발전적 해산을 결의했다.

 

해산을 결의했지만,

발전적 해산을 우리 스스로 결의했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노동자의힘’이라는 깃발을 결코 내릴 수 없다.

아니 결코 내리지 않을 것이다. 결의했지만. 스스로 결의했지만.

누가 우리를 해산시킬 수 있는가?

지난 10여 년간 우리의 삶이었고, 우리의 운동이었고, 우리의 거처였는데.

어떤 탄압도, 어떤 거친 논란도 우리를 가르거나 해체하지 못했는데.

10여 년간, 내부의 정치적 입장의 차이, 부문과 지역의 차이, 그리고 세대와 정서의 차이를 노동자계급정당,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이라는 방향 아래 모아왔는데.

노동자민중 속에서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하며 투쟁해 왔는데.

그래서 노동자민중들의 투쟁과 분리되지 않아 왔는데.

우리의 미숙함, 우리가 범했던 오류, 우리들의 갈등, 그 모든 것조차도 우리 자신의 것으로 함께 부둥켜안아 넘어서려고 했는데 ---.

누가, 누가 감히 우리의 깃발을 내리게 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아니다. 오직

우리만이, 우리의 의지만이 우리를 해산시킬 수 있고, 오늘 우리는 결의했다.

우리가 해산하려는 것은 ‘노동자의힘’이 아니다.

우리가 해산하려는 것은 사회주의 진영이 불가피하게 각각의 정파로서 존립할 수밖에 없었던 써클주의 시대의 조직이다.

우리가 내리려는 깃발은 ‘노동자의힘’이 아니다.

우리가 내리려는 깃발은 사회주의 정치역량의 미성숙으로 불가피하게 반의회주의, 반신자유주의를 내걸 수밖에 없었던 ‘반정립 정치’의 깃발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버림으로서,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한 시대를 매듭짓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던짐으로서,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려 한다.

우리 모두가 사회주의 정당 건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정당의 상과 전망에 대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조금은 더 함께 머물며 간극을 좁히고 싶지만,

조금 더 함께 준비하고, 가다듬고 싶지만,

그래서 아쉽고 또 아쉽고,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또 후회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돌이켜서는 안 될 발걸음을 내디디려 한다.

 

해산을 결의한 지금, 우리는

우리 앞에 다가올 현실이 장밋빛 미래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다.

어쩌면 지난 10년보다 더 크고 깊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해산은 ‘현실’이지만, 다가 올 미래는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해산을 결의했다.

‘반신자유주의’, ‘반의회주의’에 머물었던 좌파 정치운동의 한 시기를 매듭지어, 반자본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새로운 도정에 나서기 위해.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써클주의 시대를 매듭짓고, 이미 출범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의 한 주체로 힘 있게 서기 위해.

결의했다.

노동자의힘의 발전적 해산을.

 

우리는 우리가 겪었던 지난 10여 년의 경험과 성과가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새로운 출발에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가 범했던 숱한 한계와 오류마저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우리의 바람이 단지 우리만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기 바란다.

우리의 바람이 우리만의 바람으로 끝내지 않게 하는 것이 다시 우리 자신의 몫이 될 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바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지난 10여 년 전 노동자의힘이 출범할 때 가졌던 그 설레임으로, 그 열정으로,

다시 10년의 역사를 열어갈 것이다.

 

오늘 노동자의힘의 해소 결의는, 그래서

‘해소’ 결의만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결의이다.

노동자의힘만이 아니라, 이 땅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 당 건설에 함께 매진해 나가자는 절박한 제안이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서로 머리와 가슴과 손발을 맞대서, ‘해방’을 상상하고 기획하고, 조직적으로 실천하고, 그래서 더욱 풍부하고, 더욱 설레고, 더욱 즐거운 삶과 운동의 터전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그래서 21c 변혁의 주체로 서나가자는 결의이자 제안이다.

 

그 무엇도 아니다.

더 이상도 아니다.

오직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과 노동해방⋅인간해방을 모두 함께 해 나가야 한다는 큰 뜻만이, 그 의지만이, 그 열정만이 우리를 해산시킬 수 있고,

그래서 오늘 우리는 결의한다.

21c 변혁을 위한 사회주의운동의 주체로 서나갈 것임을.

 

 

2009.02.08.

노동자의힘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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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떤 유토피아 - 하나의 가능한 대안

어떤 유토피아 - 하나의 가능한 대안

 

앙드레 고르

 

그 날 아침잠에서 깨어나자 프랑스인들은 어떤 새로운 변화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자문해 보았다. 선거가 끝난 후 권력이 이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이미 기업의 점거사태가 수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폐쇄된 공장을 2년 전부터 점거하여 모든 종류의 실용품의 ‘자주생산’을 조직하기 시작했던 실업자들 속에는 다수의 해고된 노동자와 퇴직자 및 학생들이 가담하고 있었다.

 

커다란 빈집은 코뮨과 생산협동조합과 ‘자주학교’로 바뀌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새로 얻은 지식을 도입하여 교사의 협력이 있든 없든 토끼장과 잉어와 송어 양식장을 만들고, 금속과 목재를 가공할 기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권력이 이양된 다음날 아침, 직장에 가던 사람들은 처음에 깜짝 놀랐다. 밤중에 모든 대도시와 간선도로의 차도에 페인트로 흰 선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간선도로에는 버스 전용차선이 만들어지게 되고, 2급 이하의 도로에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탈 사람을 위한 차선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시가지의 입구에는 수백 대의 이륜차가 공중용으로 놓여 있었고, 헌병 및 경찰용의 대형버스가 버스를 보충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승차권은 팔지도 검표하지도 않았다.

 

정오가 되자 정부는 무료운임의 즉각 실시와 도시에서의 자가용차의 주행을 12개월 동안에 서서히 금지시킬 것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주요 도시의 중심가에는 7백 개 노선의 전철이 부설되든지 부활될 것이며, 12개월 후에는 2만 6천 대의 버스가 제조될 것이다.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부가가치세는 폐지되었고 즉석에서 이들의 값은 20퍼센트 떨어졌다.

 

밤에는 공화국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이상의 조치를 포함한 종합계획을 설명하였다. 대통령에 의하면 1972년 이래 프랑스의 GNP는 주민 1인당 미국의 수준에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여기서 차이는 잘 알려진 것처럼 낮게 평가되고 있는 프랑화의 변동에 따른 5내지 12% 정도이다. “바로 그대롭니다. 프랑스의 남녀 시민 여러분, 우리는 미국을 거의 따라 잡았습니다”라고 대통령은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특별히 자랑스럽게 여길 이유도 없습니다.”

 

대통령은 미국인의 생활수준이 프랑스인에게는 도달 불가능한 꿈과 같이 생각되던 시대의 일을 회상했다. “프랑스인 노동자가 미국인과 같은 임금을 받는 날이 온다면 반자본주의적인 이의신청도, 혁명운동도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주장했던 것은 불과 1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고 대통령은 주의를 환기시켰다. 상당수의 프랑스인 노동자와 사무노동자가 오늘날 미국과 같은 수준의 급료를 받고 있지만 그럼으로써 그들의 급진화가 방해받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닙니까? 왜냐하면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우리는 점점 더 어정쩡한 충족 상태를 위해 보다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족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경비가 늘어나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확대되었다고 해서 보다 큰 공정함과 보다 많은 휴식과 생활의 즐거움이 얻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길을 잘못 들었으며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이리하여 정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구조로써 다른 성장, 다른 경제’를 위한 계획을 입안했다.

이 계획의 철학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것이라고 대통령은 지적했다.

 

(1) 앞으로 우리는 보다 적게 일한다.

 

지금까지의 경제활동의 목적은 생산과 판매를 늘리기 위하여 자본을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생산과 판매를 증가시키는 목적은 이익을 늘리는 데 있으며, 그 이익은 재투자되어 다시금 자본의 증가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과정이 무한히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어느 한도를 지나면 이 과정은 증가하는 잉여가치를 파괴하지 않고는 계속될 수 없게 된다. 대통령은 말했다. “우리는 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노고와 자원을 낭비함으로써만 비로소 외형뿐인 완전고용을 실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장래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보다 적게, 보다 잘 일해야 할 것이다. 국무총리가 이러한 방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할 것이다. 대통령은 즉시 원칙적으로 성인은 일손이 있든 없든 간에 필요한 것을 모두 얻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즉 사용 가능한 노동력의 극히 일부만으로도 주민 모두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정도로 생산기구의 기술적 효율이 높아지는 날에는 전일제(full-time) 일을 맡는 사람에게만 전일제분의 수입을 얻을 권리를 주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이제 자유노동과 자유시간의 권리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2) 앞으로 우리는 보다 알차게 소비한다.

 

지금까지의 제품은 그것을 제조하는 회사가 최대한의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고안되어 왔다. 대통령에 의하면 “앞으로, 제품은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도 또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최대한의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고안되어야 할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각 부문의 지배적 기업은 사회적으로 소유될 것이다. 기업의 임무는 각 영역에서 한정된 수의, 품질이 같은 표준 모델을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충분한 양만큼 제공하는 데 있다.

이러한 모델을 고안하는 데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기준, 즉 내구성, 수리의 간편성, 제조 과정의 즐거움, 공해를 일으키지 않을 것을 따라야 한다. 제품의 내구성은 사용시간으로 표시되고 값 옆에 명기하는 것이 의무화될 것이다. 대통령은 주석을 달았다. “이 제품에 대해서는 매우 큰 수요가 외국으로부터 있을 것을 예상해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품은 세계에서도 가장 독창적이기 때문입니다.”

 

(3) 앞으로 우리는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에 문화를 포함시킨다.

 

지금까지 학교의 발전은 전반적인 무능력의 발전과 나란히 진행되어 왔다. 대통령에 의하면, 우리는 이렇게 해서 육아법과 조리법과 노래 부르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요리와 노래는 임금노동자가 통조림에 담아 제공하고 있다. 대통령은 주의를 환기시켰다. “우리는 국가의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만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울 자격이 있다고 부모가 믿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현재 소비하고 있는 재화와 서비스가 질이 나쁘다고 비난하면서도 획득한 자유시간을 전자공학적으로 날려버리는 일을 직업적 연예인에게 맡기고 있다. 대통령에 따르면 모든 개인과 집단이 자신들의 생활, 생활환경, 상호교류를 조직화할 수 있는 권력을 되찾는 것이 긴급한 과제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그리고 공동체적인 자율을 재정복하고 확대하는 것이 국가장치에 의한 독재를 파괴하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대통령은 국무총리에게 발언을 넘기고 변혁을 위한 계획을 설명토록 했다. 총리는 우선 사회화될 29개의 기업 혹은 회사의 명단을 낭독했다. 그것의 반 수 이상은 소비재 부문에 속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보다 적게 일하고’ ‘보다 알차게 소비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즉시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들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근로자 자신에게 맡겨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총리는 말했다.

“초안을 짜는 일은 분업으로, 모든 결정은 전원 공동으로 행한다”는 리프에서 완성된 방법을 따르며, 총회와 전문화된 작업 그룹 별로 회합을 갖는 것은 근로자의 권리이다. 총리의 어림으로는 근로자가 외부의 조언자와 이용자 위원회의 협력을 얻어 한정된 종류의 모델/품질규격/생산목표를 결정하는 데는 1개월쯤 걸릴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관리 방법은 이미 프랑스 국립경제통계연구소(INSEE)의 반(半)비공개 그룹에 의해 안출되어 있었다. 총리에 의하면 다음 달 중에 생산은 오후에만 하고 오전 동안은 집단적 준비로 할당할 것이라고 한다. 근로자가 스스로 정해야 할 목표는 일주일의 노동시간을 24시간으로 줄이면서, 생활필수품에 대한 모든 수요를 그들의 생산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다. 근로자의 실제 수는 당연히 증가할 것이다. 일하고 싶은 남녀의 수에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총리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각자가 같은 기업에서 어느 때는 일주일에 24시간 이상, 어느 때는 24시간 이하 일하도록 근로자가 조직하는 것은 물론 자유이다. 또한 어느 기간은 겸임으로 동시에 두세 가지의 일을 하거나, 여름이 끝날 때는 농업을 하고 봄에는 건설에 종사하는 등 요컨대 동시에 몇 가지 직업에 몸을 담아 실천하는 것도 자유이다. 일주일 24시간 노동에 월 2천 프랑을 받는 것을 평균 임금으로 하는 것이 양해된다면 이상의 목적을 위해 일손 교환용의 기금을 설치하는 것도 근로자의 권리일 것이다.

 

두 사람이 그들에게 제공되는 집단적 편의와 서비스를 고려할 때 월 2천 프랑을 가지면 상당히 훌륭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총리가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강요되지는 않는다. “사치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치는 노동에 의해서 획득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점에 관해서 총리는 다음과 같은 실례를 들었다. 별장 한 채는 약 3천 시간의 노동에 해당한다. 별장을 한 채 사고 싶은 사람은 일주일당 24시간 이외에 손작업이든 건설업이든 3천 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가운데 적어도 1천 시간의 노동은 별장을 손에 넣기 전에 제공되어야 한다. 자가용 승용차(약 6백 시간의 노동에 상당)와 같이 불필요한 것으로 분류된 다른 물건도 같은 원리에 따라 입수할 수 있다. “돈이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물건의 가격을 노동시간으로 평가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환기시킨 후 총리는 덧붙여 이 노동(즉 가격)은 급격하게 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약간 손재주가 있는 아마추어가 천 5백 시간을 들이면 스스로 지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견고한 영구’ 주택의 모든 부품을 불과 5백 시간의 노동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어떤 기초 공동체도 스스로가 소비하는 물건의 최소한 절반은 생산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생산단위를 분산화하고 소형화함으로써 서서히 상품생산과 상품교환을 폐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총리는 언명했다. 왜냐하면 모든 낭비와 좌절의 원천은 “누구도 자신이 생산하는 물건을 소비하지 않으며, 또한 누구도 자신이 소비하는 물건을 생산하지 않는”데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로운 방향에로의 제 1보를 내딛기 위하여 정부는 자전거산업으로부터 생산을 즉시 30%늘인다는 확약을 얻었다. 게다가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절반은 ‘조립세트’의 형태로 판매되어, 이용자가 스스로 조립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상세한 제작법이 이미 인쇄되어 있으며, 필요한 도구류 일체를 구비한 조립대가 지체 없이 관공서/학교/경찰서/병영/공원/공공 주차장 등에 갖추어질 것이다.

 

총리는 장차 기초공동체가 다음과 같은 종류의 것을 솔선해서 발전시킬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거리마다 마을마다 아니 커다란 공동주택마다 자유로운 창조와 생산을 위한 작업장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여가시간 동안에 비디오와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포함한 점점 완벽해지는 용구류 일습을 가지고 바라는 대로 물건을 만들어 낼 것이다.

즉 24시간 노동제인 데다가 자원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돕고(아이들 돌보기, 노인 보살핌, 지식의 전달) 바람직한 집단설비를 공동으로 만들기 위하여 스스로 조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해주는 것인가?’라고 묻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총리가 부르짖었다. “정부의 사명은 인민의 손에 권한을 양도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총리는 이어서 새로운 사회의 요체는 교육제도의 개정에 있다고 했다. 학교교육을 받는 동안에 모든 어린이들은 흙/금속/목재/천/돌을 사용하여 세공하는 데 익숙해지고 이러한 활동과 관련하여 역사와 과학, 수학과 문학을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총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무교육이 끝난 후 5년 동안 각자는 전일제 노동의 소득을 얻는 주 20시간의 사회적 노동과 자신이 택한 연구 내지 실습작업을 병행하게 된다. 사회적 노동은 다음의 네 가지 분야 즉 농업, 제철업/광업, 건설업/공공 토목사업/공중위생, 환자의 간호/노인과 어린이의 돌봄 가운데 한 혹은 몇 가지를 행해야 하는 것이다.

총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어떠한 학생(노동자)도 3개월 이상 계속하여 청소부나 병원 노동자, 인부와 같이 극히 소모적인 일을 하도록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누구나 45세가 될 때까지 연평균 12일씩 이 일들을 떠맡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부호도 천민도 없게 될 것입니다”라고 총리가 외쳤다. 밤낮으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고 여러 과목에 걸친 자주교육/자주연수를 행하는 기구가 벽촌에 사는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는 680개소에 2년 안에 설치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에 반대되는 작업 속에 갇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노동(교육)의 마지막 해에 학생(노동자)은 작은 자립적인 그룹으로 나누어져, 미리 지역공동체와 논의해 둔 독창적인 제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총리는 이렇게 많은 자발성이 발휘되어 프랑스 중앙부의 과소지대(過蔬地帶)가 새로운 생명을 얻으며, 그곳에 생태계를 존중하는 농업이 재도입되는 데 대한 희망을 표명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가 자동차 연료와 공업용 중유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비프스테이크를 위해 미국의 대두(大豆)에 의존하고, 곡물과 야채를 위해 석유화학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국토의 방위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토의 점령을 요청 합니다”라고 총리는 말했다. “민족의 주권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양하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매년 10만 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점점 더 돌보지 않게 되는 지방에 살면서, 그곳에서 유기농법, 목축과 더불어 ‘부드러운 기술(soft technology)’을 재도입하고 완성하도록 격려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바람직한 모든 과학적/물질적 원조가 5년간에 걸쳐 이 새로운 농촌 공동체에 제공될 것이다. 이들 공동체는 세계적인 굶주림과의 투쟁에 원자력 발전소와 살충제 공장의 수출 이상으로 공헌할 것이다. 총리는 이야기를 끝마치면서, 상상력을 북돋우고 사상의 교류를 자극하기 위해서 앞으로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TV의 방영을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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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변혁을 이야기하자 - 문제는 ‘자본주의’다! ‘변혁’이다!

21c 변혁을 이야기하자

문제는 ‘자본주의’다! ‘변혁’이다!(2007.11.07.)

 

먹고 살아가는 조건, 활동하는 조건이 바뀌고 있다

 

이번 교양강좌의 커다란 주제는 21세기 변혁에 대해 얘기하자입니다. 제가 문제는 자본주의다, 변혁이다라고 세게 얘기했어요. 왜 이런 문제들을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가, 동지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했어요. 동지들 일 마치고 힘드실 텐데 과연 이런 얘기가 어떤 의미 있을까 생각했어요. 당장 먹고 사는 문제 힘든 조건 아닙니까. 다들 노동조합 활동 열심히 하시는데 노동조합 활동 그 자체도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다 변혁이다 이런 얘기가 어떤 의미인가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12월 대선 앞두고 다들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얘기하는 상황에서 21세기 변혁을 어떻게 얘기 드릴건가 고민했는데요, 요지는 이렇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먹고 살기 힘든 이유가 문가, 왜 노조활동이 어려워지고 있는가, 대선을 통해서 노동자 민중의 삶에 변화가 올 거라는 확신이 안 드는 이유가 뭘까, 이런 것에 대한 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지들과 얘기하고 싶은 것은 과거에는 우리가 노력하면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었고, 노동조합도 나가자 하면 현장이 다 따라주고, 민주적으로 활동하면 조합원의 힘 모아낼 수 있었죠. 문제는 먹고사는 조건이 변화하고 있고 또 노동조합 활동하는 조건이 변화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이야기 못하면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깁니다.

이번 다섯 번의 교양강좌도 이런 취지에서 마련된 것입니다. 결론은 지금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제의 핵심이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이고,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해 나가는 변혁의 전망 없이는 먹고사는 노력, 노동조합에서의 활동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얘기 드리고 싶습니다.

 

경제의 양적 지표가 아닌 구조적 위기에 주목해야

 

이제 21세기 아닙니까. 한국사회에서 자기노동을 통해서 평범하고 건전하게 살아가려는 노동자 민중들은 한국사회에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세 가지 점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가 경제에 관한 것입니다. 경제문제는 이번 대선에서도 가장 쟁점입니다. 이명박이 50% 넘는 지지를 받는 이유도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고 풀어줄 것 같은 얘기를 하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이런 경제현실은 과거와 현실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성장한 만큼 고용이 증가했습니다. 이런 구조가 지금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5% 가까이 되요. 이 한국의 경제규모에서 작은 수치가 아닙니다. 경제의 양적인 지표 문제만 보면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민중들이 먹고사는 경제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동지들도 알다시피 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해서 경제구조가 획기적으로 전환됐습니다. 그게 신자유주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라는 거죠. 이 자본축적운동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아무리 경제성장률이 높아져도 임금상승이나 고용보장이 안 되는 구조로 가고 있다는 거죠.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는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도 정규직에게는 끊임없이 고용불안과 실업의 위협을 가하고, 비정규직을 생산해 내고, 중소자영업자 농민들을 끊임없이 해체시켜 하강분해 시키지 않으면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구조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처럼 경제성장률에 높아지면 삶이 펴질 거다는 전망이 불가능한 구조로 변했습니다. 이 과정들은 우리사회를 양극화시켜내고 부와 재화를 소수의 손에 집중시켜내고 다수의 대중들이 빈곤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우리가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고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도 쉽게 안 되는 거죠. 우리가 한국사회에 구성원으로서 사회 전체에 이 문제를 제기해 나가야 된다. 경제의 양적 지표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자체에 문제제기하지 않게 되면 해답을 찾기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게 첫 번째 판단입니다.

 

민주주의 문제, 계급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두 번째, 한국사회는 80년 광주민중항쟁과 87년 6월 항쟁 7~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서 일단 군부독재를 청산해 냈습니다. 그 이후에 20년간에 걸쳐 민주주의 문제는 일정정도 진전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성과의 하나로 지금 민주노조 민주노총도 있는 것이죠. 올 초에 노무현은 87년 20년 기념식에서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말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노동자 민중들이 민주주의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거죠.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진전되었습니다. 군사독재 때 체육관에서 대통령 뽑다가 지금은 국민투표로 선출하는 것, 그리고 지자체 선거가 90년대 초반부터 실시가 되었죠.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건 별개로 하더라도 어쨌든 형식적이고 절차적으로 민주주의 진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경우도 조합 위원장은 직선제로 뽑는데, 다 같은 맥락입니다. 국가 행정에서의 특권이나 부패는 조금은 없어지고 있죠. 그래서 노무현은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있죠. 그런데 과연 민주주의 문제를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문제로만 한정할 거냐는 거죠.

 

이런 형식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세계화가 전면화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도 동시에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양극화와 빈곤의 문제가 심화되면 저항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범죄가 증가되거나 빈민층이 우범화되거나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요소들이 쌓여나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때 국가 권력은 질서와 안전이란 이름으로 안보란 명분으로 과거와 달리 민주주의를 후퇴시켜나가는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민주적인 기본권을 제약하는 시도를 하구요. 집회 결사와 관련된 이 부분을 제약하는 법률적인 조치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노동자 빈민 민중들을 통제하기 위해 국가권력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동지여러분도 신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노무현은 큰 정부를 지향하고 한나라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신자유주의 정권은 기업과 가진 자에게는 약한 정권이 됩니다. 자본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거든요. 그런데 노동자 민중에게는 강한 정부로 군림하게 됩니다.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의 논란은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는 문제의 초점이 아닌 거죠.

 

또 하나 민주주의 문제에서 주목할 점은 노무현정권이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 그런데 노동자 농민의 시위 때문에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말해요. 이게 뭘 의미하느냐. 노무현 정권과 지배세력은 그 민주주의 문제를 의회 민주주의 체계로만 보는 겁니다. 지난 20년 동안 국회를 중심으로 협상하면 되는 문제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노동자 농민은 의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집단적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과거에는 우리가 민주노조운동을 하면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진전시켜 왔죠. 그런데 지금은 이 노력이 민주화를 훼손하고 있다는 공격을 받고 있는 현실이라는 거죠. 그래서 언론을 통해서 집단이기주의다라고 공격을 받고 있는거든요. 이제 민주주의 문제는 뚜렷이 구분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는 그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계급적인 입장에 따라 분화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는 거죠. 의회민주주의 제도화시키려는 입장이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수렴하고 해결한다면 문제가 없겠죠.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하지만 의회 밖에서의 대중투쟁에 기초해서 우리의 이해를 관철하는 게 불가피한 상황인데 이것은 마치 민주주의가 아니 것처럼 왜곡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거냐. 민주주의의 생각을 계급적으로 잡아나가야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정세, 모순된 두 프로세스

 

세 번째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한반도의 정세변화입니다. 최근에 북핵문제에 대한 6자회담에서 2차합의서 작성했죠. 북핵문제는 올해 말까지 2.13조치를 진행시켜나가기로 했습니다. 과거의 대립적인 구도에서 지금은 뭔가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4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8개항 합의를 했죠. 이 합의를 통해 남북경협도 이루어지고 한반도 평화체제 진전의 가능성을 모색했습니다. 북핵 문제의 진전과 남북 간 상황을 보면 뭔가 문제가 풀려나가는 것 아니냐는 판단이 가능합니다. 물론 북핵문제가 해결안 되고 남북한이 군사적인 긴장으로 가는 걸 우리는 막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상황은 진전된 상황입니다. 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정세변화는 우리가 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 큰 변화가 이루어지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세가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묻고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평택 미군기지 이전투쟁에서도 드러났지만 한미동맹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세계전략의 재편 계획에 따라 재편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동북아 지역 전략목표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잠재적인 적국으로 설정해서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게 21세기 미국의 핵심적 전략적 목표인데요, 이 과정에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한미동맹을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서 북한이 남침할 경우에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지금 새롭게 추진되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 주한미군 평택기지로 옮기는 것, 전시작전통제권을 남한 측에서 환수하는 것은 바로 주한미군이 북한과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어디든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중국 동남아로 빠져 들었나 나갈 수 있는 군사기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지금 이미 정부 간의 수준에서 작년 올해 초까지 합의 이루어지고 있고, 그 바탕에서 여러 군사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의 성격이 지역동맹으로 전환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대만문제의 경우 중국이 대만을 치면 자연히 미국이 자동적으로 개입하게 되었고 미일 동맹에 따라 일본도 개입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 한미동맹에 따라 한국도 개입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지역동맹화이고 중국을 겨냥한 침략동맹화하는 걸 내포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한반도 문제는 모순된 두과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하나는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평화적으로 나가는 걸로 보이는 부분도 현실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는 그 이면에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성격을 지역동맹화하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을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동맹체계가 서 나가게 되면 어느 순간 전쟁의 상황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런 모순된 상황에 있죠. 이 점에 주목을 하고 북핵과 남북관계로만 우리의 시야를 가둬둘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 재편의 과정에서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바로 이 문제는 이후 우리의 삶과 행동, 노조활동에 다 연동해서 들어오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 어떻게 대응할 건가를 지금부터 분명히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자본과 지배계급의 출구, 한미 경제통합과 제2 구조조정

 

지금 21세기에 우리의 삶의 조건, 노조활동의 조건, 우리 생존의 조건에서 우리가 평범한 민중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이 세 가지 부분에 주목하고 이점에 대해 대응을 고민하고 방안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의 여러 정치사회세력들이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격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미 FTA의 경우를 보면, 이 문제를 한국의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이 이 현실을 극복할 것인가의 대답으로 제출한 것입니다. 핵심은 한국자본이 이 구조적 위기를 하나는 한미 경제통합을 통해, 즉 미국 중심의 자본질서에 깊숙이 편입해 들어가면서 동북아지역에서 한국 자본이 경쟁력을 가지고 이 위기를 돌파해 나가겠다는 전략이거든요. 이 힘을 가지고 중국이나 일본에 대응해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핵심은 IMF 외환위기 때, 그때는 위기 공세에 바탕을 두고 구조조정을 전면화했죠. 그때 노동자들은 잘 몰랐죠. 그때 금모으기 운동 하고 그랬죠. 근데 그 과정을 통해 지난 10년을 보면 외환 빚은 3~4년 만에 다 갚았어요. 그 다음엔 기업 빚을 다 갚은 거에요. 부실한 기업 빚을 구조조정을 통해 갚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 기업은 현금보유고 많이 갖고 있습니다. IMF 10년을 통해 나라빚 갚고 기업빚 다 갚았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당한 노동자 자영업자들은 실업상태나 비정규직 상태로 떨어지고, 개인빚으로 먹고사는 상황에 직면했죠. 지금 우리 국민 개인이 금융기관에 갖고 있는 빚이 600조가 넘습니다. 그런데 과잉유동자금의 경우도 600조가 넘어요. 한국의 자본은 이 과정을 통해 일정 위기를 극복했는데 이 정도 갖고는 세계화 과정에서 경쟁력 같기 힘들다고 판단한 거죠. 구조조정을 해야겠다고 판단한 거죠. 구조조정 하려면 예전같이 외환위기 같은 계기가 없죠. 제2의 구조조정을 전면화하려면 외부충격이 필요한 건데 그게 한미 FTA라는 겁니다. 한미 FTA가 되면, 지금은 자동차 섬유는 이익이고 농업은 피해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그건 천만에입니다. 한국 전체산업이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선 어떠한 저항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수구보수세력이든 자유주의개혁세력이든 FTA 다 동의하고 있잖아요. 자유주의 개혁세력 일부만이 반대하고 있는 거죠. 이것이 신자유주의 지배세력 전체거든요. 이 세력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위기를 한미FTA의 전면화를 통해서 풀어나가겠다는 거죠.

 

지난 10년에 걸쳐서 엄청나게 많은 유동자금이 600조가 넘게 흘러다니고 있습니다. 돈 되는데 몰려다니고 있죠. 어떨 때는 증시에 갔다가 어떨 때는 부동산에 갔다가 말입니다. 이 600조가 넘는 자본의 탈출구를 어떻게 마련해 줄 것인가가 정부의 중요한 정책의 하나가 됩니다. 그런 방안의 하나로 해외투자도 많이 풀었죠. 그리고 이 돈이 투자된 만한 가장 적합한곳이 북한인거죠. 그렇죠. 북한의 노동력과 이 자본이 결합하는 것이 유력한 탈출구인거죠. 이미 중국에 대한 투자는 한국자본의 입장에서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북관계의 진전도 사실은 유동자본의 출로를 찾는 게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이번에 남북정상회담 할때 노무현이 누구를 데려갔습니까? 조선소사장, 자동차사장, 서비스 관광쪽 사장해서 대기업들로 포진했죠. 기존에 개성공단은 옷과 신발 만드는 중소규모였다면, 앞으로는 대기업 중심으로 남북경협으로 재편하는 과정인거죠. 이 과정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가 요구되는 거죠.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은 바로 FTA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을 전면화하고 이를 통해서, 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하나는 북한쪽으로는 자본수출의 출로를 마련해주고, 국내적으로는 제2의 구조조정을 전면화하면서 돌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전면화한다는 건 뭘 말하느냐, 외환위기와 비교할 수 없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민주화론’에 갇힌 진보진영

 

이른바 진보진영의 경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응해 나갈 건가, 최근 몇 년 동안 논의가 이루어져 왔는데요. 진보진영도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죠. 노무현 정권이 그간 진보 개혁세력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듯하면서 이 과정을 다 말아먹은 거 아닙니까. 이제 민주화세력 진보세력은 무능하고 부패하고 기댈 거 없다, 이런 상황을 만든거죠. 이런 과정에서 진보진영도 좌파진영도 독자적인 전망 못 만들어 냈어요. 민주노동당을 조차도 현 노무현 정권과 비슷한 세력으로 인식이 되지 이를 대체할 세력으로 안 되는 거죠. 대선과 관련해서 여론조사를 해보면 열린우리당 지지율 낮아지면 거꾸로 민주노동당 지지 올라가야 될 거죠. 그런데 그렇지 않죠. 민노당은 대안세력으로 서있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은 민주노동당이 자유주의 개혁세력이라는 열린우리당의 대체할만한 새로운 정치세력이라는 걸 부각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몇 % 득표가 나올지 확인해봐야겠지만 만만치 않을 것이라 판단합니다.

 

진보진영도 지난 20년간의 민주화의 모든 성과를 바탕으로 진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까 변화의 과정에서 진보진영 자체도 위기에 직면하게 되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해 왔습니다. 이것이 언론이나 학계를 중심으로 안들이 나왔는데 예를 들면 생태평화사회민주주의사회를 건설하자는 안도 나오고, 또 노동중심통일경제연방론도 나왔고, 사회투자국가론도 나오고, 사회연대국가론, 신진보주의 국가론 등등 이런 안들을 얘기하는 거예요.

좌파진영에서도 지난 6월 맑스코뮤날레에서 논쟁이 벌어졌어죠.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국가문제, 변혁의 주체문제 어떻게 할 거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진보진영과 좌파진영이 한국사회 발전방향 놓고서 논의했고요, 이번 대선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방안을 얘기하는 거죠. 예를 들어 권영길 의원은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건설하자라고 얘기하고, 노회찬 의원은 제7공화국 건설 헌법개정운동을 하자라고 얘기하고, 심상정 의원은 3박자 경제론을 얘기합니다. 그다음 사회당의 경우는 사회공화국을 건설하자 얘길 합니다. 이렇게 얘기가 나오는 것들이 앞서 세 가지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할 지 말하는 겁니다.

 

이 논의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내용적으로는 87년 이후에 한국사회의 발전 민주화 과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거냐,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현실에서 한국경제가 어떤 발전방향을 가져갈거냐,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는 어떻게 마련될거냐 등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부분을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논의들을 보면 몇 가지 문제가 있어요. 첫째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이 문제들 빈곤의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 환경오염의 문제, 범죄의 문제 고용의 문제의 근원이 자본주의 자체에 있다는 거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신문을 보시면 알겠지만 자본주의가 문제다 이런 거 없죠. 모든 대안모델이 자본주의 그 자체의 존속을 전제하고 있어요. 전제된 그 속에서 경제를 어떻게 할 거냐 복지를 어떻게 할 거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진보진영의 그동안의 논의가 그렇다는 거거든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다는 거죠.

 

두 번째로는 대선과 총선이라는 권력재편기와 맞물리면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형식으로 안과 정책이 제출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이렇게 하겠다, 그래서 국가 정권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이렇게 논쟁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한국사회이 여론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소위 뉴라이트와 뉴레프트로 재편하려는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진영의 발전방향은 다들 뉴레프트의 발전방향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거기에는 소위 자본주의가 문제다 변혁을 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제외시키는 겁니다. 물론 그건 좌파진영이 적극적으로 안을 내오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직면하는 문제에 대해서 좌파진영도 발언해야 한다. 21세기 변혁에 대해 얘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87년도에 6월 민중항쟁과 7~9월 노동자투쟁시기 한국사회 최대의 화두는 민주주의 문제였죠. 지난 20년 동안 모든 과정의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국가권력의 민주화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노동조합의 민주화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또 한 가족 내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렇게 모든 것이 민주화의 문제였고 그런 민주주의란 잣대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봐라봤었어요. 현장 내에서도 그렇죠. 부모자식관의 관계도 그런 점에서 많이 바뀌잖아요. 이전의 가부장적인 관계들도 이제 애들이 그렇게 안 받아들이잖아요. 얘들도 이제 바뀌잖아요. 다 민주화의 성과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놓친 게 있습니다. 자본운동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를 놓쳤어요. 노동운동도 그렇습니다. 자본진영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축적전략을 변화시켰거든요. 그게 우리가 신경영전략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신경영전략이 나중에 신자유주의로 전면화되는 거든요. 좌파운동도 그렇고 노동운동도 그렇고 이 부분에 제대로 대응 못했어요. 김영삼정부때 신노사관계를 제안하면서 정리해고제 도입하고 노동법개정을 맞바꾸자라고 했을 때 다들 판단기준이 그때는 민주노총 합법화가 민주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꿀 수 있다고 지도부는 생각했던 거죠. 혼란에 빠져버린 거예요. 노동운동에 대한 통제도 예전에는 민주냐 아니냐에서 이제는 자본에 의한 통제로 바뀌어졌는데 우리가 못 봤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에요. 자본의 흐름에 대한 대응은 이른바 반기업정서라는거 있었죠. IMF외환위기 이후에 재벌퇴진론 제기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다 사라져버렸죠. 지금 한국사회에서 영향력과 신뢰에서 가장 높은 곳이 삼성을 비롯해 독점대기업들입니다. 10년 동안에 완전히 역전되었어요. 바로 이러한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 자본과 기업 자체에 대한 정치적인 문제제기를 못하고 다 누수된 결과 지금 이런 현실을 맞게 되었다는 거예요.

 

문제는 ‘자본주의’다!

 

좌파운동 내부에서 신좌파라고 얘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령 결국 대안사회 얘기하지만 현실사회주의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본주의를 극복한 사회도 역시 스탈린주의라는 현실로 떨어진 거 아니냐, 가령 권력관계라는 건 다 똑같은 거 아니냐, 노동조합도 나중에 보니 권력관계가 되더라, 그렇게 때문에 권력자체가 문제다라는 문제제기를 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했어요. 이게 소위 신좌파라는 흐름인데요. 물론 이들 문제제기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민주화하는데서 가부장제 극복이라든지, 조직 내에서 권위주의를 극복하는 문제라든지, 또는 전체운동에서 스탈린주의라는 일당 독재체제나 개인숭배를 극복하는 문제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많은 부분 문제제기 해나가고 있어요. 그런데 그들도 권력자체에 대한 문제로만 제기하면서 뭐를 놓쳤냐 하면 자본에 의한 지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거죠. 바로 그 결과로 지금 우리는 거꾸로 외환 위기에서 척결해야 했던 대기업 재벌 등이 가장 신뢰 있고 앞서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끔 만들어버렸다는 거예요.

 

IMF 외환위기 이후에 좌파진영 중심으로 반신자유주의 전면에 제기했어요. 요즘 들어 반신자유주의 문제는 진보진영 다 동의해요. 그런데 반신자유주의 전망을 어떻게 할 거냐를 놓고 내부에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문제를 정책수준으로 놓고 보는 경우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철회해서 사민주의적인 전망을 가져가자 이런 입장이 있고요. 다음에 신자유주의는 정책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그 자체의 문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제기의 결론으로서 크게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라크 전쟁은 전쟁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현실에서 확인시켜 줬는데, 이런 전쟁의 문제나 빈곤의 문제, 고용의 문제, 범죄의 문제의 핵심적인 근원에 자본주의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문제가 뭡니까. 결국 인간에 의해 인간을 착취하는 체계 아닙니까. 그건 생산수단을 소수가 독점하는 거죠. 그 소수의 이윤을 위해 모든 사회적인 재화가 소비되는 체제죠. 그 결과로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나타나고, 최근에는 80대 20사회, 10대 90사회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바로 그것의 결과로서 자본 간의 경쟁들이 격화되면 전쟁이 벌어지고, 또 투기자본들이 몰려다니다가 언제 또 금융공황으로 갈지 모르고 있는 상황, 전쟁을 통한 대량학살들, 그리고 한 사회 한 기업 내에서 고용불안 비정규직화, 노동유연화 아시죠. 성과급제 정리해고제 이제 거의 다 동원되고 있죠. 공무원 좀 남아있고 교사가 좀 남아있죠. 교사의 경우 교원평가제 도입돼 버리면 그건 유연화 끝나버리는 거죠. 공무원 쪽도 퇴출제라든지 연봉제등 전체 유연화시키고 있죠. 노동자의 삶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든다는 거, 자본에 돈이 되는 흐름에 노동력을 맞춰나가는 구조를 제도화시키는 것, 노동자도 당연히 이렇게 살아가는 거다. 자본은 그런 논리를 내면화시키는 거예요. 마치 자신의 욕구인 것처럼 가치관 자체도 바꾸는 거예요. 이런 흐름이 진행되고 있는거예요.

 

그런데 이 자본주의 문제를 제기하는 건 현실에서는 참 어려운 문제에요.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고 어릴 때 교육받았죠. 너무 당연한 거죠. 주어진 이게 사는거다라고 생각하지, 이걸 자본주의 구조적 문제라고 인식하는 건 일상적으로는 쉽지 않죠. 그러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저항을 하게 되면 즉각 통제와 탄압이 들어오죠. 무섭게 자르든지 그래서 그런 가치관을 내면화시키는 거죠.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 체제는 유지해 들어가는 거죠. 그러나 이 자본주의라는 거는 인간의 인류역사에서 영원불멸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역사 속에서 몇 백 년 전에 탄생한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거예요. 이게 인류 역사의 끝도 아니에요.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가 있다는 거거든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체계를 넘어서고 극복하는 새로운 사회의 전망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가능하다는 겁니다. 물론 다음번 강의에서도 나오겠습니다마는 현실에서도 그런 노력을 해왔고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 모순이 누적된 상황을 보게 되면 10~20여년 내에 이 모순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건 자본가진영 내부의 이론가들도 얘기를 합니다. 그들도 위기의식을 갖는 정도라는 거예요. 전쟁이라든지 공황이라든지 아니면 저항이 심화된다든지 하는 이런 상황에 다가올 거라는 거죠.

 

문제는 ‘변혁’이다!

 

어쨌든 자본주의가 문제고 이 자본주의는 영원불멸한 게 한계 아니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기에 생긴 문제라는 겁니다. 예전에 우리는 한국자본주의가 천박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 주장 속에는 한국자본주의를 합리화시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자본주의는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고 있고 이미 굉장히 많이 합리화된 자본이거든요. 그런데 합리화되면 될수록 바로 여기서 얘기하는 문제들이 더욱 더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게 자본주의입니다. 바로 이 자본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거냐에 대한 논의하고 실천방향 찾아내야 합니다.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현실을 자각하는 시점이서, 바로 이것을 개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느냐 아니면 이것을 뒤집어야 하느냐, 즉 변혁을 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거죠. 개혁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히 그런 역사는 없습니다. 조금 조금씩 개혁을 통해서는 자본주의 근본문제 해결 안 될 거라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사회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변혁할 것인가에 대한 걸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얘기하면 아직도 그 얘기 하냐,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불가능하다 이런 생각 박혀있어요.

 

변혁과 새로운 사회의 건설은 역사의 필연입니다. 현대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할수록 변혁은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하나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그런 국면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게 뭐냐면 보통 공황이나 전쟁이나 이런 상황들이 창출되는 거든 요. 또 하나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그 자본주의가 사회 전반을 시장논리로 재편해 들어가는 거잖아요. 환경문제든 여성문제든 인권문제든 이젠 자본과의 문제에서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건 노동운동뿐 만아니라 여러 부분운동들도 반자본이라는 전망 속에서만 해결방향을 찾을 수밖에 없고, 그런 주체들이 형성되어 나갈 거예요. 그런 점에서 현 시기에 변혁이라고 하는 문제는 꿈을 꾸는 문제가 아니고 역사적 필연의 문제라는 거죠.

 

그 다음에 이것이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우리가 토론을 통해 가능한 방안을 찾아내는 거든 요. 그다음에 실천을 통해 검증해야 하죠. 지레 불가능할 것 같다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변혁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때만이 현대자본주의가 만들어낼 지 모를 엄청난 참변이라든지 그런 걸 극복할 수 있다는 거죠.

대다수 노동자민중인 힘없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과정 속에서는 현실을 뭔가 바꿔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내 삶도 버겁고 현장 하나 바꿔내기도 힘든데 저 거대한 힘을 우리가 어떻게 변화시켜낼 수 있냐는 거죠. 근데 특정한 정세 하에서는 그런 위기의 국면에선 집단적 변혁에 그런 사람들이 전면에 나섭니다. 화려한 휴가 보셨죠. 그때 광주민중들 초기에 특전사가 총들이고 나올 때 처음엔 엄두 냈겠습니까. 학생들 일부가 먼저 시작해서 싸운 거잖아요. 어느 국면에선 그들이 힘이 없다라는 걸 넘어서는 국면이 있는 거거든요. 노동조합운동도 마찬가지죠. 지금은 힘드시겠지만 한때 이 현장을 다 변화시킬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가질 때 있었잖아요. 현장의 조합원들도 그런 국면에선 전면에 나섭니다. 이게 변혁입니다. 변혁이라는 건 그 대상인 이 현실만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고 바로 변혁을 해나가는 주체를 변화시킵니다. 바로 그 주체는 변혁의 운동과정에서 변해나간다는 거죠. 인간도 변화시킨다는 겁니다. 변혁은 두 측면을 갖고 있고, 이 양측 면을 다 봐야 합니다. 일상적인 시기, 개혁적인 것으로는 대중들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죠. 자꾸 대리주의가 나오고 누가 위임해서 대신 해주길 바라는 거죠.

 

‘21변혁’을 이야기하고, 실천하자.

 

그래서 문제는 자본주의고, 이제 변혁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고 실천을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은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시 하고, 변혁에 대해, 변혁의 얘기도 그냥 변혁이 아니라 21세기 변혁에 대해 이야기와 실천을 시작하자고 얘기했습니다. 21세기 변혁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20세기 변혁의 시도들은 어떻게 되었고 왜 실패했는지, 어떤 교훈을 얻을 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실패한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죠. 우리는 이겨야 하죠. 또 실패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20세기 변혁의 전 과정에 대해 평가하고 반성하고 교훈을 얻어야됩니다. 그 내용이 다음 주 두 번째 강의가 될 겁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21세기 변혁에 대해 얘기하려면 뭘 해야 되나 하면, 우리가 변혁은 머릿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이미 자본주의 사회가 이만큼 이뤄낸 게 있어요. 우리는 그런 물질적인 조건을 갖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거죠. 이게 뭐냐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재료 물질적인 주체적인 조건을 가지고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그러려면 현대자본주의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현대자본주의가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키고 있는지, 약점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상들을 만들어나갈 것인지, 그게 바로 세 번째 강의입니다. 현대자본주의, 21세기 변혁의 조건이에요.

 

그러면 새로운 21세기 변혁의 상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되냐, 우린 이런 세상을 꿈꾼다, 그건 옛날과 어떻게 다르냐고 얘기를 해야 하죠.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어떤 전략적 목표를 가져야 할 거냐, 어떤 경로를 통하고 주체는 어떻게 형성해 들어갈 거냐. 그게 네 번째 강의입니다.

우리가 변혁에 대해 토론하고 실천하고 현장부분 논의하고 방향에 대해 집단토론하고 검증하고 반성하는 뭔가가 필요하죠. 그러려면 조직이 필요하죠. 그건 규율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죠. 우린 보수정치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해야죠. 우리의 조직방식을 이해해야 하죠. 과거와 같이 억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해방시켜주는 관계여야 하죠. 그 조직의 과정들이 개인을 해방시켜주고, 개인의 능력을 고양시켜주고, 개인의 능력의 발전이 조직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이런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그 조직을 움켜줬을 때 비로소 우리는 21세기 변혁을 위한 본격적인 출발이다, 여기서는 그것을 노동자계급정당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5강입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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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시대정신’을 구현할 ‘21c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2008.02.07.)

‘21c 시대정신’을 구현할 ‘21c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2008.02.07.)

 

민주노동당, 침몰하는 ‘타이타닉’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기정 사실화됐다. 2월 3일, 비대위의 혁신안 부결 이후 연일 대규모 탈당이 이루어지고, 진보신당을 창당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진보신당 창당세력을 “분열과 음해 세력”이라고 강력하게 규탄해도, 민주노총과 전농 등 이른바 배타적 지지를 결의한 대중조직의 힘을 빌려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 해도, 그럴수록 침몰하는 ‘타이타닉’호가 일으킨 거센 파고는 대중조직 내부의 갈등과 정치적 혼란만을 더욱 확산시킬 뿐이다.

 

민주노총 등 4개 대중조직이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확고한 지지방침을 재확인하면서 단결을 강조했지만 파고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이미 민주노총의 주요 연맹에서는 배타적 지지 철회 방침을 공식적으로 제기했거나 할 예정이다. 비대위의 혁신안을 지지했던 전빈련의 경우도 배타적 지지방침을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조직 내부에서는 배타적 지지 방침을 둘러 싼 격돌이 본격화되고, 사태의 진전에 따라서는 대중조직은 물론 노동자민중진영 전체에까지 재편의 회오리를 불러 올 것이다.

 

직무대행과 의원단까지 나서 “과감한 혁신, 전면적 재창당의 각오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재로서는 당 혁신과 단결을 위한 뾰족한 방안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럴수록 지금 당직자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탈당 흐름은 일반 당원 수준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다.

특히 민주노동당 전체당원의 40%(32,000여명)를 차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탈당이 본격화될 경우에 민주노동당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계속 ‘배타적 지지 방침’을 계속 강행하려 한다면 민주노총의 존립 여부 자체도 불투명해질 것이다.

 

스스로 혁신하지도 못한 채 대중조직의 배타적 지지에 기대어 위기 돌파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민주노동당의 현실! 민주노동당은 왜 이런 현실에 직면하게 됐는가? 이러한 현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17대선에서의 3% 득표라는 참패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민주노동당이 직면한 위기는 사실 출범 이후 10여 년간 누적되어 온 문제가 폭발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멀리는 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가깝게는 96~97년 노동자총파업투쟁의 산물이었다. 즉 87년 이후 민주화체제에서 노동자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등 기층 대중운동 성장의 직접적인 산물이자, 노동자민중 정치세력화라는 전략적 과제를 직접적으로 체현한 현실태였다.

 

그러나 민족주의 정치세력과 사민주의 정치세력이 주도한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지구화와 구조조정이라는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전면적인 공세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총체적 대응을 정치적으로 조직해 내지 못했다.

민족주의든 사민주의든 정치적 전망의 협소함, 혹은 개량주의 때문이다.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를 자본 그 자체의 공세, 혹은 현대자본주의 위기의 표현으로 받아들여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을 구체화하지 못한 채, ‘통일과 반미’, 혹은 ‘분배와 복지’라는 틀을 뛰어넘지 못했다.

반자본이라는 급진적인 정치적 전망 속에서 ‘통일과 반미’, ‘분배와 복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갖지 못할 때, 현실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 개혁분파들과 질적인 차별성을 가질 수 없었다. 자유주의 개혁분파들의 정치적 파산과 함께 민주노동당이 동반 몰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16대 총선에서 의회 진출 성공의 결과로 의회주의와 합법주의의 늪에 깊숙하게 빠져들었다. ‘거대한 소수’를 외쳤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자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대의회 압력수단 정도로 수동화시켰다. 당권과 비례대표를 둘러 싼 이전투구는 민주노동당 상층이 부르조아 의회주의에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은 대중조직의 배타적 지지에 힘입어 노동자민중 진영의 유일한 정치적 대표체를 자임하면서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에서 패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소위 자주파라는 특정 정치세력이 주도하기는 했지만, 전국민중연대에서 한국진보연대로 조직 전환을 할 때 보여준 그 조급함과 패권적인 태도는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크게 약화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17대 대선에서 참패를 계기로 한 민주노동당의 위기, 혹은 정치적 파산은 의회주의⋅합법주의에 갇힌 계급연합적 진보정당운동이 이제 그 역사적인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주었다. 2월 3일 비대위 혁신안이 부결되고 민주노동당 분당이 기정사실화됐다는 것은 이제 기층 대중조직의 배타적 지지에 힘입은 진보정당운동이 그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을 현실에서 확인시켜 주고 있다. 노동자민중진영의 각 정치세력이 독자적인 정치노선과 정치적 역량에 기초한 정치운동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10여년의 정치적 실험은 이제 이렇게 마무리됐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적 실험이 비록 실패로 귀결됐지만, 그래서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과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은 10여 년 전에 출발했던 그 지점이 아니다. 자칫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왔던 노동자민중들이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질 것을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의 정치적 경험,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파산과 분당이라는 경험을 통해 현장과 지역의 노동자민중들은 정치적 허무주의를 딛고 나올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독자적 정체세력화의 상과 정치노선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서 다시 현장과 지역으로부터 일어설 것이다. 민주노동당 10년의 정치적⋅조직적 성과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아니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진보신당, 우경화하는 ‘구명대’

 

진작에 신당을 걸고 나선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비대위 혁신안 부결 이후 탈당한 ‘혁신파’, 그리고 새 진보정당에 함께 하고자하는 사회당과 초록당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4월 총선 이전에 진보정당을 창당할 것인지, 4월 총선 이후에 창당할 것인지를 놓고 이견이 있을 뿐, 진보신당의 창당은 진행될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 세력들은 민주노동당이 “통일지상주의 정당, 편향적 친북정당, 탈법.편법 회계운영에 눈감는 부도덕한 정당, 반민주적 패권주의 정당”이며, “지난 대선에서 3%의 득표율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들의 냉혹하고 준엄한 심판이자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의 요구”임에도, 2월 3일 임시당대회는 대선참패를 부정했고, 변화와 혁신을 정면으로 거부했다고 판단하면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국민들 생활 속에 푸른 진보를 실현”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도시 서민, 이주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노인 등 사회적 약자가 정치적으로 대변되고 풀뿌리 정치, 생활 정치를 뿌리내리는 정당”이며, 민생 우선과 21세기 진보적인 의제 설정에서 기존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진보신당 추진 세력들은 창당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합의를 하게 되면, ‘이명박 정권에 대항하는 강력한 진보야당’ ‘비정규직, 농어민, 사회적 소수자의 정당’ 등의 정치적·조직적 목표를 두고 총선 전략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려는 승객들을 구조”하는 구명대가 될 지, 그 구명대가 파산한 민주노동당운동을 대체할 새로운 진보정치운동의 구심이 될 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만, 수많은 암초가 가로 놓여 있다.

먼저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 주도세력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파산의 책임을 ‘종북주의’에 전가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역사적⋅정치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들은 민주노동당 참패의 원인을 ‘종북주의’로 규정해 버림으로써, “이념 논쟁의 심화가 아니라 그것의 파괴적 불모화를 초래할 위험성을 현실화”시켰고, “반자본주의 정치운동을 구체적, 대중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노선과 방안을 둘러싼 논쟁”으로 진전되는 것을 가로막았다.

 

또한 그들은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당’, ‘데모당’, ‘운동권정당’, ‘종북⋅친북당’, ‘낡은 진보’ 등으로 비판하고, 스스로를 ‘새로운 진보’, ‘21c적 진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자신의 우경화와 개량주의를 은폐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기존 민주노동당에 대한 우경적 평가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비대위는 혁신안에서 반노동자법인 국가보안법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고, 나아가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사회연대전략’은 계급해체전략에 다름 아니며, 정치적 기치로 내세운 ‘생활 속의 푸른 진보’나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는 생태 환경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듯하지만,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과 결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노동자 계급정치를 개량주의로 후퇴시킬 것이다. 그들은 우경화와 개량주의화를 ‘새로운 미래’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진보정당 추진세력들 내부의 쟁점은 당장 총선 전에 창당할 것인지, 총선 후에 창당할 것인지에 모아져 있다. 총선전 창당을 서두른다면 “학계·시민사회단체 등 외연확대를 통한 세결집과 새로운 진보의 내용을 채우지 못한 채 ‘평등파 신당’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반면에 “총선 전 창당해 지역구 1~2석 및 최소한의 정당 지지를 확보해 현실 정치세력으로서 원내에 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장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경쟁해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현실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점에서 창당 시기 논란은 그들에게 중요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들의 정치노선이다. 이미 서구에서도 신자유주의에 굴복한 사민주의 정치라는 구명대로는 ‘21c형 제국주의’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지구화라는 격랑을 헤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국민들의 신뢰’라는 이름으로, 아제국주의로 진전하고 있는 남한 자본운동의 하위파트너가 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새로운 진보신당이라는 두 진보세력이 격돌해서 동반 몰락하는 상황이 우려되는 것이 아니다. 4월 총선에서 원내 진출을 위해 민주노동당 10년의 역사적 경험을 전체 노동자민중운동의 관점에서 총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재평가하고, 다가올 10년의 정세에서 반자본 변혁운동의 새로운 전개를 위한 전망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이 우려될 뿐이다.

격랑에 휩쓸리는 것을 마치 정세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된다.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노동자민중운동의 재편과 재구성은 ‘민주노동당 대 새로운 진보신당’, ‘민족주의 세력 대 사민주의 세력’의 기존 경쟁 구도와 틀을 넘어, 더욱 발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보의 재구성, ‘21c 사회주의/코뮤니즘’

 

어쩌면 민주노동당이 겪은 10년의 실험은 다가 올 계급정세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전초전’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한편으로는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으로 사회적 분업을 전세계적 수준에서 확장시켜 나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극도로 심화시켜 나가고 있다. 최근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비롯한 전세계 금융 위기는 위기의 단초를 언뜻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세계경제의 불안성과 불확실성이 심화될수록, 제국주의간 경제⋅에너지 경쟁과 군비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동시에 초국적 자본은 국경을 뛰어넘어 초과 이윤확보를 위한 금융적 수탈과 착취를 강화할 것이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한 것은 바로 이런 세계 자본주의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라는 정세 속에서 ‘경제 성장’을 통해 ‘민생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국민 대중들의 ‘막연한 바램’ 혹은 ‘경제적 공포’가 가로놓여 있다.

물론 이 경제성장에 대한 ‘막연한 바램’은 금새 깨질 것이다. 전방위 FTA의 추진, 자본의 상호 출자 허용, 금산분리법의 완화, 공공부문과 은행⋅우체국의 민영화, 자본통합법에 바탕한 은행⋅보험⋅증권회사 등의 자본통합, 한반도 대운하의 추진, 그리고 기업 규제의 완화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인 친자본적 행보를 할 것이고, 이 과정은 동시에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 사회복지의 축소, 주택가와 사교육비의 증가, 물가 인상, 빈곤과 양극화의 심화, 민주주의의 후퇴 등 노동자민중들의 삶을 더욱 고통스런 현실에 빠트릴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과 ‘선진화’가 결코 노동자민중들의 삶을 도탄에서 구할 구세주가 아니었음은 머지않아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그 때 노동자민중들은 이러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전망과 능력있는 정치세력을 요구할 것이다.

 

‘21c 진보의 재구성’이 “NL 대 PD라는 낡은 사상에 기초한 정파를 파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것이 “생태주의자, 평화주의자, 여성주의자,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등 21세기 새로운 진보 의제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 역시 그렇다.

그러나 ‘21c 진보의 재구성’과 ‘21c 진보 의제’는 그 근저에 ‘반자본 변혁’을 전제했을 때에만,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전망 속에서만 진정으로 그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다. 현재 노동자민중들의 ‘민생 문제’라는 것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이고, 생태⋅평화⋅여성⋅이주⋅비정규직 등의 문제 역시 현대 자본주의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 모순의 근본적인 해결은 ‘변혁’을 통하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자본 변혁’? “그것이 가능하냐”고 한다. ‘사회주의’? “아직도 그 소리하냐”고 한다. 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화’ 자체에만 주목하여 ‘자본’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과 문제제기가 실종되거나 배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화 이행’과정 이면에 있는 자본축적체제의 변화, 즉 1987년 이후 신경영전략과 OECD 가입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지구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자본축적운동의 전환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 이후 노동자민중운동의 위기는 바로 이 점에서 비롯됐다.

90년대 초반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하지 못한 채 청산하고 해체했기 때문이다. 이 사상 이론적 공백을 온갖 포스트류와 개량주의, 민족주의가 메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낡고 어둡고 억압적인 것으로 내팽겨 쳐졌다.

 

‘반자본 변혁’!, ‘사회주의적 전망’! 현실성 없는, 낡고 고장난 라디오를 다시 틀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물론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문제들 - 빈곤, 사회적 불평등, 경제적 불안정성, 환경파괴, 범죄, 차별과 억압, 전쟁 등 -은 바로 현대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다. 그래서 문제는 ‘반자본’이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반권력’, ‘반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특징짓고 있는 착취와 그 착취가 요구하는 지배를 철폐하지 못하고 단지 제한할 뿐이다. 그래서 ‘변혁’이다. 반자본의 변혁적 전망과 맞물려서만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반권력’, ‘반신자유주의’는 그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다. ‘반자본 변혁’은 메시아적 감상이나 꿈이 아닌, ‘현실의 요구’이자 ‘역사의 필연’이다.

 

‘21c 진보의 재구성’은 발전된 생산력 때문에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를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전망을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21c 사회주의 전망은 현대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과 현대사회 및 인간욕구의 변화를 전제하지 않고는 그릴 수가 없다.

그래서 21c 사회주의는 노동자 국제주의에 바탕한 ‘반제반자본 변혁’의 성격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대체권력’ 즉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결사체로 나아가는 이행기의 정치적 형태의 창출을 통해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대체권력의 민주적 통제에 바탕하여 생산과 유통을 계획하며, 임노동에 바탕한 계급관계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철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 및 환경파괴적 생산력주의도 극복하는 복합적 사회주의/코뮤니즘일 것이다. 이러한 사회만이 현대 자본주의가 이룩한 생산력 발전에 조응하고, 동시에 노동자계급 스스로에 의한 해방 과정이 될 것이다.

 

사적소유와 계급관계의 폐지는 사회주의/코뮤니즘의 주요한 일부이지만, 사회주의/코뮤니즘의 전부는 아니다. 21c 사회주의/코뮤니즘은 노동해방, 환경, (여)성 등 ‘복합적인’ 사회주의/코뮤니즘 이념으로 나아가야 하고, 이 모두가 사회주의/코뮤니즘의 기획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복합적 의제들의 해방적 기획도 정치경제적 기획만이 아니라 미시적 문화적 기획도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경제적 사회주의와 생태문화적 사회주의의 결합, 즉 삶의 총체적 변화로서의 사회주의/코뮤니즘이 되어야 한다.

 

정당 건설,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출발

 

이러한 반자본 정치변혁을 주도해 나갈 정치적 태세와 조직적 주체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가? 그 시작은 바로 노동자계급이 중심에 선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현실의 정치 일정으로 올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최근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는 하나의 정세적 계기일 뿐이다.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현실 사회주의국가의 붕괴라는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지난 20여 년에 걸쳐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론적으로도 20c 사회주의 이론을 혁신하고 확장하고 재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고, 실천적으로도 비록 써클 혹은 정파 수준이긴 하지만 정치조직운동을 진전시켜 왔으며, 노동운동을 비롯한 지역, 사회 운동 영역에서도 조금씩 뿌리를 내려왔다.

 

물론 여전히 그 정치적 역량과 대중적 영향력은 미약하다. 특히 현실 제도권 정치에 진입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전체 역량으로 보았을 때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사회주의 운동 내 여러 실천적 쟁점에 대해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기존 민주노동당 또는 또 다른 ‘신당 추진파’에게 노동자민중의 정치운동을 맡길 수는 없다. 특히 사회주의정당 건설이 단지 정파들 사이의 논의와 사업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대중적 근거와 기반을 형성하는 과정과 맞물려야 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에서 사회주의정당 추진 세력의 정치적 태도와 정치 일정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축적도 없이 어떻게 사회주의 정당 건설이 가능한가? 당 건설은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최종 귀결점이 아니라, 그 출발점일 뿐이다. 또 건설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변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변혁적 활동가들의 존재 형식이자 활동 양식일 뿐이다. 물론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반자본 변혁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을 건설하지 않고는 반자본 변혁은 상정조차 하기 힘들다.

네트워크 조직이면 되지 않는가? 네트워크 조직으로는 일관되고 지속적이고 총체적인 반자본 변혁을 추진해 나갈 수 없다. 대중을 주체로 세우려는 노력 없이 대중행동의 조직화 없이 당 건설이 가능한가? 대중을 주체로 세우고 대중투쟁을 조직하며 나아가 그러한 대중투쟁을 반자본 변혁이라는 정치적 방향으로 이끌 당 건설이 필요하다.

 

너무 이르지 않는가? 계급투쟁이 더욱 진전됐을 때 당 건설이 가능하지 않는가? 지금 계급투쟁의 정세가 그 계급투쟁을 반자본 변혁으로 안내할 정당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강령은? 이미 최근 몇 년에 걸쳐 이행기 강령, 과도기 강령, 대중투쟁 강령, 21c 변혁전략 수준의 준비는 됐다. 당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소통과 논쟁의 접점이 형성 안됐을 뿐이다.

 

노동자계급 중심성을 이야기하는데, 과연 지금의 노동자계급이 변혁의 주도세력일 수 있는가? 노동자계급 내부를 통일시키는 것이 변혁보다 더 어렵지 않는가? 생산의 사회화를 담지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이 중심에 서지 않을 때, 반자본 변혁은 물론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지 않다.

현실의 노동자계급이 변혁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거꾸로 그들이 자본주의 모순의 직접적인 담지체이기 때문이다. 계급적 단결의 결과로 당 건설이 가능해 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당 건설을 통한 정치화가 계급적 단결을 위한 출발점이다.

 

지금의 사회주의 정치조직이 당 건설을 할 만한 역량이 있는가?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사회주의 정치조직이 여러 써클로 분화되어 있고, 또 그 분화는 나름의 역사성과 근거를 가지고 있다. 바로 그 역사성 때문에 정치적 신뢰가 문제되기도 한다.

그 판단은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서로간의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당 건설의 방향에서 찾아내야 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을 할 수 없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써클주의이자 패배주의일 뿐이다.

 

왜 사회주의 정치조직만 이야기하는가? 수많은 개별 활동가들도 사회운동 활동가도 있는데. 사실 최근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를 둘러 싼 대응을 보면, 기존의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의 대응이 훨씬 뒤쳐져 있다. 오히려 현장과 지역 활동가,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반응이 더욱 절박하고 신속하다.

물론 조직적인 의사결정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치조직은 현장과 지역의 활동가,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절박하고 신속한 대응을 당 건설을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새로운 동력으로 받아 안을 수 있는 틀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정치적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2007년 대선을 계기로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하던 ‘민주화’와 ‘개혁’의 시대는 마침내 막을 내렸다. 소위 ‘87년 체제’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운동의 정치적 파산과 분당으로 한 매듭을 짓게 됐다. 반자본 변혁세력도 이제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통해 한 시대의 정치적 매듭을 분명하게 지어야 할 시점이다.

‘87년 체제’의 종언은 “민주주의의 제도화”, “생활 속의 푸른 진보”가 아니라, 반자본 사회주의 변혁을 위한 정당 건설로 매듭지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진정한 ‘선진화’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있음을, ‘21c 시대정신’이 바로 ‘21c 사회주의’임을 실천할 수 있는 정당 건설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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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옹호되어야 한다.(2004.04.)

그래도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옹호되어야 한다.

 

단호한 대답?

 

지난 두 달간 성황리에 치루어 졌던 [현대 자본주의의 이해]강좌(한노정연 주최)의 마지막 ‘종합토론’시간 때였다.

강사가 그간의 강좌 내용을 종합하여 ‘현대 자본주의의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한 후, 참석한 수강생들 사이에서는 열 띤 질의․응답과 토론이 진행되었다.

강좌의 결론은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불안정을 극대화하면서 새로운 위기를 재생산할 것”이고, “이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해 나갈 주체형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자본 그 자체의 위기’라는 점에 대해 강사진은 의심의 여지없는 단호함으로 결론을 맺어 주었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해 나갈 주체는 바로 ‘노동자계급’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현장성, 계급성, 전문성’의 기치를 내건 한노정연의 연구위원답게 분명하게 대답해 주었고, 참석한 수강생 대부분도 이에 공감하는 듯했다.

 

그런데, 열 띤 토론의 막바지에 한 수강생으로부터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왔다.

순간 강사진은 멈칫하는 것 같았고, 그 사이 토론에만 귀를 기울이던 나는 재빨리 나섰다.

“‘사회주의’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뜻밖의 단호한’ 대답에, 사회를 보던 강사는 “대안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며 서둘러 토론을 마무리지었고, 마침 시간도 많이 지난 터라 곧바로 뒷풀이로 들어갔다.

사회를 보던 강사가 서둘러 토론을 종결시킨 이유가 시간 부족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나중에 강사진이 제출한 [강좌 소개서 : 전쟁과 공황, 위기로 점철된 역사 -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본 현대 자본주의]라는 글을 읽고 알았다.

 

“이 강좌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아가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완결적이고 직접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 현 좌파이론의 전반적인 한계 때문 ---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가 가져 온 충격은 현실의 운동뿐만 아니라 이론진영 전체에 엄청난 공백을 초래 --- 과거에 진리라고 믿고 따르던 이런 저런 ‘교의’들이 사실상 결함 많은 하나의 이론체계에 불과하다는 자각 ---길고 지난한 과정일지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가 다다른 결론이다”

 

아니, 나는 사실 그날 종합토론과정에서 이들 강사진의 고민과 고통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이런 고민과 고통으로부터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라는 역사적인 현실이 지난 십 수년간 우리들을 짓눌러 왔던 그 중압감을 누가 홀가분하게 벗어 던질 수 있었겠는가?

적어도 여전히 스스로 사회주의자이고자 했고, 또 그 이념을 고통스럽게 부여안고 왔다면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현 좌파이론의 전반적 한계”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애써 무시한 채, “‘사회주의’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그만 단호하게 답해 버리고 말았다.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대안사회의 이념과 전략으로서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옹호되어야 한다”는 소박한 판단 때문이었다.

 

우려와 조롱

 

그런데 이 말을 내뱉자마자, 단호했던 대답과는 달리 내 마음과 머리 속에서는 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에 십 수년간 ‘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퍼부어졌던 수많은 우려와 조롱이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뇌리를 휘젓고 지나갔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라는 우려는 차치해 두자.

그보다는 오히려 구체적인 내용도 없고 대중적 정서도 고려하지 않은 채 행해졌던, “그래 나는 사회주의자요”식의 ‘선언적 운동방식’, 그리고 이러한 운동방식이 가져왔던 여러 폐해와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우려가 귓전을 세차게 흔드는 듯 했다.

“선언만 해서 뭐하냐, 내용을 채워야지”, “대중적 정서가 아직 이르니, 풀어서 이야기하면 된다” 등 등.

그런데 이런 우려는 그나마 견딜만한 것이었다.

어쨋든 운동하는 방식의 차이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아직도 그 낡은 이념을 벗어 던지지 못했나”라는 조롱이었다.

‘사회주의’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소련과 동구를 봐라, 중국과 북한을 봐라. 이미 실패하고 낡은 이념과 체제가 어떻게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조롱하는데, 이것이 조롱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회주의’가 미래의 전망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껏 과거의 잔재나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는 실제 현실의 사회주의운동이 미래의 전망은커녕,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자리매김조차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한 데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

 

사실 10여 년 전, 이런 우려와 조롱을 벗어나 스스로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기 위해 ‘현장에서 미래를’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연구소운동은 출발했었다.

연구소는 신경영전략과 신노사관계,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현장의 활동가들과 함께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노동운동의 정치적 전망을 왜곡하는 자유주의적 개혁주의나 사민주의적 개량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에 맞서서도 힘겨운 이데올로기투쟁을 전개해 왔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노동통제 노동강도의 강화와 노동자계급의 분할,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의 개량주의화와 관료화가 어떻게 국가의 노동정책,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맞물려 있는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신의 삶과 노동의 조건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연구소는 이론과 정책으로 해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한편으로는 이런 노력과 투쟁의 성과로,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의 계투 자체의 진전으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는 이제 ‘새로운 이론적 실천적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그러면 대안은 뭐냐?”는 것이다.

‘자본 자체가 위기’인 현실에서, 그 위기의 표현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고양되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투쟁의 진정한 정치적 대안’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래도 철회하지 않는 이유

 

그런데 그간의 우리의 노력과 투쟁이 우려를 씻어내고 조롱을 넘어설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을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그만 덜컥 ‘사회주의만이 대안’이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이 답변이 그간의 노력, “하나하나 내용을 채워나가는 과정”에 찬물을 끼얹게 되지는 않을지, 또 하나의 ‘교의(도그마)’를 현실에 강요하는 꼴이 되지는 않을 지, 그래서 우려와 조롱만을 더욱 골 깊게 만들지는 않을지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사회주의만이 대안’이라는 답변을 다시 주어 담지 않기로 결심했다.

 

먼저, ‘사회주의’란 개념은 지난 노동자민중투쟁의 역사적 성과라는 점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인 실패에 의해 상처를 받았어도, 그 상처조차도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보듬고 안아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래의 대안사회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로부터 나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평가와 그 극복으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와 관련하여, ‘실패’의 원인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현실 사회주의가 이루어놓은 ‘성과’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000주의’라는 비판과 딱지 붙이기 이전에, 오히려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들이 이루어지고, 그에 기초한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 져야 할 때이다.

그 때 우리는 현실 사회주의가 진전시켜 놓은 성과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그 한계 혹은 오류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내용을 하나씩 구체화해 나가면서 그 내용에 걸 맞는 용어나 개념을 세워나가야 하지, 그렇지 않을 때, 얼마나 공허한 선언인가”라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발전에서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해 나갈 때, 그 용어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절박한 이데올로기투쟁이었다.

‘사회주의’란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이루는 내용으로 다 분해해서 하나 하나의 내용이 다 정리되면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수호하기 위한 노력 자체가 하나의 투쟁이다.

‘어떠한 사회주의인가’를 둘러싸서 다양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그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사회주의’라는 말 앞에 ‘민주적’, ‘과학적’, ‘혁명적’, ‘인간적’ 등등의 수식어를 붙일 수는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전망으로서의 ‘사회주의’라는 용어와 개념은 그 자체로서 수호되고 주장되어야 한다.

 

출발의 지점

 

그날 종합토론이 끝난 후 뒷풀이 자리에서, 나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옆에 있는 동료에게 이런 문제제기와 바램을 쏟아 부었다.

 

“‘자본주의의 위기’ 자체만을 이야기하면서, 그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이 ‘새로운 사회=사회주의’의 물적 조건을 어떻게 준비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하지 않는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로 인한 노동자계급의 분열과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해서는 그토록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투쟁 속에서 새로운 사회의 주체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야박하게 평가하는가?”

 

“이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에 맞선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은 ‘반자본투쟁’으로 진전되어 가고 있는데, ‘반자본’ 이후의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마침 5월 23일부터 25일 사흘간에 걸쳐 ‘2003년 제1회 맑스 꼬뮤날레’가 개최된다.

적어도 아직 스스로 맑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지구화 시대의 맑스주의의 현재성’을 주제로 열띤 토론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십 수년 간 우려와 조롱 속에서도 ‘사회주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고 현장에서, 지역에서, 그리고 여러 부문에서 치열하게 투쟁해 온 실천 활동가들도, 최근 사회주의 정치조직운동의 혁신과 연대를 내걸며 실천운동의 진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토론과 실천적 모색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에 맞선 노동자민중들의 현실의 투쟁과 동시에 그 투쟁의 미래와 굳건하게 결합해 나가고, 그리하여 한국에서의 사회주의운동이 새로운 가능성을 얻고,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이 이 결합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간다면, ‘사회주의만이 대안’일 수 있다는 나의 답변은 최소한 우려와 조롱은 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옹호되어야 하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

비록 신문기자이자 소설가인 손석춘이 소설 [유령의 사랑]에서 맑스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을지라도 말이다.

 

“왜 당신들은 나를 밟고 가지 않으려는가?

왜 당신들은 내가 걸음을 멈춘 그곳에서 단 한걸음도 더 전진하려고 하지 않는가?

왜 앞으로 걸어가지 않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가?”

 

[현장에서미래를]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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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의 ‘발전적 해소’-발전적인 전망을 새롭게 모색하기 위해(2006.12.15.)

한노정연의 ‘발전적 해소’

발전적인 전망을 새롭게 모색하기 위해

 

‘안내자’이자 ‘사랑방’

 

“연구소가 사랑방 같았는데 ---”, “연구소는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친정집이었는데 ---”, “10년 넘게 내 삶의 뿌리였는데 ---”, “연구소가 현장 활동의 안내자 역할을 해왔는데 ---”, “그간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 전투적인 이론을 제공해 왔는데 ---”. 지난 12월 2일 총회에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이하 ‘한노정연’)를 발전적으로 해산하기로 결정한 직후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해산에 대한 소감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렇게 밝혔다.

그렇다. 한노정연은 지난 11년간 현장 활동가나 좌파 연구자들에게 ‘안내자’이고 ‘친정집’이고 ‘사랑방’이었다.

1995년 7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이념적 지표를 상실하고 ‘해체’와 ‘청산’과 ‘잠복’만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던 때에, 좌파 연구자들과 현장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계급성, 현장성, 전문성’의 기치로 내걸고 한노정연을 결성한 것은 ‘상실과 절망의 시대’를 뛰어넘어 보고자 했던 하나의 몸부림이자 실험이었다.

한노정연은 좌파 연구자들을 묶어주고, 좌파 연구자들과 현장 활동가들을 이어주며, ‘현장에서 미래를’ 찾기 위한 모색을 했다.

 

한노정연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성장하는 민주노조운동을 지원하며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 전망을 함께 머리를 맞대 연구하고 토론하고 그 결과를 각종 토론회와 단행본, 그리고 [현장에서 미래를]에 발표했다.

90년대 초반 이후 “가랑비에 속옷 젖듯” 변화하는 노동현장을 ‘신경영전략’이라는 이론틀로 포착하여, 자본의 새로운 축적전략과 노동통제전략에 민주노조운동이 적극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96~97년 노동법개악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총파업 한복판에서, 노동법 개악이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공세’를 전면화하기 위한 전주곡이며, 따라서 노동운동은 과거 민주화운동의 단순한 연장선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투쟁으로 진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공세에 민주노조운동이 힘겨운 총파업으로 맞서면서도 허구적인 ‘사회적 합의주의’로 인해 혼란과 동요에 빠졌을 때, 한노정연은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을 이론적으로 엄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허구적인 ‘사회적 합의주의’의 유혹을 벗어나 ‘계급적 단결’과 ‘노조 및 현장 민주주의 강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배세력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유연화 공세, 민주노조를 고립시키려는 이데올로기 공세로 민주노조운동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한노정연은 그 ‘위기’ 공세에 맞서 한편으로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주장하고, 나아가 조합주의적 운동에서 벗어나 사회변혁운동으로 진전할 것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사회의 변혁전략’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했으며, ‘21c 사회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했다.

한노정연의 연구자들은 현장과 지역의 활동가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면서 연구하고 토론하고 교육했으며, 현장과 노조 활동가들이 계급적 변혁적 노동운동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지원했다.

회원들의 회비와 특별기금, 그리고 노동조합의 프로젝트만이 유일한 재원이었고, 어려운 재정 여건에서도 ‘재정 자립’의 원칙을 고수하고자 했으며, 이는 연구원들과 회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매듭’과 ‘모색’

 

한편으로는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다른 한편으로는 계급 정세와 운동 정세의 변화로 한노정연은 자신의 역사적인 소임을 마무리 짓고 발전적으로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발전적 해소’라기 보다는 ‘발전적인 전망을 새롭게 모색하기 위한 해소’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1년간 한노정연의 정체성은 ‘계급성, 현장성, 전문성’으로 표현해 왔다.

즉 내용적으로는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을 위한 이론 정책의 생산을 중심으로, 좌파 연구자들과 실천활동가들이 연구소라는 틀로 모여, 정치조직과 대중조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연구 활동을 하는 것, 그래서 연구소라는 틀 속에서 이론과 실천의 긴장을 유지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 자체가 한노정연의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런 이론과 실천의 긴장을 연구소라는 틀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됐다.

좌파 연구자들은 반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공동의 지반을 가지고 있지만 극복 전망에 대해서는 입장과 방법을 달리했고, 따라서 더 이상 하나의 ‘사상적 이론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게 됐다.

연구 활동은 관심과 입장에 따라 다양화되고 개별화됐으며, 또 제도화되기도 했다.

좌파 정치조직의 분화와 분열 역시 연구소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한노정연이 과거처럼 좌파 전체를 대표하는 이론정책연구소로서의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하기에는 어렵게 됐다.

그리고 이미 대중조직이나 현장의 활동가 조직, 그리고 정치조직을 중심으로 자신의 입장을 생산하고 구체화시켜 나가는 상황에서 회원 조직을 중심으로 연구소를 운영해 나가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게 됐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한노정연이 자신의 역사적인 소임을 다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성과에 집착하여 계속 연구소를 유지하는 것은 이후 질곡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현실을 냉철하게 인정해야 한다.

한노정연 ‘발전적 해소’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한노정연이 처한 현실을 통해 드러난 좌파 연구운동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한 ‘매듭’을 짓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인가?

그렇지 않다. 좌파 연구운동이 처한 현실적 한계는 한노정연이라는 틀 속에서의 한계일 뿐이다.

오히려 현실 계급정세의 변화는 좌파 연구운동에 새로운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의 결과로 고통 받는 노동자민중들은 새로운 대안과 구체적인 비전을 요구하고 있다.

그간 다양한 영역에서 개별적인 연구 활동을 진행해 오던 좌파 연구자들은 연구자들간의 혹은 연구자들과 대중간의 새로운 방식의 소통과 연대를 요구하고 있다.

좌파의 정치조직들 역시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조직적 정체성을 세워나가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서로간의 소통과 접점을 형성하고 연대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

 

한노정연의 발전적 해산이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가능성을 곧바로 현실화시켜 내지는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짧은 시간 내에 혹은 일거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주체에 의해서든 어느 시점에서든 이 필요성이 제기되고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

만약 한노정연의 해산이 이런 노력을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 때 이름 그대로 ‘발전적 해산’이 될 것이다.

 

맑스주의, 그 내부로부터 ‘혁신’과 ‘확장’, ‘재구성’

 

사실 한국의 좌파 이론 지형과 관련하여, 최근 몇 년간 맑스 코뮤날레 학술대회와 [진보평론], [마르크스주의 연구] 등의 발간, 그리고 여러 좌파 연구소와 정치조직의 기관지 발간 등을 통해 그 이론적 패러다임의 여러 쟁점들이 대체적으로 드러났다.

크게는 맑스주의의 전통을 옥소도스하게 지켜나가려는 ‘정통 맑스-레닌주의 경향’, 들뢰즈와 네그리 등의 이론을 도입하여 맑스주의를 폐기하거나 혹은 맑스주의 외부로부터 맑스주의를 해체 재구성하려는 ‘신좌파적 경향’, 그리고 맑스주의를 ‘내부로부터 혁신하고 확장하고 재구성하려는 경향’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세 번째 경향은 소위 정통 맑스-레닌주의와 신좌파적 경향과 구별하여, 21c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맑스주의를 그 내부로부터 혁신하고 확장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이론적 전망과 패러다임의 구축을 모색하는 일련의 문제의식과 실험적 시도를 포괄하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하나의 사상적 이론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여러 영역에 걸쳐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이론을 21c 자본주의 현실에 맞게 내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비롯하여, 스탈린주의에 의해 왜곡되거나 형해화된 철학을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시도, 21c 서구에서 좌파 정치가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고 ‘차이의 정치론’의 한계를 극복하여 맑스주의 정치이론을 확장하고 재구성하려는 시도, 그리고 기존의 맑스주의에서 부차적으로 다루어져 왔던 여성, 환경, 인권 문제 등 새롭게 부각되는 사회적 의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맑스주의를 확장하려는 시도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속적이고 경제결정론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와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새로운 좌파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있으며,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간의 오래된 대립구도를 뛰어넘어 새로운 국제주의적 변혁 전략을 탐색하는 시도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에 바탕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발전 전략과 정책을 모색하려는 시도 역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최종적으로 향하는 지점은 ‘21c 사회(코뮨)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이를 향한 각개 약진이 아직은 개별화된 수준에서, 또한 아직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서로의 소통과 접점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사상적 이론적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집단적인 노력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하나의 사상적 이론적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민중들의 저항과 구체적으로 결합해 나갈 때, 이러한 경향과 시도는 현실의 힘으로 전화할 것이다.

한노정연의 발전적 해산이 맑스주의를 그 내부로부터 혁신하고 확장하고 재구성하려는 그간의 여러 시도들을 결집시켜 나갈 수 있는 계기로 된다면 그 역시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다하는 것일 것이다.

 

200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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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출발’을 위해(2007.01.02.)

‘즐거운 출발’을 위해

 

13년간의 인연

 

벌써 13년이 됐습니다.

한노정연이라는 ‘연구소운동’과 인연을 맺은 지가.

1993년 말 경이었습니다.

울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되어 2년 반 정도 징역살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징역을 사는 동안 세상은 확 바뀌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80년대부터 함께 운동했던 많은 동지들이, 혹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이념적인 지표를 상실하면서, 혹은 90년대 초반 투쟁과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실패에 좌절하면서, 혹은 당장의 생계와 가족 문제 때문에,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변혁 이념을 ‘청산’하는 것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80년대 신군부의 탄압과 억압 속에서도 그 모진 세월을 함께 버텨왔던 조직들도 하나둘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변혁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동지들은 생활 속으로, 대중조직 속으로, 지역으로, 부문 단체 등으로 ‘잠복’해 갔습니다.

 

후배 연구자들로부터 함께 연구소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은 때가 바로 1993년 말이었습니다.

80년대의 변혁운동이 ‘청산’하고 ‘해체’하고 ‘잠복’하고는 있었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은 전노협을 중심으로 두 차례의 총파업 투쟁을 전개할 만큼 성장하고 있었고, 노동운동의 성장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 때 두 가지 점을 고민하고 토론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의 전국적인 성장을 이론 정책적으로 지원해 나갈 단위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하나요, 노동자 대중운동의 발전과 결합하면서 변혁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이론적으로 다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그 둘이었습니다.

좌파 교수와 석박사 연구자들, 그리고 노동운동 내 좌파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연구 주체들이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치열한 논의 끝에 ‘계급성, 현장성, 전문성’을 연구소의 기치로 내걸기로 했고, 각종 연구 세미나팀의 조직, 월례발표회와 심포지움의 개최,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의 발간, 현장조사 프로젝트, 단행본의 발간 등 각종 사업을 계획했습니다.

이런 준비 끝에 1995년 7월 마침내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가 출범했습니다.

 

당시 한노정연의 출범은 단순히 하나의 연구소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운동’이었습니다.

흩어진 좌파 연구자들을 연결하고, 연구자들과 현장의 활동가들을 소통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성장하는 민주노조운동과 결합하여, 실천적인 긴장을 동력으로 그 속에서 변혁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찾으려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3년간 한노정연의 연구원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현장과 결합하며 연구를 해왔고,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한노정연은 유지되어 왔습니다.

끝까지 한노정연과 고락을 같이 한 연구자들과 현장의 활동가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노정연을 떠난 연구자들 모두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한노정연은 그간 그나마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한노정연과 맺은 13년간은, 3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 그야말로 청춘을 다 받친 세월이었습니다.

13년간 한노정연과 고락을 같이 하면서 많은 선배 동료 후배 연구자들로부터 배웠고, 또 노동 현장과 노동 운동의 활동가들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어 왔습니다.

이 점 이 글을 빌어 선배․동료․후배 연구자들과 현장․지역의 활동가들에게 “그간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활동비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호주머니돈 까지 써가며 연구하고 활동했던 연구자들, 현장의 프로젝트 보고서를 마무리하느라 혹은 <현장에서 미래를>에 기고할 원고를 마감하느라 밤샘을 밥 먹듯이 했던 연구자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이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가 지원했던 연구자들, 회원 관리와 회계 정리와 자료 정리라는 고달프지만 티도 안나는 실무를 묵묵하게 하던 연구자들, 그리고 한노정연의 일을 자신의 일보다도 더 소중하고 챙겨주고 걱정해 주었던 현장과 지역의 활동가들 ---.

한노정연이 지난 13년간의 활동 결과로 남은 소중한 성과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연구자들과 현장 지역의 활동가들일 것입니다.

저에게도 지난 13년간 한노정연과 맺은 인연이 가져다 준 가장 소중한 성과는 바로 이 분들입니다.

 

역사적인 소임과 역할

 

분명 한노정연은 지난 13년간, 아니 지난 10여 년간 명실공히 한국의 ‘좌파’ 노동이론연구의 대표 연구단체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랑스럽습니다.

비록 지금 ‘발전적 해소’라는 명분으로 해체하지만, 그래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한노정연은 2006년 지금, 변화하는 정세에 걸맞게 연구소를 새롭게 재편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유야 어쨌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내는 데도, 스스로를 발전적으로 재편해 나가는데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한노정연이 해왔던 역할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만약 한노정연의 역할에 대해 평가하시려면, 실제로 현실에서 그만한 역할을 입증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역할을 기대합니다.

문제는 한노정연이라는 틀을 유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이, 혹은 좌파 진영이 이러한 운동 양식을 어떻게 새롭게 창출해 낼 수 있을가입니다.

 

한노정연은 특정한 운동 발전의 소산물이었습니다.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 발전의 소산물이었습니다.

민주노조의 발전이 모든 운동의 발전을 대표할 때, 한노정연은 그 일각에서 자신의 역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은 한노정연의 모토였습니다.

한노정연은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그간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물론 여전히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의 전망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현실에서 노동운동을 어떻게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지의 문제는 여전히 모두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더더욱 노동조합 수준의 전망으로는 노동운동의 민주적 계급적 발전 전망을 구체화시켜내는 데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졌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노정연은 스스로를 한 단계 진전시켜 내지 못했습니다.

 

모든 조직은 자신을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한노정연 역시 그렇습니다.

스스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노정연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뭣보다도 역부족이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노동운동의 전망에 대해 한노정연은 구체적인 전망을 만들어나가지 못했습니다.

노동운동의 구체적인 현실과 호흡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는 한노정연만이 감당해야 하는 몫은 아니지만, 한노정연 역시 이러한 현실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한노정연은 변혁운동 진영 내부의 여러 견해의 차이를 조율하거나, 그러한 차이를 뛰어넘는 이론적 전망을 구체화해내지 못했습니다.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방안을 찾아내지도 못했고, 또 그런 능력을 갖춰내기에도 너무 부족했습니다.

현실의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노동운동 자체만이 아니라 전체 변혁운동의 전망을 요구하고 있었고, 변혁운동의 전망을 어떻게 현실화해 낼 것인가는 한노정연이 직면한 새로운 과제였습니다.

물론 한노정연이 이러한 과제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변혁운동의 전망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21C 사회주의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논의까지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까지였습니다.

한노정연의 역사적인 역할과 소임은. 안타깝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 있습니다.

아직도 뭐라고 똑 부러지게 정리하여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한노정연이라는 틀로는 더 이상 진전은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수준에서의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 가지 수준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연구역량들이 당분간 자신의 연구 활동에 좀 더 전념할 수 있는 구조들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연구소가 그동안 출판 사업부터 정기간행물 발간, 각종 교육사업, 프로젝트 사업 등을 해왔는데 여기서 많은 사업들이 연구소라는 틀 안에 묶여 있는 것보다는 좀 더 전문화해 질적으로 버전업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최근 몇 년간 좌파운동이 정체 내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을 어느 지점에서부턴가 타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는데, 좌파의 정치운동과 이론운동에 새로운 지형들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노정연의 발전적 해소가 좌파진영의 이러한 이론적 실천적 지점에서 하나의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자신의 마지막 역사적인 소임과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발전적 해산의 시기를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즐거운 출발을 위한 기다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이 만들어 지든지,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할 때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 둘 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불가피한 논리만을 따른다면, 이러한 바램 역시 요원한 일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노정연의 발전적 해소를 결정(결단)하면서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고 여러 이유와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어떤 일을 하든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무겁고도 엄중합니다.

특히 이러한 현실을 변혁하고자 하는 좌파의 현실은 더더욱 무겁고 엄중합니다.

그러나 무겁고 엄중한 현실을 그대로 무겁고 엄중하게만 받아들여서는 결코 현실을 변화시켜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좀 더 가볍고 경쾌하게 현실과 마주할 수는 없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역사의 발전, 운동의 발전과 일치할 수는 없는가.

사실 이런 의문은 80년대를 살았던 저나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되돌이켜 봅니다.

한노정연을 만들 때, 참으로 가볍고 경쾌한 심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밤을 세웠어도 힘들었어도 기뻤고, 그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가 너무 들어서인지 어떤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면, 그 출발은 어떤 ‘당위’나 ‘책임’이 아니라 ‘즐거움’으로부터 시작됐으면 합니다.

아직 인생을 오랜 산 것은 아니지만, 즐거운 것이 오래 간다는 판단이 듭니다.

자신이 즐거워야 동지들도 즐겁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다시 뜬금없는 바램일지는 모르지만, 한노정연의 발전적 해소가 서로를 다시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과 서로에 대한 기다림이 필요하겠지요.

 

2007.01.02.

사당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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