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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시대정신’을 구현할 ‘21c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2008.02.07.)

‘21c 시대정신’을 구현할 ‘21c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2008.02.07.)

 

민주노동당, 침몰하는 ‘타이타닉’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기정 사실화됐다. 2월 3일, 비대위의 혁신안 부결 이후 연일 대규모 탈당이 이루어지고, 진보신당을 창당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진보신당 창당세력을 “분열과 음해 세력”이라고 강력하게 규탄해도, 민주노총과 전농 등 이른바 배타적 지지를 결의한 대중조직의 힘을 빌려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 해도, 그럴수록 침몰하는 ‘타이타닉’호가 일으킨 거센 파고는 대중조직 내부의 갈등과 정치적 혼란만을 더욱 확산시킬 뿐이다.

 

민주노총 등 4개 대중조직이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확고한 지지방침을 재확인하면서 단결을 강조했지만 파고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이미 민주노총의 주요 연맹에서는 배타적 지지 철회 방침을 공식적으로 제기했거나 할 예정이다. 비대위의 혁신안을 지지했던 전빈련의 경우도 배타적 지지방침을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조직 내부에서는 배타적 지지 방침을 둘러 싼 격돌이 본격화되고, 사태의 진전에 따라서는 대중조직은 물론 노동자민중진영 전체에까지 재편의 회오리를 불러 올 것이다.

 

직무대행과 의원단까지 나서 “과감한 혁신, 전면적 재창당의 각오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재로서는 당 혁신과 단결을 위한 뾰족한 방안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럴수록 지금 당직자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탈당 흐름은 일반 당원 수준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다.

특히 민주노동당 전체당원의 40%(32,000여명)를 차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탈당이 본격화될 경우에 민주노동당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계속 ‘배타적 지지 방침’을 계속 강행하려 한다면 민주노총의 존립 여부 자체도 불투명해질 것이다.

 

스스로 혁신하지도 못한 채 대중조직의 배타적 지지에 기대어 위기 돌파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민주노동당의 현실! 민주노동당은 왜 이런 현실에 직면하게 됐는가? 이러한 현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17대선에서의 3% 득표라는 참패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민주노동당이 직면한 위기는 사실 출범 이후 10여 년간 누적되어 온 문제가 폭발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멀리는 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가깝게는 96~97년 노동자총파업투쟁의 산물이었다. 즉 87년 이후 민주화체제에서 노동자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등 기층 대중운동 성장의 직접적인 산물이자, 노동자민중 정치세력화라는 전략적 과제를 직접적으로 체현한 현실태였다.

 

그러나 민족주의 정치세력과 사민주의 정치세력이 주도한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지구화와 구조조정이라는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전면적인 공세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총체적 대응을 정치적으로 조직해 내지 못했다.

민족주의든 사민주의든 정치적 전망의 협소함, 혹은 개량주의 때문이다.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를 자본 그 자체의 공세, 혹은 현대자본주의 위기의 표현으로 받아들여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을 구체화하지 못한 채, ‘통일과 반미’, 혹은 ‘분배와 복지’라는 틀을 뛰어넘지 못했다.

반자본이라는 급진적인 정치적 전망 속에서 ‘통일과 반미’, ‘분배와 복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갖지 못할 때, 현실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 개혁분파들과 질적인 차별성을 가질 수 없었다. 자유주의 개혁분파들의 정치적 파산과 함께 민주노동당이 동반 몰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16대 총선에서 의회 진출 성공의 결과로 의회주의와 합법주의의 늪에 깊숙하게 빠져들었다. ‘거대한 소수’를 외쳤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자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대의회 압력수단 정도로 수동화시켰다. 당권과 비례대표를 둘러 싼 이전투구는 민주노동당 상층이 부르조아 의회주의에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은 대중조직의 배타적 지지에 힘입어 노동자민중 진영의 유일한 정치적 대표체를 자임하면서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에서 패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소위 자주파라는 특정 정치세력이 주도하기는 했지만, 전국민중연대에서 한국진보연대로 조직 전환을 할 때 보여준 그 조급함과 패권적인 태도는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크게 약화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17대 대선에서 참패를 계기로 한 민주노동당의 위기, 혹은 정치적 파산은 의회주의⋅합법주의에 갇힌 계급연합적 진보정당운동이 이제 그 역사적인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주었다. 2월 3일 비대위 혁신안이 부결되고 민주노동당 분당이 기정사실화됐다는 것은 이제 기층 대중조직의 배타적 지지에 힘입은 진보정당운동이 그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을 현실에서 확인시켜 주고 있다. 노동자민중진영의 각 정치세력이 독자적인 정치노선과 정치적 역량에 기초한 정치운동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10여년의 정치적 실험은 이제 이렇게 마무리됐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적 실험이 비록 실패로 귀결됐지만, 그래서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과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은 10여 년 전에 출발했던 그 지점이 아니다. 자칫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왔던 노동자민중들이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질 것을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의 정치적 경험,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파산과 분당이라는 경험을 통해 현장과 지역의 노동자민중들은 정치적 허무주의를 딛고 나올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독자적 정체세력화의 상과 정치노선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서 다시 현장과 지역으로부터 일어설 것이다. 민주노동당 10년의 정치적⋅조직적 성과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아니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진보신당, 우경화하는 ‘구명대’

 

진작에 신당을 걸고 나선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비대위 혁신안 부결 이후 탈당한 ‘혁신파’, 그리고 새 진보정당에 함께 하고자하는 사회당과 초록당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4월 총선 이전에 진보정당을 창당할 것인지, 4월 총선 이후에 창당할 것인지를 놓고 이견이 있을 뿐, 진보신당의 창당은 진행될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 세력들은 민주노동당이 “통일지상주의 정당, 편향적 친북정당, 탈법.편법 회계운영에 눈감는 부도덕한 정당, 반민주적 패권주의 정당”이며, “지난 대선에서 3%의 득표율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들의 냉혹하고 준엄한 심판이자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의 요구”임에도, 2월 3일 임시당대회는 대선참패를 부정했고, 변화와 혁신을 정면으로 거부했다고 판단하면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국민들 생활 속에 푸른 진보를 실현”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도시 서민, 이주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노인 등 사회적 약자가 정치적으로 대변되고 풀뿌리 정치, 생활 정치를 뿌리내리는 정당”이며, 민생 우선과 21세기 진보적인 의제 설정에서 기존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진보신당 추진 세력들은 창당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합의를 하게 되면, ‘이명박 정권에 대항하는 강력한 진보야당’ ‘비정규직, 농어민, 사회적 소수자의 정당’ 등의 정치적·조직적 목표를 두고 총선 전략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려는 승객들을 구조”하는 구명대가 될 지, 그 구명대가 파산한 민주노동당운동을 대체할 새로운 진보정치운동의 구심이 될 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만, 수많은 암초가 가로 놓여 있다.

먼저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 주도세력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파산의 책임을 ‘종북주의’에 전가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역사적⋅정치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들은 민주노동당 참패의 원인을 ‘종북주의’로 규정해 버림으로써, “이념 논쟁의 심화가 아니라 그것의 파괴적 불모화를 초래할 위험성을 현실화”시켰고, “반자본주의 정치운동을 구체적, 대중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노선과 방안을 둘러싼 논쟁”으로 진전되는 것을 가로막았다.

 

또한 그들은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당’, ‘데모당’, ‘운동권정당’, ‘종북⋅친북당’, ‘낡은 진보’ 등으로 비판하고, 스스로를 ‘새로운 진보’, ‘21c적 진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자신의 우경화와 개량주의를 은폐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기존 민주노동당에 대한 우경적 평가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비대위는 혁신안에서 반노동자법인 국가보안법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고, 나아가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사회연대전략’은 계급해체전략에 다름 아니며, 정치적 기치로 내세운 ‘생활 속의 푸른 진보’나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는 생태 환경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듯하지만,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과 결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노동자 계급정치를 개량주의로 후퇴시킬 것이다. 그들은 우경화와 개량주의화를 ‘새로운 미래’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진보정당 추진세력들 내부의 쟁점은 당장 총선 전에 창당할 것인지, 총선 후에 창당할 것인지에 모아져 있다. 총선전 창당을 서두른다면 “학계·시민사회단체 등 외연확대를 통한 세결집과 새로운 진보의 내용을 채우지 못한 채 ‘평등파 신당’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반면에 “총선 전 창당해 지역구 1~2석 및 최소한의 정당 지지를 확보해 현실 정치세력으로서 원내에 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장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경쟁해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현실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점에서 창당 시기 논란은 그들에게 중요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들의 정치노선이다. 이미 서구에서도 신자유주의에 굴복한 사민주의 정치라는 구명대로는 ‘21c형 제국주의’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지구화라는 격랑을 헤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국민들의 신뢰’라는 이름으로, 아제국주의로 진전하고 있는 남한 자본운동의 하위파트너가 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새로운 진보신당이라는 두 진보세력이 격돌해서 동반 몰락하는 상황이 우려되는 것이 아니다. 4월 총선에서 원내 진출을 위해 민주노동당 10년의 역사적 경험을 전체 노동자민중운동의 관점에서 총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재평가하고, 다가올 10년의 정세에서 반자본 변혁운동의 새로운 전개를 위한 전망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이 우려될 뿐이다.

격랑에 휩쓸리는 것을 마치 정세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된다.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노동자민중운동의 재편과 재구성은 ‘민주노동당 대 새로운 진보신당’, ‘민족주의 세력 대 사민주의 세력’의 기존 경쟁 구도와 틀을 넘어, 더욱 발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보의 재구성, ‘21c 사회주의/코뮤니즘’

 

어쩌면 민주노동당이 겪은 10년의 실험은 다가 올 계급정세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전초전’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한편으로는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으로 사회적 분업을 전세계적 수준에서 확장시켜 나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극도로 심화시켜 나가고 있다. 최근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비롯한 전세계 금융 위기는 위기의 단초를 언뜻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세계경제의 불안성과 불확실성이 심화될수록, 제국주의간 경제⋅에너지 경쟁과 군비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동시에 초국적 자본은 국경을 뛰어넘어 초과 이윤확보를 위한 금융적 수탈과 착취를 강화할 것이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한 것은 바로 이런 세계 자본주의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라는 정세 속에서 ‘경제 성장’을 통해 ‘민생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국민 대중들의 ‘막연한 바램’ 혹은 ‘경제적 공포’가 가로놓여 있다.

물론 이 경제성장에 대한 ‘막연한 바램’은 금새 깨질 것이다. 전방위 FTA의 추진, 자본의 상호 출자 허용, 금산분리법의 완화, 공공부문과 은행⋅우체국의 민영화, 자본통합법에 바탕한 은행⋅보험⋅증권회사 등의 자본통합, 한반도 대운하의 추진, 그리고 기업 규제의 완화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인 친자본적 행보를 할 것이고, 이 과정은 동시에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 사회복지의 축소, 주택가와 사교육비의 증가, 물가 인상, 빈곤과 양극화의 심화, 민주주의의 후퇴 등 노동자민중들의 삶을 더욱 고통스런 현실에 빠트릴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과 ‘선진화’가 결코 노동자민중들의 삶을 도탄에서 구할 구세주가 아니었음은 머지않아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그 때 노동자민중들은 이러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전망과 능력있는 정치세력을 요구할 것이다.

 

‘21c 진보의 재구성’이 “NL 대 PD라는 낡은 사상에 기초한 정파를 파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것이 “생태주의자, 평화주의자, 여성주의자,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등 21세기 새로운 진보 의제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 역시 그렇다.

그러나 ‘21c 진보의 재구성’과 ‘21c 진보 의제’는 그 근저에 ‘반자본 변혁’을 전제했을 때에만,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전망 속에서만 진정으로 그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다. 현재 노동자민중들의 ‘민생 문제’라는 것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이고, 생태⋅평화⋅여성⋅이주⋅비정규직 등의 문제 역시 현대 자본주의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 모순의 근본적인 해결은 ‘변혁’을 통하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자본 변혁’? “그것이 가능하냐”고 한다. ‘사회주의’? “아직도 그 소리하냐”고 한다. 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화’ 자체에만 주목하여 ‘자본’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과 문제제기가 실종되거나 배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화 이행’과정 이면에 있는 자본축적체제의 변화, 즉 1987년 이후 신경영전략과 OECD 가입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지구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자본축적운동의 전환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 이후 노동자민중운동의 위기는 바로 이 점에서 비롯됐다.

90년대 초반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하지 못한 채 청산하고 해체했기 때문이다. 이 사상 이론적 공백을 온갖 포스트류와 개량주의, 민족주의가 메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낡고 어둡고 억압적인 것으로 내팽겨 쳐졌다.

 

‘반자본 변혁’!, ‘사회주의적 전망’! 현실성 없는, 낡고 고장난 라디오를 다시 틀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물론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문제들 - 빈곤, 사회적 불평등, 경제적 불안정성, 환경파괴, 범죄, 차별과 억압, 전쟁 등 -은 바로 현대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다. 그래서 문제는 ‘반자본’이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반권력’, ‘반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특징짓고 있는 착취와 그 착취가 요구하는 지배를 철폐하지 못하고 단지 제한할 뿐이다. 그래서 ‘변혁’이다. 반자본의 변혁적 전망과 맞물려서만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반권력’, ‘반신자유주의’는 그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다. ‘반자본 변혁’은 메시아적 감상이나 꿈이 아닌, ‘현실의 요구’이자 ‘역사의 필연’이다.

 

‘21c 진보의 재구성’은 발전된 생산력 때문에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를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전망을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21c 사회주의 전망은 현대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과 현대사회 및 인간욕구의 변화를 전제하지 않고는 그릴 수가 없다.

그래서 21c 사회주의는 노동자 국제주의에 바탕한 ‘반제반자본 변혁’의 성격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대체권력’ 즉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결사체로 나아가는 이행기의 정치적 형태의 창출을 통해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대체권력의 민주적 통제에 바탕하여 생산과 유통을 계획하며, 임노동에 바탕한 계급관계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철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 및 환경파괴적 생산력주의도 극복하는 복합적 사회주의/코뮤니즘일 것이다. 이러한 사회만이 현대 자본주의가 이룩한 생산력 발전에 조응하고, 동시에 노동자계급 스스로에 의한 해방 과정이 될 것이다.

 

사적소유와 계급관계의 폐지는 사회주의/코뮤니즘의 주요한 일부이지만, 사회주의/코뮤니즘의 전부는 아니다. 21c 사회주의/코뮤니즘은 노동해방, 환경, (여)성 등 ‘복합적인’ 사회주의/코뮤니즘 이념으로 나아가야 하고, 이 모두가 사회주의/코뮤니즘의 기획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복합적 의제들의 해방적 기획도 정치경제적 기획만이 아니라 미시적 문화적 기획도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경제적 사회주의와 생태문화적 사회주의의 결합, 즉 삶의 총체적 변화로서의 사회주의/코뮤니즘이 되어야 한다.

 

정당 건설,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출발

 

이러한 반자본 정치변혁을 주도해 나갈 정치적 태세와 조직적 주체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가? 그 시작은 바로 노동자계급이 중심에 선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현실의 정치 일정으로 올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최근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는 하나의 정세적 계기일 뿐이다.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현실 사회주의국가의 붕괴라는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지난 20여 년에 걸쳐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론적으로도 20c 사회주의 이론을 혁신하고 확장하고 재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고, 실천적으로도 비록 써클 혹은 정파 수준이긴 하지만 정치조직운동을 진전시켜 왔으며, 노동운동을 비롯한 지역, 사회 운동 영역에서도 조금씩 뿌리를 내려왔다.

 

물론 여전히 그 정치적 역량과 대중적 영향력은 미약하다. 특히 현실 제도권 정치에 진입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전체 역량으로 보았을 때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사회주의 운동 내 여러 실천적 쟁점에 대해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기존 민주노동당 또는 또 다른 ‘신당 추진파’에게 노동자민중의 정치운동을 맡길 수는 없다. 특히 사회주의정당 건설이 단지 정파들 사이의 논의와 사업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대중적 근거와 기반을 형성하는 과정과 맞물려야 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에서 사회주의정당 추진 세력의 정치적 태도와 정치 일정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축적도 없이 어떻게 사회주의 정당 건설이 가능한가? 당 건설은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최종 귀결점이 아니라, 그 출발점일 뿐이다. 또 건설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변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변혁적 활동가들의 존재 형식이자 활동 양식일 뿐이다. 물론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반자본 변혁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을 건설하지 않고는 반자본 변혁은 상정조차 하기 힘들다.

네트워크 조직이면 되지 않는가? 네트워크 조직으로는 일관되고 지속적이고 총체적인 반자본 변혁을 추진해 나갈 수 없다. 대중을 주체로 세우려는 노력 없이 대중행동의 조직화 없이 당 건설이 가능한가? 대중을 주체로 세우고 대중투쟁을 조직하며 나아가 그러한 대중투쟁을 반자본 변혁이라는 정치적 방향으로 이끌 당 건설이 필요하다.

 

너무 이르지 않는가? 계급투쟁이 더욱 진전됐을 때 당 건설이 가능하지 않는가? 지금 계급투쟁의 정세가 그 계급투쟁을 반자본 변혁으로 안내할 정당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강령은? 이미 최근 몇 년에 걸쳐 이행기 강령, 과도기 강령, 대중투쟁 강령, 21c 변혁전략 수준의 준비는 됐다. 당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소통과 논쟁의 접점이 형성 안됐을 뿐이다.

 

노동자계급 중심성을 이야기하는데, 과연 지금의 노동자계급이 변혁의 주도세력일 수 있는가? 노동자계급 내부를 통일시키는 것이 변혁보다 더 어렵지 않는가? 생산의 사회화를 담지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이 중심에 서지 않을 때, 반자본 변혁은 물론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지 않다.

현실의 노동자계급이 변혁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거꾸로 그들이 자본주의 모순의 직접적인 담지체이기 때문이다. 계급적 단결의 결과로 당 건설이 가능해 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당 건설을 통한 정치화가 계급적 단결을 위한 출발점이다.

 

지금의 사회주의 정치조직이 당 건설을 할 만한 역량이 있는가?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사회주의 정치조직이 여러 써클로 분화되어 있고, 또 그 분화는 나름의 역사성과 근거를 가지고 있다. 바로 그 역사성 때문에 정치적 신뢰가 문제되기도 한다.

그 판단은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서로간의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당 건설의 방향에서 찾아내야 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을 할 수 없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써클주의이자 패배주의일 뿐이다.

 

왜 사회주의 정치조직만 이야기하는가? 수많은 개별 활동가들도 사회운동 활동가도 있는데. 사실 최근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를 둘러 싼 대응을 보면, 기존의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의 대응이 훨씬 뒤쳐져 있다. 오히려 현장과 지역 활동가,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반응이 더욱 절박하고 신속하다.

물론 조직적인 의사결정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치조직은 현장과 지역의 활동가,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절박하고 신속한 대응을 당 건설을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새로운 동력으로 받아 안을 수 있는 틀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정치적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2007년 대선을 계기로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하던 ‘민주화’와 ‘개혁’의 시대는 마침내 막을 내렸다. 소위 ‘87년 체제’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운동의 정치적 파산과 분당으로 한 매듭을 짓게 됐다. 반자본 변혁세력도 이제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통해 한 시대의 정치적 매듭을 분명하게 지어야 할 시점이다.

‘87년 체제’의 종언은 “민주주의의 제도화”, “생활 속의 푸른 진보”가 아니라, 반자본 사회주의 변혁을 위한 정당 건설로 매듭지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진정한 ‘선진화’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있음을, ‘21c 시대정신’이 바로 ‘21c 사회주의’임을 실천할 수 있는 정당 건설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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