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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지나치지 못하는 시간 (바깥은 여름/쩡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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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지 못하는 시간

<바깥은 여름>, 김애란, 문학동네 / 20180929 / 쩡열

 
 

처음 펼치자마자 시작된 입동에서 멈칫하고 말았다. 아,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일, 없던 것처럼 사라질 수 없는 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사실 그게 무슨 일이라고 해도 그 전과 후는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이다. 우리는 변하는 시간 속에 사니까.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렇게 믿고 살았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 돌이킬 수는 없고, 그 일이 바로 지금의 나를 만든 일이라는 걸 믿었다. 아무리 힘들고 끔찍한 일이라도 이제 그 일을 돌아본다는 건 적어도 지나오긴 했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니까, 끝난 일이라는 것이니까 그래도 다행이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잊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의 경험이 모두 단단한 기억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은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모든 기억을 다 붙들고 살 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모든 일이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일도 있다. 내 몸에 마음에 단단히 자리잡는 그런 일. 이전의 내가 가진 중요한 것을 가져가고, 다른 것을 남겨놓는 그런 일. 그건 변화일 수도, 파괴일 수도 있다.

 

뒤늦게야 세월호의 고민이 건너왔다.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을 우리는 수없이 되뇌어왔다. 잊어서는 안 되는 재난이었기에 그랬고, 이젠 좀 잊으라고 하는 말들이 많아서 그랬었다. 그런 거였다.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아침 뉴스를 본 고모의 전화를 받고 시작됐던 내 하루, 내 주변 사람들의 안위를 확인하고, 안전을 말하는 뉴스를 확인하고 웃고 떠들었던 그 하루. 돌이켜보면 부끄럽다. 안산에 사는 가족과 친구를 걱정한 뒤 나는 안도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기억하지만 지나올 수 있었다. 그랬는데 올 봄에 깨달았다. 나는 그 시간을 지나왔지만, 그 일이 내 안에선 새겨져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실 이건 이미 내 안에 단단히 흉이 져버린 생채기 같은 일인 것만 같았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내 안의 뭔가를 잃었고, 뭔가가 생겨났다. 내 안이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 그럼 내가 잃어버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하게는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안전에 대한 공포’를 얻었다. 늘 그렇다고 스스로를 이해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그것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변화는 나에게만 있지 않았다. 이 사회를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어떤 변화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고, ’용서’하지 못했고, ‘용서’해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돌아볼 수 없는 일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공동정범을 떠올렸다. 끝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보기에는 끝난 일인데 나에게는 그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면 그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누군가의 시간을 정리해온 건 아닐까. 그 정리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볼 수 없는 일이 되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성폭력의 경험을 수면 위로 꺼낸 여성들이 떠오른다. 누군가 말했다. 나는 그 시간을 묻어뒀는데 떠오르고 나니 지나온 적이 없다고. 
그 일을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건 이해하지 못 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거라고 했다. 너무나 슬프고 끔찍한 일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을 기억하지만 또한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받아들일 근거가 나에게, 이 상황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다면, 누구도 나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갈지 알려주지도 도와주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그 시간에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무력하게 받아들인 채 덮어두고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잊혀지지 않는 일이라고 해서 지나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지나가야만 산다. 그 누구도 스노우볼안에서 영원한 겨울을 살도록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 혹은 살아가고 있으니까. 멈춰선 채로 흐르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이 그저 시간이 자꾸만 흘러가버린다면 얼마나 두려울까. 나도 두려웠다. 내 시간이 멈춰선 채로 내 몸이 멈춰선 채로 시간이 흘러갔고, 사람들이 변해갔다. 손을 쥐었다 펼쳤을 때 텅 빈 손을 바라보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런 슬픈 시간을 누군가에게 보내도록 하는 건 가혹하지 않을까. 
우리가 겪으며 살아가는 일들을 잘 받아들이고 지나쳐보낼 수 있는 건, 결국 많은 이야기일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설명하고 생각하고 이해했을 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또한 지나칠 수 있지 않을까.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만 한다면, 그저 멍하게 모든 것들이 나를 스쳐지나가는 대신, 더 많은 말들이 나의 발을 뗄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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